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다지는’ 여시재 해부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9.18 10:39:20
  • 호수 1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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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들 어디서 모이나 했더니…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가 주목받고 있다. 한샘 명예회장의 출연으로 설립된 여시재는 정·재계를 주름 잡는 인사들이 이사진으로 포진돼있다. 특히, 진영을 초월한 ‘용광로’ 인사들로 우리나라 정치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최근 세를 다지는 여시재를 들여다봤다.   
 

2015년 12월 설립된 여시재의 사전적 의미는 ‘시대와 함께하는 집’ ‘시대를 어깨에 짊어진다’는 뜻으로 ‘시대와 함께 가면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던 <주역> 풀이서 비롯됐다. 당시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300억원을 출연해 결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잠룡들 모임?

조 명예회장은 초당파적, 초국가적 연구를 통해 미래의 세계질서를 전망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모색을 위해 여시재를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4월 여시재 이사직서 물러난 조 명예회장은 현재 순수 기금 출연자로 남아있다. 

지난 11일에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국회를 방문했다. 이 방문은 여시재서 추진한 것이다. 이날 슈뢰더 전 총리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대담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진단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북한은 가차 없이 위협하지만 한국은 계속 대화의 손을 내밀고 있다”며 “힘겨운 길이겠지만 이 입장이 고수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핵 해법에 대해 “미국, 러시아, 중국 3국이 공동의 전략을 갖고 북한에 대응해야 하고, 이 전략은 한국이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며 “3개국이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북한에)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시재의 사명은 ‘신문명’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질서’ ‘통일한국’ ‘도시의 시대’로 요약된다. 
특히 여시재는 지난 30년간 세계사적으로 가장 큰 변화의 핵심이 ‘중국과 동북아’임을 역설하며 우리나라가 새로운 세계질서의 주역이 되고자 할 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시재는 미래 시장경제체계를 연구하고 미래 기간산업을 탐구해 다양한 지식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식생태계 구축을 다짐했다. 여시재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화려하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창영 전 연세대학교 총장, 홍석현 전 주미대사, 김도연 포항공대 총장, 안대희 전 대법관, 박병엽 팬택씨앤아이 부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공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재술 전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 등이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사진의 구성은 이헌재 이사장, 안대희 전 대법관 등 보수적 인사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등 진보적 인사가 혼재된 모양새다.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원장은 “저는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에선 여야를 뛰어넘어 국가의 힘과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 실용·진보적인 사람들”이라며 “북한을 돕는 NGO활동을 한 분도 있다. 사실 기업하는 사람이 가장 진보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여시재는 동북아시아 포럼을 열었는데 당시 대권 잠룡들이 총출동해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동북아시아와 세계, 토일 한국에 대한 자신들의 역할과 소회를 밝혔다.  


2015년 9월 설립…정재계 인사 총출동
차기 주자들 기웃…실질적 대선 캠프?

안 지사는 과거 이 원장과 함께 한 지방자치연구소 시절을 회상하면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안 지사는 “13년 전 지방자치연구소를 이광재 원장과 함께 하면서 한국사회의 현실 문제에 도전했다”며 “이제 대한민국의 국가적인 과제를 아시아와 세계적인 차원서 고민하는 친구 이광재가 자랑스럽고 이 원장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돕고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선 안 지사가 대선 당시 제시한 ‘대연정 카드’의 기초가 여시재 모임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 바 있다. 여시재가 주목받은 이유는 실질적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데 있다. 여시재 이사회는 한 달에 한번 ‘대화당’이란 한옥 건물서 열린다.

새벽 6시30분부터 이사진들과 연구진들이 도착해 강의와 토론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단순히 이사회에 이름만 올리고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구조다. 또 상근 연구원들의 구성도 단순한 규모의 확장보다는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상근연구원도 20여명에 달한다. 
 

여시재는 고유한 연구를 수행하는 전통적 싱크탱크 모델을 넘어 연구자와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싱크 허브’를 지향한다. 프로젝트 별로 진행기간을 설정한 뒤 해당 주제를 토대로 전문가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구조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여시재의 연구방법론 연구’ ‘신문명 지수 연구’ ‘C프로젝트(기술경진대회)’ 등이다. 

이밖에 여시재는 강연, 토론, 연구모임 등을 주최해 정치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국회에서 ‘남북자원협력과 국가미래전략산업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해당 토론회는 여시재와 민주당 김경수 의원, 박재호 의원, 송기헌 의원, 이인영 의원, 홍의락 의원 등이 주최했다.

해당 토론회에는 북한자원 및 남북자원협력 관련 기관, 전문가, 산업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자원협력을 둘러싼 실제적 고민과 현실적 한계, 전략 대응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현 상황서 이번 토론회는 경제협력 모델을 통해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가는 실마리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정책 솔루션

이 원장은 여시재가 특정 인물의 대선캠프가 아니냐는 이야기에 대해 “이곳은 특정 정치인이나 개인을 위해 뭘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이사진 스펙트럼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여야를 떠나 정책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기지개 켜는 이광재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서 문재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향후 정치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문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경수 의원과 나란히 토론회를 주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이 전 지사는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정치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면·복권 후 강원지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선 주말마다 오대산 등 강원도 내 산을 찾아 등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만남을 갖기고 했지만 정치적으로 해석의 여지가 있는 행보는 최대한 자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 전 지사 측근 그룹 인사들이 최근 도지사 특보와 여당의원 보좌진 등으로 활동범위를 확대하고 있어 이 전 지사가 향후 전면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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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