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최고의 인물 최악의 인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2.26 18:37:34
  • 호수 1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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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희망이 교차한 대한민국 그속에서 빛나고 빛바랜 사람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2017년 정유년도 저물어간다. 올 한 해는 다사다난했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으며, 대통령 선거도 8개월이나 앞서 치러졌다. 이런 상황일수록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수 있는 사람과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등장하는 법. <일요시사>는 정치·경제·사회·연예·스포츠 등 각 분야서 올해 최고의 인물과 최악의 인물을 선정했다.
  

2017년 최고의 인물은 단연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인크루트는 ‘2017년 올해의 인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문 대통령이 올해의 호감 인물 1위를 차지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베스트 문재인

인크루트는 정치·법조계, 문화·사회, 기업·기업인, 방송·연예, 스포츠 총 5개 분야별 각 후보자들 중 가장 긍정적인 인상(또는 호감)을 갖게 한 인물과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인상(또는 비호감)을 갖게 한 인물에 대해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올해의 호감 인물은 득표율 51.0%를 차지한 문재인 대통령이 1위에 올랐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정부의 민간인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9월. 분노한 수백만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이렇게 외쳤다. 같은 해 12월 국회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3개월여 만에 헌법재판소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박근혜정부는 막을 내렸다.


이후 2개월 뒤 치러진 조기 대선을 통해 문 정부가 출범했다. 실의에 빠진 국민은 문 정부를 향해 “이게 나라다”라고 기대와 지지를 보냈다. 혼란 속에서 출범한 문 정부를 향한 국민의 시선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7개월여 동안 줄곧 7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국정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스트 이국종

북한 귀순병을 살린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도 올해 최고의 인물로 떠올랐다. 인크루트가 조사한 문화·사회분야서 이 센터장은  38.3%의 득표율로 1위에 올랐다. 

이 센터장은 2011년 우리 군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인질을 구출한 '아덴만의 여명' 작전 당시, 피랍 선박인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치료를 맡아 완치시키며 국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의학 드라마 <골든타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 센터장은 지난달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서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군 병사 수술을 집도했다. 이 교수는 <CNN> 인터뷰서 지난달 23일, JSA를 넘어 탈출한 북한 병사의 탈출 상황과 수술과정 및 환자의 현재 상태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당시 병사는 절반보다 훨씬 많은 피를 흘려 저혈압과 쇼크로 죽어가고 있었다”며 “병사가 여기가 진짜 남한이 맞느냐고 묻기에 태극기를 한 번 보라고 대답해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또 언론에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거침없이 얘기하며 국민적인 공감을 샀다. 이 때문에 권역외상센터지원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의견이 23만건을 넘어섰고, 보건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 예산과 인력 확충에 나서기로 했다. 정치권도 여야 구분 없이 예산 증액을 약속했고 실제로 증액이 이뤄졌다. 

베스트 함영준

최고의 기업인으로는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꼽혔다. 지난 10년간 라면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던 사실과 그간 숨겨졌던 미담 등이 입소문을 타면서 네티즌들로부터 ‘갓(god)뚜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착한기업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함영준 회장의 윤리경영 철학은 재계 전반에 걸쳐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남긴 오뚜기 주식은 46만5543주로 당시 시가로 3500억원 수준이다. 현행 상속관련 법률에 따라 30억원 이상 상장 주식에 대한 증여세율은 50%로 납부해야 할 상속세만 1500억원 규모다. 국내 상속세 중 두 번째로 큰 금액인데 함 회장은 이를 5년에 걸쳐 모두 납부키로 했다. 

올해 문 정부가 일자리 확대를 기업들에게 주문하면서 오뚜기의 높은 정규직 비율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 3분기 말 기준 오뚜기의 전체 직원 3011명 가운데 정규직은 2976명으로 정규직 비율이 98.84%에 이른다.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마라”는 고 함태호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받은 함 회장의 정규직 채용 정책이 지속된 결과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지난 7월27일, 청와대 상춘재서 기업인 8명과 만나 20분간에 걸쳐 맥주잔을 기울이며 함 회장에게 “함 회장님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로 부른다면서요”라고 말을 건네 화제가 됐다.

베스트 김생민

김생민은 올해 전성기를 맞았다. 인크루트는 ‘2017 유행어 설문조사’ 결과 최고의 유행어에 '스튜핏, 그뤠잇'이 1위에 올랐다. 유행어 설문조사서 응답자 15.4%가 지지한 ‘스튜핏, 그뤠잇’은 김생민이 만든 유행어다. 

<김생민 영수증>서 통장요정으로 등장해 현명한 소비에는 Great(그뤠잇), 낭비에는 Stupid(스튜핏)이라고 지칭했다. 이 후 그뤠잇·스튜핏 신드롬이 일었고 유행어의 주인공 김생민은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KBS2 <연예가중계> MBC <출발 비디오여행>과 20년, SBS <동물농장>과 17년 동안 함께한 '성실한' 방송인이었던 그는 새 예능에 연달아 캐스팅되면서 예능 기대주로 떠올랐다.

일등공신은 <김생민의 영수증>이다.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팟캐스트의 한 코너였던 <김생민의 영수증>은 지상파에 입성해 15분 동안 시청자들을 만나더니, 70분으로 확대된 정규방송으로 훌쩍 성장했다. 스페셜 방송까지 주2회 편성됐다. 


