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실태 충격보고<1>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존재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돈벌이를 위해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타인과 살을 맞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이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이들은 일체의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몇 년이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히키코모리’라는 이름으로 일본사회에 등장한 이들은 몇 년 뒤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들은 각종 범죄를 저지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맞기도 해 한 개인이나 가정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기엔 심각성이 크다. 우울한 한국의 한 단면을 차지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를 집중 분석했다.

유명인의 자살이 잇따르고 일반인들의 자살도 덩달아 늘어나면서 ‘자살 위험군’에 속한 이들에게 우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나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거나 알콜중독자나 약물중독자 등 심신이 쇠약해진 사람 등이 그들이다.
이들과 함께 가족이나 이웃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오랜 시간을 지냈다는 점에서 ‘혹시 저 사람도?’ 라는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낳고 있는 것.

일본의 ‘히키코모리’ 현해탄 넘어 한국에도

우울한 세태 속에서 더 큰 걱정거리로 떠오르는 은둔형 외톨이들. 이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학교나 직장 등 사람들과 부대끼는 장소에 참석하는 것은 극도로 자제한다.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경로는 인터넷이 전부다. 이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은둔형 외톨이라는 명칭까지 생겨난 배경에는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있다.

히키코모리는 일본 사회의 오래된 병폐현상으로 이들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것도 수십년이 지나고 있다. 일본 NHK 복지네트워크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내에 거주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수는 무려 1백60만명. 이들의 수는 대도시로 갈수록 많아져 도쿄의 경우 인구 1천2백80만명 중 히키코모리로 추정되는 청년층이 2만5천명으로 조사됐다.

일본사회에 히키코모리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 당시 입시에 시달리던 학생들이 무단결석을 일삼고 낮에는 집안에 있다가 밤이 되면 외출하는 현상이 생겼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두고 일부 불량청소년들의 단순한 등교거부 쯤으로 해석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학생들이 밤에 거리로 나와 행인을 폭행, 살인하는 등 점차 과격한 행동을 보였는데 비슷한 시기, 은둔하는 성인들도 나타나면서 히키코모리는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그러다 일본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할 무렵,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전선에서 낙방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아예 집안으로 잠적하면서 지금의 히키코모리들이 양산된 것.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히키코모리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특히 각종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은둔형 외톨이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방에 틀어박혀 가족들과 식사조차도 하지 않는 이들의 실생활을 방영해 은둔형 외톨이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환기시켰다.

그렇다면 어떤 원인들이 은둔형 외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 전문가들은 핵가족화와 이혼율 증가로 인한 가족의 해체,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단절된 가족이나 친구 간의 대화, 그리고 경제난으로 인한 불안감, 취업난, 실직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은둔형 외톨이의 수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또 치열한 입시경쟁과 학교 폭력 등도 원인 중의 하나. 내성적인 성격이나 대인기피증, 사회공포증, 우울증 등의 개인적인 문제도 원인이 된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에 발을 들이지 않은 10대 청소년 가운데 은둔형 외톨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것. 지난 2005년 청소년위원회가 조사해 발표한 결과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상대하며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등 사회 부적응 현상을 보일 위험이 높은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 고교생 수가 4만3천여 명에 달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청소년기에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한 이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의욕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인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또 은둔형 외톨이들이 늘면서 이들의 강력범죄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자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해 ‘묻지마 살인’등의 범행을 저지르는 사건도 종종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범죄가 열도를 발칵 뒤집은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그 중 하나는 지난 3월23일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 쓰치우라시역 대로에서 발생한 사건. 히키코모리 증상을 보이던 가나가와(24·무직)씨가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러 1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가나가와는 범행을 저지른 뒤 경찰에 스스로 전화를 걸어 “나 잡아봐라”라고 말한 뒤 이틀 뒤 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찰에서 “7~8명을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해졌다. 문제는 그가 별다른 죄책감이 없었다는 것.

