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문재인-김정은 빅딜카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4.23 10:14:47
  • 호수 1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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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 받고 체제 보장, 미군 빼고 38선 연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과거 6·15, 10·4 때 남북 간 교류까지 담았던 것과 같이 이번에는 의제를 많이 담지는 않을 생각이다.” 임종석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서 다룰 의제에 대해 한 말이다. 행간을 읽어보면 우리 측은 의제의 양보단 질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종전·비핵화 등 남북 관계에 있어 획기적인 변곡점이 될 만한 의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과연 남북이 주고받을 빅딜 카드는 무엇일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7일로 다가왔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악수하는 장면부터 회담의 주요 일정을 소화하는 모습까지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모바일 플랫폼(www.koreasummit.kr)을 지난 17일 정오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4·27 회담
카운트다운

청와대가 언론사에 자료를 제공할 목적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한 적이 있지만, 일반인 모두에게 개방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정부가 역사적인 순간을 국민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로 읽힌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에 위치한 평화의 집에서 만난다. 지난달 29일 판문점 통일각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서 “남과 북은 양 정상들의 뜻에 따라 2018남북정상회담을 4월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기로 했다”며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판문점은 유엔군사령부 관할로 남북 모두 1개 소대 병력만 유지할 수 있고, 중화기는 휴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신변 위협 요소가 최대한 제거됐다고 볼 법하다. 그러나 경호 차원서 김 위원장이 전용차량을 타고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앞까지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방탄 기능이 탑재된 벤츠 S600를 타고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이 차량은 지난 2015년 10월 독일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양측은 정상회담을 위한 마지막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지난 18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서 경호·의전·보도 후속 실무회담을 개최, 회담 형식의 실무 조율을 마무리하고 현장 중심의 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회담 형식이라는 겉표지를 결정한 양측은 이제 의제라는 내용물을 결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서로 간에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외교전서 의제 설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북한이 지난 20일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소집한 것도 의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기상 남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열렸다는 점, 북미정상회담도 예정돼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주요 과업 등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뭘 주고
뭘 받나

앞서 임 위원장이 밝힌 것처럼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몇 가지 핵심 의제만을 다룰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임 위원장은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아직 북측과 조율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비핵화·한반도 항구적 평화정책·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정도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항구적 평화정책과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은 종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의 종전 논의를 축복한다고 말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나온 발언이다. 그는 “사람들은 한국 전쟁이 아직 끝났지 않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며 “남북한은 적대관계를 끝내고 종전 문제를 논의 중이다. 이 논의를 축복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서 한반도 종전선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한반도 안보상황을 궁극적 평화체제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나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전과 종전, 그리고 휴전은 외교적으로 큰 차이를 가진 용어들이다. 정전은 말 그대로 전쟁을 잠시 멈춘다는 의미다. 휴전은 교전을 잠시 중단하는 수준이 아닌 양국 정부나 총사령관 등 대표자들이 공식협상을 통해 전쟁상태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 양국은 정전을 먼저 실시한 뒤 휴전협정을 체결한다. 종전은 양국서 지속되던 전쟁상태를 종료했음을 확인하는 용어다. 종전은 평화협상을 위한 전 단계의 의미를 지닌다. 남북한의 대치 상황은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의해 사실상의 휴전상태가 7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정전협정→평화협정 청신호
70년만에 드디어 종전 성사?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도널드 대통령이 언급한 남북한 종전선언이 실제로 추진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 생각만으로 달성할 수 없기에 북한을 포함해 당사국과 긴밀히 협의하는 과정이 남아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어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기 위한 합의를 (4·27 남북정상선언에) 포함시키기를 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한국전 정전협정 체결의 당사자가 미북중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직접 ‘종전’을 거론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남북정상회담서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도 빅딜이 성사될 수 있는 지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서 언론사 사장단과 가진 오찬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며 “(남북미 간)비핵화서 개념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핵화는 우리 정부와 미국이 끊임없이 북한에 요구해오던 사안이다. 한반도가 비핵화되지 않는 이상 한반도 평화 체제는 물론 남북 관계 진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핵화가 남북정상회담 선언문에 구체적인 문구로 담길지는 미지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5월 말 내지는 6월 초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의 길잡이 성격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 뒤 북미정상회담서 구체적으로 성문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거론할 가능성이 높은 ‘체제안전 보장’ ‘대북 군사적 위협 해소’ 등을 우리 측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남북정상회담 선언문에는 북미 간 비핵화 논의에 밑바탕이 되도록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남북이 이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원칙적 수준’의 합의가 담길 가능성이 높다.

