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 토로> 건국대 설립자 유가족 대표 유현경 여사

“김경희 파워에 놀랐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장지선 기자 = 건국대는 그동안 수많은 풍파를 겪었다. 지난 10여년간 불거진 김경희 전 이사장의 비리 의혹은 5대 사학을 꿈꾸던 건국대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교육부 감사, 검찰 조사 등 외부 충격이 가해졌지만 의혹은 깨끗하게 해소되지 못했다. 오히려 학교 관계자들의 반발만 거세지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는 ‘건국대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서 ‘건국대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대표인 유현경 여사를 만났다. 유 여사는 건국대 설립자 상허 유석창 박사의 자녀로, 7남매 중 셋째 딸이다.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과는 시누이-올케 관계다. 

유 여사는 김 전 이사장이 건국대 법인에 이사로 들어갔다가 이사장에 오르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러면서도 학교 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김 전 이사장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2013년부터다. 

김 전 이사장의 비리 의혹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때다.

최근 건국대 임대보증금 문제가 언론을 통해 크게 다뤄졌다.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돈의 액수는 수천억원 대에 달한다. 감사원의 교육부 감사를 통해 알려진 임대보증금 문제는 건국대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임대보증금 사용 내역, 천문학적인 돈의 흐름을 수사하는 과정서 나타난 의혹이 집약돼있기 때문이다.

유 여사는 이에 대해 “2014년 김 전 이사장을 수사하는 과정서 검찰이 축소 수사를 하는 바람에 상황이 이만큼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유 여사와 일문일답. 


유석창 박사의 딸…김경희 전 이사장 시누이
대신해 학교 정상화 비대위 대표 맡아

-검찰이 김 전 이사장에 대해 축소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2014년 검찰 수사 당시 학교법인계좌를 열람했다면 여러 의혹이 속 시원하게 해소됐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학교법인계좌를 열람하기는커녕 재판 과정 중에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까지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김 전 이사장은 집행유예로 나왔고, 이사장직에 딸인 유자은 현 이사장을 앉힐 수 있었다. 김 전 이사장은 물러났지만 학교는 여전히 김 전 이사장 손아귀에 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 학교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제대로 수사를 안 했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건국대 수사를 했던 O 검사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검사를 많이 만나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정의로운 분이었다. 김 전 이사장의 추가 비리가 의심된다며 미술품 비자금과 관련해 고발하라고 비대위 측에 조언도 해줬다. 법인계좌를 열람하기 위해 김 전 이사장의 비자금 창구로 의심됐던 화랑 예맥을 고발한 거다. 

또 수사가 끝난 이후에도 매번 김 전 이사장의 공판에 나와 공소 유지에 힘썼다. 당시 김 전 이사장 재판 중 공소장 변경(김 전 이사장의 골프 접대 명단을 실명서 비실명으로 변경)이 크게 문제가 됐다. 그때 (공소장 변경을) O 검사가 신청했는데 상당히 난감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건 분명 O 검사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검찰 윗선서 개입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건국대 수사 과정에선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이 다 외압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해 말 O 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이때 O검사가 나에게 “(법인) 계좌를 추적해 보려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고 말했다. 

또 수사를 지휘했던 C 부장검사도 되게 열심히 했다고 자문 변호사에게 들었다. 자문 변호사는 C 부장검사와 지인인데, 사석에서 C 부장검사가 “아무리 봐도 (김 전 이사장은)구속감 인데 위에서 계속 수사를 더 하라고 그런다” “화가 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로운 것은 그 C 부장검사가 현재 김 전 이사장 골프 접대 리스트에 이름이 있던 안대희 전 대법관(전 건국대 석좌교수)이 근무하는 로펌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점이다. 이 로펌에는 김 전 이사장을 수사하기 직전 동부지검 차장 검사도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당시 수사팀에선 (건국대 문제가)큰 사건이라고 생각해 수사 의지가 충만했다. 법인계좌를 봐야 한다는 요청이 수차례 윗선으로 올라갔지만 위에서는 더 보충하라는 말만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3개월이면 끝날 수사가 6개월가량 걸렸다. 

수사 직전에는 정관계 고위 관계자들이 건국대 석좌교수로 들어왔다. 또 검찰 출신들을 대거 로스쿨 석좌교수로 임용했으며, 국내 5대 로펌이 사건을 수임했다. 이런 것들이 수사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더 꼼꼼히 하라는 취지 아닐까?

▲수사와 재판을 지켜보면서 김 전 이사장의 파워를 실감했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친 거였다. 

이미 검찰에서는 김 전 이사장의 불구속 기소를 염두에 뒀던 것 같다. 이런 사실을 김 전 이사장 재판에 보조 참가할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서 알았다. 당시 변호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앤장, 광장, 바른, 태평양, 세종 등 주요 로펌을 김 전 이사장이 이미 선임한 상태라 마땅한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법무부장관 출신인 K 변호사를 통해 검찰 출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P 변호사를 어렵게 소개 받았다. P 변호사는 박근혜정부 때 장관급 고위직을 지냈던 인사다. 이분은 당시 동부지검 고위관계자를 잘 안다고 했고, 그 분과 바로 내 옆에서 통화까지 했다. 

둘 다 목소리가 커서 대화 내용이 다 들렸다. 전화기 너머로 “이미 끝났는데 관여하지 말라”는 말이 들렸다. 그날 저녁 K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P 변호사가 사건을 맡기가 어렵겠다고 하더라. 