또 경찰조사결과 4일 전인 3월19일에도 동네에 사는 70대 노인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에 대해 “처음엔 동생을 죽이려 했지만 집에 없어 그만뒀다. 누군가를 죽이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갔지만 때마침 졸업식이 진행되고 있어 포기했고, 학교에서 나와 길을 걷다 누군가 보여 살해했다”고 증언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쌓인 분노 타인에게 표출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조사 결과 가나가와는 계속된 취업실패로 방안에서 틀어박혀 지내던 전형적인 히키코모리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로 폭력적인 인터넷게임을 하며 수년간 바깥세상과 담을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히키코모리들의 강력범죄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은둔형 외톨이의 특성을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살인을 저지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주인공은 40세의 임모씨.

내성적인 성격의 임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줄곧 방안에 틀어박혀 살다시피 했다. 특별한 직업도 없었고, 결혼도 하지 않아 노부모와 함께 살던 임씨가 가졌던 유일한 취미는 인터넷. 그는 하루종일 방안에서 지내며 인터넷서핑을 하고 만화 등을 다운받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식사도 혼자 방안에서 하며 방에서 발을 떼지 않았던 임씨는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의 습성을 띄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5년 전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 임모(88)씨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출판업체에 아들을 나오게 했다.

거의 처음으로 해보다시피 한 사회생활에서 임씨는 그리 잘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업무상 자신과 함께 할 일이 많았던 영업부장 권모(58)씨와 종종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임씨는 함께 일하던 직원들의 신발을 감추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결국 2개월여를 일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또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임씨가 집밖으로 나온 것은 지난 3월. 임씨는 신문지로 싼 흉기를 주머니에 넣은 채 한때 일했던 아버지의 회사로 갔다.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던 권씨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권씨를 발견한 임씨는 이날 오후 12시30분 경 권씨의 목을 수차례 찔러 살해한 뒤 도주했다.

이같은 살인사건의 신고를 받은 성북경찰서는 임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임씨의 행방을 쫓았다. 범행현장에 그가 가지고 다니던 신문지로 만든 칼집이 떨어져 있었고 그가 드나들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권씨를) 죽이고 싶다”는 글이 남겨진 점 등에 착안한 것.

그러나 경찰이 임씨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유는 임씨가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던 탓. 임씨는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았고 은행거래도 하지 않아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그런 임씨의 행적을 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친구나 직장동료 등 지인들도 없어 그의 동선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성북경찰서는 임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를 내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임씨의 방안에서 유서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성북경찰서는 임씨가 쓴 “산에 가서 죽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본 뒤 자살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집 근처 야산을 수색했다. 그리고 임씨는 며칠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성북구 돈암동 북악산 등산로 아래에서 임씨가 나무에 목을 매고 숨져 있는 것을 등산객이 보고 신고한 것. 임씨가 입은 옷에는 범행에 사용됐던 흉기가 나왔고 권씨를 살해한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이 임씨의 것과 동일해 임씨의 범행임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끝내 자살로 마감하기도…응어리 풀 장치 마련해야

그런가 하면 지난 8월에는 5년 동안 홀로 방안에 지내던 20대가 지나가던 행인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전문대를 다니다 피해망상성 정신분열증으로 학교를 그만둔 김모(25)씨가 범죄자가 된 것은 8월15일 오후 4시경이었다. 김씨는 서울 홍제동 모 초등학교 정문 앞을 지나던 오모(41)씨를 흉기로 한 차례 찔렀고 오씨는 오른쪽 목 부위 출혈이 심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대낮에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김씨가 경찰에서 말한 범행 동기는 단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라는 것.

범행을 저지르기 전 김씨는 무려 5년여 동안 방안에서만 지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애인이나 친구를 사귀지 않는 등 대인관계가 없었고 휴대전화도 없었고 인터넷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김씨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것을 택했다. 김씨는 가방에 흉기를 넣고 다니며 범행대상을 물색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오랜 은둔형 외톨이 생활 끝에 목숨을 끊는 사건도 종종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취업에 번번히 실패하고 7년여 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20대 여성이 목숨을 끊었다. 이 여성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인터넷 등으로 시간을 보냈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 가족들이 없는 틈을 타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일부 은둔형 외톨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행각을 벌이기도 해 심각한 사회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정신의학 전문가는 “모든 은둔형 외톨이들이 잠재적인 범죄자라거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의사소통도, 스트레스나 분노를 표출할 통로도 마땅치 않은 은둔형 외톨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에 비해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라며 “이들을 당장 사회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힘들다면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분노를 터트릴 수 있는 장치라도 마련해 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