임 위원장은 최근 브리핑서 “제일 중요한 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남북 정상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느냐”라며 “북미 간에도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핵 폐기 의지를 확인하고, 북한이 그것에 대한 상응하는 조치로 요구하는 내용들을 미국이 또 보장해줄 것인지 여부”라고 말한 바 있다.


모두 사는
윈윈 전략

외신도 한반도 비핵화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만남을 기점으로 비핵화와 관련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지난 18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일본 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으로, 한·미·일은 북한에 2020년까지 핵개발 계획을 전면 폐기하라고 요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는 약 2년여의 목표 기한을 설정함으로써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과거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경제 원조를 받은 후 입장을 바꿔 핵개발을 재추진하는 방식의 행동을 반복해왔다. 
 

최근까지도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제재 해제와 경제 원조 등의 대가를 요구하는 단계적 방식의 비핵화를 원해왔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 변화에 대비해 비핵화 기한을 비교적 짧은 2년으로 설정, 단숨에 북한을 압박할 계획인 것으로 읽힌다.

북한 측은 이미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빅딜 카드를 제시한 상태다.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고 말한 김 위원장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이라고 전제했다. 

즉, 북한의 체제보장과, 북핵 포기를 등가교환하겠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또 “북미 대화의 의제로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는 미지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는 이달 초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에게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여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달렸다는 점을 알렸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의 방북 결과에 대해 지난 18일(현지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서 “진지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감축, 또 북한의 재래식 무기 축소와 핵 위협의 궁극적 중단 문제 등을 논의하고, 평화협정까지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체제안전’은 주한미군 철수?
미북 ‘ICBM 포기’ 빅딜 전망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김 위원장과 만나 어떤 내용을 협의했는지는 폼페이오 청문회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청문회서 폼페이오는 “(김정은은) 체제안전을 약속하는 종잇조각 보증서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고 밝혔다. 즉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평화협정 체결이나 수교 등의 체제보장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북한이 주한미군 축소내지는 철수를 요구하고 나설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단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언론사 사장단과 오찬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는 우리의 의지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기에 지속적으로 가능성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에서는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내놓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약속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란틱>은 “트럼프의 전략은 ‘고 빅’ 아니면 ‘고 홈’이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요구에 회담장을 박차고 나서든지, 아니면 김 위원장의 요구를 들어주든지 양자택일을 할 것이란 뜻이다.

럭비공 트럼프
선물보따리는?

이 외에도 다수의 미국 언론이 두 지도자의 핵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골자로 한 ‘빅딜’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복스(Vox)>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할 경우 북한의 핵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해체, 한일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 등이 북미정상회담의 의제로 다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요구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해당 언론은 “(ICBM 포기가) 트럼프의 귀에는 멋지게 들릴 것이나 한국과 일본에는 참사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CNN은 칼럼을 통해 빅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조너선 크리스톨 세계정책연구소(WPI) 연구원은 칼럼서 “트럼프가 갈수록 참모진의 의견을 묵살하고, 제멋대로 정책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미정상회담서 참모진이 어떤 준비를 해도 트럼프가 회담장서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면 사전 준비는 아무 쓸모가 없다”며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당신이오. 당신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나도 핵무기를 폐기하겠소’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북한 억류자 빅딜설

남북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미국인의 석방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남북·북미정상회담의 상징적 의미로 북한에서 억류 중인 사람들을 송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은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3명과 고현철씨를 포함한 탈북민 3명 등 총 6명이다. 

또 한국계 미국인 3명도 북한에 억류돼있다. 2015년 12월에 억류된 김동철씨는 노동교화형 10년을 받았다. 나머지 2명은 평양과학기술대 소속으로 2017년 4월과 5월 각각 억류된 김상덕(토니 김), 김학송씨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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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