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재벌 금수저들의 ‘엘리베이터 승진’ 현주소

천방지축 황태자 설익은 주인 행세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제약업계의 3·4세가 대거 경영에 참여하면서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이른바 금수저라는 시각을 극복하고 경영성과를 도출해낼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들의 경영 성적표가 속속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을까.
 

▲ (사진 왼쪽부터)남태훈 국제약품 대표, 윤인호 동화약품 상무, 이상준 현대약품 대표

국내서 금수저 출신들이 가족 기업에 입사해 임원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CEO스코어데일리>에 따르면 오너 일가가 임원으로 근무 중인 77개 그룹 185명의 승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입사 후 임원에 오르기까지 평균 4.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세 저물고
3·4세 시대

이들의 입사 평균은 29.7세, 임원 승진은 33.9세로 집계됐다. 일반 직원의 경우 임원 승진 평균 나이가 51.4세인 점을 감안하면 금수저 출신들의 경영인 승진은 일반 사원에 비해 17.5년이나 단축되는 셈이다.

제약업계서도 엘리베이터 승진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제약업계는 다른 업권에 비해 연혁이 길다. 따라서 2세 시대가 저물고 3·4세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월 현대약품은 이상준 대표이사 사장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3세 경영체제를 맞았다. 이한구 대표이사 회장이 대표직서 물러나면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 대표는 현대약품 창업주 고 이규석 회장의 손자로 3세 경영인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 대표는 동국대 독어독문과를 나와 미국 샌디에이고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현대약품에 입사한 것은 2003년이었다. 그가 임원직에 오른 것은 2008년 상무에 오르면서다. 입사 5년 만에 ‘별’이 됐다. 2012년 미래전략본부장을 거쳐 지난 2017년 신규 사업 및 R&D 부문의 성과를 근거로 신규 사업 및 R&D부문 총괄 사장직에 올랐다. 현재 그는 김영학 사장과 공동 대표체제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의 성적표는 어떨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별도 누적 기준 1010억2046만원의 매출액을 시현했다. 전년도 978억4228만원 대비 31억7817만원 상승했지만 수익성은 악화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4억6075만원인 전년 동기에 대비 6억5489만원이 감소했다. 경영 수장 1년차의 성적표로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오너 일가 4년 만에 임원 승진
제약업계는 지금 세대교체 중

이 대표에 대한 승계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회사를 장악할 만큼 확실한 지분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약품의 지분율을 살펴보면 이한구 회장이 17.88%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이 대표는 2대주주이긴 하지만 지분이 4.92%에 불과해 아직 회사에 대한 장악력이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이번 현대약품 성적표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일 수 있다.

일성신약의 경우 가족 세습경영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성신약은 현재 2.5세 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는 모양새다. 일성신약은 1954년에 설립돼 1985년 한국거래소에 상장했다. 윤병강 창업주 시대서 ‘윤석근’ 시대로 넘어간 뒤 그의 딸 윤형진 상무이사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윤석근 대표이사의 경우 3분기 기준 8.44%로 최대주주 신분이지만 윤 상무(1980년생)가 8.03%로 지분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윤 대표의 동생은 윤덕근 상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특히 지난해 윤 대표의 두 아들 종호·종욱씨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면서 가족 경영체제를 공고히 했다. 가족 경영의 결과는 어떨까. 지난 3분기까지의 성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당 기간 매출액은 453억6083만원으로 전년 511억8434만원 대비 58억2350만원 감소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16억1663만원으로 전년 22억7334만원보다 6억5671만원이 줄었다.

무리한 승계 한계?
불황 따른 결과?


국제약품도 남태훈 대표의 3세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남 대표는 1980년생으로 창업주 고 남상옥 회장의 손자이자 남영우 국제약품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미국 메사추제츠 주립대 보스턴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국제약품 계열사 효림산업을 거쳐 2009년 국제약품 마케팅부 과장으로 부친 회사에 입사했다.

이후 기획관리부 차장, 영업관리부 부장을 역임했다. 이후 영업관리실 이사대우를 거쳐 2013년 판매총괄 대표이사 부사장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4년 만의 부사장 진급은 동종업계서도 상당히 빠른 축에 속한다는 평가다.
 

