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명동 노점의 세계

하루 매출 100만원 ‘재벌 안 부럽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오늘날의 노점은 더 이상 서민을 위한 삶의 보루가 아니다.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함은 물론 ‘기업형 노점’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일정한 규제로 노점을 허용·제재하고는 있지만, 노점의 실질적 약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점에서도 논란이 제기된다. 이렇다 보니 세금을 내고 당당히 영업하는 자영업자들과의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 기본적으로 점포 임대료에 부수적 비용이 나가는 자영업자들은 가격경쟁력에서도 노점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울상이다.

늦은 밤 동네 어귀 노점에서 파는 어묵, 붕어빵, 떡볶이는 별미 중 별미다. 이들 노점상들은 대개 가게를 임대할 만한 돈이 없어 최후의 생계 수단으로 노점을 선택한다. 대부분의 노점이라 하면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생계형 수단의 장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노점의 이점 아닌 이점을 이용한 기업형 노점이 생기면서 빈곤층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노점 일부가 불법 이익 추구 대상으로 악용되고 있다.

계열사처럼…
3∼4개 운영도

노점상에도 등급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어 나왔다”라는 생계형 노점부터 하루 매출 100만원 이상 올리는 기업형 노점까지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에 노점이 생겨난지 20∼30년 이상 지나면서 노점 세계에도 부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노점 재벌이다. 마치 재벌 기업처럼 문어발식으로 노점을 운영하는 기업형 노점이 있는가 하면 상가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변에 노점을 차리는 프랜차이즈식 노점도 나타났다.

‘대한민국 노점상 1번지’라고 불리는 서울 명동의 중앙로. 이곳의 노점상들은 전국 노점상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명동에서 노점을 할 수만 있다면 로또복권 당첨 행운과 맞먹을 정도로 인생을 보장받은 셈이다. 그래서 명동은 ‘노점상의 엘도라도’라고 불린다. 유명세나 자릿세, 매출 규모에서 종로나 강남 일대의 생계형 노점상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이 지역 노점상 상당수는 개인이나 특정 조직이 여러 노점을 ‘거느리는’ 기업형인 점이 특징이다.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권리금은 최하 5000만∼7000만원선. 연간 70만원 남짓한 임대료에 월 10여만원의 사용료를 내는 종로나 강남 지역의 수십 배 이상이다.


소위 ‘노른자위’ 지점은 수천만원의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 이곳을 단속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핵심상권’의 경우 2평 남짓한 좌판의 권리금이 1억원을 웃돈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싼 ‘자릿세’에도 대다수 노점상은 ‘중앙로 입성’에 목을 맨다. 비용을 빼고도 매달 최하 800만원의 순익이 보장되기 때문.

한 상인은 “1억원 이상의 권리금이 붙는 ‘명당’의 경우 하룻밤에 200만∼300만원을 벌어들인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명동지역 전체 노점 230여개 중 중앙로 일대의 노점 수는 60여개. 노점 형태는 크게 리어카와 일명 ‘짝다리’로 불리는 키 낮은 리어카, 벽걸이 좌판 등으로 나뉜다. 영업시간은 오후 5∼10시. 일부 노점상들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거나 2교대로 영업을 한다. 화장실은 인근 은행 등을 이용하고 물은 공동수도가 없는 탓에 멀리서 차로 운반해온다. 한 노점상은 “식사는 교대로 노점을 봐주면서 인근 식당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노른자위’ 권리금만 최고 1억원
자녀에 명당자리 대물림하기도

노점상 절대 금지구역인 명동 한복판을 점령하고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들은 20년 넘게 독자적인 상권을 형성한 ‘명물’로 인정해달라는 입장이다. 모자 노점을 하는 김모(32)씨는 “수천만원의 권리금은 극히 일부 노점에 국한된 사례이며 생계형 노점이 대부분”이라며 “거리 청소와 쓰레기 관리는 물론 가급적 인근 상가에서 취급하는 품목은 판매를 자제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동의 노점은 오후 5시부터 연다. 이는 노점상끼리 만든 상조회에서 약속한 사항이다. 각자 정해진 위치에 매대가 설치되면 본격적인 장사가 시작된다. 명동 노점상들의 ‘취급품목’은 주로 여성용 액세서리나 의류, 각종 먹을거리. ‘종목’에 따라 마진도 천차만별.

가장 높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품목은 목걸이, 귀걸이 등 여성용 액세서리. 동대문, 남대문 시장에서 300∼500원에 대량 구매해 2000∼3000원에 판다. 먹을거리 노점처럼 조리기구 등 별도의 장비가 필요 없는 탓에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매출’을 올릴 수 있어 업계 선호도가 높다.

또 여성용 속옷이나 의류, 모자 등도 고수익을 보장한다. 한달 평균 500만∼1000만원의 순이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인기 업종은 기존 노점상들이 ‘꿰찬’ 경우가 많아 신입 노점상들은 좀처럼 취급할 수가 없다. 먹을거리 노점의 경우 주로 호떡, 계란빵, 어묵 등을 판매한다.


꿈 키우는 사람들
로또가 따로 없네

10년째 호떡 노점을 하고 있는 김모(45)씨의 경우 장비를 갖추는 데 100만원이 들었다. 7만∼8만원어치의 재료비로 호떡 400∼500개를 만든다. 재료비 160원에 초기 비용을 합친, 개당 원가 200원인 호떡을 500원에 팔아 300원이 남는다. 이 가게의 하루 평균 매출은 20만원선. 붕어빵이나 닭꼬치 등은 경기도에 있는 공장에서 반죽과 재료를 사서 만든다. 그러나 부대장비를 갖춰야 하고 마진이 낮아 별 인기가 없다.

