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전쟁… 국민들 뿔났다 (4) 건강위협하는 유해물질

‘멜라민 파동’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멜라민 파동은 올해초부터 연이어 터진 ‘쥐머리’ 새우깡과 ‘칼날’ 참치캔 등 식품 이물질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동안 터진 식품 이물질 사건은 일회성 성격이 강하지만 이번 멜라민 사태는 신체에 유해한 첨가물이 어느 식품에 들어갔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멜라민 첨가식품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가운데 유사한 저질 유해 첨가물이 또다시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식품 산업 전반에 후폭풍도 예고하고 있다.

“도대체 뭘 먹어야 하나”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A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문구점 4곳은 수업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나온 아이들이 ‘불량식품’을 사먹는라 장사진을 이뤘다. 대부분의 문구점들은 입구에 한평 남짓한 가판을 만들어 1백여가지가 넘는 불량식품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아이들이 손에 쥔 사탕과 과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조악한 용기로 포장돼 위생상태가 의심스러웠다. 잘 팔린다는 ‘별사탕’은 제조원만 기록돼 있을 뿐 원료수입국 등은 일절 표시돼 있지 않았다.
이런 과자류는 대부분 중국과 베트남, 태국, 멕시코 등 국외에서 수입된 원료로 만든 것으로 이번 멜라민 파동에서 보듯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다. 가격은 대부분 단돈 1백원.
초등학교 4학년 P군은 “반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 끝나면 문방구에 들려 과자와 사탕 등을 사먹는다”고 말했다. P군은 또 “엄마, 아빠가 불량식품 먹지 말라고 해서 몰래 사먹고 집에 들어간다”며 웃었다.
옆에 있던 K군도 “아이스크림도 2백원밖에 안해 하루에 3~4개씩 사먹는다”며 “1천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이들이 국적불명의 불량식품을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배경은 우선 값이 싸다는 데 있다. 단돈 1천원이면 사탕과 과자, 껌, 아이스크림, 초코릿 등을 종류별로 10개나 구입할 수 있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국적 불명의 과자와 사탕들이 날개돋힌 듯이 팔려나가 제2, 제3의 멜라민에 우리 아이들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멜라민은 ‘트리아미드 트리아진’으로 불리는 공업용 화학물질로 암모니아와 탄산가스로 합성된 요소 비료를 가열해 만든다.
멜라민은 겉으로만 보면 밀가루처럼 보이지만 밀가루와 달리 인체에 해롭다. 사료를 비롯해 우유에 멜라민을 많이 첨가하는 이유는 멜라민에 들어 있는 탄소와 질소 성분 때문이다. 우유 속에는 탄소와 질소가 들어 있는데 멜라민의 탄소와 질소 성분이 뒤섞이면 함량이 높아진다. 묽은 우유의 경우 악덕업자들이 단백질이 많은 것처럼 눈속임을 통해 좋은 품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멜라민은 포름알데히드와 반응해 만들어진 멜라민수지의 원료가 된다. 이는 무게에 비해 단단하고 방수성이 뛰어나 기계부품, 접착제, 산업디자인 재료, 건축 재료 등에도 폭넓게 쓰인다. 문제는 멜라민으로 만든 식기들이 고온의 열을 받으면 녹아 음식물에 섞일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주방기구인 프라이팬 코팅제 역시 멜라민 수지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시중에 유통중인 코팅 프라이팬은 전체 프라이팬 시장의 90% 이상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스테인레스 스틸 프라이팬보다 싸고 가볍고 또 코팅처리가 돼 있어서 조리할 때 음식물이 눌러 붙지도 않고, 설사 눌러 붙는다 해도 잘 닦여서 코팅 프라이팬은 주방용품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 코팅 재료가 다름 아닌 멜라민에 포름알데히드를 반응시켜 만든 ‘멜라민 수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프라이팬 코팅제는 세계 어디서나 멜라민 수지로 동일하다. 멜라민이 접착력이 뛰어난데다 내열성도 높이 때문이다. 물론 코팅이 벗겨지지 않으면 인체에 유해하지 않기 때문에 당국도 멜라민 코팅 프라이팬에 대해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주부들이 코팅이 벗겨져 있는지 잘 인식하기 못하고 코팅제의 위해성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로 코팅이 벗겨진 이후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부 J씨는 “집에 코팅 프라이팬을 열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멜라민 수지로 코팅을 입힌다는 사실은 그 동안 전혀 몰랐다”며 “어떻게 그런 사실을 제조회사들은 알려주지 않을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결국 벗겨진 멜라민 수지 만큼을 고스란히 먹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프라이팬 제조사 마저도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할 정도다.