그의 체제 아래서 국제약품은 비교적 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최근 3개년 매출을 살펴보면 2015년 1176억원, 2016년 1206억원, 2017년 1233억원의 매출을 시현한 것.

그러나 국제약품이 리베이트 논란에 휘말리면서 이 같은 호성적은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월 국제약품은 2013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4년간 전국 384개 병·의원 의사에게 42억8000만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경기남부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남 대표를 비롯해 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 등 관련자 총 127명을 입건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영업직원들에게 특별상여금이나 지원금, 출장비 등을 예산으로 처리해 영업부서에서 실비를 제외한 지급금을 회수하는 수법을 통해 자금을 모았다. 조성된 자금은 의사 등에게 리베이트 형식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올해 매출마저 감소하면서 그의 경영능력에 의문부호가 찍힐 전망이다. 지난 3분기 누적 연결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875억5955만원, 27억1921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억1462만원, 2억1944만원 감소했다. 향후 그의 경영자로서의 능력에 의심이 따라다닐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수장되자 적자 행진
리베이트 사건 빵빵

동화약품은 올해 4세 경영 체제에 시동을 걸었다. 동화약품은 지난 신년인사를 통해 윤인호 이사를 상무로 승진시켰다. 윤 이사가 입사한 지 4년 만에 상무로 진급한 것이다. 윤 이사는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에 동화약품에 합류했다. 재경·IT실 과장을 거쳐 이듬해 중추신경계팀 차장, 2015년 전략기획실 부장, 2016년 전략기획실 생활건강사업부 이사 등으로 입사 후 매년 진급했다.

이로써 동화약품은 4세 경영인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윤 이사는 기업 내 오너 체제를 처음 갖춘 윤창식 명예회장의 증손자다.

다만 승계를 위한 지분 정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동화지앤피는 지주사격으로 동화약품을 지배하고 있다. 동화약품의 주요주주 지분율을 살펴보면 동화지앤피가 지분 15.22%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윤 회장은 5.18%를 가지고 있으며,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가송재단은 6.39%를 쥐고 있다. 윤 이사는 0.88%로 장악력이 높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윤 이사가 가지고 있는 동화지앤피의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없다. 따라서 승계작업을 위해 경영능력 검증이 필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이사가 상무에 오르고 매출은 성장세를 나타냈지만 수익성은 다소 아쉽다는 평이다. 지난 3분기 별도 누적 기준 매출은 2312억1644만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1920억2866만원 대비 391억8777만원 증가한 것. 다만 영업이익은 78억884만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11억3055만원보다 33억2170만원 뒷걸음질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영업이익이 감소한 원인은 판관비 증가 영향이 컸다. 지난해 654억897만원의 판관비를 지출해 전년도 598억1625만원보다 55억9271만원이 증가했다. 따라서 영업과 마케팅 파트를 맡고 있는 윤 이사의 능력에 눈길이 쏠린다. 윤 이사는 향후 판관비 효용성 제고를 위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신제약은 2세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신신제약은 신년인사에서 이병기 이사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는데 그는 창업주 이여수 회장의 아들이다.

오너 일가의 승진치고는 1957년생인 이 대표의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다. 이 대표가 전자공학 관련 진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미시간대학교서 컴퓨터공학 석사, 산업공학 박사 과정을 거쳤다. 이후 명지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한국학술진흥재단 책임전문위원과 대한산업공학회 이사 등을 맡았다.

이 대표의 회사 장악을 위한 지분율은 낮다. 오히려 이 회장의 사위인 김한기 부회장이 이 대표의 지분을 웃도는 상황이다. 신신제약의 지난 3분기 기준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이 회장이 25.6%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뒤이어 김 부회장이 12.6%의 지분으로 2대주주 신분이다. 이 대표는 3.6%로 김 부회장보다 9%p 적다. 재계에선 이 대표가 회사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추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하고 있다.
 

▲ 이병기 신신제약 대표(사진 왼쪽)와 허승범 삼일제약 부회장

신신제약의 지난 3분기까지의 누적 매출은 487억9140만원으로 전년 동기 476억4537만원 대비 11억4603만원 증가했다. 그러나 수익성은 악화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24억8247만원, 22억7466만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2억4065만원, 6억8609만원 감소했다.

