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서울시장 유력후보 전격 비교검증②걸어온 길

판사 출신 ‘엘리트 제도권’ 나경원 vs 인권변호사 출신 ‘시민운동가’ 박원순

[일요시사=손민혁 기자]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 나선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야권의 박원순 후보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진영에서 각각 스타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역정은 사뭇 달랐다. 나 후보가 ‘제도권’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경우라면 박 후보는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을 한 ‘운동권’이었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법고시를 패스한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 뿐이다. 서울시장 유력후보인 두 사람의 ‘걸어온 길’을 전격 비교·검증 해봤다.

‘제도정치권’과 ‘시민사회진영’의 두 스타
같은 법조인 출신이지만 인생역정은 판이

사법고시에서는 나경원 후보가 34회, 박원순 후보가 22회로 대선배다. 나 후보는 부산, 인천지법, 서울행정법원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판사생활을 하면서 정통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반면 박 후보는 대구지검 검사로 1년여 근무했지만 곧바로 인권변호사로 돌아서면서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섰다. 두 사람의 길은 법조계 이후 완전히 갈렸다.

1963년 12월6일, 네 명의 딸 중 첫째로 태어난 나 후보는 서울여자고등학교 시절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체 557명 가운데 1등을 차지할 정도로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거쳐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4기를 10위권 이내의 성적으로 수료한 나 후보는 판사 재직 당시, 대학 시절에 만난 김재호 서산지원장과 결혼했다.


‘미녀 정치인’ 나경원

나 후보는 2002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비교적 큰 파고 없는 정치활동을 보여 왔다.

이 전 총재가 대선 패배 후 잠시 변호사 활동을 했지만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했고, 2006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서울시장 후보에 오세훈 전 시장이 결정되자, 오 전 시장의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이후 강재섭 전 대표 시절 당 공동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서 당선, 재선에 성공했다.

나 후보의 정치 행보에서 질적인 도약대는 2010년 6월 서울시장 선거 후보 경선이었다.

당시 오 전 시장에게 패배했지만, 3선이던 원희룡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에서는 승리했다. 그해 7월 전당대회에서는 3위의 성적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어 지난 7·4 전당대회에서도 3위의 성적으로 연이어 최고위원 자리를 꿰차며 입지를 굳힌 나 후보는 홍준표 대표의 반대도 있었지만 서울시장 재보선에 전략공천으로 후보에 나섰다.

현 정부에서는 범 친이계로 분류되며 정부의 역점 추진과제였던 미디어법 처리에 앞장섰다. 개각 때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렸고, 높은 인지도로 당내 경선에서 항상 높은 득표력을 보이며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다.

반면 박 후보는 참여연대 사무처장, 상임집행위원장에 이어 2002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를 맡아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국내 대표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든 시민운동 1세대 선두주자다. 박 후보는 오랜 기간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한 점을 높게 평가 받아 지난 200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후보는 경기고를 졸업한 뒤 나 후보와 같은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1학년 때 유신체제에 항거에 할복한 고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 제적되면서 대학은 1983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12기로 수료하면서 법조계에 입문한 박 후보는 대구지검에서 1년간의 짧은 검사생활을 한 뒤 변호사로 활동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 권인숙 성고문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박 후보는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1991년 박 후보는 돌연 유학길에 올라 2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1994년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참여연대를 창립, 사무처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소액주주운동 등을 성공시키며 우리 사회의 1세대 시민운동가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말 IMF 위기 때에는 소액주주운동을 통한 재벌개혁운동을 펼쳤고, 2000년 총선 때에는 `부적격 후보들에 대한 낙천ㆍ낙선운동을 처음 주도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지난 2000년에는 8년간 몸담았던 참여연대를 떠나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또 2001년에는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하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를 지냈다. 아름다운 재단이 본궤도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21세기 실학운동’을 기치로 ‘희망제작소’를 설립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목표로 활동을 벌여왔다.

한때 대권후보로 거론될 만큼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잇따랐지만 박 후보는 시민사회진영의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정치권의 새로운 핵으로 등장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며 나 후보를 앞서고 있다.

‘시원 원순’ 박원순

‘미녀 정치인’ ‘똑순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 후보와 ‘원순씨’ ‘시원 원순’등 친근한 이미지를 가진 박 후보. 이렇듯 같은 법조계 출신이지만 판이하게 다른 인생역정을 보이는 두 후보자다.

걸어온 길이 다르듯 그들의 사상과 정책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 보름도 채 남겨 두고 있지 않은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것인지 서울시민들의 현명한 판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