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심왕’ 회장님의 스리슬쩍 귀환기

  •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7.03.06 09:35:23
  • 호수 1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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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없어도 회사 잘 돌아가던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수 기자 = ‘추심왕’으로 불리는 윤의국 고려신용정보 회장. 검찰 수사를 피하고 죽을 고비까지 넘긴 그가 슬그머니 ‘회장 명함’을 다시 꺼냈다. 제 발로 떠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지휘봉’을 잡게 된 과정을 짚어봤다.

“기업은 윤리적 책임을 넘어 자선적 책임이 있다.” 올초 신년사를 통해 임직원에게 나눔을 강조한 윤의국 회장은 요즘 사회공헌활동에 여념이 없다. 저소득 가정·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에 각종 용품을 전달하는가 하면 희귀성난치질환자도 도왔다. 예년에 비해 훨씬 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다. 윤 회장이 사회 환원에 부쩍 신경 쓰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자살 시도 ‘발칵’

2014년 10월 고려신용정보에 검찰이 들이닥쳤다. 윤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KB금융 통신인프라고도화(IPT)사업 비리를 수사했던 검찰은 인터넷 전자등기시스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혐의와 관련해 고려신용정보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전자등기시스템은 과거 법무사 등 법률대리인이 등기소를 직접 방문해 처리해오던 근저당등기 설정업무를 전산화하는 사업.

검찰은 윤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L사가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과정서 부정한 청탁을 받은 임 전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검찰은 임 전 회장이 옛 재정경제부 국장으로 근무하던 2005년부터 윤 회장과 알고 지냈다고 전했다.


비리로 상폐 위기 몰리자 사퇴 카드
잠잠해진 틈타 소리 소문 없이 복귀

그해 10월 검찰에 불려갔던 윤 회장은 사흘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것. 반포대교 중간 지점에서 강물로 뛰어내렸고, 곧바로 신고돼 경찰이 구조할 수 있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검찰 조사 중에 벌어진 일인 만큼 윤 회장의 자살시도 배경을 두고 온갖 소문과 설이 난무했다.

검찰은 윤 회장이 투신하는 바람에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윤 회장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점 등을 감안해 신병부터 확보하기 바빴다. 사건은 정관계로 확대되는 듯했으나 흐지부지 됐다. 검찰은 윤 회장이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체포했지만, 횡령 혐의만 적용하는 데 그쳤다.

윤 회장은 2008년부터 2014년 10월까지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방법 등으로 회사 자금 11억1700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윤 회장이 빼돌린 회삿돈을 차명계좌에 넣어 관리하면서 골프 비용이나 개인 빚을 갚는 데 썼다”고 설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윤 회장은 회사 주주들에게 소송까지 당했다. 일부 주주는 윤 회장 등을 상대로 “회사에 30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장을 법원에 냈다. 이들은 “고려신용정보가 2013년 영업이익이 2억7500만원에 불과했는데도 윤 회장 등은 14억1600만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아갔다”며 “골프단을 창단하거나 과도한 접대비와 광고비를 지출하는 등 회사를 방만하게 운용했다”고 지적했다.

고려신용정보는 상장폐지 직전까지 갔다. 한국거래소는 상장사에서 횡령 혐의가 발생하면 경영 계속성과 경영 투명성, 투자자 보호 등 상장 적격성을 심사한다. 고려신용정보는 최대주주인 윤 회장의 횡령 혐의 때문에 매매거래가 정지됐다. 당시 회사 측은 “문제 소지가 있는 경영진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윤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차기 회장으로 유력한 윤 회장의 장남 윤태훈 부사장도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다. 대신 전문경영인(CEO)이 키를 잡았다. 그 결과 가까스로 거래소의 심사 대상에서 제외돼 상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죽을 고비 넘기고
슬그머니 회장실로

고려신용정보는 2015년 1월 말 윤 회장에 대한 1심 판결 결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고 공시했다. 이후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전산등기시스템 청탁 의혹은 무혐의 처분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수1부가 맡은 사건치고는 싱겁게 끝났다”며 “특수부의 굴욕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먼지만 털다 말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0개월 뒤인 지난해 9월 윤 회장이 조용히 경영에 복귀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고려신용정보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9월30일 기준 윤 회장은 회장직(미등기임원·상근)에 다시 등재됐다.

회장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임원 명단 맨 꼭대기가 아닌 중간에 끼어있는 점이 여느 회사와 달라 눈에 띈다. 그의 아들 윤 부사장도 대표이사직만 내놨고, 등기임원은 그대로 유지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면 윤 회장은 왜 컴백했을까. 그의 복귀를 두고 따가운 눈총과 당연한 수순이란 주장이 엇갈린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사고 친 오너가 언제 그랬냐는 듯 경영에 복귀하는 것은 자칫 주주들의 반감, 나아가 국민적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 측은 “지금같이 위기 상황에선 신속한 의사 결정, 즉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그렇다고) 전문경영인 체제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고려신용정보는 매출이 2014년 805억원서 2015년 823억원으로 늘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각각 20억원·14억원서 52억원·34억원으로 불었다.

조용히 다시 등장

같은 기간 총자산은 235억원서 251억원으로, 총자본 역시 130억원서 152억원으로 증액됐다. 105억원이었던 부채의 경우 99억원으로 줄었다. 지난달 9일 이사회서 24억3300만원의 배당을 결의하는 등 지난해 성과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실적만 보면 회장이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 셈이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고려신용정보는?

고려신용정보는 채권추심 전문업체다. 돈을 갚지 않은 불량채무자의 빚을 대신 받아주는 업무로 수수료는 회수금액의 20∼30%가량. 이와 함께 신용조사, 민원대행용역 등도 한다.

청주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개인 사업을 했지만 실패한 윤의국 회장은 1985년 단돈 60만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닥치는 대로 일했던 윤 회장은 1991년 신용조사업 전망이 좋다는 말을 듣고 고려신용정보를 차렸다. IMF는 회사에 기회가 됐다. 설립 5년 만에 시장 1위가 됐고, 2002년엔 코스닥에 상장했다. 현재 윤 회장이 최대주주(18.59%)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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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