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전쟁… 국민들 뿔났다 (4) 건강위협하는 유해물질

‘멜라민 파동’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멜라민 파동은 올해초부터 연이어 터진 ‘쥐머리’ 새우깡과 ‘칼날’ 참치캔 등 식품 이물질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동안 터진 식품 이물질 사건은 일회성 성격이 강하지만 이번 멜라민 사태는 신체에 유해한 첨가물이 어느 식품에 들어갔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멜라민 첨가식품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가운데 유사한 저질 유해 첨가물이 또다시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식품 산업 전반에 후폭풍도 예고하고 있다.

“도대체 뭘 먹어야 하나”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A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문구점 4곳은 수업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나온 아이들이 ‘불량식품’을 사먹는라 장사진을 이뤘다. 대부분의 문구점들은 입구에 한평 남짓한 가판을 만들어 1백여가지가 넘는 불량식품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아이들이 손에 쥔 사탕과 과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조악한 용기로 포장돼 위생상태가 의심스러웠다. 잘 팔린다는 ‘별사탕’은 제조원만 기록돼 있을 뿐 원료수입국 등은 일절 표시돼 있지 않았다.
이런 과자류는 대부분 중국과 베트남, 태국, 멕시코 등 국외에서 수입된 원료로 만든 것으로 이번 멜라민 파동에서 보듯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다. 가격은 대부분 단돈 1백원.
초등학교 4학년 P군은 “반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 끝나면 문방구에 들려 과자와 사탕 등을 사먹는다”고 말했다. P군은 또 “엄마, 아빠가 불량식품 먹지 말라고 해서 몰래 사먹고 집에 들어간다”며 웃었다.
옆에 있던 K군도 “아이스크림도 2백원밖에 안해 하루에 3~4개씩 사먹는다”며 “1천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이들이 국적불명의 불량식품을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배경은 우선 값이 싸다는 데 있다. 단돈 1천원이면 사탕과 과자, 껌, 아이스크림, 초코릿 등을 종류별로 10개나 구입할 수 있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국적 불명의 과자와 사탕들이 날개돋힌 듯이 팔려나가 제2, 제3의 멜라민에 우리 아이들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멜라민은 ‘트리아미드 트리아진’으로 불리는 공업용 화학물질로 암모니아와 탄산가스로 합성된 요소 비료를 가열해 만든다.
멜라민은 겉으로만 보면 밀가루처럼 보이지만 밀가루와 달리 인체에 해롭다. 사료를 비롯해 우유에 멜라민을 많이 첨가하는 이유는 멜라민에 들어 있는 탄소와 질소 성분 때문이다. 우유 속에는 탄소와 질소가 들어 있는데 멜라민의 탄소와 질소 성분이 뒤섞이면 함량이 높아진다. 묽은 우유의 경우 악덕업자들이 단백질이 많은 것처럼 눈속임을 통해 좋은 품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멜라민은 포름알데히드와 반응해 만들어진 멜라민수지의 원료가 된다. 이는 무게에 비해 단단하고 방수성이 뛰어나 기계부품, 접착제, 산업디자인 재료, 건축 재료 등에도 폭넓게 쓰인다. 문제는 멜라민으로 만든 식기들이 고온의 열을 받으면 녹아 음식물에 섞일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주방기구인 프라이팬 코팅제 역시 멜라민 수지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시중에 유통중인 코팅 프라이팬은 전체 프라이팬 시장의 90% 이상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스테인레스 스틸 프라이팬보다 싸고 가볍고 또 코팅처리가 돼 있어서 조리할 때 음식물이 눌러 붙지도 않고, 설사 눌러 붙는다 해도 잘 닦여서 코팅 프라이팬은 주방용품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 코팅 재료가 다름 아닌 멜라민에 포름알데히드를 반응시켜 만든 ‘멜라민 수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프라이팬 코팅제는 세계 어디서나 멜라민 수지로 동일하다. 멜라민이 접착력이 뛰어난데다 내열성도 높이 때문이다. 물론 코팅이 벗겨지지 않으면 인체에 유해하지 않기 때문에 당국도 멜라민 코팅 프라이팬에 대해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주부들이 코팅이 벗겨져 있는지 잘 인식하기 못하고 코팅제의 위해성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로 코팅이 벗겨진 이후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부 J씨는 “집에 코팅 프라이팬을 열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멜라민 수지로 코팅을 입힌다는 사실은 그 동안 전혀 몰랐다”며 “어떻게 그런 사실을 제조회사들은 알려주지 않을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결국 벗겨진 멜라민 수지 만큼을 고스란히 먹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프라이팬 제조사 마저도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할 정도다.
