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 토로> 건국대 설립자 유가족 대표 유현경 여사

“김경희 파워에 놀랐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장지선 기자 = 건국대는 그동안 수많은 풍파를 겪었다. 지난 10여년간 불거진 김경희 전 이사장의 비리 의혹은 5대 사학을 꿈꾸던 건국대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교육부 감사, 검찰 조사 등 외부 충격이 가해졌지만 의혹은 깨끗하게 해소되지 못했다. 오히려 학교 관계자들의 반발만 거세지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는 ‘건국대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서 ‘건국대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대표인 유현경 여사를 만났다. 유 여사는 건국대 설립자 상허 유석창 박사의 자녀로, 7남매 중 셋째 딸이다.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과는 시누이-올케 관계다. 

유 여사는 김 전 이사장이 건국대 법인에 이사로 들어갔다가 이사장에 오르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러면서도 학교 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김 전 이사장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2013년부터다. 

김 전 이사장의 비리 의혹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때다.

최근 건국대 임대보증금 문제가 언론을 통해 크게 다뤄졌다.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돈의 액수는 수천억원 대에 달한다. 감사원의 교육부 감사를 통해 알려진 임대보증금 문제는 건국대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임대보증금 사용 내역, 천문학적인 돈의 흐름을 수사하는 과정서 나타난 의혹이 집약돼있기 때문이다.

유 여사는 이에 대해 “2014년 김 전 이사장을 수사하는 과정서 검찰이 축소 수사를 하는 바람에 상황이 이만큼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유 여사와 일문일답. 


유석창 박사의 딸…김경희 전 이사장 시누이
대신해 학교 정상화 비대위 대표 맡아

-검찰이 김 전 이사장에 대해 축소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2014년 검찰 수사 당시 학교법인계좌를 열람했다면 여러 의혹이 속 시원하게 해소됐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학교법인계좌를 열람하기는커녕 재판 과정 중에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까지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김 전 이사장은 집행유예로 나왔고, 이사장직에 딸인 유자은 현 이사장을 앉힐 수 있었다. 김 전 이사장은 물러났지만 학교는 여전히 김 전 이사장 손아귀에 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 학교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제대로 수사를 안 했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건국대 수사를 했던 O 검사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검사를 많이 만나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정의로운 분이었다. 김 전 이사장의 추가 비리가 의심된다며 미술품 비자금과 관련해 고발하라고 비대위 측에 조언도 해줬다. 법인계좌를 열람하기 위해 김 전 이사장의 비자금 창구로 의심됐던 화랑 예맥을 고발한 거다. 

또 수사가 끝난 이후에도 매번 김 전 이사장의 공판에 나와 공소 유지에 힘썼다. 당시 김 전 이사장 재판 중 공소장 변경(김 전 이사장의 골프 접대 명단을 실명서 비실명으로 변경)이 크게 문제가 됐다. 그때 (공소장 변경을) O 검사가 신청했는데 상당히 난감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건 분명 O 검사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검찰 윗선서 개입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건국대 수사 과정에선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이 다 외압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해 말 O 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이때 O검사가 나에게 “(법인) 계좌를 추적해 보려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고 말했다. 

또 수사를 지휘했던 C 부장검사도 되게 열심히 했다고 자문 변호사에게 들었다. 자문 변호사는 C 부장검사와 지인인데, 사석에서 C 부장검사가 “아무리 봐도 (김 전 이사장은)구속감 인데 위에서 계속 수사를 더 하라고 그런다” “화가 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로운 것은 그 C 부장검사가 현재 김 전 이사장 골프 접대 리스트에 이름이 있던 안대희 전 대법관(전 건국대 석좌교수)이 근무하는 로펌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점이다. 이 로펌에는 김 전 이사장을 수사하기 직전 동부지검 차장 검사도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당시 수사팀에선 (건국대 문제가)큰 사건이라고 생각해 수사 의지가 충만했다. 법인계좌를 봐야 한다는 요청이 수차례 윗선으로 올라갔지만 위에서는 더 보충하라는 말만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3개월이면 끝날 수사가 6개월가량 걸렸다. 

수사 직전에는 정관계 고위 관계자들이 건국대 석좌교수로 들어왔다. 또 검찰 출신들을 대거 로스쿨 석좌교수로 임용했으며, 국내 5대 로펌이 사건을 수임했다. 이런 것들이 수사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더 꼼꼼히 하라는 취지 아닐까?

▲수사와 재판을 지켜보면서 김 전 이사장의 파워를 실감했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친 거였다. 

이미 검찰에서는 김 전 이사장의 불구속 기소를 염두에 뒀던 것 같다. 이런 사실을 김 전 이사장 재판에 보조 참가할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서 알았다. 당시 변호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앤장, 광장, 바른, 태평양, 세종 등 주요 로펌을 김 전 이사장이 이미 선임한 상태라 마땅한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법무부장관 출신인 K 변호사를 통해 검찰 출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P 변호사를 어렵게 소개 받았다. P 변호사는 박근혜정부 때 장관급 고위직을 지냈던 인사다. 이분은 당시 동부지검 고위관계자를 잘 안다고 했고, 그 분과 바로 내 옆에서 통화까지 했다. 

둘 다 목소리가 커서 대화 내용이 다 들렸다. 전화기 너머로 “이미 끝났는데 관여하지 말라”는 말이 들렸다. 그날 저녁 K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P 변호사가 사건을 맡기가 어렵겠다고 하더라. 

