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실태 충격보고<1>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존재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돈벌이를 위해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타인과 살을 맞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이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이들은 일체의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몇 년이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히키코모리’라는 이름으로 일본사회에 등장한 이들은 몇 년 뒤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들은 각종 범죄를 저지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맞기도 해 한 개인이나 가정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기엔 심각성이 크다. 우울한 한국의 한 단면을 차지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를 집중 분석했다.

유명인의 자살이 잇따르고 일반인들의 자살도 덩달아 늘어나면서 ‘자살 위험군’에 속한 이들에게 우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나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거나 알콜중독자나 약물중독자 등 심신이 쇠약해진 사람 등이 그들이다.
이들과 함께 가족이나 이웃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오랜 시간을 지냈다는 점에서 ‘혹시 저 사람도?’ 라는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낳고 있는 것.

일본의 ‘히키코모리’ 현해탄 넘어 한국에도

우울한 세태 속에서 더 큰 걱정거리로 떠오르는 은둔형 외톨이들. 이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학교나 직장 등 사람들과 부대끼는 장소에 참석하는 것은 극도로 자제한다.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경로는 인터넷이 전부다. 이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은둔형 외톨이라는 명칭까지 생겨난 배경에는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있다.

히키코모리는 일본 사회의 오래된 병폐현상으로 이들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것도 수십년이 지나고 있다. 일본 NHK 복지네트워크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내에 거주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수는 무려 1백60만명. 이들의 수는 대도시로 갈수록 많아져 도쿄의 경우 인구 1천2백80만명 중 히키코모리로 추정되는 청년층이 2만5천명으로 조사됐다.

일본사회에 히키코모리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 당시 입시에 시달리던 학생들이 무단결석을 일삼고 낮에는 집안에 있다가 밤이 되면 외출하는 현상이 생겼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두고 일부 불량청소년들의 단순한 등교거부 쯤으로 해석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학생들이 밤에 거리로 나와 행인을 폭행, 살인하는 등 점차 과격한 행동을 보였는데 비슷한 시기, 은둔하는 성인들도 나타나면서 히키코모리는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그러다 일본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할 무렵,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전선에서 낙방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아예 집안으로 잠적하면서 지금의 히키코모리들이 양산된 것.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히키코모리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특히 각종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은둔형 외톨이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방에 틀어박혀 가족들과 식사조차도 하지 않는 이들의 실생활을 방영해 은둔형 외톨이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환기시켰다.

그렇다면 어떤 원인들이 은둔형 외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 전문가들은 핵가족화와 이혼율 증가로 인한 가족의 해체,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단절된 가족이나 친구 간의 대화, 그리고 경제난으로 인한 불안감, 취업난, 실직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은둔형 외톨이의 수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또 치열한 입시경쟁과 학교 폭력 등도 원인 중의 하나. 내성적인 성격이나 대인기피증, 사회공포증, 우울증 등의 개인적인 문제도 원인이 된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에 발을 들이지 않은 10대 청소년 가운데 은둔형 외톨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것. 지난 2005년 청소년위원회가 조사해 발표한 결과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상대하며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등 사회 부적응 현상을 보일 위험이 높은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 고교생 수가 4만3천여 명에 달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청소년기에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한 이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의욕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인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또 은둔형 외톨이들이 늘면서 이들의 강력범죄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자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해 ‘묻지마 살인’등의 범행을 저지르는 사건도 종종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범죄가 열도를 발칵 뒤집은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그 중 하나는 지난 3월23일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 쓰치우라시역 대로에서 발생한 사건. 히키코모리 증상을 보이던 가나가와(24·무직)씨가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러 1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가나가와는 범행을 저지른 뒤 경찰에 스스로 전화를 걸어 “나 잡아봐라”라고 말한 뒤 이틀 뒤 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찰에서 “7~8명을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해졌다. 문제는 그가 별다른 죄책감이 없었다는 것.

