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추적> ‘건국대 스캔들’ 학교 망친 비선 실세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2.11 10:46:28
  • 호수 1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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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최순실’ 그녀의 남자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선 최순실 때문에 무너졌다. 건국대학교도 마찬가지다. 복수의 학교 관계자들은 김경희 전 이사장의 측근들, 이른바 ‘여왕의 남자들’이 학교를 망쳤다고 입 모았다. 그들은 어떻게 건국대에 손을 뻗었을까.

지난 10년 사이 건국대는 각종 사건·사고로 사학 비리의 온상이 됐다. 이 모든 일은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 재임 기간에 일어났다. 김 전 이사장은 1994년 법인 평이사로 취임하면서 학교 경영에 참여했다.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이사장을 맡고 있던 시동생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났다.

이사장 업고
학내 쥐락펴락

잘못된 첫 단추의 시작이었다. 그가 국내 11위 대학의 수장이 되자, 김 전 이사장의 측근들은 하루아침에 ‘여왕의 남자’로 신분이 상승했다. 복수의 건국대 관계자들은 “김 전 이사장의 측근들이 각종 이권에 개입했고, 그 과정에서 숱한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며 “바로 그들이 건국대를 비리 사학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설립자 유창석 선생의 가족 중 한 명은 “대학 이사장은 최고의 도덕성을 갖춰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김 전 이사장과 휘하는 학교의 위상까지 추락시켰다”며 “그들 중 김 전 이사장을 등에 업고 학교 이권에 개입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특채의 이면]


최근 김 전 이사장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기업인 윤모씨의 사위가 합격에 못 미치는 점수를 받고도 건대 교수에 채용된 사실이 <일요시사> 취재 결과 포착됐다. 현재 재직 중인 A교수의 교수임용지원서에는 윤씨의 딸이 ‘아내(처)’로 표기돼있다.

그는 2003년 9월 건국대 교수 공개 채용에 지원했지만 1차 평가서 8명 지원자 중 6등에 그쳤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 건국대는 특별채용 과정을 거쳐 A교수를 임용했다.
 

복수의 대학 관계자들은 “공개채용 1차 전형에서 탈락한 지원자가 곧바로 특별채용으로 임용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A교수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취재에 응하고 싶지 않으며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A교수의 채용 과정서 석연찮은 점이 드러나자 김 전 이사장과 윤씨의 관계가 부각되고 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였기에 윤씨의 사위가 건국대 교수로 특채된 것일까.

그 관계는 김 전 이사장에게 남편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학교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였던 장모씨의 투서에 일부 드러나 있다. 다음은 <일요시사>가 입수한 투서 중 일부다.

‘남편이 김 전 이사장을 알기 전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에게 변화가 왔고 김 전 이사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김경희에게는 10년이 넘도록 사귀어 온 윤 회장(윤씨)이 있었으니, 그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하라고 했습니다. 윤씨 역시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윤씨는) 김경희와 10년 이상 알고 지낸 부부나 다름이 없는 관계라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측근들 각종 이권에 개입…숱한 의혹도
현 이사장 난감한 표정으로 ‘묵묵부답’


장씨는 윤씨의 지인이었던 남편이 김 전 이사장을 소개받았고 함께 골프를 치면서 내연관계로 발전했다고 의심했다. 이 과정서 장씨는 남편에게 이혼 통보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이사장과 윤씨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두 사람은 지난 2009년 7월 대여금반환 소송을 벌였다. 소송 과정서 윤씨는 김 전 이사장에게 수 년 동안 10억원에 달하는 선물도 줬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 1995년 5월부터 2000년까지 명절이나 김 전 이사장이 여행을 갈 때면 수백만원씩 줬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이사장 딸이자 현 이사장인 유자은 이사장이 결혼할 당시 윤씨가 4000만원이나 준 것도 재판 과정서 밝혀졌다. 실제로 윤씨의 운전기사는 “김 전 이사장 집에 돈과 선물을 수도 없이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학교 관계자는 “A 교수의 채용 배경에 김 전 이사장과 윤씨의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그것 말고는 현 사태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수상한 비호

김진규 전 총장도 김 전 이사장의 측근으로 꼽혔다. 김 전 총장은 재임 시절 저지른 비리가 적발돼 현재 사기 및 횡령 혐의로 2014년 1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는 건설사 대표 박씨에게 400억원에 달하는 공학관 건설 공사를 수주하게 해주겠다고 속여 16억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

