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 극치 LIG건설 부도사태 후폭풍

두 얼굴 구씨일가 잘나갈 땐 금둥이 어려울 땐 업둥이

LIG그룹 오너들이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계열사인 LIG건설의 부도를 두고 ‘버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잘 나갈 땐 옆에 끼고 으스대다 좀 삐거덕거리자 망설이지 않고 등을 돌렸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란 지적이다. 그룹이란 든든한 ‘울타리’를 믿고 돈을 꿔준 금융권과 아파트 계약자만 바보가 됐다.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오너들은 말짱하기만 하다.

LIG건설 기업회생 신청…대주주 도덕성 논란
투자자 엄청난 손실 나 몰라라 ‘꼬리 자르기’


아파트 브랜드 ‘리가(LIGA)’로 잘 알려진 LIG건설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따르면 시공능력순위 47위(2010년 기준)인 LIG건설은 지난달 21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단돈 100억원 들여 
3200억 회사‘꿀꺽’

이를 두고 LIG 오너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투자자 등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고 LIG건설을 ‘꼬리 자르기’식으로 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LIG건설 최대주주는 지분 59.16%를 소유한 TAS(티에이에스)다. 나머지는 외국계 투자회사인 넥스젠 캐피탈(16.22%)과 한국증권금융(14.15%) 등이 보유하고 있다.

TAS는 LIG그룹 계열사의 손해사정 서비스와 콜센터 대행업체로 설립됐으나 LIG건설 인수 이후 건설의 지주회사 역할을 해왔다. 이 회사는 LIG일가 2세인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과 그의 동생인 구본엽 LIG건설 부사장, 구 부사장 아들인 창모·영모군 등이 대주주다. 각각 14.31%씩 보유한 이들 4명의 총 지분율은 57.24%다.

구본상 부회장은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미국 터프츠대학을 나와 1996년 LG그룹에 입사해 현재 그룹 지주회사인 LIG홀딩스와 방위산업체인 LIG넥스원 대표이사, LIG손해보험 비상무이사 등을 겸직하고 있다.

구자원 회장과 그의 차남 구본엽 LIG건설 부사장은 LIG건설 경영에 참여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사촌인 구자원 회장은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LIG손해보험, LIG홀딩스 회장직과 함께 LIG건설 비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구본엽 부사장은 LIG건설 상근 등기임원에 등재, 사실상 회사 업무를 총괄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2003년 LIG엔설팅에 입사해 2007년부터 LIG건설 부사장을 맡고 있다. 창모·영모군은 올해 9세로 아직 미성년자다. 이들 형제는 2005년 3세 때 TAS 지분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씨일가가 TAS를 통해 LIG건설을 설립한 것은 5년 전이다. TAS는 2006년 건영을 인수해 LIG건영으로 이름을 바꿨고, 2009년 한보건설을 인수해 LIG건영과 합병하면서 지금의 LIG건설이 됐다.

그러나 설립 과정부터 석연치 않다. 대규모 레버리지(차입)로 건영과 한보건설을 차례로 인수한 것. TAS의 자본금은 1억11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인수가격이 2870억원인 건영을 인수했다. 한보건설은 302억원에 인수했다. 구씨일가가 남의 돈으로 두 회사를 인수했다는 얘기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넥스젠캐피탈 등에서 4000여억원을 빌렸다. LIG손해보험 주식과 일부 부동산, LIG건설 주식 등이 담보로 제공됐다.

구씨일가가 동원한 돈은 100억원뿐이다. 결국 단돈 100억원을 들여 3200억원짜리 두 건설사를 ‘꿀꺽’한 셈이다. 인수 이후에도 본인들 자금은 별로 투입하지 않았다. 주로 금융권 돈을 빌려 사업을 꾸렸다.

당장은 문제가 없었다. 건영과 한보건설의 축적된 건설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범LG가의 지원도 등에 업었다.

2006년 418억원이었던 매출은 2009년 2793억원으로 6배 이상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248억원, -687억원으로 적자였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18억원, 33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이 결과 시공능력순위가 100위권 밖에서 2009년 66위를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 47위로 점프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LIG가 건설업에 뛰어들은 2007∼2009년은 건설경기가 활황일 때라 재미가 좋았다”며 “2009년 후반부터 상황이 나빠져 주택경기 침체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LIG는 재빨리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실제 구씨일가는 건설시장에 암운이 드리운 지 2년도 채 안 돼 ‘만세’를 불렀다. 회생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투자도 더 이상 없었다. 그저 돈 꾸기에 급급했다.