한 업체 관계자는 “코팅 프라이팬은 엄격히 말하면 좋은 제품은 아니다.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써서는 안 된다. 벗겨지기 전에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팅 프라이팬에 소금구이를 하게 되면 코팅제가 염분에 파괴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염분을 피하고 설거지할 때도 무리하게 바닥을 긁지 말라”고 조언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중국에서 수입돼 오는 코팅 프라이팬의 경우는 제작 공정과정에서 열처리 시간이 적기 때문에 코팅이 벗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원 식의약안전팀의 한 관계자는 “멜라민 식기나 주방용품들은 이론적으로는 3백47도가 되어야 녹는 것으로 되어 있어 인체에 무해하다고 하지만 뜨거운 프라이팬의 기름이나 열기에 서서히 녹아내려 음식물에 혼합될 수도 있어 멜라민 주방기구나 식기가 무조건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멜라민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 여러 제품에서 검출되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
유명 차(茶) 브랜드 ‘립톤(Lipton)’ 제품 일부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고 제조사인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사(社)가 지난 9월30일 밝혔다.

학교 앞은 ‘멜라민 무풍지대’…“우리 아이들이 노출됐다”
차‘립톤’, 유아용 ‘DHA+AA 야채 시리얼’ 등도 검출
멜라민으로 만든 식기, 고온 열 받으면 녹아 음식물과 섞여
프라이팬 제조사도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 위험하다” 경고

유니레버는 “자체 검사결과 홍콩과 마카오에서 판매된, 중국에서 생산된 립톤 밀크 티 분말 중 ‘오리지널’과 ‘골드’ 두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해당 제품을 시중에서 수거했다”고 밝혔다. 유니레버는 지난 9월 중순에도 대만에서 멜라민에 오염된 분유가 원료로 사용된 ‘립톤 그린 밀크 티’를 수거했었다.
영국의 캐드버리사(社)는 지난 9월29일 “내부검사 결과 일부 초콜릿 제품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돼 홍콩, 대만, 호주에서 시판 중인 초콜릿에 대해 리콜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명보(明報) 등 홍콩 언론들은 지난 9월30일 “캐드버리사가 고객들이 자사 제품을 먹도록 방치하다가 멜라민 파동이 불거진 지 2주일이 지나서야 뒤늦게 멜라민 검출 사실을 시인했다”고 비난했다.
또 유아용 ‘DHA+AA 야채 시리얼’ 등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미국의 하인즈사(社)는 “원료 공급원을 중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교체할 방침이다”는 이메일 보도자료를 돌렸다.
인도네시아 보건당국도 중국에서 불법 수입된 두유(豆乳) 4개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수거에 들어갔다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지난 9월30일 보도했다.
한편, 말라카이트그린이나 멜라민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검출된 현지 업체에 대해 수입을 잠정 금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1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는 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유해물질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현지 수출업체 제품에 대해 개선대책이 제출될 때까지 수입을 잠정 금지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안대로 식품위생법이 개정되면 멜라민이나 말라카이트그린, 니트로퓨란계 항생제 등 식품에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외국 식품업체는 더 이상 우리나라로 제품을 수출할 수 없게 된다.
