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미술품 뒷거래 미스터리 <추적>

공중에 붕 뜬 40억 주인 누구?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검찰이 ‘오리온 비자금’을 캐기 시작한지 3개월이 흐른 지금, 수사의 초점이 ‘그림’쪽에 맞춰지고 있다. 미술품으로 ‘검은돈’을 조성하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앞서 돈을 세탁해준 혐의로 미술계 ‘큰손’이 쇠고랑을 찬 상태. 이제 그 수사망이 ‘최종 타깃’으로 좁혀지고 있다. 막바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검풍’이 담철곤 회장에 이어 누구를 덮칠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검찰 막바지 수사 총력…‘그림매매’에 초점
청담 마크힐스 땅 매각차익 최종 수수처 타깃

국세청이 오리온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횡령과 탈세 등의 의혹을 포착해 검찰에 고발한 지난해 8월. 그 즈음 <일요시사> 편집국으로 우편물 한통이 날아왔다. 익명의 제보였다. 그리 두껍지 않는 서류 봉투 속엔 눈을 의심할 만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재벌-미술상 이상한 관계’란 제목의 오리온그룹과 서미갤러리 간 미술품 거래 의혹이었다.

오리온-서미 거래
수사전 본지 제보

‘오리온그룹과 국내 미술시장 큰손이 운영하는 서미갤러리가 각종 미술품들을 자주 거래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금액은 어마어마합니다. 과연 정상적으로 거래를 했을까요. 그 의혹을 풀어줬으면 합니다.’

자신을 고위 공직자의 아내라고 밝힌 제보자는 제보 이유에 대해 “밝고 투명한 사회를 위해서”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제보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근거나 증거가 없었다. 그저 그럴만한 정황만 빼곡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리온그룹에서 별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아 제보 자체를 의심케 했다. ‘부부 경영’으로 유명한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사장이 ‘열린 경영자’ ‘클린 오너’란 그룹 안팎의 평가도 부담이었다.

<일요시사>는 우선 ‘보관 장소로 양평 별장이 의심된다’는 제보자의 힌트에 따라 취재 동선을 잡고 추적에 나섰다. 양평 별장은 오리온그룹 건설 계열사인 메가마크가 시공을 맡아 2008년 오픈한 연수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대심리 북한강변 경사지에 위치한 연수원은 대지면적 3540㎡(약 1072평)에 지상1∼2층 규모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공간디자인 우수상,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 등을 수상할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지어졌다.

설계를 담당한 T사 측은 “자유로움과 휴식을 담은 건축을 원하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뗏목을 물에 띄워 보내는 듯한 자유로움을 건축물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T사는 2000년 서미갤러리 설계도 맡은 바 있다.

제보를 접하고 얼마 뒤 <일요시사>가 취재차 방문했을 당시 연수원의 문은 잠겨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내부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무슨 일로 왔냐”며 경계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구경 좀 할 수 있냐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황급히 모습을 감췄다.

당시 오리온그룹과 서미갤러리는 미술품 의혹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40억원 어디로…}
[오리온]→[시행사]→[서미갤러리]→[?]

회사 관계자는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냐. 그저 소설이고 추측일 뿐”이라며 “직원들 연수원에 그림이 왜 있고, 그림 창고가 왜 있겠냐. 미술품은 없다. 서미갤러리와도 거래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서미갤러리 측도 “오리온그룹과 개인적인 친분은 몰라도 거래 내역을 밝힐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이 ‘오리온 비자금’을 뒤지기 시작했고, 다른 대기업 총수들의 사건과 달리 전례가 없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수사가 진행됐다.

‘3월22일 오리온 본사 등 압수수색…5월6일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구속…5월11일 조경민 오리온 사장 구속…5월14일 담 회장 자택 압수수색…5월23일 담 회장 소환 조사…5월26일 담 회장 구속…’

16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담 회장을 구속한 검찰의 수사는 현재 ‘그림’쪽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미술품으로 ‘검은돈’을 조성하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 3월 오리온그룹 본사와 계열사 등을 압수수색할 당시 <일요시사>가 먼저 두드렸던 양평 연수원 등도 뒤져 미술품 창고가 있다는 사실과 여기에 수십 점의 미술품이 보관된 것을 확인했다. 이 미술품들은 그룹의 비자금 조성 창구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미갤러리를 비롯해 여러 화랑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 확인 취재 당시 “연수원에 무슨 그림이 있냐”며 딱 잡아뗐던 오리온그룹 측은 검찰의 압수수색 사실이 알려지자 “연수원에 그림창고가 있는 것은 맞다”고 말을 바꿨다. 다만 “이 창고는 회사가 구입한 뒤 미처 전시하지 못한 미술품을 보관해둔 곳으로, 모두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구매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오리온그룹이 양평 창고 등에 보관 중이던 그림의 구입 경위와 출처 파악에 나섰다. 압수한 구매내역과 실제 보유현황, 거래내역 등이 일치하는지 들여다봤다. 또 담 회장의 성북동 자택도 압수수색해 고가의 미술품들을 발견, 비자금 조성에 활용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유통 경로를 추적했다. 동시에 오리온그룹이 주로 거래해온 서미갤러리와 홍송원 대표 집까지 뒤져 미술품 내역 등을 확보했다.

