‘설설 끓는’ 최순실 저주설 내막

손석희까지…다음 차례는 누구?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2017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청문회 스타로 주목받았던 이용주 의원의 음주운전, 국정 농단 사건 제보자 고영태의 구속, 태블릿 PC의 존재를 밝힌 손석희 JTBC 대표의 폭행설 등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최순실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국정 농단의 핵심 최순실씨

손석희 JTBC 대표와 프리랜서 김웅 기자가 각각 공갈미수와 폭행 건으로 서로를 고소한 가운데 일각에선 확인되지 않은 동승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손 대표는 논란이 일자 입장문을 내고 “2017년 접촉사고 당시 동승자가 있었다는 주장과 일부 보도는 명백한 허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증명할 근거도 수사기관에 제출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흥했다
망했다

손 대표는 자신을 경찰에 신고하고 “2017년 접촉사고 당시 동승자가 있었다”고 주장한 프리랜서 기자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이번 사안을 의도적으로 ‘손석희 흠집 내기’로 몰고 가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당사자 김웅씨의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안을 둘러싼 모든 가짜뉴스 작성자와 유포자, 이를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매체에 대해서도 추가 고소를 통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며 “김씨가 거액을 요구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김씨의 구체적인 공갈 협박의 자료는 일일이 밝히는 대신 수사기관에 모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마포경찰서는 김 기자가 지난 1월10일 오후 11시50분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일본식 주점서 손 대표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지역 파출소에 신고했다고 지난달 24일 밝혔다. 김 기자는 사흘 뒤인 13일 마포경찰서를 방문해 사건을 정식으로 접수했다. 


김 기자는 손 대표와 단둘이 식사를 하던 중 네 차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기자는 경찰에 전치 3주의 상해진단서와 당시 녹음했다고 주장하는 음성파일을 이메일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가 김 기자를 공갈미수와 협박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경찰은 검찰 지휘하에 이 두 사건을 병합해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두 사람 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는 손 대표 측이 접촉사고를 빌미로 김씨가 채용 청탁을 했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김 기자는 오히려 손 대표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일자리와 투자 등을 먼저 제안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청문회 스타서 뭇매 맞는 신세로
논란 중심 손 여론 도마 위 올라 

김 기자는 지난달 27일 문자메시지 한 통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손 대표 측이 자신에게 월수입 1000만원이 보장되는 용역 사업을 주겠다”는 회유성 제안을 했다며 “이는 (JTBC에 대한) 손 대표의 명백한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19일 김 기자 측에 수신된 해당 문자에는 손 대표로 추정되는 인물이 월수입 1000만원을 보장하는 2년짜리 용역 계약을 제안하면서 “월요일 책임자 미팅을 거쳐 오후에 알려주겠다”고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세부적 논의는 양측 대리인 간에 진행해 다음주 중으로 마무리하겠다”라는 언급도 있었다.
 

▲ 손석희 JTBC 대표이사

김 기자는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2017년 4월16일 심야 시간에 손 대표가 경기도 과천의 한 교회 인근 공터서 접촉사고를 내고 현장을 이탈해 도주한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라며 “사고 직후 피해자들에게 추적당해 4차로 도로변에 정차했고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당시 사고 피해자들은 조수석에 젊은 여성 동승자가 있었다고 전했다”고 덧붙였다.

최 측근들은?
폭로하고 폭망


관세청 인사와 관련해 청탁을 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서 법정 구속된 고영태씨가 항소심서 더 높은 형량을 선고받았다. 고씨는 한때 최순실씨의 측근이었으나 최씨와 사이가 틀어진 뒤 언론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제보한 인물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지난해 11월7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고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추징금 2200만원도 명령했다. 고씨는 2015년 인천본부세관 직원으로부터 가까운 상관인 김모씨를 세관장으로 승진시켜 달라는 청탁을 받은 뒤 사례금 명목으로 총 22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고씨는 재판서 “2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은 단순히 최씨에게 전달하는 역할만 했고 2000만원은 받은 사실이 없다. 국정 농단을 밝히는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보복을 당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1심은 고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고씨는 항소심서도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고씨가 공무원 임명 알선에 대한 대가를 집요하게 요구한 데다 사적 이익도 도모해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고씨는 2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며 “받은 액수가 크지 않지만 죄질을 고려했을 때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최순실게이트’의 진상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장시호씨 역시 수감된 상태다. 장씨는 이모 최순실과 공모해 삼성그룹, 그랜드코리아레저(GKL)로 하여금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총 18억2800만원의 후원금을 강요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 국가보조금 7억1000만원을 부정 수령하고 영재센터 자금 3억원을 유용한 혐의도 받았다.

