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이후…' 삭막 살벌한 사회상 백태

떡 돌려도 걸리고 케이크 보내도 걸리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지난달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공직사회가 잔뜩 움츠린 모습이다. ‘일단 소나기는 피해가자’란 인식 때문이다. 외부인사들과의 만남을 취소하거나 자제하는 등 극도로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김영란법이 깨끗하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과정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정(情)에 의존해왔던 우리나라의 오랜 관습조차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청 감사부서에는 김영란법 저촉 여부를 문의하는 각 부서의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막 시행돼 판례도 없는 데다 워낙 다방면에 적용되는 까닭에 혼란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모임을 하려는데 법에 저촉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비롯해 행사개최 시 저촉 여부, 경·조사를 둘러싼 적법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시한 사례를 찾아 해답을 제시하느라 일상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다. 한 직원은 “적용 사례가 너무 광범위하다 보니 실무자 입장서도 헷갈릴 때가 있다. 저도 모르겠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감사 떡 보냈다…
김영란법 1호 수사

경찰에게 감사의 인사로 떡을 선물한 민원인의 사례가 김영란법의 1호가 됐다. 춘천경찰서의 A경찰관은 4만5000원짜리 떡 한 박스를 배달받았다. A경찰관은 이 떡을 바로 돌려보낸 뒤 청문감사실에 자진신고했다. 떡을 보낸 시민 B씨는 “자신의 고소 사건을 맡은 경찰관에게 개인 사정을 고려해 조사 시간을 조정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선물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은 해당 선물이 직무 연관성이 있는 수사관에게 떡을 보내 김영란법 위반으로 판단해 사건을 법원에 넘겼다. 경찰관 A씨는 자진신고 했기 때문에 처벌 받지는 않지만 법원이 위법이라 판단할 경우 B씨는 금품 가액의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과태료를 내야 한다.

커피 2잔도…
놀라 자진신고

수원지검 형사부 소속 수사관 C씨는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4000원 상당의 테이크아웃 커피 2잔이 올려져 있던 것을 발견, 청탁방지 담당관에 자진 신고했다. 이 커피는 C씨에게 조사를 받은 한 사건 피해자 D씨가 조사를 끝낸 뒤 놓고 간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조사에서 D씨는 통상적인 고마움의 표시로 커피를 놓고 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과태료 대상이긴 하지만 사회적 상규 상 처벌해야 할 대상인지 법률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담뱃값 1만원
2∼5배 과태료

서울서도 경찰관에게 1만원을 건네려던 70대 남성이 재판에 넘겨졌다. 박모(73)씨는 폭행혐의로 영등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친절하게 조사해줘 고맙다”며 담당 경찰관에게 1만원을 건넸다. 해당 경찰관은 곧바로 돈을 돌려줬지만 박씨는 몰래 사무실 바닥에 돈을 떨어뜨리고 갔다.

뒤늦게 이를 발견한 경찰관은 경찰서 내부망인 ‘클린선물신고센터'에 신고한 뒤 이날 오전 박씨의 집을 찾아가 돈을 돌려줬다. 경찰은 조사를 거쳐 박씨가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찰관에게 몰래 돈을 준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고마움 담긴 선물 잇따라 신고
시골 인심마저 ‘법으로’ 심판

박씨의 혐의가 인정되면 박씨는 제공한 금품의 2∼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위반 사실의 소명이 불충분하면 보완을 요구하거나 처벌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학부모들 선물
징계로 돌아와

대구 달서구 모 초등학교에선 한 교사가 상담 중 학부모에게 받은 선물로 징계 위기에 놓였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지난달 학부모 상담주간에 세 명의 학부모로부터 각각 조각 케이크, 화과자 세트, 수제 비누를 받아 학생들과 함께 먹은 일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익명의 제보를 받은 교육청은 선물을 받은 시기가 김영란법 시행 이전이지만 사실 확인을 거쳐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 여부가 확인되면 교육청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다.

할머니의 호박
다시 돌려보내

전북 고창군의 한 초등학교 교사 E(38·여)씨는 최근 방과 후 학교를 방문한 F(77) 할머니를 되돌려 보낸 뒤 미안함에 한참이나 교실을 떠날 수 없었다. 조손가정이 많은 시골 특성상 손주를 가르쳐준 보답으로 약간의 농작물을 가져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마지못해 받았지만 이날은 김영란법 때문에 F할머니가 보자기에 싸온 늙은 호박 한 개를 한사코 사양했다. E씨는 “법에 걸리니 큰일난다. 대신 아이는 제가 더 잘 챙기겠다”고 말했지만 “호박이 무슨 뇌물도 아닌데…”라며 서운해하며 쓸쓸히 돌아선 F할머니의 뒷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운영비 마련하려고
고육지책 일일찻집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름의 자구책을 내놓기도 한다. 강원도 춘천서 30년간 맥을 이어온 예맥야간학교는 학교 강의실서 일일찻집을 열었다. 예년에 없었던 행사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기부문화가 위축된 탓에 운영비 마련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예맥야간학교 관계자는 “매년 지방자치단체 지원금도 줄고 있는데 김영란법으로 부정기 후원금도 줄어드는 분위기라 그 대안으로 어렵게 일일찻집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손녀 같아 준
음료수까지 NO

옥천군 군북면의 한 할아버지(85)는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 상태를 체크하고 한 달 동안 먹을 약을 받기 위해 매월 한 차례 옆 마을에 있는 보건지소를 찾는다. 그곳에 갈 때마다 자신을 반겨주는 직원들이 고맙고 언제나 챙겨주는 게 마음에 걸려 이달 초 약을 받으러 가면서 1만원짜리 비타민 음료를 샀다.

