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그룹 장손 급사로 본' 비명횡사한 재벌가 황태자들

금지옥엽 키워 가슴에 묻다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재벌가엔 유독 단명한 사람들이 많다. 스트레스가 심해서일까.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로열패밀리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얼마 전 44세,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대성그룹 장손과 에넥스 차남도 그렇다.

대성가 장손 김정한 라파바이오 대표가 사망했다. 대성그룹에 따르면 김영대 대성 회장의 장남 김 대표는 지난 1일 오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향년 44세.

비운의 사고
갑자기 떠나

김 대표는 대성그룹 창업주인 고 김수근 명예회장의 맏손자다. 미국 루이스앤클락 대학(물리학 전공)과 런던대학(경영학)을 졸업하고 2002년 대성산업 연구개발실 이사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기계사업부 상무, 부사장 등을 거쳐 사장에 올랐지만 지난해 4월 물러났다.

대신 그의 동생(김 회장의 3남) 신한씨가 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같은 해 5월엔 김 대표가 맡고 있는 라파바이오, 대성엘앤에이, 제이헨, 포디알에스 등 4개 회사가 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 회장의 차남 인한씨는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대성은 1947년 대성산업공사로 출발해 에너지·해외자원개발, 산업 기초소재, 기계전자·정보통신 등 사업을 펼쳐왔다. 계열사인 대성창업투자, 대성, 코리아닷컴 등은 IT·출판·영화·방송콘텐츠·음악·게임·애니메이션 사업도 해왔다.


장남 김영대 회장과 차남 김영민 회장, 3남 김영훈 회장 등 대성가 삼형제는 김 창업주가 작고한 2001년 지분 다툼을 벌인 뒤 등을 돌려 아직까지 발길을 끊고 있다. 이들은 2006년 모친 고 여귀옥씨가 타계하자 유산상속을 놓고 또 다시 갈등을 빚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삼형제는 유산정리에 합의했지만 이후 전혀 왕래가 없다. 최근까진 ‘대성’ 사명을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세 회장은 각각 대성산업, 서울도시가스, 대성그룹을 독자경영하고 있지만 법적으론 계열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김영대 대성 회장 장남 심장마비 사망
에넥스 창업주 차남도 출장 갔다 숨져

업계 관계자는 “(김 대표는) 잘나가다 갑자기 동생에게 밀려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라며 “직접 경영한 라파바이오도 경영난 속에 임금 체불로 고소를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30일엔 에넥스 창업주의 차남이 출장을 갔다 숨지는 일도 있었다. 국내 주방가구 빅3 중 하나로 꼽히는 에넥스의 박진호 전 사장은 미국 서부지역 출장을 위해 탑승한 항공기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54세. 업계에선 그가 별다른 지병이 없었던 점으로 미뤄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넥스 창업주 박유재 회장의 차남인 박 전 사장은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KAIST)에서 기계공학과 항공우주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5년 한국통신에 입사했다. 위성사업단 무궁화3호 발사 기술부장으로 일했던 그는 2002년 에넥스 기획담당 상무를 맡아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2006∼2010년 에넥스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다 에넥스 중국법인을 지휘하던 형 박진규 현 에넥스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박 전 사장은 에넥스 관계사이자 에넥스 가구 시공·사후서비스(A/S) 등을 담당하는 엔비스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대성가 장손과 에넥스 차남이 급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갑작스런 사고로 비명횡사한 재벌가 자녀들이 회자되고 있다.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에 꼭 한 명씩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문의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은 비운의 로열패밀리들은 다음과 같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은 2년 전 아들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의 차남 제홍씨는 러시아 한 호텔에서 추락사했다. 러시아로 출장 갔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 33세.

사조그룹에 따르면 제홍씨는 2014년 7월24일 판로개척 목적으로 출장을 떠나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는 한 호텔 9층 객실에 투숙했다. 그는 이날 새벽 호텔 식당에서 출장 동료, 현지 지사 직원 등과 식사 이후 객실로 들어간 뒤 지상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현지 수사당국은 제홍씨가 객실 창문을 여는 과정에서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추락한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주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제홍씨의 사망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아들을 가슴에 묻은 주 회장의 마음고생은 말로 헤아릴 수 없었다. 한동안 아들 얘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흘렸다는 후문. 제홍씨는 생전 남자답고 적극적인 성격이라 주 회장의 애정이 각별했다고 한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도 금지옥엽으로 키운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그의 차남 은혁씨는 2013년 7월 물놀이 중 익사했다. 향년 36세.

