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검은 욕망의 ‘신생아밀매’ 실태

단돈 몇 백만 원에 우리 아기들이 팔려간다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지난 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한 '신생아거래'가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신생아거래는 말 그대로 갓난아기를 사고파는 비윤리적행위로서 오래 전부터 알게 모르게 진행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의 아기까지 거래하려는 여성들이 나타나면서 국민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런데 거래의 뒤에는 다른 사람이 개입돼 있었다. '독수리오형제'라는 닉네임을 사용해 중간에서 신생아거래를 돕는 일명 신생아브로커가 바로 그. 너도나도 인권존중을 외치는 글로벌 사회 속에는 또 다른 이면이 숨어있었다. 그곳엔 아무 죄의식 없이 생명을 사고파는 행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던 것이다. <일요시사>가 파렴치한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의 실태를 조명했다.

 

지난 4월 스페인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돼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생명의 존엄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가톨릭 수녀들이 신생아를 무자비로 매매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일명 '신생아매매스캔들'로 불리며 세계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수녀들 뻔뻔하게
아기 훔쳐 돈 받아

사실 스페인에서는 수십년간 갓난아기들이 돈을 받고 팔려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스페인의 많은 미혼모들은 출산 후 자신의 아이를 볼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아기가 사망했다'는 병원 측의 통보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기의 사체를 확인하려고 하면 '이미 매장했다'는 짧은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때 병원에서 출산을 도왔던 간호사 대부분이 수녀였고 그들이 병원에서 몰래 신생아를 훔쳐 매매를 한다는 의혹이 지금까지 제기돼왔다. 그런데 최근 87세의 한 노수녀가 신생아를 매매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설이 아닌 사실로 드러나 세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같은 행위는 국내에서도 여과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IT산업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편리하게 물건을 구매한다. 그런데 이 편리한 인터넷을 악용해 살아 있는 신생아까지 거래하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어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 20대 여성이 개인적으로 입양한 생후 3개월 된 여아를 수차례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내막은 이렇다. 그녀는 이별통보를 한 남자친구를 붙잡으려 인터넷을 통해 일정한 금액을 주고 아기를 입양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남성은 막중한 책임감에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여성이 입양한 아기가 친자식인줄로만 알았던 남편은 입양아를 자신의 친자식보다 더 아꼈다. 이에 그녀는 "남편 닮았다"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진짜 남편의 자식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입양아를 수차례 구타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인터넷과 언론매체를 통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생명을 사고파는 비윤리적행위를 한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비난세례가 쏟아졌다. 그러나 지금도 아기를 팔려는 여성들은 인터넷상에서 각양각색의 이유를 들어가며 활개를 치고 있었고 연령대도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다. 

인터넷서 500~1000만원으로 손쉽게 거래 가능
10대 미혼모, 누구 자식인지 몰라 불법매매 시도

술 먹고 홧김에 일 저질러 아기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한 10대 여학생은 "미혼모라는 낙인이 싫어 아기를 팔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그녀는 "입양기록 자체를 남기고 싶지 않다. 이왕에 다른 사람에게 (아기를) 넘길 거면 조금이라도 더 주는 사람을 찾는다"며 물건을 거래하듯 말했다. 동거남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에게 아기에 대한 걱정은 사치였다. 당장 아이를 입양 보내서 그 대가로 될 수 있으면 많은 돈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과 17살의 고등학생 자식을 둔 한 40대 주부도 거액을 제시하며 신생아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성격 등의 차이로 오랜 시간동안 별거 중이었는데 그때 만난 남자친구의 아이를 갖게 돼 입양거래를 원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원래 동거남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말을 바꿨고 저 또한 아기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거래까지 생각하게 됐다. 솔직히 아이는 아무 죄도 없다. 그냥 좋은 부모 만났으면 하는 바람뿐이다"라고 말하면서도 "1000만원은 받아야 한다. 그 이하의 금액으로는 입양시킬 의향이 없다"며 확고하게 말했다. 

한편 낯선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하게 된 10대 여성도 있었다. 그녀는 가출한 상태로 가족과의 인연이 끊긴 상태였고 만삭인 그녀를 돌봐줄 보호자 한 명 없었다.