이때가 2014년 5~6월경으로 김 전 이사장 수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수사가 진행 중인데 이미 끝났다는 게 말이 되나. 실제 동부지검은 김 전 이사장의 개인 비리만 수사하면서 구속영장도 청구하지 않고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도 집행유예로 끝났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지켜봤다
의문과 의심을 지울 수 없다”


-2014년 사태가 불거졌을 때 유 여사가 이사장 자리를 두고 집안싸움을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당시 언론서 내가 이사장 자리에 오르고 싶어 나선다는 보도가 많았는데, 이는 김 전 이사장이 설립자 유가족을 음해할 목적으로 퍼트린 소문에 불과하다. 

김 전 이사장 1심 공판 때 증인으로 나간 적이 있다. 이 때 김 전 이사장 측 변호인이 PPT까지 준비해 그와 비슷한 질문을 했다. 나에게 ‘(건국대)이사를 하고 싶냐’고 물어서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자 ‘앞으로 건국대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냐’고 물었고 ‘교육부서 관선 이사가 와서 학교를 정상화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질문을 끝내버렸다.  
 

김 전 이사장 측은 여러 의혹이 제기된 배경을 이사장 자리를 둘러싼 집안싸움으로 축소하려 했다. 설립자 가족들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고발했다고 몰아가려 한 것이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2013년 전에는 어땠나. 원래 학교일에 관심이 많았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아버지(유석창 박사)는 딸들이 학교에 오는 걸 싫어했다. 딸은 현모양처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다. 학교 운영은 남동생 일윤(여섯째)과 승윤(일곱째)이 했다. 사실 아들만 대접을 받았다. 


딸들은 학교와 담을 쌓고 살았다. 일곱째 동생과 올케(김 전 이사장)가 학교 자리 문제로 싸웠을 때 우리 딸들은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집안싸움으로 비치는 게 싫어 오히려 더 학교 일에 신경을 끄고 살았다. 

-평생 학교랑 담을 쌓았는데, 이제야 나서는 이유는?

▲김 전 이사장이 김진규 전 총장을 건국대로 데려오면서 학교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이때도 김 전 이사장이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가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내렸다. 

건국대는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는 평생 양복 한 벌, 신발 한 켤레로 가난하게 살았다. 일류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좋은 학교를 만들겠다는 게 아버지의 유지였다. 그런 학교가 망가지는데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학교에 반기를 든 교수들이 잘려나갔고 한 학생은 학교가 나서서 불법적으로 퇴학까지 시켰다. 성명서 쓰는 데 조금 도와줬다고 직원들이 면직당하는데 누가 나서겠나. 자식들이 나서서라도 학교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년 간 교육부, 언론, 수사기관 청와대 등에 수차례 진정서와 호소문을 제출했지만 제대로 된 해명이나 답변을 받은 적이 없다. 

-유 여사와 김 전 이사장 사이는 어땠나?

▲여자 형제들과 김 전 이사장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올케-시누이로서 인격적으로 어긋난 행동은 한 적이 없다. 나는 오히려 김 전 이사장이 학교 발전에 힘써줘서 고마웠다. 일곱 째 동생이 7년 동안 이사장을 하며,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일들을 김 전 이사장이 해냈다. 

더클래식500, 스타시티 등 현재 건국대를 대표하고 있는 굵직한 사업들은 다 김 전 이사장이 이룬 것이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김 전 이사장은 입속의 혀처럼 시누이들한테 잘했다. 늘 식사를 하러 가도 ‘뭐 드시겠어요?’ 묻곤 했다. 

가끔 맛있는 거 사주면 자매들은 너무 좋았다. 김 전 이사장이 돈 쓸 때는 잘 썼다. 그런데 우리가 바보였다. 아버지가 지하서 그럴 거다. ‘저렇게 바보 같은 것들이 있어서 학교가 이 지경이 됐지’라고. 원망 많으실 거다. 

-올케가 이사장이 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나? 

▲일윤(김 전 이사장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떠났지만 김 전 이사장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우리 형제들에게 잘했다. 또 23년 동안 학교 이사장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안다. 1990년도 초반에 이사로 들어가고 96년도 정도 상무이사가 됐다. 그러다 2001년 노조위원장 등 학교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이사장에 올랐다. 
 

형제들은 김 전 이사장이 열심히 노력했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에 이사장에 됐을 때도 응원해줬다. 그저 학교가 잘되기만 바랐고, 실제로 김 전 이사장이 숙원사업을 이뤄내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향후 건국대 정상화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확실한 재수사밖에 없다. 더 이상 감춰져서는 안 된다. 학교가 완전히 곪아있다. 제대로 된 수사로만 학교를 치료할 수 있다. 현재 학교 상황이 그 정도로 악화돼있다. 

김 전 이사장의 횡령 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건국대에 대한 평가가 A등급서 B등급으로 강등됐다.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건국대에 대학구조개혁 조치를 내렸는데, 김 전 이사장 비리로 인한 등급 강등이 원인이다. 

“믿고 맡겼는데 망가뜨렸다”

건국대는 이 조치로 2020년까지 입학정원 대비 4%를 감축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 45억원 재정 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프라임 사업 예산도 30% 삭감됐다. 적립금도 바닥났다. 약 2000억원의 적립금이 김 전 이사장 시절 80~90%를 각종 사업으로 소진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 이대로라면 건국대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수 있다. 충격파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뒤흔들어서라도 학교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게 설립자 가족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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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