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 비서 사망 미스터리

‘이상한 죽음’ 결정적 증인도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박지만 EG회장의 수행비서 주모씨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사인에 대해 부검 결과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대통령 5촌 간 살인사건 때 사망한 주씨가 연루됐다는 주장이 나오며 타살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박지만 회장의 수행비서 주모(45)씨가 지난 12월30일 그의 부인에 의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같은 달 28일, 대전 친정집에 갔던 주씨의 부인은 30일 주씨와 통화가 되지 않자 집으로 돌아왔고 거실에 쓰러져있는 주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CCTV와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특이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주씨는 박 회장의 최측근으로 18년간 박 회장의 비서실서 근무해왔다.

[미스터리1]
갑작스런 사망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주씨 부검을 의뢰한 결과 관상동맥 경화로 인한 허혈성 심근경색이라는 소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앞서 이철성 경찰청장은 유족 진술에 따라 숨진 주씨가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고 밝히며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기에 심근경색을 사망 원인으로 본다며 “의혹을 둘 사안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경찰은 부검 결과까지 심근경색이라는 소견이 나옴에 따라 주씨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은 사실상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의 의문점은 남아있는 상태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상한 사망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우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주변서 희한하게 숨진 사람들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해야 한다. 대통령 5촌 조카가 북한산에서 이상한 죽음을 맞은 것부터 박근령씨의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중국서 조직에 추격을 당한 것, 박 회장 수행비서의 죽음 등 모든 것이 미스터리”라며 “정치권이 진실을 파악하려 하거나 언론이 취재를 하거나 재판이 열리면 꼭 사람이 하나씩 죽어 나간다. 이상하지 않나”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18년 수행비서 자택서 시신으로 발견
경찰 심근경색 사망 결론에도 ‘의혹’

신동욱 공화당 총재도 의문을 제기했다. 신 총재는 지난 2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고 주** 과장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부검 외에 반드시 최근 3개월간 통화내역과 문자메시지를 정밀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총재는 트윗을 통해 박지만 수행비서 사망과 관련한 보도기사를 링크하고 “제민일보 모바일 사이트, 주검으로 발견된 박지만 수행비서…이 광란의 살인극의 끝은 내 목숨”이라면서 “故人은 2010년 6월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에 출석해 증언을 했다. 20여명의 증인 중 유일하게 증인신문조서의 증인기록에 집 주소가 아니라 회사 주소를 남겼다. 이유가 뭘까. 부검결과가 심근경색으로 나온다면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상상이 현실이 됐다”고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미스터리2]
마지막 남은 증인

사망한 주씨가 일명 ‘박근혜 5촌 간 살인사건’이라 불린 박용철씨 살인사건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문은 더욱 증폭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배정훈 PD는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숨진 주씨가 앞서 방송한 ‘박근혜 5촌 간 살인사건의 진실’ 편 취재원이었다고 언급했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숨진 주씨가 박지만 회장의 최측근이었으나 최근 좋지 않은 관계에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주씨의 사망이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서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박근혜 5촌간 조카 살인사건’은 지난 2011년 9월6일 두 사람의 시신이 북한산 인근서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당시 흉기로 수차례 찔리거나 나뭇가지에 목을 맨 모습으로 발견된 점도 자극적이지만 두 사람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박무희씨의 친손자라는 사실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구나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후보에게는 사망한 두 명이 ‘5촌 조카’인 셈이어서 많은 관심 속에 수사가 진행됐지만 사건을 담당한 서울 강북경찰서는 그해 10월 “사촌 형 박용수씨가 금전 관계로 인한 원한에 사촌 동생 박용철씨를 흉기 살해 후 자살한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하면서 의문사에 대한 내용으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지만 수행비서의 사망에는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 회장은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마약 투약으로 인해 여러 차례 구속수감된 바 있다.

일반인이었다면 크게 이슈화될 일은 아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막내아들이 마약 때문에 수감된 사건은 그때 당시에는 꽤나 큰일이었다. 그 후 육영재단 이사를 맡는 등 정계와 재계서 활동했다.

이러한 성역의 의문사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5촌 간 조카 살인사건을 둘러싼 의혹들을 재조명하면서 새로운 살해 가능성을 제기했고 박근혜·박근령·박지만 등 3남매가 육영재단을 둘러싼 갈등 과정서 물리적 행사에 앞장섰던 박용철씨가 제삼자인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보여 더민주가 재수사를 특검에 요청하면서 재수사의 길을 텄다.

이에 대해 더민주 한 의원은 “이 사건의 배경에는 박근혜 일가의 재산 다툼이 있다”며 “이 사건이 박지만의 신동욱에 대한 살인교사 의혹을 잠재우려는 의도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할만하다. 때문에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특검에 ‘육영재단 폭력사태’ 재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고 재수사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 핵심 당사자로 지목이 될 가능성이 높은 박지만 수행비서 주씨가 돌연 사망한 것이다.