경기 가평군 미사리 개인별장 앞 강에서 가족과 물놀이를 하다 갑자기 정신을 잃어 현장에 출동한 119에 의해 구조됐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4시간 만에 숨졌다.

“하늘이 버렸다”
가슴 찡한 사연

경찰은 은혁씨가 수영에 능숙했고 강가 선착장에서 보트 운행에 사용되는 전기케이블이 파손된 것을 발견, 은혁씨가 고압전류에 감전돼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최 전 회장과 그의 둘째부인인 가수 배인순씨 사이에서 태어난 은혁씨는 2011년부터 학교법인 공산학원 이사를 맡아 최 전 회장과 함께 경기 안성시 소재 동아방송대학을 경영해왔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8명의 형제와 슬하에 8남1녀의 자녀를 뒀다. 3세까지 합하면 30여명이 넘는 대가족이다. 다복한 현대가문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대로 슬픈 가족사를 갖고 있다.

1982년 당시 인천제철 사장으로 재직하던 정 창업주의 장남 몽필씨는 49세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몽필씨는 승용차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트레일러를 들이받아 사망했는데, 그는 당시 일본에서 귀국하는 ‘왕회장’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길이었다.

정 창업주로선 청천벽력과 같은 사고인 셈이다. 그는 장남을 잃고 “하늘이 나를 버렸다”는 말로 주위에 비통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몽필씨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함께 경영권 승계 1순위였다.

수영하다 익사…외국서 추락사
유학 중 참변에 의문의 죽음도


롯데가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넷째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장남 동학씨가 사망한 가슴 저린 사연을 갖고 있다.

동학씨는 2005년 태국 방콕공항 인근 한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7세. 그는 후배 한 명과 태국에 입국한 이후 사업차 필리핀으로 출국을 앞두고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를 당한 동학씨는 롯데에서 어떤 직책도 맡고 있지 않았다.

동학씨는 ‘롯데가 악동’으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1994년 ‘프라이드 폭력 사건’을 시작으로, 2년 뒤인 1996년 동거녀와 함께 대마초와 코카인을 흡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1999년 롯데가문 선영 도굴범들의 현장검증 때 용의자들을 폭행해 물의를 빚은 데 이어 2000년엔 음주운전을 하다 추돌사고를 낸 뒤 경찰관을 매달고 질주해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동학씨는 해외에서 주로 생활하다 변을 당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1990년 장남 선재씨를 잃었다. 선재씨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23세에 요절했다. 김 전 회장과 부인 정희자씨는 아들의 사고 소식에 통곡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선재씨가 사고를 당한 이유가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어머니 정씨를 마중하러 가던 길이란 점은 이들 부부의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충분했다.

선재씨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보스턴 MIT대학에서 산업공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정씨는 졸지에 세상을 등진 선재씨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듬해 아들의 이름을 딴 선재미술관을 설립했다. 김 전 회장 부부는 1994년 선재씨를 닮았다는 이유로 톱스타 L씨를 양아들 삼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도 갑작스럽게 아들을 사고로 떠나보냈다. 이 회장은 2004년 9월 54세에 지병으로 별세한 남편 고 양회문 전 회장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경영일선에 나선 이 회장은 후계 작업을 서둘렀다. 시아버지 양재봉 창업주도 직접 승계를 챙겼다.


집안의 장손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은 당시 대학생이었다. 당초 해외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바로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실무경험이 우선이란 판단에서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양 부사장은 2006년 8월 공채로 대신증권에 입사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시작했다. 사고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2007년 1월 유일한 남동생 홍준씨가 불운한 사고로 사망한 것.

자녀 보내고
가슴에 대못

이 회장의 차남 홍준씨는 모로코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23세였다. 그는 2006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 교환학생 자격으로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방학을 맞아 모로코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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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