또 경찰조사결과 4일 전인 3월19일에도 동네에 사는 70대 노인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에 대해 “처음엔 동생을 죽이려 했지만 집에 없어 그만뒀다. 누군가를 죽이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갔지만 때마침 졸업식이 진행되고 있어 포기했고, 학교에서 나와 길을 걷다 누군가 보여 살해했다”고 증언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쌓인 분노 타인에게 표출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조사 결과 가나가와는 계속된 취업실패로 방안에서 틀어박혀 지내던 전형적인 히키코모리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로 폭력적인 인터넷게임을 하며 수년간 바깥세상과 담을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히키코모리들의 강력범죄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은둔형 외톨이의 특성을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살인을 저지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주인공은 40세의 임모씨.

내성적인 성격의 임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줄곧 방안에 틀어박혀 살다시피 했다. 특별한 직업도 없었고, 결혼도 하지 않아 노부모와 함께 살던 임씨가 가졌던 유일한 취미는 인터넷. 그는 하루종일 방안에서 지내며 인터넷서핑을 하고 만화 등을 다운받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식사도 혼자 방안에서 하며 방에서 발을 떼지 않았던 임씨는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의 습성을 띄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5년 전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 임모(88)씨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출판업체에 아들을 나오게 했다.

거의 처음으로 해보다시피 한 사회생활에서 임씨는 그리 잘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업무상 자신과 함께 할 일이 많았던 영업부장 권모(58)씨와 종종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임씨는 함께 일하던 직원들의 신발을 감추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결국 2개월여를 일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또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임씨가 집밖으로 나온 것은 지난 3월. 임씨는 신문지로 싼 흉기를 주머니에 넣은 채 한때 일했던 아버지의 회사로 갔다.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던 권씨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권씨를 발견한 임씨는 이날 오후 12시30분 경 권씨의 목을 수차례 찔러 살해한 뒤 도주했다.

이같은 살인사건의 신고를 받은 성북경찰서는 임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임씨의 행방을 쫓았다. 범행현장에 그가 가지고 다니던 신문지로 만든 칼집이 떨어져 있었고 그가 드나들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권씨를) 죽이고 싶다”는 글이 남겨진 점 등에 착안한 것.

그러나 경찰이 임씨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유는 임씨가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던 탓. 임씨는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았고 은행거래도 하지 않아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그런 임씨의 행적을 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친구나 직장동료 등 지인들도 없어 그의 동선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성북경찰서는 임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를 내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임씨의 방안에서 유서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성북경찰서는 임씨가 쓴 “산에 가서 죽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본 뒤 자살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집 근처 야산을 수색했다. 그리고 임씨는 며칠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성북구 돈암동 북악산 등산로 아래에서 임씨가 나무에 목을 매고 숨져 있는 것을 등산객이 보고 신고한 것. 임씨가 입은 옷에는 범행에 사용됐던 흉기가 나왔고 권씨를 살해한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이 임씨의 것과 동일해 임씨의 범행임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끝내 자살로 마감하기도…응어리 풀 장치 마련해야

그런가 하면 지난 8월에는 5년 동안 홀로 방안에 지내던 20대가 지나가던 행인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전문대를 다니다 피해망상성 정신분열증으로 학교를 그만둔 김모(25)씨가 범죄자가 된 것은 8월15일 오후 4시경이었다. 김씨는 서울 홍제동 모 초등학교 정문 앞을 지나던 오모(41)씨를 흉기로 한 차례 찔렀고 오씨는 오른쪽 목 부위 출혈이 심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대낮에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김씨가 경찰에서 말한 범행 동기는 단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라는 것.

범행을 저지르기 전 김씨는 무려 5년여 동안 방안에서만 지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애인이나 친구를 사귀지 않는 등 대인관계가 없었고 휴대전화도 없었고 인터넷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김씨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것을 택했다. 김씨는 가방에 흉기를 넣고 다니며 범행대상을 물색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오랜 은둔형 외톨이 생활 끝에 목숨을 끊는 사건도 종종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취업에 번번히 실패하고 7년여 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20대 여성이 목숨을 끊었다. 이 여성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인터넷 등으로 시간을 보냈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 가족들이 없는 틈을 타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일부 은둔형 외톨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행각을 벌이기도 해 심각한 사회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정신의학 전문가는 “모든 은둔형 외톨이들이 잠재적인 범죄자라거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의사소통도, 스트레스나 분노를 표출할 통로도 마땅치 않은 은둔형 외톨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에 비해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라며 “이들을 당장 사회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힘들다면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분노를 터트릴 수 있는 장치라도 마련해 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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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