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억 비자금 담철곤 구속 막전막후

오리온 회장님 감방행…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16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결국 구속됐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두달 만이다. 담 회장은 소환 조사를 받은 지 불과 3일 만에 쇠고랑을 차게 됐다. 다른 대기업 총수들의 사건과 달리 전례가 없을 정도로 초고속 수사가 이뤄진 것은 그만큼 혐의 입증에 충분한 각종 증거와 자료 등을 검찰이 쥐고 있다는 방증이다. 담 회장은 영장 청구 직전 문제가 된 돈을 변제하는 히든카드로 ‘바동바동’ 몸부림쳤지만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증거인멸 우려” 영장 발부…소환 3일만에 ‘쇠고랑’
검찰, 혐의 입증 자신 ‘검은돈’ 종착지 파악 주력

‘▲지난해 8월 국세청 고발…▲3월22일 오리온 본사 등 압수수색…▲5월6일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구속…▲5월11일 조경민 오리온 사장 구속…▲5월14일 담철곤 회장 자택 압수수색…▲5월23일 담 회장 소환 조사…▲5월25일 담 회장 구속영장 청구▲5월26일 담 회장 구속…’

검찰이 ‘오리온 비자금’수사에 나선지 두달 만에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지난 26일 담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이날 담 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맡은 이숙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도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담 회장이 16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의심됐던 40억원을 훌쩍 넘어선 금액이다.

본격수사 두달 만에
거물 오너 잡았다

검찰에 따르면 담 회장은 최측근인 ‘금고지기’조경민 그룹 전략담당 사장(구속기소), 온미디어 전 대표 김모씨 등을 통해 총 160억원의 비자금 조성을 계획·지시하고, 조성된 자금을 유용한 혐의다. 담 회장은 2006∼2007년 조 사장을 통해 그룹에 제과류 포장재 등을 납품하는 위장계열사 I사의 중국법인 자회사 3개 업체를 I사로부터 인수하는 형태로 회사 돈 200만 달러(한화 20억원)를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I사 임원에게 급여와 퇴직금을 주는 것처럼 가장해 법인자금 38억원을 빼돌려 10년간 총 20억원의 회사 돈을 성북동 자택 관리비 및 관리원 용역비로 쓴 의혹도 있다. 이밖에 I사가 담 회장 자택 옆 서울영업소 건물에서 운영한 해봉갤러리 관리비 5억원과 I사 서울영업소 임대비 3억원 등도 담 회장의 횡령액으로 잡혔다.

또 I사의 중국법인 자회사 지분을 오리온의 홍콩 현지법인에 헐값 매각해 I사에 31억원의 손해를 입혔다. 여기에 총 100억원대에 이르는 회사 소유 그림을 대여료 없이 자신의 집에 걸어놓는 등 총 69억원의 배임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담 회장이 회사 돈으로 외제 고급 슈퍼카를 굴린 사실도 밝혀냈다. 담 회장은 2002∼2006년 계열사에서 법인자금으로 리스한 람보르기니, 벤츠 등 고급 외제 승용차를 자녀 통학 등 개인용도로 무상 사용해 해당 계열사에 20억원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담 회장은 영장 청구 직전 문제가 된 돈을 변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담 회장 측은 “지난달 26일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160억원을 개인 재산으로 갚았다”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범죄 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검찰 측에서 횡령·배임 혐의를 제기한 회사 돈을 개인 재산으로 전액 변제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담 회장이 구속을 피하려는 의도로 횡령액을 갚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앞서 같은 방법으로 구속을 면한 한형석 마니커그룹 회장을 참고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스 기사 참조> 담 회장은 법원행을 앞두고 회심의 ‘변제카드’를 내밀었으나, 결국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초비상 오리온 ‘마님 역할론’ 부상
검, 이화경 사장도 소환 여부 검토

담 회장은 소환을 앞두고 그룹을 통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할 것”이라며 “의혹에 대해 충분히 소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담 회장은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둘째 사위다. 고조부가 한국으로 건너와 경북 대구에서 약재상을 운영하던 화교 집안에서 태어난 담 회장은 서울외국인고등학교 재학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이 창업주의 차녀 이화경 오리온 사장과 만나 10년 열애 끝에 1980년 결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마케팅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동양시멘트 대리로 입사한 그는 동양제과 구매부장, 사업담당 상무, 영업담당 부사장 등을 거쳐 동양마트 사장, 동양제과 사장 등을 지냈다. 담 회장은 1989년 이 창업주가 별세한 직후 가족 간 협의를 통해 오리온 계열을 이끌다 2001년 이 창업주의 맏사위 현재현 회장(부인 이혜경씨)이 맡은 동양그룹에서 독립했다.