특히 그는 2016년 11월 구속 이후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검찰과 특검에 적극적으로 진술하면서 ‘특급 도우미’라 불렸다. 검찰은 1심서 장시호의 이 같은 역할을 고려해 징역 1년6개월의 가벼운 형량을 구형했다. 1심 법원은 그러나 “영재센터가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위해 설립됐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범행 즈음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장시호”라며 지난해 12월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 장시호씨 ⓒ사진공동취재단

최순실 국정 농단의 핵심 내부고발자 가운에 한 명으로 꼽히는 노승일씨도 평탄치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노씨는 내부고발 후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직장을 그만둔 이후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국정 농단 조사특위’ 청문회서 ‘K스포츠재단의 국정조사 대응방침’이라는 내부 문건을 폭로하고 최순실씨가 독일서 귀국하기 전 사건을 조작, 은폐하려고 한 발언이 담긴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끊이지 않는 
논란과 의혹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 때 누구보다 의혹의 중심에 선 인물들을 강하게 추궁했던 손혜원 의원은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였다. 손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여야의 공방전은 계속됐다. 손 의원 논란을 ‘손혜원 랜드 게이트’로 규정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목포를 찾아 투기 의혹이 불거진 역사문화거리와 도시재생사업 대상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전남 목포시청서 업무보고를 받고 “사업 관련 실질적으로 노른자위 땅 28%는 외지인이 갖고 있고 노른자 땅의 18%가 손 의원 일가의 땅”이라며 “이 사업 구역 지정이 계속 변경되는 과정에서 손 의원 일가의 부동산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목포 시민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특정인과 특정인 일가를 위한 사업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선 “민주당서 대대적으로 손혜원 구하기가 진행 중”이라며 “민주당이 그렇게 당당하다면 국정조사와 특검을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였던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손 의원은 야권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격을 가했다. 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이 나 원내대표의 회의 발언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번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감조차 못 잡으면서 어찌 4선 의원까지 되셨는지 의아하다”고 비꼬았다. 또 “곧 반전의 빅카드가 폭로된다. 방송 한 번 같이했던 정으로 충고한다. 부디 뒷전으로 한 발 물러나 조심하시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최순실 측근 줄줄이… 
제보자서 피의자로

손 의원의 투기 의혹을 두고 가족들 간에 폭로 공방도 이어졌다. 남동생 A씨는 손 의원과 나머지 가족들이 의혹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손 의원은 지난달 30일 유튜브 생방송을 자청해 “제 남동생이라고 누가 말한다고 속아 넘어가면 여러분 잘못이다. 조심하라”고 말했다.

앞서 손 의원 동생이라 주장하는 A씨는 전날 한 인터넷 게시판서 “손혜원이라는 괴물을 누나로 두게 되고 전 국민을 거짓말로 속이고 여론을 호도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두게 돼 죄송하다”며 투기·차명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손 의원은 “도박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돈을 끌어내려고 한다”며 “저와 가족이 동생과 만나지 않은 것이 한 20년 된 것 같다. 어머니 혼자서만 동생 옥바라지를 했다. 어머니가 4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동생에게 가서 돈을 넣어준 것을 제가 알았다”고 동생과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 ‘아들 성매매 의혹’으로 입길에 올랐던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그러면서 그는 “언론에 나오는 가짜뉴스를 다 믿지 않겠지만, (제 동생의 말은) 더 이상 믿을 만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다른 청문회 스타들도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은 음주운전으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았다. 이 의원은 지난해 10월31일 오후 10시55분께 술을 마신 채 7∼8㎞가량 음주운전을 한 혐의로 적발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차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강남구 청담공원 인근서 이 의원 차를 붙잡았고 운전자가 이 의원인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이 의원 혈중알코올농도는 0.089%로 면허정지 수준이었다.

쏟아지는 비난
순간 나락으로

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아들의 성매매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다. 장 의원의 아들은 2017년 방송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방송을 본 누리꾼들이 “장모군(장 의원의 아들)이 과거 미성년자를 상대로 ‘조건 만남’을 시도하는 등 인성에 적잖은 문제가 있었다”고 폭로해 파장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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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