[미스터리3]
신동욱과의 관계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지난 4일, 한 라디오 방송서 박 대통령 일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스터리한 사망에 대해 자신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신 총재는 이날 한 라디오방송서 “마음이 무겁고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총재는 “4년 동안 저와 관계된 사건 속의 등장인물 여섯 분이 세상을 떠났다. 확률적으로 몇 퍼센트일까”라며 타살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2011년에 (박 대통령의 5촌 조카인) 박용철, 박용수, 2012년에는 이춘상 보좌관, 박용철씨의 오른팔이었던 일명 짱구파 보스 황선웅씨가 라면을 먹다가 천식으로 사망했다. 또 정윤회씨와 아주 가깝게 지냈던 한 분이 있다(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박지만의 수행비서의 사망까지 총 여섯 명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미스터리한 사망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2007년 사건에 대해 “2007년 4월 중순쯤 육영재단에 제가 감사실장으로 재직했을 때 아침 9시쯤 박용철씨와 짱구파 황선웅씨 등 일행 10여명이 재단에 들어와 제게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진행자가 폭행의 이유를 묻자 신 총재는 “박씨는 저를 보고 사기꾼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답했다. 이어 “그 후 경찰들이 와서 제가 ‘회의 중이니 돌아가셔도 좋다’라고 경찰들은 돌려보냈는데 박용철씨가 ‘어떻게 경찰을 돌려보낼 수 있나. 저를 폭행죄로 고소해야 한다’며 굉장히 많이 힘들어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5촌 살인 마지막 증인
주변인에 타살 가능성도 제기

신 총재는 “(폭력사건 이후 한달 후인) 5월 중순쯤 (박용철씨로부터) 저에게 전화가 왔다”며 “‘큰고모(박 대통령) 캠프서 중국의 재경부장관을 만나러 가야 되는 심부름을 가야 하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라고 내게 물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뭔가 오해가 있어서 일어난 사건인 것 같으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얘기하니 ‘자기가 받은 정보와 다르다’며 ‘박지만 회장의 비서실장으로부터 저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게 첫 만남이었고 첫 인연이었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이 자신을 모함한 이유에 대해선 “한 분에게서 증언을 확보했는데 (박 회장의 비서실장인) 정씨와 최순실의 전 남편 정윤회씨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고 있다”라며 정윤회·최순실의 사람이 박 회장과 자신을 이간질하려고 했던 사건이 2007년의 폭력 사건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매들 사이를 이간질해놔야 한다고 최순실·정윤회가 판단했다는 것인가’라고 묻는 말에 “그렇게 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중국의 조직폭력배들과 함께 저를 마약으로 일단은 엮으려고 했다. 최대한 그들에게 협조하면서 속여야 한다고 판단했다”라며 “그 후 7월5일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사건과 관련된 분들이 전부 다 두려움에 떨고 있다. ‘최순실씨만 구속돼 있지 않느냐’고 얘기하더라”라며 “아직도 (배후) 세력이 살아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력’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도, 박지만 회장도 아니다”라는 신 총재의 말에 진행자가 ‘최씨 일가일 것으로 생각하는가’라 묻자 신 총재는 “그것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제 주변에 있는 사건들은 상상 그 이상의 상상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미스터리4]
끝나지 않은 위험

계속되는 의문의 사망사고. 그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 5촌 의문사를 취재해온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저는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 김(어준) 총수도…”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씨의 의문사를 취재하고 있는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도 “박씨 집안 의문사를 취재하고 있는 입장에서 밝혀둔다”며 “저는 자살을 배격하는 기독교인이며, 급사할 만한 어떠한 지병도 가지지 않은 건장한 가장”이라고 SNS에 글을 올렸다.

앞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의 배정훈 PD는 “사건 하나 취재하는데 ‘몸조심’하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듣고 있다”며 “그냥 사건이 아니란다”라고 취재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지난달 17일 방송돼 재수사를 촉발시킨 <그알>의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대통령 5촌 살인사건 미스터리’ 편에는 박 회장이 지인을 통해 관련 증언을 하려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알>에 전화를 걸어온 제보자 T씨는 “그때 박지만이 결국은 증인 출석 며칠 남겨놓고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박지만인 줄 알고 그랬다가 박지만 쪽에 우리가 연락을 했다”며 “이제라도 자기는 사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자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이 지인을 통해 자신은 5촌 조카들의 죽음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는 제보를 받고 <그알>은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거절당했다. 박 회장은 비서를 통해 현 시국에 <그알>의 취재에 응하기는 어렵겠다며 거절했다.

숨진 주모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에는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며, 오늘은 선물이다”라는 말이 적혀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흔히 볼 수 있는 프로필 메시지지만, 네티즌들은 돌연 의문사한 주모씨의 모든 행적을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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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