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김 사장, 오랜만이네. 최근 광화문광장에서 자네를 MBC 사장 자리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1인시위를 두어 번 벌인 적이 있네. 내게 자네에 관해 묻는 전화가 가끔 오더군. 1인시위 때문이 아니야. 자네나 나나 기자생활 30년이 넘은 마당에 마치 남의 말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기자라는 게 참 그악스럽긴 하데 그려. (중략)
자네가 어떻게 MBC 사장으로 가게 됐는지, 많은 해설을 들었지만 그 얘기는 여기서 다시 꺼낼 필요가 없지 않나 싶네. ‘77동기회’라 이름 붙이고 가끔씩 MBC와 경향 입사동기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오가는 얘기로는 계열사 사장을 한 번 이상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더군. 그런데 자네가 파격적으로 울산MBC 사장에서 청주MBC 사장으로 두 번씩이나 지방사 사장을 역임하고 드디어 본사 사장으로 영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솔직히 “이 친구가 나도 모르는 엄청난 능력이 있었구나!”라는 감탄보다는 “이 친구 이거 어떻게 하려고 이러지?”하는 걱정이 앞섰다네.
난 오래전부터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는 ‘그릇론’에 동의하는 편이었다네. 기업사장이나 하면 족할 사람이 대통령을 한답시고 나라를 들어먹는 꼴을 보고는 ‘그릇론’에 동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봉하게 됐지.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네라는 그릇은 MBC 사장이란 자리를 담을 만큼 넉넉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지. 불행히도 그런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군. (중략)
어느 누구도 자네를 그런 위협에서 구해줄 수가 없네. 자네만이 할 수 있네. 잘못이 있으면 그 죄를 달게 받겠다는 결심을 하게. 언제라고 자네의 잘못이 그대로 덮어지겠나.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저들의 마수에서 벗어나 역사 앞에 서게. 단, 자리에서 내려오기 전에 후배들에 대한 징계와 조직개편을 포함한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게. 확신하건대 자네가 일정한 고난을 면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 순간에만은 후배들로부터 우렁찬 박수를 받을 것이네.
이 보게 재철이, 우리가 내일모레면 어느새 나이 60이 되네. 60이면 이순(耳順)이라 하지 않나. 세상 이치를 저절로 알게 되는 나이라는 말일세.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솔직해지고 싶네. 내가 오늘 자네에게 장문의 공개편지까지 써 가며 이렇게 주절댄 것은 사실 자네를 위한 것보다 나를 위한다는 의미가 더 크네. 같은 언론인으로서, 같은 고교 동창으로서 정말 쪽팔려서 못 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