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의 도시 접수한 ‘춘천식구파’ 대해부

너희가 춘천 조폭을 아느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경찰이 강원 춘천지역 4개 토착 세력이 합쳐진 ‘통합춘천식구파’ 두목과 조직원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이로써 이들은 결성 7년 만에 사실상 와해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불법으로 지역 내 각종 이권 사업을 독점하고 범죄단체를 구성해 폭력을 행사했다. 손가락을 잘라 충성을 맹세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직폭력배 와해 소식에 시민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지난 27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통합춘천식구파’ 두목 A(48)씨와 고문 B(48)씨 등 12명을 구속하고 조직원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범죄단체 구성·활동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4개 조직 동맹
단지로 충성맹세

통합춘천식구파는 2011년 춘천 승택파와 동기파, 생활파, 식구파 등 4개 조직이 뭉쳐 탄생했다. 경찰은 소규모로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며 힘을 잃은 토착 폭력조직이 재기를 위해 손을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조직은 2011년 6월 홍천군 모 리조트서 결성식을 개최하고 A씨를 두목으로 추대했다. ‘선배를 만나면 90도로 인사한다’ ‘선배가 부르면 즉시 출동한다’ 등의 행동강령도 갖췄다. 

이들은 이후 유흥업소·보도방·사채업 등 각종 이권 사업을 독점하며 다른 조직폭력배들과 대치했다. A씨가 이끌었던 통합춘천식구파는 직종을 가리지 않고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먼저 지난 2011년 두목으로 추대된 이후 A씨는 장례식장 조화 납품 사업을 시작했다. 조직원을 동원해서 기존 사업자들에게 사업을 포기하도록 협박했다. 결국, 조직은 춘천·홍천지역 일대 사업을 독점했다. 

2012년에는 보도방 영업에 손을 뻗어 독점을 시도했다. A씨는 조직원들을 시켜 노래방서 도우미를 불러 술을 마시게 한 다음 경찰에 ‘불법 영업’으로 신고해 가게 문을 닫게 했다. 

2013년부터는 고수익을 위한 사채업에 눈길을 돌렸다. 이들은 각종 흉기를 이용해 다른 지역 사채업자들을 협박해 영업하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A씨는 춘천지역의 소위 ‘밑바닥’을 장악해 나가는 한편 필리핀에 근거지를 두고 도박사이트도 운영했다. 2015년 3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운영된 1600억원 규모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통해 28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필리핀 리조트서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유인해 도박사이트 관련 일을 시키고 여권을 빼앗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일부 조직원들은 조직에 충성한다는 명목으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 핵심 조직원 6명은 모두 자신의 새끼손가락 한마디씩 잘랐다. 맹목적 충성을 맹세한 이들은 탈퇴한 조직원을 그냥 두지 않았다. 

전국구 범서방파와 ‘조직 빼가기’ 갈등
칼부림 집단패싸움 벌이면서 실체 드러나


야산으로 끌고 가 구덩이에 묻고 휘발유를 뿌릴 듯이 위협하고, 술집 등에서 조직원들을 동원해 흉기로 위협하는 등 위력을 과시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핵심조직원들은 두목인 A씨 보호에 열을 올렸다. 조직원들은 “‘큰 형님에 대해 진술하면 나중에 가만히 두지 않겠다.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고 협박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의 눈을 교묘히 피해가던 통합춘천식구파는 2015년 11월 춘천시 효자동 주점과 송암레포츠타운 등지서 범서방파와 집단 패싸움을 벌이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당시 범서방파와 통합춘천식구파 조직원들은 미리 준비한 흉기와 야구방망이 등으로 집단 패싸움을 벌였다. 

집단 패싸움의 원인은 ‘조직 빼가기’에 대한 갈등이었다. 지난해 11월9일 새벽 3시 춘천의 한 주점서 춘천생활파 조직원이 범서방파 조직원에게 “서울에 왔다갔다 하지 말고 춘천서 생활해라’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게 발단이 됐다. 

이 이야기는 곧바로 춘천 생활파에 있다 범서방파로 이적한 조직원에게 전해졌고 양측은 전화로 욕설을 하며 크게 다퉜다. 

