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일 만에 덜미 잡힌 '수유동 살인사건' 전모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3.26 20:17:42
  • 댓글 1개

"비만 오면 살인 충동…그날도 비가 왔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2010년 7월 발생해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강북구 수유동 다세대주택 20대 여성 성폭행 및 살인사건의 범인이 최근 다른 성폭행사건을 저질러 사건발생 600여 일 만에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최근 원룸에 침입해 여성을 성폭행한 용의자의 DNA가 2010년 수유동 살인·방화범과 동일인임을 확인하고 범인을 검거했다. 범인은 한 은행의 청원경찰이었다.

성폭행하고 살인·방화 청원경찰, 살인 기억 지우려 성폭행
"내 얼굴 못 봤고 신고 안 할 것 같아 죽이지 않았다"

사건은 2010년 7월26일 오전 7시14분께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다세대주택 3층 화재현장에서 이모(24·여)씨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이씨는 자신과 단둘이 사는 어머니 박모(56)씨가 당일 새벽 4시께 일을 하러 나간 사이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강북 발바리' 체포

당시 집안은 화재 때문에 지문이나 머리카락 등 범인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씨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시신에 남아 있던 정액에서 한 남성의 DNA를 확보했고, 경찰은 이씨의 남자친구와 직장동료, 사건 현장 주변에 혼자 사는 젊은 남자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DNA를 수집해 분석했다. 하지만 유전자정보가 일치하는 용의자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씨 집 부근에 설치된 방범용 CCTV와 편의점 등에 설치된 사설 CCTV까지 모두 분석했지만 이렇다 할 특이점을 포착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씨가 인터넷게임 '월드오브워크레프트'를 즐겨 했다는 점에 컴퓨터 기록을 확보해 웹상에서 대화를 나눈 주변 남성들까지 모두 조사했지만 역시 여기서도 별다른 혐의점을 포착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증거라고는 한 남성의 DNA정보밖에 없는 상황.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 DNA 증거에 희망을 걸고 최근까지 전담팀을 운영하면서 언젠가는 방화·살인사건의 범인도 잡힐 것이란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최근 카드빚에 시달린 범인이 또 다른 여성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훔치면서 자칫하면 '제2의 살인의 추억' 될 뻔했던 사건이 해결됐다.

지난 21일 서울 성북경찰서는 성북구 동선동의 한 원룸에 침입해 자고 있던 여대생 K(23)씨를 성폭행한 뒤 금품을 훔친 혐의(특수강간 등)로 강모(37)씨를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지난 11일 미리 흉기와 청색테이프 등을 준비해 K씨의 집에 들어가 테이프로 K씨의 눈과 입을 가린 뒤 금품을 강탈하고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씨는 이 같은 수법을 TV 범죄수사물 프로그램을 보고 배웠다고 진술했다. 그는 복면과 장갑을 착용하고 성폭행 뒤의 흔적을 모두 치울 정도의 치밀함을 보였다.

하지만 경찰은 K씨의 몸에 묻어 있던 용의자의 타액을 국과수에 보냈고, 분석 결과 2010년 7월 강북구 수유동에서 발생한 성폭행 방화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정보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CCTV화면과 교통카드 사용명세를 추적해 범인이 지하철 4호선 혜화역으로 이동해 복면을 벗는 장면을 확보해 잠복근무 끝에 20일 오후 7시께 강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강씨 집을 수색해 방 서랍에서 식칼 13개와 피해자들로부터 훔친 것으로 보이는 손목시계 78개를 발견했다.

경찰에 붙잡힌 강씨는 2년 전의 범행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그는 2년 전 범행에서 당시 피해자의 손을 케이블타이로 묶고 성폭행 한 뒤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른 것.


강씨는 고등학생이던 1992년 퍽치기 범행으로 입건된 적이 있지만 당시 혈액형을 허위로 기재한 덕에 DNA 조사에서 빠져 나갈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개발 지역에서 용역 일을 하다 올해 3월부터 경기 용인의 한 은행에서 청원경찰로 근무해 온 강씨는 경찰조사에서 "2년 전 범죄를 저지른 뒤 죄책감에 가위에 눌리는 등 심적 고통을 겪었고, 새로운 범행을 하면 과거 범행 기억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해 새로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또 "유독 비 오는 날 범행 충동이 끓어올랐다"며 "2010년 첫 범죄를 저지르던 날도 비가 왔다"고 했다. 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수유동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피해자가 내 얼굴을 못 봤고 신고할 것 같지 않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경찰 관계자는 강씨를 "평범한 옷차림에 준수한 외모"라고 설명하면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성향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강씨는 2년 전 수유동 사건 때도 증거를 없애기 위해 방화를 하는 등 '완전범죄'를 꿈궜지만 범죄현장에는 결국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원룸 성폭행 사건 때의 CCTV가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고 말했다.

'완전범죄'는 꿈 일뿐

경찰은 강씨 집에서 발견한 식칼과 손목시계를 토대로 강씨가 두 사건 외에 강북 일대에서 발생한 다른 성폭행 사건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강씨는 "시계는 재개발 지역에서 주운 것으로 범죄와는 관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강씨에 대해 여죄를 추궁하는 한편 수사를 마무리 하는 대로 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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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