담 회장은 혐의를 딱 잡아떼고 있다. 담 회장은 지난달 23일 19시간 넘게 진행된 소환 조사에서 비자금 조성 의혹 등 혐의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다음날 ‘마라톤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비자금 조성 사실을 보고받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그런 일이 아닙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담 회장의 변호인단은 비자금 조성 의혹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선 순환출자구조와 배당금, 변제 등의 이유를 들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과 담 회장 사이에 치열한 법리공방이 예고되고 있다. 검찰은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담 회장의 혐의 입증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검은돈’속성상 담 회장의 비자금 일부가 정·관계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앞으로 오리온 비자금의 종착지를 파악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변제했지만 철창신세
치열한 법리공방 예고

검찰은 “담 회장은 조 사장 등 측근들에게 비자금 조성 및 관리를 지시하고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받았다”며 “그동안 수사를 벌여 비자금 출처와 조성 경위, 사용처 등 혐의 입증에 충분한 각종 증거와 자료, 진술 등을 확보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담 회장은 이미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 방어 태세에 돌입한 모양새다. 재계와 법조계에선 역대 최강의 ‘드림팀’이 모였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그만큼 유명한 변호사들이 담 회장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담 회장 측은 임채진 전 검찰총장, 김정기 전 제주지검장, 서향희 변호사 등으로 변호인단을 꾸렸다. 여기에 검찰청에서 이름 꽤나 날린 검찰 출신 변호사들을 추가로 영입하고 있다.

2007년 11월 검찰총장에 임명된 임 전 총장은 2009년 6월 검찰 조사를 받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책임을 지고 퇴임, 한달 뒤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에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2009년 8월 발령에 불만을 품고 제주지검장 자리에서 물러난 김 전 지검장은 그해 9월부터 법무법인 다담의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눈길을 끄는 담 회장의 변호인은 서 변호사다. 지난 4월부터 법무법인 새빛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 서 변호사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 EG 회장의 부인이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주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는 시누올케 사이인 셈이다.

선장 잃은 ‘오리온호’는 패닉 상태다. 담 회장이 구속되자 오리온그룹은 큰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즉각 임원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사실상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한 그룹 측은 “계열사별로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구축하고 있어 오너가 없다고 해서 경영에 차질을 빚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오리온그룹이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게 재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임채진 전 총장 등 호화 변호인단 방어
‘박근혜 올케’ 서향희 변호사도 껴 있어

실제 이번 담 회장의 구속으로 오리온그룹은 상당기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담 회장의 경영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다.

담 회장이 재판 중간에 보석 등으로 풀려난다고 해도 검찰과 담 회장간 법리공방이 지속되는 기간 동안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통 한 사건이 터지면 최종 판결까지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수년이 걸린다.

담 회장이 유죄로 판결날 경우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중에 혐의를 벗더라도 큰 타격을 입은 오리온그룹의 대외 이미지가 원상회복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많은 전문경영인(CEO)들이 있어도 오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며 “원가 압박 등 풀어야 할 현안에 오너 부재에 따른 심리적인 부담까지 겹친 회사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담 회장 부재에 따라 ‘이화경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이 사장이 부군 대신 ‘지휘봉’을 잡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남편의 빈자리를 메워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나온 김 사장은 1975년 동양제과 평사원으로 입사해 구매부, 조사부, 마케팅부 등을 거쳐 2000년 사장에 올랐다. 담 회장과 결혼 뒤 ‘부부경영’체제로 그룹의 한 축인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외식 부문을 맡다 실적 부진으로 온미디어, 롸이즈온 등 주력 계열사를 매각한 상태다.

경영 공백 불가피
대외 이미지 타격

이 사장은 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오리온의 지분 14.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담 회장(12.9%), 이 사장 모친 이관희씨(2.7%), 자녀 서원·경선씨(각각 0.5%) 등도 ㈜오리온 지분을 갖고 있다.

이들 오너일가는 ㈜오리온을 통해 다른 계열사들을 장악하고 있다. ㈜오리온은 핵심 계열사들의 최대주주 자리에 있어 다른 그룹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강하다. ㈜오리온은 상장사인 미디어플렉스(57.5%)를 비롯해 스포츠토토(66.6%), 스포츠토토온라인(30%), 메가마크(100%), 오리온스낵인터내셔널(100%), 오리온음료(100%), 오리온레포츠(86%) 등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장도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검찰의 수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담 회장 수사와 별도로 이 사장의 소환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이 조경민-홍송원 ‘키맨 2인방’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수수처로 의심한 이 사장은 비자금 조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비자금 조성 의혹이 짙은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 ‘마크힐스’부지 매매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관건이다.

만약 이 사장마저 잘못된다면 오리온그룹으로선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검찰의 오리온 비자금 수사. 세간의 시선은 담 회장 구속 못지않게 ‘다음 타깃’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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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