"비록 내가 원해서 갖게 된 아이는 아니지만 내 속에서 나온 아이기 때문에 입양결심을 했을 땐 너무 가슴이 아팠다. 만약 신생아거래가 확정 된다면 내가 받게 될 돈으로 차라리 아기용품 하나 더 사줬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사실 그녀는 아이를 한 번 입양시켰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입양을 한 여성은 담배를 피우고 욕을 자주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가정 속에 아이를 맡기기 싫었던 그녀는 급기야 다시 아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법 아직 없어


방송에 따르면 신생아매매는 보통 500만원에서 1000만원선 안에서 거래되고 있었는데 이는 병원비와 산후조리비를 모두 포함한 가격이었다. 게다가 국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신생아거래는 정식 입양이 아니고 개인입양, 즉 인터넷을 통해 불법으로 거래하는 입양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신생아를 전문으로 거래하는 불법 브로커도 존재하고 있었다. 이 날 방송에서는 인터넷 카페 등지에서 닉네임 '독수리오형제'를 사용하며 신생아매매를 종용하는 한 남성의 거래형태를 낱낱이 공개했다.

그는 인터넷에 아기를 입양하고 싶다는 여성들의 글을 확인한 후 은밀하게 쪽지를 보내 "아기도 입양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또한 그는 게시판에 자기도 입양한 아이가 셋이나 있다고 소개하면서 개인입양에 대한 신뢰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이 남성에게 이상한 점이 발견 됐다. 그가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이들로부터 신생아를 입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아이를 어떻게 그가 책임지고 키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었다. 분명 그는 신생아거래응 원하는 이들에게 "입양아는 자신이 직접 키우겠다"고 말했지만 진짜 그가 키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남성은 "나는 브로커가 아니다. 한 번에 목돈을 주거나 하는 사람들은 100% 브로커인데 나는 산모와 병원에 직접 가서 출산비와 산후조리비 모두를 결제하고 매달 얼마씩 생활비를 주는 식으로 한다"며 자신을 포장했다. 또한 동시에 많은 이들과 거래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나 입양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딱 잘라 말했다. 이어 "한 번의 목돈은 현행법상 불법으로 처리되겠지만 매달 5만원, 10만원 주는 것은 아무도 뭐라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것까지 제재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만약 이것이 불법행위이고 처벌을 받는 행위라면 달게 받을 자신 있다"며 다시 한 번 본인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이 상황을 경찰에게 제보한 취재진은 전에도 '그런 사례로 내사를 벌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하지만 경찰 측은 인터넷상에서 이뤄진 신생아거래는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입양자와 브로커 사이에 오간 돈에 대한 증거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처벌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오는 8월부터 새 입양특례법이 시행된다. 기존의 법은 친생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입양이 가능했고 무조건 시·군청에 신고를 해야 했다. 반면 개정된 법은 굳이 입양신고를 하지 않고 가정법원의 승낙이 있으면 입양이 가능하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아기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면에서는 굉장히 합리적인 법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입양, 불법과 무법이 난무하는 신생아매매 상에서는 이는 별로 효력이 없는 법이 될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인터넷상의 신생아매매에 관한 완벽한 규제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신생아거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본다"며 심히 우려를 표했다.

남편 둔 40대 여성, 애인 아기 가져 밀매 결심
성범죄?밤문화는 1위 성교육은 세계적으로 하위

이를 본 많은 누리꾼들은 각자 자신의 블로그나 SNS를 통해 신생아거래에 대한 비난과 우려의 글을 게시했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에 방송된 캡처사진을 첨부하며 "얼마 전 수원 20대 여성 토막 살인마 오원춘이 '인육을 판매하려고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수많은 신생아가 인터넷상에서 단 몇 명의 브로커를 통해 대규모로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중국으로부터 밀입된 인육캡슐이 최근 루트가 막혀 들여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다. 입양이라는 탈을 쓰고 불법으로 거래되고 있는 우리의 아기들이 그런 용도에 쓰이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이 든다"며 불쾌함을 나타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국내 성관련 문제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대안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성매매·강간 등 성범죄나 밤문화는 세계 1위 자리가 아깝지 않지만 실제 성문제 및 성교육을 대하는 사회의 시각과 태도가 구시대적이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라며 성문제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회풍토에 일침을 놓았다.

유교정신이 강한 우리나라는 예부터 성을 주제로 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다그치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들처럼 어릴 때부터 성교육을 받게 해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책임감을 심어줘야 했다. 그랬다면 앞에서 거론했던 10대 소녀와 40대 주부처럼 앞뒤 상황 고려하지 않고 덜컥 임신을 하고 게다가 그 아이를 돈을 받고 팔려는 무책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며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한 시대가 왔다. 여느 드라마에서 나오듯이 돈만 있다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게 지금 사회다.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 심어줘야


또한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먹고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자신의 아기를 파는 행위 또는 10대, 20대의 어린 여성들이 대리임신을 직업으로 삼으며 돈을 받고 아기를 주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희한한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존귀한 생명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비윤리적행위를 막으려면 사전에 성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아기의 인권에 대해 경시하는 행동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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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