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아래에서부터> 출판기념회 현장취재

  • 이주현 jhjh1313@ilyosisa.co.kr
  • 등록 2012.06.18 10:08:23
  • 댓글 0개

윤곽 드러난 ‘김두관 사람들’…본격 대선행보 시동 걸었다

[일요시사=경남 창원 이주현 기자]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가지며 본격 ‘세’ 다지기에 나섰다. 출마 여부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선출마를 기정사실화 하는 말들을 쏟아내며 사실상 대선출정식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이날 현장에는 김 지사를 지지하는 정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김두관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지난 12일 저녁 경남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래에서부터> 출판기념회 현장을 <일요시사>가 직접 다녀왔다.

김두관 경남지사 출판기념회에는 3000여 명에 이르는 지지자들과 수많은 취재진들이 운집했다. 출판기념회 예정 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이른 시간부터 많은 이들이 기념회 현장을 찾았다.

특히 김 지사의 고향인 남해군의 지지자들은 관광버스 10여 대를 나눠 타고 김 지사를 응원하러 창원을 방문했다.

행사장내는 순식간에 앉을 자리가 없이 가득 메워졌고 미처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참석자들은 컨벤션센터 내외부를 가득 채우며 장사진을 이뤘다.

부인했지만 사실상의
대선출정식으로 인식

그야말로 대성황이었다. 사전에 준비한 책 3000여 권은 행사 시작 전에 일치감치 매진돼 버렸고 주최 측에서 긴급하게 추가 확보한 2000여 권도 금방 동이나 참석자들은 책을 구입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이런 이들을 위해 주최 측은 택배 배달 신청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주변의 눈을 의식해 1000만원만 들인 검소한 출판기념회였지만 대성황을 이뤄내 김 지사의 위상과 저력을 과시한 자리로 평가받기도 했다.

출판기념회 전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 지사는 “오늘 대선출마 선언을 하지 않을까 하고 서울에서 기자들이 많이 내려온 듯한테 헛다리짚은 것”이라고 농을 건네며 운을 뗐다.

이어 김 지사는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이 노동자당 후보로 집권한 후 통합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씻고, 좌우 이념을 넘어 통합의 정치를 이뤘고 집권할 때보다 물러날 때 더 지지율이 높았다”고 높이 평가하며 자신이 롤모델로 꼽는 룰라 대통령의 성공이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 등을 소개했다.

또한 룰라가 호세프 정부를 창출한 것을 언급하며 “대선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집권에 성공하고 다음 정부를 창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당시 당선자 신분)이 청와대에 입성해 자신을 도와달라고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은 일화와 노 전 대통령과 고건 당시 총리까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지만 특유의 배짱으로 주민투표제를 밀어붙였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3000여 명에 이르는 수많은 인파속에 책은 매진, 성황리에 마쳐 
5승6패 전적 “승률 5할 맞춰야 할 텐데, 올 연말에 승리할까요?”


그는 책 속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로 자신이 ‘백수’시절 남해 금산을 찾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정부는 자고로 힘들 때 찾아온 사람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산보다는 나아야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출마 여부와 관련해 별로 할 말이 없다”면서도 “여야 후보들을 봤을 때 삶의 궤적을 보면 저처럼 살아온 사람이 드물다”며 자신의 경쟁력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 오는 19일에는 18개 시·군 순회 도정 설명회를 마무리 지을 계획과 21일부터 24일까지는 중국 출장 예정, 6월30일이 1년의 절반이자 자신의 도정 절반을 지나는 변곡점임을 강조하며 7월에 출마 선언을 할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대선출마를 전제로 한 판세를 묻는 질문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주자들이 지금 모습으로는 박근혜 전 위원장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8~9월에 경선이 이루어지면 각 후보들이 자기 정책을 갖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1위와 2위의 순위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대선 후보 경선은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하게 될 것이라 본다”며 문재인 고문 등 민주당 후보들과의 토론 등을 거치면 자신의 지지율이 급등할 것으로 자신하기도 했다.

‘불환빈 환불균’
좌우명 퍼포먼스

이어 진행된 사인회에는 김 지사의 친필사인을 받기 위해 장사진을 이뤘고, 사전공연으로 흥을 돋웠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본행사는 개그맨 노정렬씨의 사회로 1부-인간 김두관, 2부-김두관의 비전, 3부-대합창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출판기념회에 빠지지 않는 순서인 내빈소개가 생략되어 눈길을 끌었고 ‘김두관 사람들’ 면면을 파악하고 싶어 주의를 기울였던 기자를 당혹하게 만들기도 했다.

