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광주 동아파 둘러싼 소문과 진실

두목급 사단 대거 상경… 수상한 동향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폭력조직 동아파에 대한 루머가 돌고 있다. 바로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진출했다는 것. 1인 기획사로 홀로서기에 나선 광주 출신 탑스타의 소속사 구성원들이 동아파의 조직원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전성기를 지나 세력이 약해진 동아파가 새로운 사업으로 부활을 꿈꾸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소문의 진실은 무엇일까? 동아파에 대해 파헤쳐 보도록 한다.

광주의 폭력조직은 1960년대 청소년 폭력조직인 행여나·케세라·오케이 등의 조직서 출발한다. 오케이 조직이 일찌감치 조직싸움에서 밀려나고 행여나가 케세라에 패배한 뒤 조직을 변신시켜 출발한 것이 ‘동아파’다.

새로운 돈벌이
눈씻고 찾는다

이 동아파는 다시 분리돼 광주 동아파, 서울 동아파, 나주 동아파를 형성하고, 동아파의 한 분파가 분리돼 OB파를 형성, 두목인 이동재가 서울로 상경해 3대 패밀리 중 하나를 형성했다. 동아파는 대호파와 더불어 1960년대 광주 주먹계를 양분했던 조직으로 충장로파로도 불리는데 1969년 두목 전모씨가 구속되면서 대호파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됐다.

서울에서 ‘최고 잘 나가는 주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문모씨. 광주 송정리 출신인 그는 1990년대 초 해외도박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적이 있는데, 그 후 건설업과 사채업에서 큰돈을 벌어 최근 벤처업계에도 진출했다. 당시 검찰은 그를 동아파의 실질적인 두목으로 여겼다.

그에 대해서는 상반된 소문이 있는데 지금도 한 번에 200명가량의 부하를 동원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신앙생활과 사업에 전념하면서 주먹계를 떠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P 의원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울 강북지역서 활동하는 김모씨는 동아파 실세로 통하는데, 문씨 직계인 그는 19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 당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상가 분양 등으로 수백억원대의 재산가가 된 그는 역시 P 의원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계보상’ 동아파 두목인 또다른 문모(50)씨는 2001년 검찰에 구속되며 동아파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세력은 약해졌지만 동아파 소속들의 범죄행위는 계속해서 적발됐다. 2014년 6월 아파트 분양 현장서 인테리어 업자 등을 상대로 억대 금품을 뜯어낸 조직폭력배들이 무더기로 검거된 사건이 있었는데 검거된 폭력배 중 최모씨는 동아파 두목이었다.

최씨 등은 2011년 5월부터 3년 동안 서울·경기 일대에 있는 LH와 SH 아파트 입주관리 현장서 인테리어 업자 46살 이모씨 등에게 광고비나 자릿세 등의 명목으로 모두 1억7000여만원을 가로챘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 소문
유명스타 소속사 조직원 투입

이들은 경호 관련 유령회사를 세워 아파트 건설사와 계약을 맺은 뒤 입주관리 현장에 진출해 SH공사서 파견된 직원인 것처럼 행세하며 인테리어업자 등에게 돈을 받아냈다. 또 요구한 돈을 주지 않을 경우 폭력을 행사하거나 인테리어 시공 계약서를 빼앗아 다른 업체에 넘기기도 했다.

2011년에는 흑사회와 손을 잡고 마약을 들여오기도 했다. 당시 북한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히로뽕이 중국 폭력조직을 거쳐 시중에 대량 유통됐다. 중국의 대표적인 폭력조직인 흑사회는 북한산으로 추정되는 히로뽕을 국내 폭력조직을 통해 유통시킨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이들이 유통시키다 적발된 히로뽕은 19만8333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시가 198억원어치에 이른다. 유통에 관여한 국내 폭력조직에는 광주 동아파도 포함돼 있었고 이들은 마약 구매대금을 중국에 직접 갖고 들어가거나 환치기 계좌를 이용해 중국에 보냈고 마약의 질을 살피기 위해 감정전문가를 중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2009년에는 동아파를 사칭한 범죄가 나타나기도 했다. 당시 전국 90개 폭력조직 320명과 연락체계를 갖춘 불법 사채업자 원모씨가 구속 기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특히 원씨는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들에 폭력을 행사하고 필로폰을 투약하도록 했으며 채무 압박에 시달리던 한 피해자는 또 다른 조직폭력배에게 살인청부를 하기도 했다.