결국 두시간 뒤 양측 조직원은 춘천 도심서 만나 흉기와 둔기 등을 사용해 집단 패싸움을 벌였고 경찰이 출동하자 도주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7시 외곽지역인 송암스포츠타운 주변 공간서 또다시 만나 싸움을 벌였다. 

검찰은 집단 흉기 등 상해와 특수상해 혐의 등으로 이들을 기소했다. 이후 경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조직원이 조직과 관련된 사실을 누설하지 않도록 협박을 일삼고 일부 조직원에게 변호사 비용을 지원하면서 회유하는 등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 

손가락 자르고 
야산에 파묻고

이들의 마수는 학생들에게까지 뻗어나갔다. 2012년 춘천경찰서는 불량서클인 ‘강후파’를 결성한 뒤 지역내 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품을 빼앗고 폭행과 협박을 일삼은 혐의로 청소년 19명을 검거했다. 강후파의 배후에는 통합춘천식구파 행동대원들이 있었다. 

강후파에 가입한 학생들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동급생 35명을 대상으로 810회에 걸쳐 21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고 27회에 걸쳐 골프채, 과도 등으로 집단·보복폭행을 했다. 

이들은 팔과 등에 문신을 새기고 인터넷 블로그 등에 단체로 회합하는 사진을 게시해 “우리들은 조직폭력배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과시하며 피해 학생들을 협박하고 자신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수시로 보복 폭행을 가했다. 

통합춘천식구파 행동대원과 그 추종세력들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불량서클 학생들에게 춘천 모 대학교 근처서 호떡 장사를 시키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불법 게임장의 종업원으로 일하게 하는 등 825만원을 빼앗고 편취했다. 


또 피해학생들에게 과외를 해준다면서 부당한 과외비를 챙기고 호떡 장사를 하다 매일 10만원 이상의 매출을 못 올릴 경우 보복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은 호떡 장사를 하며 반죽을 망치거나 호떡을 태웠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피해학생 부모들을 찾아가 500원짜리 호떡을 태운 값을 물어내라며 5만원을 받아 챙기는 등 수시로 피해 학생들을 괴롭혔다.  
 

통합춘천식구파의 세 조직들은 통합되기 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통합춘천식구파가 만들어지기 직전인 2011년 강원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보호비 명목으로 보도방 업주로부터 금품을 갈취하고 폭행한 혐의로 동기파 행동대장 조직폭력배 B씨 등 7명을 구속하고, C씨 등 1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B씨는 동기파 행동대장으로 4명이 운영 중인 보도방 영업이 불법인 점을 이용해 “더 이상 다른 보도방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고 미수금을 해결해 줄테니 함께 먹고 살자”고 협박, 수익금의 25%를 보호비 명목으로 챙기는 등 48차례에 걸쳐 6개 업소로부터 1억9000만원을 갈취했다. 

또 일명 ‘바지 사장’을 고용하는 방법으로 직접 보도방 영업을 한 동기파의 또 다른 행동대장 C씨는 2009년 1월부터 1년간 여종업원 13명을 고용해 유흥주점에 소개하는 등 무등록 직업소개소 영업으로 1억80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또 승택파의 D씨는 2009년 12월 보도방 업주들을 집합시켜 자신들이 운영하는 유흥주점에 여종업원을 제때 공급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시로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세력을 키우기 위해 홍천 A콘도서 단합대회를 가지는 등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전국 ‘식구파’
하나둘 사라져

현재 통합춘천식구파의 부두목은 달아난 상태다. 경찰은 부두목과 조직원 4명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다른 조직폭력배에 대한 첩보 수집도 강화한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각종 사행성 사업으로 조직 운영 자금을 확보한 만큼 조직 와해를 위해 몰수보전 조치 등을 취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통합춘천식구파는 와해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폭들이 와해된 후 재건하는 경우가 허다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통합춘천식구파에 속해 있는 ‘춘천생활파’만 하더라도 2004년 경찰 단속으로 와해된 일명 ‘신생활파’ 조직원들이 모여 다시 만든 조직이다. 

전국적으로 ‘식구파’라는 이름의 조직은 수십개가 넘는다. 보통 지역이름을 앞에두고 식구파라는 이름을 붙인다. 

대부분의 식구파들이 통합춘천식구파와 같은 결말을 맞았다. 2015년 경기도 남양주와 구리 일대를 몰려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업주들을 상대로 돈을 갈취해온 ‘구리식구파’ 조직폭력배 70명이 무더기로 잡혔다. 