행사 관계자는 “오늘 행사에서는 참석자 모두가 내빈이라는 김 지사의 인식아래 생략했다”고 전했다. 대신 참석자 모두가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 행사가 시작된 직후 김 지사가 노정렬씨와 토크를 시작하며 “제가 선거에 11번 나가 5번 이기고 6번 졌다”며 “승률 절반을 맞춰야 할 텐데 올 연말에 승리할까요?”라고 웃으며 묻자 청중석에서는 ‘김두관’ ‘김두관’이라는 연호가 터지기도 했다.

행사에서 김 지사는 “지방자치시대를 대비해 많은 이론적 연구와 실천적 행정을 해왔다”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적 능력이 뛰어나 아이디어를 갖고 정책·의견을 내는 스타일이었다면, 저는 같이 일하는 분들의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수립해서 추진하고, 성과를 내는 방식이다”고 노 전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도지사는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해서 집행하면 완결된다. 중앙부처 장관은 정책을 하려면 다른 부처와 업무 협조가 되지 않아 힘들 때가 있다. 저는 장관(행자부) 7개월 때보다 지금 도지사할 때가 훨씬 보람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행사 도중 한 서예가가 김두관 지사의 좌우명인 ‘불환빈 환불균’(백성은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불균등함을 걱정한다)을 쓰는 퍼포먼스를 벌여 무대 정면에 걸어놓기도 했다.

김 지사는 “남해종고 다닐 당시 <샘터>라는 잡지에 실린 ‘이달의 고사성어’에서 처음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밝히며 “지금도 지사실 한켠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 양극화를 극복하고 경제정의·경제민주화를 이룩하는 게 시급하다”고 국가 균형발전을 강조했다. 김 지사는 “2013년 체제를 이끌 정부는 제대로 중앙과 지방이 소통하면서 차별을 없애야 한다. 어느 정부가 되든 결단해야 한다”면서 “IMF 신자유주의 이후 재벌·대기업은 자본 축적이 되었지만 중소기업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에서 지난 1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게 두 가지다. 하나는 농민들이 생산한 쌀값이고,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다. 차기 정부는 1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라며 “지금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될 수 없는 구조다. 대기업은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있다. 이 부분을 국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공 영역을 시장에만 맡길 수 없고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강변하자 청중석에서는 “옳소”라는 소리와 함께 또 다시 ‘김두관’ 이름석자가 행사장에 울려 퍼졌다

행사장 가득 울린
‘김두관’ ‘김두관’

한편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정치권 인사들도 대거 참여했다. 지난 10일 김 지사의 대선 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민주통합당 원혜영, 안민석, 김재윤, 민병두, 문병호, 신장용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부영, 장영달, 김재균, 김태랑, 정한용, 전현희 전 의원 등도 참석했으며, 이병완 전 비서실장(현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윤승용 전 홍보수석 등 참여정부 인사들도 대거 자리를 함께했다.


 이밖에도 유원일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의 권영길·조승수 전 의원과 고영진 경남도교육감 등 많은 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김 지사의 핵심 조직인 자치분권연구소의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원혜영 의원이 “경남도민 여러분이 뽑아주신 김 지사를 많은 국민들이 서민을 대변하는 대통령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며 “경남도민한테 죄송하지만, 김두관 지사를 대한민국을 위해 빌려 달라고 부탁의 말씀을 드리려 왔다”고 인사말을 하자 많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 지사가 대선에 나서기 위해선 가장 힘든 관문인 도민 동의를 받아야한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원 의원은 이어 “궁핍·부정의 시기에 서민을 대변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서민을 성공시킬 대통령이 필요하다. 김 지사의 경륜과 철학, 구상을 가지고 서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두관 지사는 노무현재단 회원이다. 요즘 재단이 복에 겨워 있다. 많이 이끌어주고 만들어주신 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함께 나서는 것 같다. 이사장으로서 노무현재단이 더욱 발전하려면 김 지사가 꿈을 이루어야 한다. 재단도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다. 저도 아래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와 경쟁적 관계가 된 문재인 고문은 “책 출판을 축하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긍정을 심어주는 책으로 되길 바란다”며 축전을 보내 김 지사의 출판기념회를 축하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허기도 경남도의회 의장은 인사말에서 “좀 전에 원 의원이 김 지사를 빌려달라고 했는데 그러려면 보증서가 있어야한다”며 “많은 도민들이 도정 공백을 우려하고 있는데 이를 말끔하게 씻을 수 있도록 보증서를 끊어줘야 한다”고 뼈 있는 농담을 날렸다.

