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이철성’ 청와대 딜레마

‘불면 날아갈’ 바람 앞 등불 신세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이철성 경찰청장 사의설이 흘러나오면서 대규모 인사를 앞둔 연말 경찰 내부는 더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 청장과 청와대는 사실을 부인하고 나섰지만 갑자기 불거진 사의설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가올 올림픽과 지방선거같은 큰 이벤트를 앞두고 청와대와 여당의 압박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4대 사정기관 수장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 청장. 풍전등화 같은 그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8일 한 매체서 이철성 경찰청장이 최근 청와대에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청장이 이번달 초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기 직전 청와대에 ‘청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이 청장이 사의를 밝힐 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맞다”며 청장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사의설 진실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해당 보도 직후 사의설에 휩싸인 이 청장이 청와대에 직·간접적으로 사의 표명 의사를 전달한 바 없다고 밝히면서 논란을 일축했다. 

지난 20일 이 청장은 서울 서대문구 본청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사직서를 쓴다던가 의사를 전달한 적이 없었다”며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사의 표명을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기 전 예방해 사의를 표명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대통령 예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청와대 출입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마지막으로 들어간 게 반부패 기관장회의였고 그 때 이후로 들어간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청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소회를 밝힌 적은 있지만 그 말은 국회 질의 때도 했고 저의 진퇴에 대한 질문이 있을 때마다 해왔던 얘기”라며 “치안정감 인사를 앞두고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으니 그와 관련해 증폭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청장 사의 표명설
“개의치 않겠다”…청와대도 공식 부인

이 청장은 청와대로부터 신임을 확인한 만큼 남은 잔여 임기를 모두 채운다는 입장이다. 

앞서 이 청장은 박근혜정부 시절인 지난해 8월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뒤를 이어 취임했다. 보통 경창청장의 임기는 2년이지만 이 청장은 정년(만 60세) 제한으로 내년 6월까지가 임기다. 

이 청장은 연말로 예상되는 경찰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서는 “치안정감, 치안감 인사는 정부 인사기에 제가 언제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치안정감 인사와 관련해서 언급된 바가 없다”면서도 “다만 과거 전례로 보면 12월10일 정도까지, 경무관 인사까지 12월 중순까지 마무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장 교체설 혹은 사의설은 문재인정권 출범 직전에도, 이후에도 잊을만 하면 불거져 나왔다. 이 청장이 박근혜정부서 임명된 사람인 데다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4대 사정기관 수장 중에 유일하게 ‘생존 중인’ 인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청장은 검찰총장·국정원장·국세청장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린다. 


경찰 내부에서는 특정 치안정감들이 거명되며 ‘밑에서 청장을 흔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또 “현 정권과는 코드가 안 맞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청장 교체설은 지난 7월 무렵부터 경찰개혁위원회 주변서도 흘러나왔다. 

일부 개혁위 위원들이 경찰 개혁의 핵심으로 ‘청장직 개방’에 무게를 두고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혁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개혁의 깊이와 속도를 더 하려면 외부 인물을 청장 자리에 앉혀 분위기 쇄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개혁위 인권분과를 중심으로 논의됐다. 

계속되는 교체설
가도 가도 가시밭

검찰총장도 외부에 개방해 지원자를 신청받는 데 경찰청장을 민간에 개방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권의 모 인사가 차기 청장으로 유력하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러나 개혁위는 이 청장 교체설을 부인했다. 

당시 개혁위 한 관계자는 “개혁위 위원들을 임명한 사람이 이철성 청장인데 위원들이 이 청장을 쫓아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차기 청장은 개방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는 하고 있지만 이 청장을 당장 교체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치인 출신을 차기 청장에 앉힌다는 설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청장은 얼마 전 강인철 경찰중앙학교장과 상호 비방전을 벌이면서 경찰 내부서 사퇴론이 불거졌지만 이 때도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사퇴 위기를 넘겼다. 