‘다사다난’ 온갖 사건·사고 속 명암
대통령 탄핵 사태로 온나라 들썩들썩

지난 8월 파일럿으로 첫 발을 내딛은 <김생민의 영수증>도 2부 연장될 만큼 사랑을 받았다. 의뢰인의 지출내역을 보고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알려주고 소비에 대한 평을 내리는 콘셉트다. 

저축을 권장하는 ‘통장요정’ 김생민과 보다 의뢰인의 편에 서서 소비활동을 옹호하는 ‘소비요정’ 송은이-김숙은 대조적인 캐릭터로 아웅다웅하는 재미까지 잡았다. 

베스트 손흥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서 물오른 기량을 자랑하는 손흥민이 또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19일, 서울 세빛섬서 2017 KFA 시상식을 열고 손흥민에게 '올해의 남자 선수상'을 수여했다.

대표팀의 주축 공격수인 손흥민은 지난 5월 토트넘서 한국인 유럽리그 한 시즌 최다골(21골)을 기록했고, 올 시즌에도 8골을 넣으며 활약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이날, 서울 서초구 세빛섬서 열린 2017 KFA 시상식에서 손흥민을 ‘올해의 남자 선수’로 선정했다. 2013년과 2014년에 이어 개인 통산 3번째 수상이다. 손흥민은 EPL 스완지시티의 기성용(2011·2012·2016년)과 함께 최다 수상의 기록을 썼다.
 

올해의 남자 선수는 한국 국적으로 국내외서 활약하는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언론사와 KFA 전임 지도자 투표를 통해 선정했다. 손흥민은 총 168점을 얻어 올해 K리그 최우수선수(MVP)와 동아시안컵 대회 MVP를 휩쓴 이재성(전북·131점)을 따돌렸다.

손흥민은 EPL 2016-2017시즌서 21골을 터뜨리며 한국 축구계의 전설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이 갖고 있던 역대 한국인 유럽리그 한 시즌 최다 골 기록(19골)을 갈아치웠다. 지난달 5일 열린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선 프리미어리그 통산 20호골을 터뜨리며 박지성 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최다 골 기록도 넘어섰다.

워스트 최경환

올해는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정치 인생 최악의 해가 됐다. 현재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수수한 혐의로 벼랑 끝에 몰렸다. 

최 의원은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지식경제부장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대한민국 경제정책을 움직였다. 새누리당 내에서 진박 감별사로 불리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이었다. 그런 최 의원이 이제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있다. 

법원이 지난 11일 최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요구서를 정부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체포동의안요구서에 대해 검토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 의원의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처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 의원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1억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최 의원이 박근혜정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4년 무렵 국정원 예산 배정 문제에 힘을 써주는 대가로 특활비를 수수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여파로 국정원 특활비 축소 문제가 정치·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자, 국정원이 당시 국가 예산을 총괄하던 최 의원에게 뇌물을 건네 이를 무마시켰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이 지난 1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배경이다.검찰은 1억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면서 체포동의안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발부했다.

워스트 우병우

‘법꾸라지’로 악명을 떨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회 부문 최악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는 지난 15일, 검찰에 구속됐다. 지난해 11월, 처음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지 1년1개월여 만이다. 법원은 앞서 두 차례 검찰과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세 번째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우 전 수석은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에게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8명,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등 공무원과 민간인의 불법사찰을 지시하고, 그 결과에 대해 보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근혜정부서 ‘왕수석’으로 통했던 그는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 때 대검 중수1과장으로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2013년 4월 검사장 승진서 탈락하자 검찰을 떠났다가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난해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정치권과 여론의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버티기로 일관했다.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청와대의 ‘모르쇠’ 대응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보수 몰락에 그가 끼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워스트 탑

2017년 연예계는 유독 마약 이슈가 많았던 가운데 빅뱅의 멤버이자 배우 탑(최승현)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경찰에 적발돼 세간에 충격을 안겼다. 탑은 가수 연습생 한모씨와 대마를 피워 스캔들에도 올랐다. 

탑은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가수 연습생 한모씨와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기소됐다. 탑은 마약 파동이 가시기도 전에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후송되면서 또 한 번 걱정을 안겼다. 탑은 1심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만2000원을 선고 받았다. 

탑은 당시 “저의 커다란 잘못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큰 실망과 물의를 일으킨 점 모든 진심을 다해 사과 드리고 싶다. 여러분 앞에 직접 나서 사죄 드리기 조차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고 사과했다. 

지난 2월 입대한 탑은 서울경찰청 홍보담당관실 악대 소속 의무경찰로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복무 중이었으나 직권면직돼 의경 신분을 박탈당했으며 사회복무 요원으로 추가 근무를 하게 됐다.

워스트 강정호

스포츠계 올해의 최악은 음주운전으로 MLB 피츠버그 파이리츠 로스터서 제외된 강정호다. 인크루트 조사결과 31.3%로 비호감 순위 1위를 차지했다. 

강정호는 2015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피츠버그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지난해 12월 서울서 음주운전 중 교통사고를 냈다. 그는 3번째였던 이날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 재판에 넘겨진 강정호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미국 비자 발급이 거부돼 올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실전 감각 회복을 위해 피츠버그 구단의 도움을 받아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입단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방출됐다. 구단은 강정호를 데려오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이로써 강정호를 2018시즌 메이저리그서 볼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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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