한 업체 관계자는 “코팅 프라이팬은 엄격히 말하면 좋은 제품은 아니다.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써서는 안 된다. 벗겨지기 전에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팅 프라이팬에 소금구이를 하게 되면 코팅제가 염분에 파괴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염분을 피하고 설거지할 때도 무리하게 바닥을 긁지 말라”고 조언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중국에서 수입돼 오는 코팅 프라이팬의 경우는 제작 공정과정에서 열처리 시간이 적기 때문에 코팅이 벗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원 식의약안전팀의 한 관계자는 “멜라민 식기나 주방용품들은 이론적으로는 3백47도가 되어야 녹는 것으로 되어 있어 인체에 무해하다고 하지만 뜨거운 프라이팬의 기름이나 열기에 서서히 녹아내려 음식물에 혼합될 수도 있어 멜라민 주방기구나 식기가 무조건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멜라민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 여러 제품에서 검출되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
유명 차(茶) 브랜드 ‘립톤(Lipton)’ 제품 일부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고 제조사인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사(社)가 지난 9월30일 밝혔다.

학교 앞은 ‘멜라민 무풍지대’…“우리 아이들이 노출됐다”
차‘립톤’, 유아용 ‘DHA+AA 야채 시리얼’ 등도 검출
멜라민으로 만든 식기, 고온 열 받으면 녹아 음식물과 섞여
프라이팬 제조사도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 위험하다” 경고

유니레버는 “자체 검사결과 홍콩과 마카오에서 판매된, 중국에서 생산된 립톤 밀크 티 분말 중 ‘오리지널’과 ‘골드’ 두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해당 제품을 시중에서 수거했다”고 밝혔다. 유니레버는 지난 9월 중순에도 대만에서 멜라민에 오염된 분유가 원료로 사용된 ‘립톤 그린 밀크 티’를 수거했었다.
영국의 캐드버리사(社)는 지난 9월29일 “내부검사 결과 일부 초콜릿 제품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돼 홍콩, 대만, 호주에서 시판 중인 초콜릿에 대해 리콜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명보(明報) 등 홍콩 언론들은 지난 9월30일 “캐드버리사가 고객들이 자사 제품을 먹도록 방치하다가 멜라민 파동이 불거진 지 2주일이 지나서야 뒤늦게 멜라민 검출 사실을 시인했다”고 비난했다.
또 유아용 ‘DHA+AA 야채 시리얼’ 등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미국의 하인즈사(社)는 “원료 공급원을 중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교체할 방침이다”는 이메일 보도자료를 돌렸다.
인도네시아 보건당국도 중국에서 불법 수입된 두유(豆乳) 4개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수거에 들어갔다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지난 9월30일 보도했다.
한편, 말라카이트그린이나 멜라민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검출된 현지 업체에 대해 수입을 잠정 금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1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는 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유해물질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현지 수출업체 제품에 대해 개선대책이 제출될 때까지 수입을 잠정 금지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안대로 식품위생법이 개정되면 멜라민이나 말라카이트그린, 니트로퓨란계 항생제 등 식품에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외국 식품업체는 더 이상 우리나라로 제품을 수출할 수 없게 된다.
