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vs 선박왕 난타전

“넌 탈세한 한국인”…“난 애국한 홍콩인”

국세청이 역대 최고의 세금을 추징했다. 탈세 금액은 가히 충격적이다. 기상천외한 수법 역시 놀라울 정도다. 국세청의 설명대로라면 천하의 나쁜 놈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그런데도 의혹의 당사자는 당당히 얼굴을 드러냈다. 대놓고 발끈했다.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겠다는 투다. 희대의 탈세사건을 둘러싼 공방전을 담아봤다.

역외탈세 혐의 역대 최고 4100억 추징
“세금 단 한 푼도 못내…법대로”반박


국세청은 지난 11일 거액의 세금을 탈루한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 대해 소득세 2700억원과 법인세 1400억원 등 총 4100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이 추징금은 역대 최대 금액이다. 2003년 SK그룹에 1499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던 것에 3배가 넘는 규모다.

권 회장은 비거주자·외국법인으로 위장해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8000억~9000억원대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조세피난처에 소득을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희대의 탈세사건

국세청에 따르면 권 회장은 홍콩, 바하마 등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160여척의 선박을 소유한 자산 10조원대의 해운회사를 운영해 왔다. 국내에 근거지를 두고 선박임대업과 해운업을 했지만, 거주 장소 은폐, 경영활동 흔적 비노출 등의 방법을 동원해 조세피난처 거주자(한국 비거주자)로 위장했다는 의혹이다.

권 회장은 서울에 있는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지 않았다. 회사 경영은 언론 인터뷰 등 일체의 공개적 활동을 피했고, 휴대용저장장치(USB)나 구두지시 등을 통해 은밀히 이뤄졌다. 세무컨설팅은 정보 유출을 우려해 해외 회계법인을 이용했다.

권 회장의 서울 집은 수년째 거주하면서 임대차계약서를 친인척 명의로 허위 작성했다. 아파트, 상가, 주식 등의 자산도 모두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명의만 이전해 자산 보유 사실을 은폐했다. 또 영업, 운항 등 해운사업의 중요한 관리 및 상업적 의사결정을 국내에서 수행해 세법상 내국법인임에도 형식적인 대리점 계약을 통해 외국법인으로 위장했다.

권 회장이 이런 방법으로 은닉한 자금 수천억원을 스위스, 케이만군도, 홍콩 등 해외계좌에 보유하고 있다는 게 국세청의 지적이다. 탈루소득은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경유해 국내 호텔 신축, 국내 사업체 인수, 선박 취득, 해외 부동산 취득 등에 사용했다고 한다.

국세청은 “(권 회장은) 국제 선박임대업, 국제 해운소득, 선박 신조 리베이트 소득 등에 대해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는 고도의 지능적 역외탈세 행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권 회장은 개인재산이 1조원이나 되는 재벌이다. 하지만 권 회장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에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다. 해운업계에선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를 ‘은둔의 선박왕’ ‘유령 선박왕’이라 불린다.

그동안 꼭꼭 숨어있던 그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국세청 발표 이틀 뒤다. 권 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시도상선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권 회장은 “세금을 낼 수 없다.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세청과 권 회장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권 회장의 국내 거주 여부다. 소득세법은 ‘국내에 거소를 둔 기간이 2년에 1년 이상인 경우 국내 거주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세청은 권 회장이 국내에서 실질적인 경영 활동을 벌였고, 가족이 국내에 머물렀기 때문에 국내 거주자로 보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 한해 180일 이내 머무르더라도 국내 거주자로 간주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유령 선박왕’

이에 대해 권 회장은 “나와 내 가족의 집은 홍콩이다. 2005년까지 일본 거주자로 등록돼 있다가 이듬해부터 주로 홍콩에 거주하면서 1년에 6개월 이내만 국내에 머물렀다. 2007년 허리디스크 치료를 위해 6개월 넘게 국내에 머무른 적이 있다”고 반박했다.

사업 근거지도 국세청은 국내로 판단한 반면 권 회장은 “시도상선 본사는 홍콩에 있다. 전체 사업에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매출은 10%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쟁점은 권 회장의 국내외 재산 부분이다. 국세청은 권 회장이 국내 호텔, 부동산 등과 해외계좌에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권 회장은 “시도상선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을 뿐 다른 재산은 없다. 월급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며 “빼돌린 돈이 전혀 없다. 오히려 해외에서 돈을 벌어 현대중공업 등에 발주하는 등 한국을 도왔다”고 부인했다.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한 배경에 대해서도 국세청은 “국내에서 마땅히 내야 할 사업소득세를 안 내기 위한 것”이란 입장이지만, 권 회장은 “사업 자금을 빌린 일본 은행의 권고를 따랐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국세청의 고발로 검찰은 권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권 회장도 국세청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어느 쪽 말이 맞는 것일까.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진실은 법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권혁 회장은?>
무일푼서 1조 거부로

보유 대형선박 175척
회사 총자산 10조원대

권혁 시도상선 회장은 경북고와 연세대 상대를 졸업한 뒤 1974년 고려해운에 입사한 뒤 1979년 현대종합상사로 이직해 현대차 수송부에서 선적 업무를 담당했다. 현대차 일본 도쿄지사에 근무하다 일본 굴지의 종합상사인 마루베니의 투자를 받아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1993년 일본 도쿄에 설립한 시도상선이다. 시도상선은 급속히 성장해 현재 보유한 대형선박만 175척에 달한다. 총자산은 10조원대다. 권 회장도 개인재산이 1조원이 넘는 ‘거부’가 됐다. 하지만 권 회장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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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