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과 묻힌 그때 그 사람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고 장자연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검토 중인 가운데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재수사가 거론되자 당시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은 다시 긴장하고 있다.
 

지난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합니다’라는 청원에 1300명 넘게 서명했다. 장자연 사건은 지난 2009년, 당시 신인배우였던 그가 갑작스러운 사망과 함께 메가톤급 폭로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신인 배우의 폭로
상납 강요에 자살

장자연 사건은 2009년 3월 드라마 <꽃보다 남자>서 이국적인 외모와 안정적인 연기로 주목받던 신인배우 장자연이 유력 인사들의 성 상납 강요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로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라는 문건을 남겨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남긴 문건에는, 끊임없는 술자리 강요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일, 방안에 갇힌 채 손과 페트병 등으로 머리를 수없이 맞았고, 협박과 함께 온갖 욕설과 구타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내용과 함께 언론사 대표, 방송사 PD, 연예기획사 대표, 제작사 관계자, 금융인, 기업인 등의 실명이 명시돼있었다. 

장자연의 소속사 대표 김씨와 매니저 유씨는 장자연에 대한 폭행·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선고받았다. 유죄로 인정해 1년의 형을 선고하면서 2년간 집행을 미루고 사회봉사를 160시간 하라는 의미다. 


특정한 사고 없이 2년이 지나면 1년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 

하지만 장자연이 폭로했던 술 접대와 성 상납 상대들, 일명 ‘장자연 리스트’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판결은 ‘혐의없음’이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분당경찰서는 수사를 4개월 간 진행한 끝에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됐거나 유족에 의해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당한 기획사 대표부터 대기업 대표 및 금융업체 간부, IT 업종 신문사 대표 간부, 일간지 신문사 대표, 드라마 외주 제작사 PD, 영화감독 등 20여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송치했다. 

하지만 이 유명 인사들은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혐의없음’ 처리됐다. 고인이 직접 자필 편지로 폭로했던 유명 인사들을 제외한, 소속사 관계자들만 유죄 판결을 받고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당시 유력 인사의 이름이 적힌 ‘장자연 리스트’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잊혀지는 듯했던 장자연 사건은 편지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 편지는 모두 50여통. 

성상납 사건 재수사 청원 시끌시끌
과거사위원회 부인에도 가능성 고조

편지를 갖고 있던 전모씨는 이 편지가 장자연으로부터 받은 친필 편지라고 주장했다. 


편지는 장자연이 자살하기 3년 전부터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곱 장 분량으로 알려진 2년 전 문건에 비해 분량이 방대했다. 기본적인 골격은 같다. 소속사 대표 김모씨의 강요로 언론계와 기업계의 유력 인사들에게 성 상납을 포함한 접대를 해야 했고 그 과정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는 내용이다. 

성 상납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해당 인사들의 실명은 편지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직업과 직장은 나온다. 편지에 담긴 감정의 강도는 격렬하고 표현은 적나라했다. 성 접대를 강요한 김씨와 성 접대를 받은 이들을 향한 분노가 선명하다. ‘악마’ ‘복수’ 등의 단어가 자주 사용됐다. 
 

편지에 따르면 접대는 두 가지였다. 술 접대와 성 접대다. 술자리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소속사 대표 김씨로부터 정기적으로 술과 성을 제공받았다고 지목된 사람들은 감독, PD, 대기업·방송사·언론사·금융·증권·일간지 신문사 등의 대표·간부들이다.

여기에 다른 기획사 대표들도 포함돼있다. 이들의 수는 가장 적게 잡아도 31명이다. 

장소는 여럿이다. 특히 자주 언급되는 장소는 회사 3층 접견실이다. 접견실은 술자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밀실, 욕실 등을 갖추고 있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태국 여행과 관련된 언급도 눈에 띈다. 편지의 어느 대목서 “여행도 아닌, 태국 여행을 다녀와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를 거야. 여행도 아닌 그거…그거를 위한…”이라고 묘사돼있다. 

편지는 태국 여행과 관련해 특정인을 지목했다. 

“태국 여행 때 나를 데리고 갔던 감독은… 정말 얼마나 머리가 아픈지, 나 말고도 힘없는 연기자들 (상대로) 상습적이야. 내가 아는 애들도 태국 여행… 그 감독에게 노리개처럼… 10명도 넘어. 모두 다 출연 미끼. 스타 되는 거 시간 문제라는 둥 그런 말에….” 

편지와 유서
봐주기 수사

하지만 이 편지는 국과수 감정 결과 ‘가짜’로 판명이 났고 문건 자체가 조작으로 밝혀짐에 따라 당시 경찰은 재수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이 사건은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으로 남겨졌다.