이밖에 가짜 유명브랜드 의류를 판매하는 노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식 상가’들은 이들에 대해 관광특구로 지정된 만큼 외국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 쇼핑명소의 이미지를 실추한다며 당국의 단속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중구청은 노점상의 ‘완전근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음성적인 권리금 거래는 밝히기 힘들 뿐더러 조직화된 노점상들의 반발로 단속에 낭패를 겪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노점을 벌이다 적발되면 과태료만 물고 이튿날 다시 영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월 최하 500만원
조폭과 연계설도

전국 단위로 노점의 분포와 매출 규모 등을 파악한 자료는 아직 없다. 서울시가 파악한 서울시내 노점 수는 지난해 기준 약 8800곳에 달한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노점 영업이 증감하는 폭이 큰 데다 축제나 대형 행사 등 이벤트 위주로 영업하는 노점의 수는 집계하기조차 어려워 현실적으로 정책 대상이 될 노점의 수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여기에 일반 상가 건물에 매장을 갖고 있거나 임대 중인 상인이 매장 앞 보도를 이용해 노점을 여는 식의 영업 형태까지 있다. 노점상인들의 구성은 천차만별인 데 비해 노점 정책은 강경 단속과 암묵적 인정 사이에서만 왔다갔다 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만 놓고 보면 (노점상들이) 불법인 거 우리가 잘 알죠. 그런데 강제 집행해도 얼마 안 있으면 또 그 자리에 들어와 버리니까 사실 예산 낭비인 면도 있어요. 그렇다고 전면 합법화하면 일반 상인들이나 주민들 민원에다가 법령에 조례에 엄청 복잡해져서 들들 볶일 텐데, 그건 그거대로 정착할 때까지 문제가 많을 거예요.”

익명을 요구한 한 구청의 관계자도 속내는 복잡했다. 그는 오히려 법이 현실을 그대로 다 담을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물리력을 쓰지 않기로 하는 서로간의 신사협약을 맺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노점단체 관계자와도 의견이 통했다.

노점상연합 관계자는 “일단 소모적인 단속만이라도 멈추고 서로 조금씩이라도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은 서로가 너무 불신이 커 한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즉 거리를 불법점유한다는 인식을 조금만 전환하면 거리를 합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세금이 노점상들의 아킬레스건인 건 맞다. 인정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자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대기업들은 더 많이 탈세하고 일반 상가의 상인들도 길에다 비품 내놓고 도로 무단점유하는 부분도 많다. 형평성 차원에서 그 정도만이라도 양해를 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생활정보지에 창업컨설팅 광고까지
자기들끼리 조합 만들어 엄격 통제


노점은 더 이상 생계를 잇기 위해 거리로 나온 빈곤층이 아닌, 세금을 피하려는 부유한 탈세 상인으로 변질됐다. 노점 창업을 컨설팅한다는 광고가 생활정보지에 실리고 노점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했는가 하면, 노점매매 브로커까지 활개치고 있을 만큼 ‘길거리 협동조합’은 이제는 하나의 풍경이 됐다. 노점을 운영하는 박모(45)씨는 “노점상 조합은 칼만 안 들었지 깡패”라고 했다.

실제로 일부 지역의 노점상은 폭력배가 ‘관리’하고 있다. 노점조직은 일사불란하고 폐쇄적이다. 20년 넘게 독자적으로 상권을 관리해온 노하우도 상당하다. 이러한 노점 조직은 먹을거리,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의 노점 수를 알맞게 배합해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막고 있으며 노점 매매 또한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권리금을 받고 노점을 넘겼다가 조직에 적발되면 노점에 대한 영업권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이 주변 상권의 영업을 방해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도상 영업시설물’과 달리 번화가, 유흥가에 늘어선 노점을 정비하는 것은 어렵다.

서울시는 특정 지역에 ‘노점상 거리’를 꾸려 노점들을 입주시킨 뒤 관광명소로 꾸민다는 복안이다. 장기적으로는 도로점용료를 받는 등 노점상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점상 조직들은 “생존권을 말살하는 행위로 즉각 철회돼야 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계속해서 노점상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단속이 쉬운 변두리의 생계형 노점만 일시적으로 사라졌을 뿐 중심가의 조직화한 기업형 노점은 손도 대지 못했다. 게다가 번화가, 유흥가에 자리 잡은 기업형 노점은 더 이상 훈훈하지 않다. 카바이트 불빛의 ‘낭만’은 스러지고 ‘비즈니스’만 남았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포장마차 3∼4개를 철거하는 데만 1년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형 노점을 뿌리 뽑겠다고 작심한 뒤 수년간 역량을 집중해 꾸준히 단속해나가지 않는다면 노점을 정비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액세서리 장사 짭짤
알바 고용… 2교대

세금과 비싼 월세에 허덕이는 영세 상인들 눈에 싼 가격을 무기로 손님을 빼앗아가는 노점상들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렇다고 당장 먹고 살기 어려워 길거리에서 좌판을 펼쳐놓은 노점상들의 생계 터전을 철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중구청은 기업형 노점을 막기 위해 하반기 중에 ‘노점실명제’를 실시하기로 하고 다음달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한 전문가는 “세금을 내는 상인들은 장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불법 노점상들은 제도권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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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