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전쟁… 국민들 뿔났다 (4) 건강위협하는 유해물질

‘멜라민 파동’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멜라민 파동은 올해초부터 연이어 터진 ‘쥐머리’ 새우깡과 ‘칼날’ 참치캔 등 식품 이물질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동안 터진 식품 이물질 사건은 일회성 성격이 강하지만 이번 멜라민 사태는 신체에 유해한 첨가물이 어느 식품에 들어갔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멜라민 첨가식품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가운데 유사한 저질 유해 첨가물이 또다시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식품 산업 전반에 후폭풍도 예고하고 있다.

“도대체 뭘 먹어야 하나”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A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문구점 4곳은 수업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나온 아이들이 ‘불량식품’을 사먹는라 장사진을 이뤘다. 대부분의 문구점들은 입구에 한평 남짓한 가판을 만들어 1백여가지가 넘는 불량식품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아이들이 손에 쥔 사탕과 과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조악한 용기로 포장돼 위생상태가 의심스러웠다. 잘 팔린다는 ‘별사탕’은 제조원만 기록돼 있을 뿐 원료수입국 등은 일절 표시돼 있지 않았다.
이런 과자류는 대부분 중국과 베트남, 태국, 멕시코 등 국외에서 수입된 원료로 만든 것으로 이번 멜라민 파동에서 보듯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다. 가격은 대부분 단돈 1백원.
초등학교 4학년 P군은 “반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 끝나면 문방구에 들려 과자와 사탕 등을 사먹는다”고 말했다. P군은 또 “엄마, 아빠가 불량식품 먹지 말라고 해서 몰래 사먹고 집에 들어간다”며 웃었다.
옆에 있던 K군도 “아이스크림도 2백원밖에 안해 하루에 3~4개씩 사먹는다”며 “1천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이들이 국적불명의 불량식품을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배경은 우선 값이 싸다는 데 있다. 단돈 1천원이면 사탕과 과자, 껌, 아이스크림, 초코릿 등을 종류별로 10개나 구입할 수 있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국적 불명의 과자와 사탕들이 날개돋힌 듯이 팔려나가 제2, 제3의 멜라민에 우리 아이들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멜라민은 ‘트리아미드 트리아진’으로 불리는 공업용 화학물질로 암모니아와 탄산가스로 합성된 요소 비료를 가열해 만든다.
멜라민은 겉으로만 보면 밀가루처럼 보이지만 밀가루와 달리 인체에 해롭다. 사료를 비롯해 우유에 멜라민을 많이 첨가하는 이유는 멜라민에 들어 있는 탄소와 질소 성분 때문이다. 우유 속에는 탄소와 질소가 들어 있는데 멜라민의 탄소와 질소 성분이 뒤섞이면 함량이 높아진다. 묽은 우유의 경우 악덕업자들이 단백질이 많은 것처럼 눈속임을 통해 좋은 품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멜라민은 포름알데히드와 반응해 만들어진 멜라민수지의 원료가 된다. 이는 무게에 비해 단단하고 방수성이 뛰어나 기계부품, 접착제, 산업디자인 재료, 건축 재료 등에도 폭넓게 쓰인다. 문제는 멜라민으로 만든 식기들이 고온의 열을 받으면 녹아 음식물에 섞일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주방기구인 프라이팬 코팅제 역시 멜라민 수지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시중에 유통중인 코팅 프라이팬은 전체 프라이팬 시장의 90% 이상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스테인레스 스틸 프라이팬보다 싸고 가볍고 또 코팅처리가 돼 있어서 조리할 때 음식물이 눌러 붙지도 않고, 설사 눌러 붙는다 해도 잘 닦여서 코팅 프라이팬은 주방용품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 코팅 재료가 다름 아닌 멜라민에 포름알데히드를 반응시켜 만든 ‘멜라민 수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프라이팬 코팅제는 세계 어디서나 멜라민 수지로 동일하다. 멜라민이 접착력이 뛰어난데다 내열성도 높이 때문이다. 물론 코팅이 벗겨지지 않으면 인체에 유해하지 않기 때문에 당국도 멜라민 코팅 프라이팬에 대해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주부들이 코팅이 벗겨져 있는지 잘 인식하기 못하고 코팅제의 위해성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로 코팅이 벗겨진 이후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부 J씨는 “집에 코팅 프라이팬을 열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멜라민 수지로 코팅을 입힌다는 사실은 그 동안 전혀 몰랐다”며 “어떻게 그런 사실을 제조회사들은 알려주지 않을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결국 벗겨진 멜라민 수지 만큼을 고스란히 먹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프라이팬 제조사 마저도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할 정도다.
한 업체 관계자는 “코팅 프라이팬은 엄격히 말하면 좋은 제품은 아니다.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써서는 안 된다. 벗겨지기 전에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팅 프라이팬에 소금구이를 하게 되면 코팅제가 염분에 파괴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염분을 피하고 설거지할 때도 무리하게 바닥을 긁지 말라”고 조언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중국에서 수입돼 오는 코팅 프라이팬의 경우는 제작 공정과정에서 열처리 시간이 적기 때문에 코팅이 벗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원 식의약안전팀의 한 관계자는 “멜라민 식기나 주방용품들은 이론적으로는 3백47도가 되어야 녹는 것으로 되어 있어 인체에 무해하다고 하지만 뜨거운 프라이팬의 기름이나 열기에 서서히 녹아내려 음식물에 혼합될 수도 있어 멜라민 주방기구나 식기가 무조건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멜라민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 여러 제품에서 검출되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
유명 차(茶) 브랜드 ‘립톤(Lipton)’ 제품 일부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고 제조사인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사(社)가 지난 9월30일 밝혔다.