오리온 땅 판 돈
어디로 흘러갔나


홍 대표는 오리온 계열사 등 고객이 위탁판매를 맡긴 고가의 미술품들로 담보 대출을 받아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위탁 미술품 중엔 오리온그룹 미디어 계열사인 미디어플렉스 소유의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스틸라이프’시리즈 중 한 작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틸라이프는 리히텐슈타인이 1970년대 주로 시도한 정물화 시리즈물로 가격은 수십억원에 이른다.

특히 검찰이 중점을 두고 수사 중인 사안은 오리온-서미갤러리간 거래 여부다. 공중에 붕 뜬 미스터리한 돈은 40억원에 이른다. 이 돈은 담 회장의 혐의엔 일단 포함되지 않았다. 담 회장은 ‘금고지기’조 사장 등에게 비자금 조성을 지시하고, 조성된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검찰은 담 회장 건과 별개로 미술품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은 담 회장의 부인 이 사장과 국내 미술계 ‘큰손’홍 대표다. 둘의 거래관계를 밝히는 게 미술품 수사의 관건이다.

홍 대표는 이미 구속된 상태. 검찰은 홍 대표가 미술품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 사장의 개입 여부 확인에 ‘핵심 고리’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홍 대표는 오리온그룹의 청담동 땅을 매각한 차익 40억6000만원을 시행업자로부터 송금 받아 미술품 판매대금인 것처럼 가짜로 꾸며 되돌려 줬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비자금 돈세탁을 도왔다는 것이다.

검찰은 오리온 비자금 ‘키맨들’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수수처로 이 사장을 의심했다. 이 사장은 미술품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 ‘마크힐스’부지 매매에 어떤 역할을 했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40억원은 어떻게 조성됐으며, 어디로 흘러들어간 것일까.

오리온, ‘양평창고’ 없다더니…
검찰이 뒤지자 “있다” 말 바꿔
이화경-홍송원 관계는?
모종의 ‘빅딜’ 있었나

검찰에 따르면 홍 대표는 마크힐스를 짓는 과정에서 허위·이중 매매계약으로 부풀린 40억원을 서미갤러리와 거래한 것처럼 세탁해줬다. 오리온 건설사인 메가마크는 지난해 3월 마크힐스를 완공했다. 19가구 규모의 건물 2개동으로 이뤄진 마크힐스는 분양가만 40억∼70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빌라다.

오리온그룹은 2006년 7월 물류창고 부지로 쓰던 청담동 땅(1755.7㎡·약 530평)을 시행사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금액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각하고 남은 차액이 40억원이란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이 파악한 이 땅의 실거래 가격은 209억원. 이중 169억원은 오리온 쪽에, 나머지 40억원은 미술품 구입 명목으로 홍 대표에게 송금됐다. 실제 미술품은 오가지 않았다.

검찰은 이 돈이 다시 오리온에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화경-홍송원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를 의심하고 있다. 홍 대표는 돈의 일부를 이 사장의 친언니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 등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 사장과의 돈거래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다.

오리온 땅 매매 차익을 홍 대표에게 보낸 시행업자는 검찰 조사에서 “40억원은 이 사장에게 건네줄 돈이란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다른 시행사 관계자도 “(40억원은) 오리온 돈”이란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홍 대표를 상대로 돈을 입금 받은 경위와 출처, 성격, 사용처 등 자금 흐름과 관련한 사항을 중점 조사하고 있지만, 홍 대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홍 대표는 “40억원 가운데 16억원은 정상적으로 미술품을 판매하고 받은 돈이고, 나머지 24억은 시행업체와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한 것”이라며 “오리온 비자금과는 무관하다. 비자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과의 돈거래에 대해선 “개인 간 거래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장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지난 6일 이 사장을 소환해 서미갤러리를 통해 조성된 것으로 의심되는 40억원을 집중 추궁했다. 그러나 이 사장은 “전혀 모른다. 그룹 비자금 조성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후문이다.

부부 함께 처벌?
관행상 한 명만?

검찰은 그동안 수사 결과를 검토한 뒤 이 사장의 처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담철곤-이화경 부부가 함께 처분을 받는 재계 초유의 일이 벌어질지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보통 부부가 비슷한 혐의일 경우 한 명은 입건하지 않거나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관행이다. 담 회장이 이미 구속됐기 때문에 이 사장은 안심(?)해도 된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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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