삼일제약은 허승범 삼일 부회장 체제로 굳혔다. 지난 7월 삼일제약은 최대주주가 허강 회장 외 8명에서 허승범 부회장 외 8명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허승범 부회장의 보유 주식수가 62만2926주(11.33%)서 72만8758주(11.21%)로 증가하면서 허강 회장의 지분율 9.95%(64만7052주)를 넘어섰다.


후계구도 
뒤바뀔 수도

허 부회장은 허 회장의 아들이자 고 허용 명예회장의 손자로 3세 경영인이다. 1981년생으로 미국 트리니티대학을 졸업, 지난 2005년 삼일제약 마케팅부에 입사해 회사에 합류했다. 이후 기획조정실장, 경영지원본부 등을 거쳤다. 2013년 3월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얼굴을 비쳤다. 이는 제약업계서도 최연소 수준의 대표이사 진급이다.

지난 2014년 3월 대표이사 부사장에 오르면서 경영 영향력을 넓혔고 같은 해 9월, 사장직을 꿰차면서 초고속 승진을 했다. 올해 부회장직으로 승진하면서 회장직 진급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경영인으로서 허 부회장은 지난해 악몽같은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920억3781만원으로 전년도 967억5806만원보다 47억2025만원 감소했다. 특히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당기순손실로 전환했다. 영업이익은 13억701만원을 기록, 전년 동기 38억5328만원 대비 25억4627만원 감소했다. 그 여파로 2016년 8억8660만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12억6656만원 당기순손실로 전환했다.

무리한 투자 수익악화
욕설 파문으로 아웃도

올해도 부진한 모습이다. 지난 3분기 누적 기준 712억483만원으로 전년 663억690만원 대비 48억4414만원 증가하는 데 성공했지만 당기손익뿐 아니라 영업이익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영업손실 37억6777만원, 당기순손실 55억8009만원 수준으로 집계된 것. 이에 따라 허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의심의 시각이 불가피해진 상황으로 그가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윤재승 대웅제약 전 회장은 구설에 휘말리면서 회장직서 물러나야 했다.

지난 9월 윤 전 회장의 욕설이 담긴 녹취록이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윤 회장은 직원의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자 “정신병자 XX 아니야. 이거? 야. 이 XX야. 왜 이렇게 일을 해. 이 XX야. 미친 XX네. 이거 되고 안 되고를 왜 네가 XX이야”라는 말을 쏟아냈다.

직원의 설명에도 “정신병자 X의 XX. 난 네가 그러는 거 보면 미친X랑 일하는 거 같아. 아, 이 XX. 미친X이야. 가끔 보면 미친X 같아. 나 정말 너 정신병자랑 일하는 거 같아서”라며 욕설 섞인 말을 했다.
 

당시 그의 형과 경영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 뒤 올라선 회장직이라 더욱 허무하다는 평이 뒤따랐다. 대웅제약의 창업자인 윤영환 명예회장은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윤 회장 위로는 첫째 형 재룡, 둘째 형 재훈 전 부회장이 있다.

지난 2009년 윤 명예회장은 1997년부터 12년간 대표이사직을 맡아 대웅제약을 이끈 윤재승 회장 대신 차남 윤재훈 전 부회장에게 회사 경영 전반을 넘기면서 차기 후계자로 낙점하는 듯했다. 

그러나 3년 후인 2012년 윤 명예회장은 윤 회장을 다시 대표로 앉히면서 후계자 자리는 윤 회장에게 돌아왔다. 재계에선 윤 전 부회장이 회사를 이끄는 동안 대웅그룹의 전체적인 실적이 부진한 것이 후계자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후 2년 뒤 2014년 9월 윤 회장이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오르면서 회사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5년 만에 욕설 논란으로 회장직서 물러나게 되면서 경영인으로서 아쉬움을 남겼다.

경영 능력
시험대 올라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제약업계에는 최근 2세 경영인 시대를 넘어 3·4세 경영으로 접어들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업계 전반의 부진으로 이들 경영인들은 자신의 경영능력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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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