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특집-특별대담> 국민에게 친숙한 정세균 국회의장

“땀 흘리는 민생이 보람 있는 세상을 만들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올해도 어김없이 민족 최대 명절 한가위가 다가왔다.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그간 국민들을 힘들게 했던 지난 일들을 털어낼 보석과도 같은 날이다. 이는 정치권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한가위를 목전에 두고 첫 정기국회를 시작하는 등 묵은 때 벗겨내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번 20대 국회는 ‘협치’를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안고 출범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정세균 국회의장의 리더십이라는 중대 변수가 자리하고 있다.

“여야 3당은 과연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협치’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국민들이 지난 4·13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내린 숙제이자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던진 메시지였다. 협치의 성공 여부는 정 의장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역할
어느 때보다 주목

정 의장의 리더십은 이미 한차례 시험대에 오른 바 있다. 첫 정기국회를 맞아 가진 개회사서 그가 ‘우병우’ ‘사드’ 등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발언하자 새누리당이 집단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정현, 정진석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는가 하면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까지 제출하는 초강수를 뒀다.

자칫 국회가 시작부터 무너질 수 있었던 상황. 그러나 마지막 순간 정 의장이 새누리당에 손을 내밀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국회의장실서 여야 3당 원내대표와 의사일정 정상화에 합의한 뒤 정 의장은 기자들 앞에 서서 “국민 여러분을 생각하면 (의사일정을) 하루도 미룰 수 없어 내가 결단했다”고 전했다. <일요시사>는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지난 5일 정 의장을 직접 만나 현 정치권의 상황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정 의장과의 일문일답.

- 국회의장으로 당선되신지 약 3개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의장단과 위원장단이 선출되고, 원구성이 이루어졌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국회서 열리는 가장 큰 행사라 할 수 있는 개원식과 제헌절 경축식도 무사히 치러냈습니다. 또한 추경안이 통과됐고,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시작됐습니다. 앞으로도 여야 협치를 우선으로 정기국회가 원활히 운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의장이 되신 후 여러 가지 파격적인 결정을 하셨습니다. 단적인 예로 국회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하셨는데,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난 18, 19대 국회서도 직접고용이 논의됐으나 여러 사정으로 무산됐었습니다.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국회가 아직 이 문제를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20대 국회에서 직접 고용의지를 밝히게 된 것입니다. 현재 207명의 청소용역 근로자가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3년 단위로 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데, 오는 12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좋은 일자리 만들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국회서 선도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는 국회가 먼저 나서서 해소하려 하고 있습니다.

- 또한 전문성과 능력 위주로 국회 사무처 고위직 인사를 단행하셨습니다. 기업적 효율성을 공적인 영역에 반영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과거와 달리 능력과 전문성을 최우선적인 평가요소로 고려했습니다. 사무처 내부서도 ‘될 만한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과거 기업서 근무한 경험도 이러한 능력중심·성과중심 인사를 단행한 데 일정부분 기여했습니다.

공적 영역도 과거보다는 많이 효율화·체계화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추진력, 효율성, 유연성과 같은 민간 영역의 장점들을 지금보다 더욱 받아들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과거 민간기업 근무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입니다.

- 정계 입문 전 쌍용그룹 등에서 실물경제를 몸소 경험하셨습니다. 박근혜정부의 경제 성과를 평가해주신다면?
▲박근혜정부의 지난 3년 재정적자가 95조원에 육박했습니다. 이는 이명박정부 5년과 같은 수치이며, 참여정부의 9배에 달합니다. 국가부채뿐 아니라 가계부채, 청년 실업률 등 경제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는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민생을 위한 실질적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일하는 대통령, 국민을 우선시하는 대통령이 되시길 바랍니다.

- 경제학적으로 ‘분수경제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낙수경제를 주장하는 여타 경제전문가 출신 인사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낙수 효과는 허상일 뿐, 경제 활성화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간 지속되어 온 대기업 위주의 성장주도형 경제정책은 우리 경제의 규모를 키웠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양극화 및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문제가 있어 개선이 필요한 상황 아니겠습니까. 대기업 위주,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성장의 동력을 중산층과 서민에게서 찾는 경제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여소야대 정국 주목받는 포용적 리더십
직접 고용, 능력 인사…국회 개혁 앞장


- 사회적으로 국론분열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사드 배치’ ‘김영란법 시행’ 등 무수한 사안에서 이러한 현상들이 감지되고 있는데요. 정치권에서 오히려 이러한 분열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근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3%가 “정치권이 국민통합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일반 국민 25%는 “여야의 정쟁 격화가 사회갈등을 악화시킨다”고 나옵니다. 이러한 여론을 정치권에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국론 분열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만 완화할 수 있습니다. 국회가 모든 현안에 대해 열어놓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도록 의장이 직접 노력하겠습니다. 정부도 소통의 문을 열고 국회와의 대화·타협에 적극 임해주기를 부탁합니다.

- 일자리, 주택난으로 인한 N포 세대. 요즘 청년들은 갈수록 살기 힘들다며 입을 모읍니다. 의장님께서는 평소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주신다면?
▲현대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은 국민 삶의 질 향상과 불평등 완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첫 관문이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요. 누구나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만들 필요가 있으며, 직접 고용을 통해 정규직-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할 필요도 있습니다.