손녀뻘 되는 직원들을 위해 감사의 선물로 음료 상자를 전해주려다 직원들이 김영란법을 문제 삼아 한사코 받기를 거절하는 바람에 승강이 끝에 하는 수 없이 가져갔던 음료를 다시 들고 나왔다. 그는 할아버지뻘 되는 촌로의 순수한 성의까지 받아주지 않는 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그동안 보건지소에서 건넨 음료만 해도 내가 들고 간 것보다 많다”며 “좋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시골 늙은이의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없게 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호형호제하다
남남처럼 식사

옥천군의 한 면사무소에선 이장단 회의 뒤 이장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따로 식사하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이 지역 이장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면사무소에 모여 회의를 한다. 군정 현안을 설명 듣고 건의사항 등을 내놓는 자리인데, 당연히 면장 등 공무원이 배석하고, 회의 뒤에는 자연스럽게 식사자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면의 이장단협의회장은 “회의가 끝나면 으레 국밥이나 칼국수 한 그릇 하는 자리가 마련되는데, 면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식사는 우리끼리 했다”며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인데도 갑자기 삭막해진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 만나기가…
제약회사도 타격

환자나 보호자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의료진에게 선물하는 음료수나 과일 등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의료계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그동안 ‘정’으로 생각하고 오가던 소정의 선물 등이 차츰 없어지는 분위기다. 제약회사들과 의사들의 만남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특히 대형 제약회사들은 영업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공립 대학병원에 재직하고 있는 직원들은 공무원에 준하는 적용을 받게 되고 사립 대학병원에 재직하는 직원들은 교직원에 준하는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입원 병동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지역의 한 종합병원에는 정을 담은 사소한 선물이나 다과 등을 의료진에게 건네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게시물이 붙었고, 환자나 보호자의 성화에 선물을 받더라도 총무부 등에 신고하는 분위기다.

성의 무시한다
환자들은 무안

울산대병원은 최근 각 병동 게시판에 환자에게 받는 음식물은 무조건 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고지했다. 하지만 이를 잘 모르고 빵 등을 건네는 노인 환자들을 설득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일부는 자신의 성의를 무시한다며 역정을 내기도 한다.

적용 사례 광범위…실무자도 헷갈려
권익위마저 뚜렷한 기준제시 못해

한 간호사는 “음식물을 받지 않으면 무안해 하는 환자들 때문에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똑같은 간호 업무인데 일반병원은 예외로 인정해주고 대학병원만 법 적용을 받는 등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특별한 꽃 선물
찾아보기 힘들어

서대문구의 한 웨딩홀 복도는 화환 하나 없이 한산하다. 웨딩홀 관계자는 “오전 11시30분과 오후 12시30분 잇따라 예식이 있었지만 평소와 달리 화환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화환업계에선 이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화환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며칠 새 화환 주문이 20∼30%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동대문구서 꽃집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아직 김영란법 영향은 크게 없었다”면서도 “졸업식이나 결혼식 등 특별한 날이 아니면 꽃을 주고받을 일이 없는데 법으로 한도를 정해버려 이마저도 부담스럽게 만들어버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취업계 논란
졸업생 혼란

취업이 확정된 대학 예비졸업생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대전의 한 대학에 다니는 김모(24)는 최근 한 기업으로부터 입사가 확정됐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김영란법 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다. 그는 “취업계를 내고 일을 하려고 했지만, 김영란법 때문에 계획이 다 틀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권익위는 이른바 ‘취업계’가 학점당 이수시간과 관련된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4조를 위반 조작하도록 하는 행위로 청탁금지법 제5조 제1항 제10호의 부정청탁 대상직무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만약 교수가 조기 취업생들의 취업계 부탁을 받아줄 경우 김영란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어렵게 잡은 취업 기회를 잃을 처지에 놓인 대학 예비 졸업생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랬다 저랬다
애매하게 해석

시민들은 법 적용 기준을 둘러싸고 국민권익위원회마저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다 법 해석과정서 이런저런 고려사항을 무시할 경우 큰 혼란이 야기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포괄적 법 적용이라는 김영란법의 모호함 탓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사회가 삭막해질 것을 우려했다.

상하 간, 동료 간 ‘호불호’ ‘개인적 감정’에 의해 누군가를 골탕 먹이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조직 분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벌써부터 내부고발자가 양산될 것이란 설득력 있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평소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발언조차도 자칫 오해받을 수 있으므로 경계심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 출신 인사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인 ‘나눔의 미덕’마저 모두 범죄시하는 이런 법이 인간관계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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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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