또 건국대와 대한임상정도관리협회서 19억여원을 횡령했다. 이외에도 카지노서 수십억대의 빚을 지는 등 도박 문제도 안고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김 전 총장)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회적 위치에 있으면서도 무분별하게 주식투자를 하거나 카지노 도박에 몰두하는 등 장기간 무절제한 생활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김 전 총장은 재임기간 동안 다섯 개에 달하는 총장직과 학교법인 산하 각 사업체에 겸직하며 각종 공사 등에 특정업체로 수의계약을 지시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 전 총장이 수많은 비리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김 전 이사장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 거래한 기업 회장
사위 교수로 특별채용

김 전 총장은 비리로 인해 이사회서 해임이 의결됐지만 김 전 이사장은 2012년 5월 그가 사표를 제출하자 징계절차 없이 면직으로 처리했다. 


학교 관계자는 “김 전 이사장은 김 전 총장을 ‘공인’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김 전 총장은 자신이 김 전 이사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내세워 건설업체 등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 전 총장의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건설업체 대표 박모씨에게 “(나는) 건국대학교 이사장 김경희와 OO 관계다. 건국대 관련 업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인 자리서 두 사람이 ‘싸움’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 2010년 7월경 예술의전당서 열린 대학인들의 행사에서 김 전 총장은 술에 취한 채 무대로 올라가 “김경희 어디 있어! 나와!”라고 주정을 부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건국대의 한 교수는 “두 사람이 싸웠다”고 말했다.

여전한 영향력

건국대 내에서는 장대수 전 건국대 노조위원장이 사실상 ‘학교 주인’이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대학 비선인 사실상 ‘최순실’ 역할을 했다는 것. 장 전 위원장은 김 전 이사장을 만든 장본인이다. 


김 전 이사장과 가까웠던 한 인사는 “김 전 이사장이 이사이던 시절 장 전 위원장에게 ‘나 좀 이사장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장이 건국대 수장이 된 이후 장 전 위원장은 학교를 통해 사익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가 체육부장이던 시절 건국대 이천스포츠 과학 타운의 유휴토지를 임대해 부대수입을 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외에도 체육협회로부터 받은 경기력 향상 지원금이나 각종 지원금도 유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학교에 보고되지 않고 쓴 돈이 1억7900만원에 달했다.

장 전 위원장의 문제를 아무도 지적하지 못했다. 여왕의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2007년 장 전 위원장은 건국대 선수를 프로구단으로 진출한 대가로 3억원을 챙긴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3억원 중 1800만원은 학교 발전 기금으로 내고 나머지 2억8200만원을 가로챘다. 장 전 위원장은 당시 이 때문에 70일간 형을 살았다.

2011년 장 전 위원장은 학교를 그만뒀음에도 불구하고, 건국대 병원 등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케이플라워 대표인데 이 업체는 당시 건국대 병원 화환류 거래 업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장 전 위원장은 여전히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복수의 건국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장 전 위원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한 때 그 사람에게 충성하며 ‘이렇게 하면 학교가 망한다’고 충고도 했다. 그런데 내 말 안 듣다가 학교를 결국 말아먹었다”며 “김 전 이사장을 만든 게 나다. 개인 욕심에 눈이 멀어 딸까지 이사장으로 앉힌 거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가 사고 친 것은 있다. 반대파들한테 모함 당한 거다”고 덧붙였다.

도대체
무슨 관계?

설립자 측 가족들이 김 전 이사장의 딸 유 이사장에게 “김진규나 장대수 같은 사람 내칠 수 있느냐”고 묻자 유 이사장은 당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아무 말도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사장직을 박탈당한 김 전 이사장은 학교 경영 경험이나 능력이 전무하고 가정 주부였던 딸을 불법적으로 세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전히 김 전 이사장이 배후서 학교 경영에 관여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경희 측 입장은?

김 전 이사장은 묵묵부답이다. 입장이나 반론, 해명 등을 요청했으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학교 측 관계자는 “물어봐야 하는데 답해줄 사람이 없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문자와 메모를 남겨도 소용이 없었다.

건국대 측도 공식적으로 이런 의혹들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한 관계자는 “14년 전 이야기여서 오래된 이야기다. 지금 와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김 전 이사장의 문제와 의혹들이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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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