LIG건설은 장기적인 건설경기 침체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KB국민은행 등에서 총 1000억원가량의 신용대출을 받았고,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등에서 8766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일으켰다. 이렇게 쌓인 차입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미분양과 사업 지연이 누적되면서 경영난을 겪다 이번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

찬바람 불자 ‘가위질’
회생·투자 의지 ‘NO’

LIG건설 측은 “기존 사업장과 신규 사업장 모두 자금회수가 안 돼 유동성위기에 직면했다”며 “운영자금을 지속적으로 조달해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치 않아 그룹에서 기업회생절차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LIG건설 부도 사태는 LIG그룹으로 불똥이 튀었다. 우선 LIG그룹의 ‘꼬리 자르기’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LIG그룹은 LIG건설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그룹 전체에 타격을 우려해 ‘가위’를 들었다. LIG건설의 재무 지원을 거부한 것.

통상적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은 채권단과 협의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먼저 추진하고, 실패하면 법원으로 간다. 반면 LIG건설은 그룹이 외면하자 곧바로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더욱이 채권단과 협의도 없이 법정관리 신청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LIG건설은 부도 직전 기업어음(CP)을 발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주주들이 법정관리를 알고도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LIG건설은 지난 1월부터 3월10일까지 600억∼70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했다. 지난달 21일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인 10일엔 42억원의 CP를 발행했다.

올해 LIG건설이 발행한 CP잔액은 1800억원 상당이다. 우리투자증권은 1290억원 규모로 CP를 가장 많이 중계했다. 신한금융투자는 100억여원, 솔로몬투자증권은 30억여원, 하나대투증권은 10억여원 등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경우 600여명, 그 금액이 580억원에 달한다. CP는 원금 보장이 안 되는 상품이다.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담보가 없는 CP 보유자는 순위에서 밀려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주주인 구씨일가는 LIG건설에 출자한 범위 내에서만 금전적 책임을 지면된다”며 “LIG그룹도 LIG건설과 지분 관계가 직간접적으로 없어 사실상 계열사가 아니어서 부담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LIG그룹과 ‘로열패밀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재나 보유한 계열사 지분 등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자동차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삼성생명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적이 있다. LIG그룹과 사촌기업인 LG그룹도 LG카드 사태 때 LG투자증권(현 우리투자증권)을 우리금융에 매각하기도 했다. 효성그룹의 경우 최근 부도 위기에 처한 진흥기업을 그룹 차원에서 지원해 살린 바 있다.

남의 돈으로 인수해 사업
1조 빚 떠넘기고 ‘줄행랑’
‘알면서?’ 부도 10일전 어음 발행
‘책임져!’ 그룹 전체 전방위 압박

LIG건설에 돈을 꿔준 시중은행들은 LIG그룹의 무책임한 법정관리 신청에 당혹스런 표정이다. LIG건설에 일반대출을 해준 은행은 우리은행(370억원), 신한은행(208억원), 하나은행(152억원) 등이다. 이 가운데 신한은행은 일반대출 외에도 PF대출 지급보증이 2035억원에 달해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은행들은 “LIG건설이 아닌 LIG그룹을 보고 대출을 결정했는데 LIG그룹이 계열 건설사의 자금난을 외면하고 금융권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LIG그룹에 제재를 가할 태세다.

CP 투자자들은 연일 서울 역삼동 LIG 사옥 앞에서 LIG그룹과 오너일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대주주가 워크아웃 10일 전에 그런 사실을 모른 채 CP를 팔았다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LIG그룹과 그 일가는 건설 지원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CP 발행을 주관한 우리투자증권 등 증권사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측은 “LIG건설 경영진과 책임 있는 대주주가 법적,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당국까지 가세해 잔뜩 벼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LIG건설 사태가 확산되자 LIG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에 대한 종합검사에 착수키로 했다. LIG그룹은 LIG건설사 외에 LIG손해보험, LIG넥스원, LIG투자증권 등을 주력 계열사로 두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LIG손해보험 등 LIG 계열사의 LIG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물론 계열사간 부당거래 여부 등 전방위적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LIG건설은 지난달 31일 사과문을 냈다. 그러나 대주주 책임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믿고 투자했는데…
이제와서 시치미”

회사 측은 “유동성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국민 여러분과 채권자, 협력업체, 분양고객께 심려를 끼쳐 사과 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저축은행 구조조정 여파로 금융권이 차입금과 CP에 대한 만기연장을 제한하고 조기회수 압박도 심해 운영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사업장 대부분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투입된 자금이 적기에 회수되지 못했고, 시행사의 지급 보증과 공사대여금이 증가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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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