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회장님 ‘적진 염탐’ 속셈

‘호랑이 굴’에 몰래갔다 잡혀 대망신

적진을 염탐하는 오너들이 늘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란 옛말처럼 경쟁사에 몰래 방문해 샅샅이 훑어본 뒤 경영에 반영하려는 의도에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설이나 발각을 우려해 체면상 숨겼지만,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아예 대놓고 드나들 정도로 과감해졌다. 대담무쌍하게 적진으로 돌격하는 오너들을 꼽아봤다.
 
‘적 알아야 백전백승’ 오너들 경쟁사 극비 방문
안방처럼 대놓고 드나들어…잠입 발각에도 당당

지난달 결혼 후 잠시 중단했던 트위터를 지난 11일부터 재개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 부회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비밀 한 가지를 공개했다. 평소 홈플러스를 자주 간다고 언급한 것. 정 부회장은 신혼집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형마트 입점경쟁을 다룬 기사와 관련해 재치 있는 글을 남겼다.

“원래 저는 홈플러스를 더 자주 갑니다.”

이어진 정 부회장의 트윗은 더욱 시선을 모았다. 정 부회장은 ‘홈플러스 회장님은 어디를 더 많이 가실까요? 아마도 이마트가 아닐까 싶네요’란 네티즌의 질문에 “홈플러스 회장님 지난주에 임원 15명 이끄시고 이마트 성수점 방문하셨습니다”라고 답했다.

신분 감춘 ‘암행시찰’

실제 홈플러스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최근 주요 임원 15명과 함께 이마트 성수점을 방문했다. 이 회장 일행은 몰래 적진에 들어갔다 이마트 측에 발각됐고, 보고를 받은 정 부회장이 트위터를 통해 이를 공개한 것이다. 홈플러스 측은 “이 회장은 이마트뿐만 아니라 다른 매장도 자주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과 이 회장은 ‘현장경영’으로 유명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장 등을 찾아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직접 본 문제점들을 수정 보완한다. 현장경영의 일환으로 적진 염탐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끔씩 경쟁사를 방문해 적진의 상황을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신분을 감춘 ‘암행시찰’식으로 다녀간다고 한다.

적진을 염탐하는 오너들이 늘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란 옛말처럼 경쟁사에 몰래 방문해 샅샅이 훑어본 뒤 경영에 반영하려는 의도에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설이나 발각을 우려해 체면상 숨겼지만,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아예 대놓고 드나들 정도로 과감해졌다.

대담무쌍하게 적진으로 돌격하는 대표적인 오너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다. 신 회장은 재계에서 유명한 ‘은둔 오너’다. 주요 공식석상 등 외부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현장을 중요시하는 방침은 여느 오너와 다를 바 없다. 언론 등에 노출을 꺼려하는 그가 선택한 현장경영이 바로 암행 순시다. 신 회장은 사전 통보는 물론 별도 수행원 없이 사업장을 극비리에 둘러본다. 직원들 근태 등을 점검한다. 화재·안전사고의 위험은 없는지 체크하는 것도 체크 포인트다.

수시로 ‘안방’을 드나드는 신 회장도 적진에 들어간 적이 있다. 2009년 5월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신세계 센텀시티를 살펴본 것. 롯데백화점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라 관심을 모았다. 이 백화점 한 고객의 카메라에 신 회장의 방문 장면까지 포착돼 큰 화제가 됐었다. 신 회장은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과 롯데 센텀시티점 점장 등과 함께 신세계 센텀시티를 살펴보고 롯데 센텀시티점으로 되돌아갔다. 앞서 신 회장은 2002년 3월 이마트 일부 점포를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실적이 좋은 이마트 매장들을 찾아 업계에선 경쟁사의 장점을 배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신 회장과 라이벌 관계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역시 롯데백화점의 소공동 명품관 에비뉴엘을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05년 5월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과 함께 에비뉴엘을 두 차례나 찾아 매장을 둘러보고 상당액의 물품을 구입해 눈길을 모았다. 부녀는 백화점내 레스토랑에서 식사까지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회장이 경쟁 업체의 현황을 직접 확인하러 나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당시 신세계 측은 “이 회장은 평소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롯데 뿐 아니라 현대, 갤러리아 등도 둘러본다”며 “신 회장도 신세계 이마트 매장을 둘러보는 만큼 그런 수준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타사 모델하우스를 자주 찾는다. 정 회장은 2009년 12월 임원들을 대동하고 일산에 위치한 롯데건설과 대원건설의 ‘교하 캐슬&칸타빌’모델하우스와 두산건설의 ‘두산위브더제니스’모델하우스를 비밀리에 방문했다. 현장 관계자는 “정 회장은 별다른 브리핑을 받지 않고 이 지역의 주요 수요층은 어디인지, 주변 시세 및 분양가는 얼마인지 등 비교적 간단한 질문만 했다”고 전했다.

이어 정 회장은 지난 4월 임원들과 함께 김포시 고촌읍에 있는 대우건설과 한라건설, 반도건설의 모델하우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각 회사별 입지와 평면설계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갔다는 게 이들 건설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정 회장은 평소에도 현장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며 “김포한강신도시 모델하우스 방문도 같은 연장선에서 보면 된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2005년 12월 항공업계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임원들이 경쟁 업체인 대한항공 항공편을 이용한 일이 알져진 것. 박 회장과 그룹 임원 5명은 광주에서 행사를 마치고 귀경할 예정이었지만, 아시아나항공기가 정비 불량으로 출발이 지연되자 대한항공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 얘기는 2001년 아시아나항공 노조의 파업으로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자사 항공편이 없어 대한항공 국내선을 이용해 광주로 내려간 일화와 함께 업계에 회자됐다.

“갔는데, 그게 뭐?”

사실 박 회장은 비행기 탈 일이 있으면 아시아나항공 비행편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른 항공사는 물론 종종 대한항공도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회장이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것은 승무원들의 서비스와 태도 등을 직접 체험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도 경쟁사 잠행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다. 박 회장은 틈만 나면 경쟁사 매장을 둘러본다. 양복 대신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수행원도 없이 경쟁사 매장에 들러 시장조사를 한다. 그동안 언론 등에 얼굴이 노출되지 않은 만큼 발각될 위험도 적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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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