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빠진 아이들 실상

무슨 돈으로…교복 입고 베팅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도박이 극성이다. 19세 이상만 가능했던 도박은 이미 그 경계선이 무너진 지 오래다. 청소년들의 도박은 절도, 사기, 폭행 등의 범죄로도 이어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도박을 하나의 ‘놀이’ 정도로 여기는 청소년들은 중독에 있어서도 위험 수위가 높다고 평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도박시장은 연간 100조 이상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도박시장이 큰 성장을 이루게 된 계기로 인터넷의 영향을 지적했다. 포커나 고스톱, 머신과 같은 유기구형 도박을 했던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인터넷의 발달로 불법 토토, 사다리 도박 등이 쉽게 행해지게 됐다. 누구나 도박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청소년 역시 쉽게 도박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인터넷·스마트폰
발달로 쉽게 접해

한국도박관리문제센터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중 70%는 돈을 걸고 내기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경우 중독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해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도박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놀이나 오락으로 치부한다. 특히 스마트폰의 발달은 청소년이 도박을 접하게 하는 매개체가 됐다. 검색 몇 번이면 쉽게 도박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경우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가입이 승인돼 손쉽게 도박을 할 수 있다.

청소년 도박문제를 지적한 한 교수는 “청소년은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라며 “도박 역시 친구가 도박을 하면 따라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도박의 재미에 매료되기 시작한 청소년은 곧 중독으로 이어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소년 사이에서 도박이 중독에서 멈추지 않고, 2차 범죄로 이어진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도박중독에 빠진 중학생 A군은 1000만원 이상의 도박 빚으로 힘들어하다 인터넷 사기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자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처음에는 용돈 용도의 소액으로 도박을 하다가 점차 늘어가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절도, 사기 등으로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A군은 현재 도박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문제는 A군과 같은 처지에 빠진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이 빠져있는 도박의 종류를 살펴보면 예전에 성행하던 판치기는 ‘애교’ 수준이다. 중학생 B(14)군은 ‘달팽이 경주’를 즐긴다. 달팽이 경주는 경마와 비슷하다. 경주마에 돈을 걸듯 달팽이에 돈을 걸고 배당금을 받는다. 달팽이가 실제로 경주를 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달리는 달팽이를 응원할 뿐이다.

사행성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
1000원으로 시작해 1000만원까지

B군은 수업시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책상 밑에 숨긴 채 ‘사다리 게임’을 한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승패가 결정된다. 스마트폰 화면을 한두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틈날 때마다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다른 중학생 C(15)군은 인터넷 ‘내기 방송’에 푹 빠져 있다. 한 판에 100만원이 오가는 윷놀이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BJ(방송 진행자)가 던진 윷가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C군은 “다른 사람이 돈을 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직접 내 돈을 건 게 아닌데도 짜릿함을 느낀다”며 “경마장을 찾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D(18)양은 하루에도 서너 번 희비가 엇갈리는 경험을 한다. 스마트폰 게임에 필요한 ‘확률형 아이템’ 때문이다. ‘뽑기’와 비슷한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하기 전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다. 원하는 아이템이 한 번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심코 뽑다 보면 한 달 동안 모은 용돈이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 D양은 “아이템을 수십만원어치 사는 친구들도 있다”며 “어울려서 게임을 하려면 ‘현질’(현금 구매를 뜻하는 속어)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사실상 도박과 다를 바 없다는 지탄을 받아왔지만, 현재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지난해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 구성 비율, 획득 확률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절도 폭행 사기
2차 범죄 연결


스포츠 토토 또한 청소년 도박의 단골메뉴다. 고등학생 E(17)군은 1년 넘게 불법 스포츠 토토에 빠져 있다. 호기심에 5000원씩 몇 번 걸었는데 맞아떨어졌다. 요즘에는 한 판에 10만∼20만원을 ‘베팅’하기도 한다. 같이 판돈을 거는 친구도 생겼다. E군은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축구나 야구, 농구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도 한다.

고3 수험생 F(18)군은 불법 스포츠 토토로 인해 가출을 결심했다. 평범한 학생이던 그는 ‘토토’로 수십만원에 이르는 돈을 따는 친구가 내심 부러웠다. 그렇게 토토의 세계로 빠져든 F군은 용돈을 쪼개 1000원, 2000원을 걸었는데 재수가 좋았다고 한다. 갖고 싶던 신발을 가질 수 있었고, 친구들에게 ‘한턱’ 쏠 수도 있었다.