개정안은 또 수입상이 해당 업체로부터 식품 수입을 재개하려면 유해물질이 포함된 경위와 개선사항에 대한 확인서를 현지 업체로부터 받아 당국에 제출하도록 했다고 식약청은 설명했다. 이는 멜라민 파동 등 수입식품 사고가 계속됨에 따라 현지 식품 수출업체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멜라민 파문’으로 뜨는 먹거리는?
안전 먹거리 뭐가 있지?
중국발 멜라민 공포가 식품 전체로 확산되면서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자류 자체를 사지 않겠다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가공식품 과자 소비가 줄고 있는 대신, 떡·한과 등의 전통 간식, 집에서 직접 빵을 만들 수 있는 홈베이킹 관련 제품, 유기농 먹거리 등은 매출이 늘고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사는 김윤진씨는 “그동안 4살짜리 딸아이에게 사주었던 초콜릿이 아무래도 찝찝하다”며 “앞으로 과자류는 되도록 사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기회에 집에서 직접 빵이나 간식을 만들 수 있는 미니오븐을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에서는 홈베이킹 관련 상품의 22~26일 판매량이 이전 주(15~19일)에 비해 25%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븐기, 핸드 믹서기, 제빵 믹스제품, 계량컵, 스쿠프 등이 인기 상품이다. 멜라민 성분이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식기류도 중국산이나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홈베이킹 코너가 평상시보다 3배 가량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며 “연말까지 유기농 도넛 등 안전한 먹거리와 관련된 상품 비중을 늘리고, 문화센터에서도 ‘홈메이드 베이킹’ ‘샌드위치만들기’ 등 어린이 간식 관련 강좌를 30%가량 늘릴 예정이다”고 말했다.
과자에 이어 자판기용 커피 크림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돼 커피크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커피 대체제인 ‘차(茶)음료’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9월30일 롯데마트 관계자에 따르면 멜라민 파동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커피크림의 매출이 전주에 비해 11.4% 가량 감소한 데 반해 녹차티백과 오렌지 주스 등 과즙음료의 매출은 각각 3%, 5% 신장했다.
녹차 브랜드 ‘설록’을 운영하는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도 “녹차의 매출이 한 주 동안에만 4% 이상 성장했다”며 “주말 동안 대형마트에서 커피 믹스의 판매율이 10% 전후로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커피 기피 현상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멜라민이 함유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산 커피크림이 국내에 수입됐다고 발표한 직후부터 발생했다.
문제의 커피크림이 자판기 커피, 소규모 커피 전문점 등에 공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실주스, 녹차 등 대체재를 찾는 손길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
서울 강남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현규씨는 “최근 들어서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커피 대신 오렌지 주스나 녹차를 대접하고 있다”며 “커피를 내놓아도 손을 대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더욱이 멜라민 파동에서 시작된 먹거리 불신은 소비자들의 입맛과 소비행태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커피전문점에서도 커피 크림이나 유지방이 들어가지 않는 음료를 주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아예 커피전문점으로의 발길을 끊고 ‘티 하우스’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서울 명동과 대학로, 역삼동에 위치한 ‘오 설록 티 하우스’, 이대 앞 ‘세이지’ 같은 티 카페 역시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려 방문자수가 2주 전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신촌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이은영씨 역시 “커피크림이 들어가는 ‘라떼류’의 인기는 꺾이고 블랙커피나 아메리카노 등 유지방이 없는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한편, 멜라민 성분이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식기류 중에서도 중국산이나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수입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터키산, 독일산, 일본산 등 비(非)중국산 식기류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국내 과자제품의 멜라민 검출 소식이 보도된 지난 24일 이후 2배로 증가했다. 또 이유식 조리기구, 식기구 중에서도 사기 재질로 만들어졌거나 아이 입에 닿는 부분이 스테인리스 소재인 제품들의 판매량이 호조를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멜라민 파동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민감하게 반응해 홈메이드 요리와 관련 제품, 친환경 소재 식기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