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작가 이열이 수십 년 간 추구해온 전통회화를 벗어나 거울을 작품에 끌어들인 것은 수년 전부터다. 거울은 그의 아주 오래전 기억과 많은 관련이 있다.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어머니를 어깨 너머로 바라봤던 기억은 그의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거울은 그때부터 본능적으로 이열의 작업 대상으로 다가왔다.
서울 인사동 소재의 노화랑이 오는 30일까지 작가 이열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는 1989년 바탕골 미술관서 첫 개인전 ‘생성공간-변수’를 발표한 이후 수십 회의 전시를 같은 작품 제목으로 선보였다.
이 작업에 대해 <아트 인 아메리카>의 편집장 리처드 베인은 “그는 한국 추상미술의 평면성과 역동성을 서양 현대미술의 우발적 충동과 결합시키며 형식적인 구성과 행동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세상을 보는 창구
베인의 설명은 이열의 작업이 평면 위에 행위의 기록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가 장소와 시간의 흔적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점을 적절하게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수년 전부터 이열은 작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보다는 형식적인 표현방법과 재료, 표현매체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는 그 고민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이열은 2015년 프랑스 파리서 1년간 레지던시를 하며 손에 잡혔던 작업을 귀국 후에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후 몇 번의 파리 여행서 눈에 들어왔던 낡은 액자와 거울을 가지고 생각과 작업 형식을 구체화했다.
전통회화서 벗어나 거울에 천착
경대 앞에서 화장하던 어머니
그는 “오래된 거울에는 누군가를 비추고 반영한 세월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다”며 “그것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거나 상처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거울은 또 다른 생성의 마당이자 증식의 공간이다. ‘배꼽에 어루쇠를 붙인 것 같다’는 속담은 배꼽에 거울을 붙이고 다녀서 모든 것을 환히 비춰 본다는 뜻이다. 비록 요술경은 아니더라도 거울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표현 창구가 될 것 같다”고 작가노트에 기록했다.
이열은 거울 뒷면을 부식시키거나 도구로 긁어 행위를 기록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미 시간은 그 물질 자체에 기록돼있기에 다른 행위는 절제한다. 거기에 빈티지 액자가 어울리면 끼운다.
아니면 거울 그대로 내놓거나 혹은 투명한 천으로 두세 겹을 붙여서 거울의 반영을 부드럽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행위 자체는 이전의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표현 매체에 변화를 줬을 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간을 평면의 화면 위에
4년간 노력 선보이는 전시
정연심 미술평론가는 “이열의 거울 작업은 그의 추상작업의 연장이면서 회화적 제스처를 그림의 프레임 밖에서 실험해보는 집요한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며 “그러나 거울이라는 매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시간성을 자연스럽게 회화적 표현으로 옮겨놨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자들은 거울 표면 안에서 유희적으로 걸어보거나 거울 속을 들여다보거나 자신의 얼굴을 비추며 퍼즐을 맞히듯 이미지를 바라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표현매체의 변화
이열은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돌아오기 전 파리서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Another Time’ 이라는 주제로 거울작업을 선보였다. 서울에 돌아와서는 거울 표면에 원하는 텍스쳐, 즉 브러시 자국이나 얼룩 스크래치 부식 효과 등을 얻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4년째 거울의 회화적 가능성을 탐색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그 창작의 결실 일부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라며 “마음이 설레면서도 두렵다”고 소감을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이열은?]
대전 충남 출생
▲학력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이열 전-Pink Art Fair 2018’(2018)
‘이열 전’(2017)
‘이열 전-Another Time’(2015)
‘이열 전-대지의 숭고미를 담다’(2012)
‘이열 전’(2010)
‘이열 전-생성과 소멸의 연기’(2009)
‘생성공간-변수’(2007)
▲수상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정예작가상 수상(2012)
한국미술작가상(1998)
청년작가 초대전 우수상(1996)
방글라데시 비엔날레 최고상 수상(1993)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