자리가 부족해서 취직을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국가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안정적 청년취업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정책을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특히 공공기관부터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 국민들은 지난 19대 국회를 역대 최악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국민들로부터 달라졌다는 말을 듣기 위해 이번 국회는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시나요?
▲국회의 신뢰를 회복시켜 국민과 국회를 가깝게 만들고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 국회의장의 책무입니다. 만약 정치권에 불필요한 특권이 있다면 단호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20대 국회는 ‘방탄 국회’라는 말이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의장 직속으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를 설치해 활동 중입니다.

외부 인사들로만 구성하여 공정성을 담보했으며, 실질적인 성과를 조만간 도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20대 국회의원들을 만나보니 불필요한 특권을 계속 가져가려는 분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전반에 대한 특권 내려놓기의 시작을 국회서 할 것이며 꼭 성공시킬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민생을 잘 챙기고, 개헌문제도 합리적으로 추진하여 4년 후 국민들께 ‘20대 국회는 달랐다’는 평가를 받도록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 국회가 거듭될수록 발의되는 법률안은 늘어나는 대신, 통과되는 수는 점점 줄어드는 형국입니다. 의원들이 법안의 질보단 양으로 승부한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그런 후배 의원들에게 선배 정치인으로서 한 말씀해주신다면?
▲과거보다 국회의원들이 훨씬 열심히 의정활동에 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지적이 의원들에게 더욱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서 채찍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의원들에 대한 평가가 법안 발의 횟수, 회의 출석률 등과 같은 기계적·정량적 기준에 치우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의원들이 내실적인 부분을 다소 소홀히 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은 법안발의 횟수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의정활동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국회의원 활동에 관해 정성적인 면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성과지표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국회의 또 다른 화두가 ‘개헌’입니다. 필요성에 공감을 하시는 입장이신가요?
▲개헌 필요성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공감대 및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입니다. 현행 헌법은 지난 30년간의 우리 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 철지난 옷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와 미래 대한민국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현행 헌법에 규정된 권력 구조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기형적 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므로 어떠한 방식이든 이를 분산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헌 논의는 위와 같은 권력구조 개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본권 관련규정, 경제민주화 조항, 지방분권 관련제도 등도 함께 논의해 나가야 합니다.
 

개헌은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합니다. 대통령께서 초심으로 돌아가 개헌에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현재 대통령께서만 ‘블랙홀’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헌은 블랙홀이 아닌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멀티트랙인데도 말이죠. 국회 차원의 개헌특위 구성이 가장 이상적인 방안이라 생각하나, 여의치 않을 경우 의장 직속 자문위원회 구성을 통해 공론화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20대 전반기, 후반기에는 반드시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최우선 과제는 민생을 위한 협치” 강조
대권 도전 질문에 “시기적으로 불가능”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선출된 후 ‘강한 야당’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이러한 강경 노선이 협치를 망칠 수도 있다는 반응이 나오는데요. 의장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당의 정체성과 가치가 선명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은 권력을 잡기 위해 구성원들이 공감하는 비전과 가치가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이 사회를 분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배타적인 속성을 갖는다면 국민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수권정당은 요원한 일이 될 것입니다. 강한 야당과 여당을 나누기 이전에 20대 국회의 최우선 과제는 민생을 위한 협치입니다.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어 이번 20대 국회에서 만큼은 민생이라는 공통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 이번 여야 전당대회를 통해 호남 출신의 여당 대표, 영남 출신의 야당 대표가 나왔다. 지역주의 타파의 신호라 읽어도 될까요?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호남서 두 명, 더민주가 영남서 여섯 명의 당선자를 내며 한국 정치의 지역주의 타파의 물꼬를 텄다고 봅니다. 호남 출신의 보수정당 대표에 이은 영남 출신의 진보정당 대표 선출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죠. 영호남 지역주의 완화와 각 당의 외연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입니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타파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생각하며 20대 국회의 협치 실현에도 매우 희망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대권 도전 의향은 없으신가요?
▲대선 이후까지 의장의 임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대선 출마는 시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대권, 국회의장, 당권에 대한 권유를 받기는 했지만 국회의장을 선택한 이유는 의회가 살아나야 국가가 살아나고 민생이 살아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레임덕이 있지만, 입법부는 레임덕이 있어선 안 되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법부가 국가 경영을 함께 책임지는 ‘책임국회’ 구현이 의장으로서의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회,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 미래한국을 준비하는 국회를 만드는 일에 솔선수범해 나가고자 합니다.

- <일요시사>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소야대, 다당제로 시작한 제20대 국회는 그간의 정쟁과 반목을 끊어내고 소통과 협력을 통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라는 국민 여러분들의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협치를 통해 민생문제를 적극 해결햐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맞아 국민 여러분 모두에게 풍성함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또한 가족 간, 이웃 간, 지역 간, 계층 간에 화기애애한 기운이 넘쳐 진정으로 국민대통합의 장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취업과 결혼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좌절하고 있는 청년세대나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여러분에게도 희망이 깃드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땀 흘리는 민생이 보람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정치의 목표이자 중대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국민을 더 잘 섬기겠습니다. 국민에게는 온화하지만, 권력에는 강경한 리더십으로 의장직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귀성길, 귀경길 언제나 안전하고 편안하시길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chm@ilyosisa.co.kr>



[정세균 국회의장은?]

▲전라북도 진안 출생
▲전 쌍용그룹 상무이사
▲전 민주당 대표
▲제16대 노무현후보 중앙선대위 국가비젼 21위원회 본부장
▲제15·16·17·18·19·20대 국회의원
▲제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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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