돈을 따는 맛을 알아버리면서 F군은 점점 도박에 빠져들었다. PC방 컴퓨터 앞에 앉아 도박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잃는 돈이 커졌다. 용돈으로는 부족해 학원비를 몰래 쏟아부었다. 이마저도 모자라 어머니 통장에 손을 댔다. 몰래 인출한 300만원을 모두 잃고나자 더는 집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두 달 동안 PC방을 전전했다. 무전취식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약 3만명이 ‘문제군’으로 추정된다. 시급한 개입이 필요한 도박중독을 겪고 있는 집단이 문제군이다. 약 12만명은 도박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업시간에도…
안 하면 왕따

스마트폰은 도박판을 학생들의 손바닥 안으로 끌고 와 또래문화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초등학생조차 손쉽게 인터넷 불법도박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도박사이트 주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된다. 이런 사이트에선 미성년자라도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대부분 가입이 가능하다. 한 사이트가 문을 닫아도 금세 다른 사이트로 옮겨갈 수 있다.

별다른 죄의식도 없다. 아이들은 이런 문화를 마냥 외면하기 힘들다고 한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듯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됐는데 혼자 빠지기 어색하다는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도박은 그저 돈내기가 아니라 친목다짐이 돼버렸다.

 

아이들은 ‘단톡방’(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비법을 나누기도 한다. 배당과 승률을 높일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나눈다. 한 발 더 나가 내기 주제를 정하고 돈을 걸기도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부터 국회의원 당선자 맞히기 등 일상의 모든 일이 돈을 걸 수 있는 도박이 된다. 친구 사이에 수만원에 이르는 ‘베팅’이 오간다. ‘외상값’ 혹은 ‘빌린 돈’을 기록한 회계장부까지 등장하곤 한다.

‘친구가 하니까 나도 한다’는 또래문화와 어디에서나 불법 도박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어린 타짜’를 양산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한 경찰학과 교수는 “친구를 따라서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죄의식 없이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이 많다”며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도박의 유혹에 노출되다 보니 도박을 불법이 아닌 하나의 ‘놀이’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처럼 ‘진행성 문제행동’은 청소년기에 시작돼 치료 시기를 놓치고 성인이 되었을 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스포츠토토, 달팽이 경주 등 종류 다양
3만명 문제군…12만명 위험군으로 분류

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하는 한 교수는 예방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청소년들은 도박의 심각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며 “도박중독 문제가 밖으로 드러난다면 이미 중독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므로 조기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도박으로 돈을 벌었을 때가 아닌 잃었던 기억을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부모는 청소년들의 여가에 대한 계획과 대안을 제공해 접근성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은 다른 범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부모 지갑이나 통장에 손을 대는 일은 다반사다. 절도나 인터넷 중고거래 사기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도박 빚 때문에 경찰서로 오게 된 청소년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며 “장래 희망이 ‘토사장’(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 운영자를 일컫는 은어)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고등학생도 있었다”고 전했다.


청소년에게까지 도박이 물들게 된 원인에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국내 불법 도박 시장의 규모가 100조원대를 넘어선 점은 그만큼 도박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국가적인 예방 차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통계다. 하지만 현재 불법 도박뿐만 아니라 주식, 복권 등 사실상의 도박인 금융 베팅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기성세대들이 도박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실제로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을 한 교육기관은 전국에서 1.7%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학교 보건교육기관에서는 인터넷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본 회의에 상정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전문가는 “청소년 도박 문제는 이제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사실상 도박예방에 대한 교육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라 전체가 도박으로 병들기 전에 학생, 교사, 부모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도박중독은 완치가 어렵고 가족관계 와해 또는 신용불량, 재산 손실 등 다양한 문제를 안게 된다. 제대로 된 사고가 형성되기 전인 청소년에게는 더욱더 치명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청소년 중독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해결 방안도 등장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하는 한 교수는 예방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청소년들은 도박의 심각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며 “도박중독 문제가 밖으로 드러난다면 이미 중독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므로 조기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도박으로 돈을 벌었을 때가 아닌 잃었던 기억을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부모는 청소년들의 여가에 대한 계획과 대안을 제공해 접근성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청소년 상담전문가는 “도박중독이 하나의 질병임을 인정하고 심리치료와 약물치료 등으로 도박 욕구 억제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사회적으로는 도박을 조장할 수 있는 분위기 경계, 사회 근본적 안전망과 감시망 구축, 도박에 대한 치료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도박문제에 대해 정부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도박 범죄와 관련해 "집행유예,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고 재범률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라며 "해당 범죄는 마약 관련죄와 동등하게 사회적 법익 차원으로 상향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심↑
정부 역할은?

또한, 그는 불법도박 예방 캠페인 영상을 지속해서 노출하고 도박 근절 관련 기획기사를 연중 보도를 통해 국민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초기예방에 힘을 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현재 청소년 도박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청소년에게 도박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며 올바른 인식을 키워주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게 각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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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