유흥업 불황에
새 탈출구 모색

당시 이들이 유통시키다 적발된 히로뽕은 19만8333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시가 198억원어치에 이른다. 유통에 관여한 국내 폭력조직에는 광주 동아파도 포함돼 있었고 이들은 마약 구매대금을 중국에 직접 갖고 들어가거나 환치기 계좌를 이용해 중국에 보냈고 마약의 질을 살피기 위해 감정전문가를 중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원씨는 이 과정서 자신이 동아파의 조직원인 것처럼 행세하며 피해자들을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검찰조사 결과, 원씨는 전국 90개 폭력조직과 친분이 있었으며 구속된 조직원들에게 영치금을 입금해 주는 등 이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추심 행위를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2007년 동아파 조직원의 결혼식날에는 ‘조폭전쟁’이 일어날 뻔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해 12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예식장엔 깍두기 머리를 한 우람한 체격의 어깨들이 몰려왔다. 당시 서울에 있던 조직원뿐만 아니라 광주광역시와 전남 나주·장성 등지의 조직원 20명도 상경해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 폭력팀, 서울 강남경찰서, 광주 남부경찰서 형사들이 느닷없이 식장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서울을 주된 무대로 활동하는 국제PJ파가 결혼식 현장을 기습한다는 첩보에 따라 출동한 것이었다. 경찰의 개입으로 두 조직 간에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소동의 발단은 불법 카지노바에서 ‘개평’ 문제로 일어난 다툼이었다. 동아파 행동대원인 채모(32)씨는 국제PJ파가 서울 청담동에서 운영하는 불법 카지노 바에서 도박으로 1억원을 잃었다. 채씨는 자신의 조직을 들먹이며 잃은 돈의 상당액을 개평으로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썩어도 준치
호남조폭 시초

하지만 카지노바를 관리하던 국제PJ파 조직원 강모(32)씨는 이를 면전에서 거절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채씨는 강씨의 옆구리를 길이 20㎝ 회칼로 찌르기에 이른다. 강씨는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택시에 재빨리 몸을 실어 목숨을 건졌다.

국제PJ파 조직원들은 대동맥이 끊어져 열흘간 혼수상태에 빠진 강씨를 보호하기 위해 병원 세 곳을 옮기며 치료를 받게 하는 한편, 동아파에 대한 복수전을 준비했다. 승합차 두 대에 조직원을 숨겨 결혼식장을 습격하는 시나리오를 준비했으나 경찰에 계획이 사전에 노출돼 이는 실패했다.

이에 대해 당시 경찰 관계자는 “호남지역의 두 조직이 자존심 때문에 칼을 휘드른 일이 조직 간 전쟁을 촉발할 뻔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던 동아파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사실 조폭들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손을 댄 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백창주 대표도 조폭 논란이 있었다. 그가 권상우의 매니저로 활동하던 시기에 조폭을 동원한 협박 사건에 연루된 일이 있었기 때문. 당시 이 일로 온라인상에서 크게 비난받았으며 소속 연예인들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연예인과 연예기획사, 그리고 조폭의 밀월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예인과 폭력을 상징하는 조폭이 겉으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현실은 다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이른바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대호파와 더불어 광주 주먹계 양분
두목 전씨 구속 후 몰락의 길 걸어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얻은 연예인의 사생활 정보는 ‘노예계약’을 맺는 데 악용되고 있다. 배우 권상우 협박 사건도 이런 배경에서 터져 나왔다. 서방파 두목 출신 김태촌은 권씨의 사생활과 관련한 약점을 잡고 수차례 전화를 걸어 ‘일본 팬 미팅’을 요구하며 살벌한 협박을 했다. 권씨가 김씨의 협박 내용을 녹취하고 검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물론 기획사의 불평등 조약과 조폭의 폭력에 시달리며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연예인들도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조폭들의 주요 사업은 나이트클럽, 룸살롱 등 주로 유흥업소를 운영하거나 관리하는 데 집중됐다. 그러다가 점차 입지가 좁아지자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했다. 그 중 하나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조폭들에게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 연예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던 조폭들에게 이만큼 ‘궁합’이 잘 맞는 일은 없었다. 이때부터 조폭들의 연예사업 진출이 크게 증가했다.


조폭들이 연예기획사에 진출하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다. 우선 기획사를 직접 차리거나 기존 기획사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국내에는 현재 수백개의 연예기획사가 있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하다. 상위 몇 개 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예기획사의 세포 분열도 영세성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보통 매니저 몇 년을 하면 기획사를 차려 독립하는 것이 연예계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조폭들은 연예기획사를 차린 후 바지사장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거나 자신들이 직접 대표를 맡는다.

이들은 비교적 규모가 큰 연예기획사를 인수한 후에는 주식의 우회 상장, 이벤트 행사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부당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기획사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유명 연예인을 끌어들이고 매니저 일은 조직원들에게 시킨다.

현행 우리 연예계의 구조상 연예인과 기획사 그리고 조폭과의 관계는 먹이사슬처럼 형성되어 있다. 이 구조가 쉽게 바뀔 수도 없는 현실이다. 동아파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전적으로 뛰어들었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해마다 터져 나오는 ‘연예인의 성 상납 사건’을 보면 그 뒤에는 필연적으로 기획사와 조폭들이 연관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력 약해져도…
끊임없는 사건들

그런데도 사건 해결이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조폭들을 비호하는 배후세력이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제2의 장자연’ ‘제3의 촬영장 폭력 사건’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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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