과거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장자연 사건과 관련된 발언과 활동도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서 ‘장자연 사건’을 언급하며 “장자연 리스트에는 신문사 대표가 포함돼있다.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경찰이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신문사 대표의 실명을 거론했다. 이에 이달곤 당시 행정안전부장관은 “사건의 전체적인 내용은 보고 받았지만 구체적인 사안은 알지 못한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내용이 담긴 동영상은 현재 인터넷상에 널리 퍼져있는 상태다. 

실명이 언급된 신문사는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이종걸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이 의원에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후 이 의원은 “장자연씨의 가엾은 영혼을 위해 진실이 밝혀지고 암묵적으로 행해지던 연예계의 고질적 병폐가 근절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또 거대 언론사에 맞서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씨의 편지를 통해 당시 경찰, 검찰 수사는 진실이 은폐되고 축소됐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그것이 자필문건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유력언론사주가 조사를 받지 않고 한 달 정도 수사가 지연되고 왜곡되는 것에 대해 대정부 질문 때 실명을 거론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왜 수사가 힘 있는 사람에 의해 흐려지냐를 질의하는 과정서 나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장씨의 편지는 당연히 재수사의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당시 경찰은 그때 나왔던 편지나 ‘장자연 문건’ 내용 자체가 의지와 다르게 조작됐고 해당 인사들은 장씨와 면식도 없었던 사람이 꽤 많다고 해서 의미 없이 됐지만 당시에도 이 편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편지를 잘 살펴서 하나의 새로운 수사자료로 써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떠도는 명단
부인하기 급급

검찰이 재수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성 상납 리스트 명단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6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장자연 성 상납 리스트’라는 제목으로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고 장자연씨에게 성 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명단이 공개돼있어 네티즌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서 퍼지고 있는 글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며 명단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출처와 진위가 확실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장자연 리스트’도 떠돈 지 오래다. 여기에는 거대 드라마 제작사 대표와 PD들뿐 아니라 재계와 언론의 깜짝 놀랄 만한 인물들 이름까지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이들에 대한 마녀사냥식 실명 찾기가 벌어질 조짐이다. 자칫 엉뚱한 인사가 이런 식으로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잘못 알려질 경우, 엉뚱한 희생자가 벌어질 가능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최근에 올라온 장자연 성 상납 리스트에 따르면 대기업 임직원과 방송사 PD, 언론사 고위간부 등 10여명의 실명과 직책이 등장한다. 

장씨의 소속사 대표인 김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력인사들이 대부분인데 드라마 제작사의 A 대표를 비롯해 유명 드라마 PD인 B와 C가 포함돼있으며 일간지 D사의 고위 관계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E, F, G사의 고위관계자도 들어있다. 

문건에 등장하는 몇몇 인사들은 “접대받은 게 아니라 행사자리에 불려 나가 합석했을 뿐”이라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상납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해당 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도마’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경영상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에 기업 오너들이 오르내렸을 당시 기업들은 자체 정보망을 확대하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느라 분주했다. 시치미를 뚝 떼면서도 한편으론 ‘혹시나’하는 마음에 속을 까맣게 태웠다. 

가라앉은 의문점은?
당사자들 좌불안석

당시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이 소속된 기업에서는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다. 한 그룹 홍보실은 온종일 기자들의 확인 취재 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 그룹의 오너는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목받는 인물이다. 

룸살롱 에이스 접대부만 골라 자신의 별장으로 불러 ‘뜨거운 밤’을 즐기는 것으로 소문이 난 그는 한 접대부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고 들락날락한 사연이 대중에 노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다른 그룹 오너 역시 단골 스캔들 메이커로 유명하다. 그는 화류계에서 ‘밤의 황제’라 불린다. 매일같이 유흥가에서 새벽이슬을 맞는 이유에서다. 

그룹 측은 “리스트의 진위조차 확인되지 않은 데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서 섣불리 뭐라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건 진행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경찰 수사를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스캔들을 보면 대부분 실체가 불분명한 소문으로 흐지부지 끝나거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 이번 사건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겠냐”고 조심스러워했다. 

아예 구설에 오른 것조차 부인한 그룹도 있다. 이 그룹은 오너가 장씨와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혀 무관하다고 발뺌했고 기사화될 시 민·형사상 모든 법적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지난 27일 과거사위원회가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통화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 수사와 관련해서 논의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의 업무를 지원하는 검찰개혁추진단의 한 관계자도 “장자연 리스트 사건 재수사 여부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의 위원 몇 명이 개인적으로 의논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 보도가 나온 이후 이날 하루 종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장자연 리스트’ ‘장자연 사건’ 등이 상위에 랭크됐고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은 빗발치고 있다. 

“논의한 적 없다”
재수사 요구 빗발

만약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을 선정한다면 8년 전 남았던 의문점들이 이번에야말로 해결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재조사 결과가 일부 스타들을 제외하고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연예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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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