당시 경기 남양주경찰서는 폭력 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리식구파 두목 김모(42)씨 등 13명을 구속하고 행동대원 최모(34)씨 등 조직원 5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10∼2015년 남양주와 구리 일대 유흥가·도박장 10여곳서 업주들을 협박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보호비 명목으로 총 73회에 걸쳐 2억7000여만원을 빼앗았다. 구리식구파는 1996년부터 활동하다 2001년 조직원이 대부분 검거된 후 세력이 약해졌지만 2010년 행동대원이었던 김씨가 남아 있는 세력을 모아 조직했다. 

이후 2013년 조직원 홍모(33)씨 등 4명이 구리시의 한 유흥주점서 업주가 술값을 달라 하자 맥주병으로 때리고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등 상습적으로 행패를 부렸다. 또 ‘조폭 대우를 하지 않고 인사를 안한다’는 이유로 같은 동네 주민을 집단 폭행해 기절시키는가 하면 차에 싣고 가다 길에다 내팽개치는 등 일대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토착 4개 조직 동맹 맺고 협력관계 유지
업소, 보도방, 사채업 등 이권사업 독점

구리시의 한 빌라서 공동생활을 해온 이들은 공원서 30여명이 웃옷을 벗어 등에 있는 문신을 드러내며 단체 사진을 찍는 등 세력을 과시했다.  

같은해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일대를 주름잡던 일명 ‘봉천동식구파’의 두목도 경찰에 붙잡혔다. 봉천동식구파 두목 양모(48)씨는 조직 강령에 따라 조직서 탈퇴한 간부 이씨가 운영하던 주유소 운영권과 재산 등을 빼앗고 살인까지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양씨는 2009년 2∼9월 사이 이씨가 운영하던 주유소 3곳에 조직원을 보내 영업을 방해하고 위협을 한 끝에 주유소 운영권을 빼앗았다. 
 

이듬해 그는 강도상해죄 등 전과가 있는 김씨에게 “이씨가 주유소 사업을 하다 갈라섰는데 생각이 있으시면 이씨를 제거해달라”는 취지의 부탁까지 했다. 

그러나 착수금 등을 놓고 의견이 맞지 않아 실제 살해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양씨는 또 봉천동식구파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2005년 1월∼2010년 12월까지 이 씨로부터 빼앗은 주유소 등 25곳서 톨루엔과 메탄올 등을 섞은 ‘가짜석유’를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양씨는 가짜 석유로 약 20억여원을 벌어 조직원에게 200만∼500만원의 월급과 보너스 등을 지급하며 조직을 운영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심재철)는 봉천동식구파서 탈퇴한 간부의 재산 등을 빼앗고 살해 하려한 혐의(살인예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양씨를 구속기소했다.

2016년 청주지검 충주지청은 폭력을 휘둘러 신흥 유흥가 상권을 접수한 폭력조직 ‘음성식구파’ 조직원 정모(33)씨 등 5명을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이모(33)씨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정씨 등은 지난해 유흥업소가 밀집된 충북 음성군 금왕읍 일대에 여성 도우미를 공급하는 이른바 ‘보도방’을 통합하면서 폭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이 과정서 한 보도방 업주를 야산으로 끌고 간 뒤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리고 대로변서 무차별로 폭행하는 등 수차례 폭력을 행사했다. 

이렇게 금왕읍 일대 보도방을 장악한 정씨 등은 자신들이 지정한 유흥업소에 도우미를 공급 받으라고 강요했다. 

2008년부터 폭력을 행사하고, 불법 게임장을 운영하던 음성식구파는 2013년 검찰의 수사로 30여명의 조직원 중 두목급을 포함해 15명이 구속되며 세력이 다소 약해졌으나 음성유흥상권이 커지면서 활동을 재개했다가 경찰에 꼬리를 잡혔다.

10대들에 마수
불량서클 운영 

한편, 선량한 시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직폭력배 와해 소식에 네티즌들은 반색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2018년에도 조폭이 있었다니”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인권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악의 무리에 대해서는 칼 같은 강력한 공권력이 투입되길 원할 것”이라며 “요즘에도 조폭이 설칠지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