이때가 2014년 5~6월경으로 김 전 이사장 수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수사가 진행 중인데 이미 끝났다는 게 말이 되나. 실제 동부지검은 김 전 이사장의 개인 비리만 수사하면서 구속영장도 청구하지 않고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도 집행유예로 끝났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지켜봤다
의문과 의심을 지울 수 없다”


-2014년 사태가 불거졌을 때 유 여사가 이사장 자리를 두고 집안싸움을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당시 언론서 내가 이사장 자리에 오르고 싶어 나선다는 보도가 많았는데, 이는 김 전 이사장이 설립자 유가족을 음해할 목적으로 퍼트린 소문에 불과하다. 

김 전 이사장 1심 공판 때 증인으로 나간 적이 있다. 이 때 김 전 이사장 측 변호인이 PPT까지 준비해 그와 비슷한 질문을 했다. 나에게 ‘(건국대)이사를 하고 싶냐’고 물어서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자 ‘앞으로 건국대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냐’고 물었고 ‘교육부서 관선 이사가 와서 학교를 정상화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질문을 끝내버렸다.  
 

김 전 이사장 측은 여러 의혹이 제기된 배경을 이사장 자리를 둘러싼 집안싸움으로 축소하려 했다. 설립자 가족들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고발했다고 몰아가려 한 것이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2013년 전에는 어땠나. 원래 학교일에 관심이 많았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아버지(유석창 박사)는 딸들이 학교에 오는 걸 싫어했다. 딸은 현모양처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다. 학교 운영은 남동생 일윤(여섯째)과 승윤(일곱째)이 했다. 사실 아들만 대접을 받았다. 


딸들은 학교와 담을 쌓고 살았다. 일곱째 동생과 올케(김 전 이사장)가 학교 자리 문제로 싸웠을 때 우리 딸들은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집안싸움으로 비치는 게 싫어 오히려 더 학교 일에 신경을 끄고 살았다. 

-평생 학교랑 담을 쌓았는데, 이제야 나서는 이유는?

▲김 전 이사장이 김진규 전 총장을 건국대로 데려오면서 학교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이때도 김 전 이사장이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가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내렸다. 

건국대는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는 평생 양복 한 벌, 신발 한 켤레로 가난하게 살았다. 일류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좋은 학교를 만들겠다는 게 아버지의 유지였다. 그런 학교가 망가지는데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학교에 반기를 든 교수들이 잘려나갔고 한 학생은 학교가 나서서 불법적으로 퇴학까지 시켰다. 성명서 쓰는 데 조금 도와줬다고 직원들이 면직당하는데 누가 나서겠나. 자식들이 나서서라도 학교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년 간 교육부, 언론, 수사기관 청와대 등에 수차례 진정서와 호소문을 제출했지만 제대로 된 해명이나 답변을 받은 적이 없다. 

-유 여사와 김 전 이사장 사이는 어땠나?

▲여자 형제들과 김 전 이사장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올케-시누이로서 인격적으로 어긋난 행동은 한 적이 없다. 나는 오히려 김 전 이사장이 학교 발전에 힘써줘서 고마웠다. 일곱 째 동생이 7년 동안 이사장을 하며,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일들을 김 전 이사장이 해냈다. 

더클래식500, 스타시티 등 현재 건국대를 대표하고 있는 굵직한 사업들은 다 김 전 이사장이 이룬 것이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김 전 이사장은 입속의 혀처럼 시누이들한테 잘했다. 늘 식사를 하러 가도 ‘뭐 드시겠어요?’ 묻곤 했다. 

가끔 맛있는 거 사주면 자매들은 너무 좋았다. 김 전 이사장이 돈 쓸 때는 잘 썼다. 그런데 우리가 바보였다. 아버지가 지하서 그럴 거다. ‘저렇게 바보 같은 것들이 있어서 학교가 이 지경이 됐지’라고. 원망 많으실 거다. 

-올케가 이사장이 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나? 

▲일윤(김 전 이사장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떠났지만 김 전 이사장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우리 형제들에게 잘했다. 또 23년 동안 학교 이사장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안다. 1990년도 초반에 이사로 들어가고 96년도 정도 상무이사가 됐다. 그러다 2001년 노조위원장 등 학교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이사장에 올랐다. 
 

형제들은 김 전 이사장이 열심히 노력했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에 이사장에 됐을 때도 응원해줬다. 그저 학교가 잘되기만 바랐고, 실제로 김 전 이사장이 숙원사업을 이뤄내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향후 건국대 정상화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확실한 재수사밖에 없다. 더 이상 감춰져서는 안 된다. 학교가 완전히 곪아있다. 제대로 된 수사로만 학교를 치료할 수 있다. 현재 학교 상황이 그 정도로 악화돼있다. 

김 전 이사장의 횡령 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건국대에 대한 평가가 A등급서 B등급으로 강등됐다.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건국대에 대학구조개혁 조치를 내렸는데, 김 전 이사장 비리로 인한 등급 강등이 원인이다. 

“믿고 맡겼는데 망가뜨렸다”

건국대는 이 조치로 2020년까지 입학정원 대비 4%를 감축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 45억원 재정 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프라임 사업 예산도 30% 삭감됐다. 적립금도 바닥났다. 약 2000억원의 적립금이 김 전 이사장 시절 80~90%를 각종 사업으로 소진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 이대로라면 건국대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수 있다. 충격파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뒤흔들어서라도 학교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게 설립자 가족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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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