경찰 안팎에선 여권서 집단으로 청와대에 경찰청장 교체를 건의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 여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정권이 바꼈는데 전(前) 정권 인물이 교체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면서도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청와대에 경찰청장 교체를 건의한 사실은 없다. 그럴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찰 주변에서는 인사철을 앞두고 10만명이 넘는 조직 규모에 비해 ‘윗자리’는 한정된 만큼 수뇌부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해지면서 청장 교체론도 불거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번 ‘사임설 해프닝’이 다음 달 초 경찰 고위직 인사를 앞두고 오히려 이 청장의 임기를 보장시켜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아니 땐 굴뚝에?
여 압박 있었나?


청와대가 “이 청장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대통령 탄핵 사태부터 대선 이후 지금까지 경찰 본연의 업무인 치안관리를 안정적으로 충실히 해왔다”며 이 청장에 대한 두터운 신임을 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새 정부가 이 청장의 유임을 결정했을 당시 촛불집회 관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문재인정부가 예고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경찰개혁 등을 순조롭게 추진하고 평창올림픽을 안정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청와대가 이 청장의 ‘유임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청장이 강력하게 “사실이 아니다”며 사의설을 일축했지만 일각에선 갑자기 불거진 사퇴설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 내부에선 “내년에 평창올림픽과 지방선거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있는데 전 정부서 활동한 이 청장 등 고위급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여당 등이 이 청장을 압박했고 이에 이 청장이 사퇴 의사를 내비쳤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이달 말 예정돼있는 경찰 고위급 인사와 겹쳐 지금이 청장 교체의 최적기라는 시각이 많다. 이 청장이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사퇴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정치권 안팎서 조심스레 나온다. 

문정부 출범 직후 끊임없는 교체설
연말 앞두고 수뇌부 흔들기 관측도


이 청장은 지난해 8월 임기 2년의 경찰청장에 취임했지만 정년 때문에 내년 6월 말에 퇴임해야 한다. 정치권서도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 후 이 청장 퇴임과 신임 경찰청장을 임명하면 무리가 없기 때문에 청와대가 이 청장에게 이날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애초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는 이 청장 교체 필요성을 검토했지만 대과가 없는 만큼 2년 임기를 보장해주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2003년 임기제가 시행된 후 임기를 채운 사람은 이택순·강신명 전 청장 2명뿐이다. 이들도 한 정권 내에서 임기를 보장받았다. 

이 청장은 순경부터 시작해 경찰청장까지 경찰 내 모든 계급을 거친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그는 1982년 순경 공채로 입문했다. 경사이던 1989년에 경찰 간부후보생 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 영등포경찰서장, 경남지방경찰청장, 경찰청 차장 등을 지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평창올림픽이 코앞이라 청와대가 경찰 수장을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 청장에게 천운이 따른다’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이 청장은 ‘사임설’과 무관하게 정상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이 청장은 20일 방한한 로널드 델라 로사 필리핀 경찰청장과 회담을 갖고 양국 경찰 간 협력을 통해 재외국민 보호, 중요 도피사범 검거 송환 및 각종 국제성 범죄 공동대응 등 치안협력 발전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전날엔 경북 포항 지진 대피소를 찾고 수능 문제지 보관소 등을 방문하는 등 정상업무를 수행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인사철을 앞두고 여러 가지 소문이 떠돌고 있는 것은 알지만 일희일비하면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겠느냐”며 “청장 사임설은 일부 수뇌부 인사를 따르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의심되긴 하나 근거없는 소문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무시하겠다”고 말했다. 

청 노이로제
소문은 무시

청와대도 관련 언론 보도를 공식 부인하면서 이 청장에 대한 신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청와대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명의 입장문을 통해 “이 청장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대통령 탄핵 사태부터 대선 이후 지금까지 경찰 본연의 업무인 치안 관리를 안정적으로 충실히 해왔다”며 “이 청장의 정년이 내년 6월인 상황서 청장 교체를 고려할 만한 특별한 인사 요인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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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