개정안은 또 수입상이 해당 업체로부터 식품 수입을 재개하려면 유해물질이 포함된 경위와 개선사항에 대한 확인서를 현지 업체로부터 받아 당국에 제출하도록 했다고 식약청은 설명했다. 이는 멜라민 파동 등 수입식품 사고가 계속됨에 따라 현지 식품 수출업체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멜라민 파문’으로 뜨는 먹거리는?
안전 먹거리 뭐가 있지?
중국발 멜라민 공포가 식품 전체로 확산되면서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자류 자체를 사지 않겠다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가공식품 과자 소비가 줄고 있는 대신, 떡·한과 등의 전통 간식, 집에서 직접 빵을 만들 수 있는 홈베이킹 관련 제품, 유기농 먹거리 등은 매출이 늘고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사는 김윤진씨는 “그동안 4살짜리 딸아이에게 사주었던 초콜릿이 아무래도 찝찝하다”며 “앞으로 과자류는 되도록 사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기회에 집에서 직접 빵이나 간식을 만들 수 있는 미니오븐을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에서는 홈베이킹 관련 상품의 22~26일 판매량이 이전 주(15~19일)에 비해 25%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븐기, 핸드 믹서기, 제빵 믹스제품, 계량컵, 스쿠프 등이 인기 상품이다. 멜라민 성분이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식기류도 중국산이나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홈베이킹 코너가 평상시보다 3배 가량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며 “연말까지 유기농 도넛 등 안전한 먹거리와 관련된 상품 비중을 늘리고, 문화센터에서도 ‘홈메이드 베이킹’ ‘샌드위치만들기’ 등 어린이 간식 관련 강좌를 30%가량 늘릴 예정이다”고 말했다.
과자에 이어 자판기용 커피 크림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돼 커피크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커피 대체제인 ‘차(茶)음료’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9월30일 롯데마트 관계자에 따르면 멜라민 파동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커피크림의 매출이 전주에 비해 11.4% 가량 감소한 데 반해 녹차티백과 오렌지 주스 등 과즙음료의 매출은 각각 3%, 5% 신장했다.
녹차 브랜드 ‘설록’을 운영하는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도 “녹차의 매출이 한 주 동안에만 4% 이상 성장했다”며 “주말 동안 대형마트에서 커피 믹스의 판매율이 10% 전후로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커피 기피 현상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멜라민이 함유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산 커피크림이 국내에 수입됐다고 발표한 직후부터 발생했다.
문제의 커피크림이 자판기 커피, 소규모 커피 전문점 등에 공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실주스, 녹차 등 대체재를 찾는 손길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
서울 강남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현규씨는 “최근 들어서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커피 대신 오렌지 주스나 녹차를 대접하고 있다”며 “커피를 내놓아도 손을 대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더욱이 멜라민 파동에서 시작된 먹거리 불신은 소비자들의 입맛과 소비행태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커피전문점에서도 커피 크림이나 유지방이 들어가지 않는 음료를 주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아예 커피전문점으로의 발길을 끊고 ‘티 하우스’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서울 명동과 대학로, 역삼동에 위치한 ‘오 설록 티 하우스’, 이대 앞 ‘세이지’ 같은 티 카페 역시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려 방문자수가 2주 전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신촌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이은영씨 역시 “커피크림이 들어가는 ‘라떼류’의 인기는 꺾이고 블랙커피나 아메리카노 등 유지방이 없는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한편, 멜라민 성분이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식기류 중에서도 중국산이나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수입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터키산, 독일산, 일본산 등 비(非)중국산 식기류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국내 과자제품의 멜라민 검출 소식이 보도된 지난 24일 이후 2배로 증가했다. 또 이유식 조리기구, 식기구 중에서도 사기 재질로 만들어졌거나 아이 입에 닿는 부분이 스테인리스 소재인 제품들의 판매량이 호조를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멜라민 파동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민감하게 반응해 홈메이드 요리와 관련 제품, 친환경 소재 식기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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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