김 지사의 고향 친구이자 중·고등학교 동창인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게스트로 나와 “큰 인물이 될지 알았다” “축구를 상당히 잘했다”는 등 김 지사의 어린시절을 회고했다.

신 전 위원장은 이어 김 지사의 영어 이니셜 ‘DK’를 ‘DREAM KOREA, DIGITAL KOREA, DYNAMIC KOREA’라고 의미를 부여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김영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상임대표는 “저는 김두관 지사가 존경하는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과 나이가 같고, 오는 12월19일(대선 날짜)이 제 생일날이다”며 “만약에 김 지사가 12월19일 꽃다발을 많이 받게 되면 저한테도 하나 보내주길 바란다”고 말하며 김 지사의 대선승리를 우회적으로 응원했다.

“박근혜 대항마는 나 자신! 지지율은 변하기 마련!”
원혜영 “대한민국을 위해 김두관 지사를 빌려 달라”

김 지사는 마지막 발언으로 “많은 국민들이 정권교체의 기대를 갖고 있는데,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시대교체도 해야 한다”면서 “어려운 노동자·농민 등 서민의 삶이 좋아지는 따뜻한 나라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지사의 소개 영상 시청과 사회자 노정렬씨의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의 풍자 성대모사 등으로 즐거운 분위기 속에 이어진 출판기념회는 김 지사와의 포토타임과 대합창을 피날레로 성황리에 마쳤다.

김 지사는 출판기념회 직후 마련된 기자들과 ‘호프타임’도 가졌다. 바쁜 일정상 오랜 시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출판기념회로 김 지사의 대선행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김두관 사람’들 면면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친노그룹부터 재야그룹, 정동영계, 천정배계, 동교동계까지 다양한 인사들이 속속 결집하며 민주당내 역학구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중 핵심인사는 친노 그룹의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있다. 이 전 수석은 한때 손학규 상임고문을 도왔으나 현재는 김 지사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윤 전 홍보수석도 김 지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다만 이병완 전 비서실장의 경우 출판기념회에 모습을 비추긴 했지만 문재인 고문에 이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어 김두관 사람으로 규정하기는 무리라는 평가다.

민병두·강창일 의원은 과거 정동영계로 분류됐던 인사들이고 문병호·최재천 의원은 천정배계였다. 안민석 의원은 손학규계, 배기운 의원과 김태랑 전 의원은 동교동계 출신이다. 김재윤 의원은 무계파 인사였지만 김 지사로 방향을 선회했다.

4선 원혜영 의원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자치분권연구소’와 김태랑 전 의원이 주도하는 ‘생활정치포럼’ 등의 싱크탱크와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모임인 ‘머슴골’ 등이 지지그룹이다.

재야·운동권 출신도 포진했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김 지사를 돕고 있으며, 최근 경남도당위원장으로 선출된 장영달 전 의원도 김 지사를 지지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토사구팽 당하며 공천을 받지 못한 유원일 전 의원도 김 지사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김 지사와 정서적으로 맞고 개인적으로 신세진 부분도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며 “김 지사가 출마를 선언한다면 적극 도울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대선캠프의 면면도 구체화되고 있다. 김 지사의 최측근 11인은 지난 16일 경남 창원에서 1박2일간 대선 출마를 전제로 한 전략 수립과 캠프 구성 작업 워크숍도 열었다.

대선캠프 구축
1박2일 워크숍

캠프 대변인은 호남 출신 서울 재선인 최재천 의원이 맡고 기획은 전략통인 민병두 의원이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출판기념회를 기점으로 김 지사의 외곽 지지그룹 숫자와 규모는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다. 본격 대선정국으로 접어들기 전 김 지사를 지지하는 이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 있는 정치인’으로 ‘최고의 블루칩’으로 평가받는 김 지사의 본격적인 세 불리기에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선을 향해 성큼성큼 한발을 내딛고 있는 그의 종착지가 과연 어디까지일지 기대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