학교 앞은 ‘멜라민 무풍지대’…“우리 아이들이 노출됐다”
차‘립톤’, 유아용 ‘DHA+AA 야채 시리얼’ 등도 검출
멜라민으로 만든 식기, 고온 열 받으면 녹아 음식물과 섞여
프라이팬 제조사도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 위험하다” 경고

유니레버는 “자체 검사결과 홍콩과 마카오에서 판매된, 중국에서 생산된 립톤 밀크 티 분말 중 ‘오리지널’과 ‘골드’ 두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해당 제품을 시중에서 수거했다”고 밝혔다. 유니레버는 지난 9월 중순에도 대만에서 멜라민에 오염된 분유가 원료로 사용된 ‘립톤 그린 밀크 티’를 수거했었다.
영국의 캐드버리사(社)는 지난 9월29일 “내부검사 결과 일부 초콜릿 제품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돼 홍콩, 대만, 호주에서 시판 중인 초콜릿에 대해 리콜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명보(明報) 등 홍콩 언론들은 지난 9월30일 “캐드버리사가 고객들이 자사 제품을 먹도록 방치하다가 멜라민 파동이 불거진 지 2주일이 지나서야 뒤늦게 멜라민 검출 사실을 시인했다”고 비난했다.
또 유아용 ‘DHA+AA 야채 시리얼’ 등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미국의 하인즈사(社)는 “원료 공급원을 중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교체할 방침이다”는 이메일 보도자료를 돌렸다.
인도네시아 보건당국도 중국에서 불법 수입된 두유(豆乳) 4개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수거에 들어갔다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지난 9월30일 보도했다.
한편, 말라카이트그린이나 멜라민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검출된 현지 업체에 대해 수입을 잠정 금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1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는 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유해물질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현지 수출업체 제품에 대해 개선대책이 제출될 때까지 수입을 잠정 금지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안대로 식품위생법이 개정되면 멜라민이나 말라카이트그린, 니트로퓨란계 항생제 등 식품에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외국 식품업체는 더 이상 우리나라로 제품을 수출할 수 없게 된다.
개정안은 또 수입상이 해당 업체로부터 식품 수입을 재개하려면 유해물질이 포함된 경위와 개선사항에 대한 확인서를 현지 업체로부터 받아 당국에 제출하도록 했다고 식약청은 설명했다. 이는 멜라민 파동 등 수입식품 사고가 계속됨에 따라 현지 식품 수출업체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멜라민 파문’으로 뜨는 먹거리는?
안전 먹거리 뭐가 있지?
중국발 멜라민 공포가 식품 전체로 확산되면서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자류 자체를 사지 않겠다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가공식품 과자 소비가 줄고 있는 대신, 떡·한과 등의 전통 간식, 집에서 직접 빵을 만들 수 있는 홈베이킹 관련 제품, 유기농 먹거리 등은 매출이 늘고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사는 김윤진씨는 “그동안 4살짜리 딸아이에게 사주었던 초콜릿이 아무래도 찝찝하다”며 “앞으로 과자류는 되도록 사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기회에 집에서 직접 빵이나 간식을 만들 수 있는 미니오븐을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에서는 홈베이킹 관련 상품의 22~26일 판매량이 이전 주(15~19일)에 비해 25%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븐기, 핸드 믹서기, 제빵 믹스제품, 계량컵, 스쿠프 등이 인기 상품이다. 멜라민 성분이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식기류도 중국산이나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홈베이킹 코너가 평상시보다 3배 가량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며 “연말까지 유기농 도넛 등 안전한 먹거리와 관련된 상품 비중을 늘리고, 문화센터에서도 ‘홈메이드 베이킹’ ‘샌드위치만들기’ 등 어린이 간식 관련 강좌를 30%가량 늘릴 예정이다”고 말했다.
과자에 이어 자판기용 커피 크림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돼 커피크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커피 대체제인 ‘차(茶)음료’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9월30일 롯데마트 관계자에 따르면 멜라민 파동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커피크림의 매출이 전주에 비해 11.4% 가량 감소한 데 반해 녹차티백과 오렌지 주스 등 과즙음료의 매출은 각각 3%, 5% 신장했다.
녹차 브랜드 ‘설록’을 운영하는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도 “녹차의 매출이 한 주 동안에만 4% 이상 성장했다”며 “주말 동안 대형마트에서 커피 믹스의 판매율이 10% 전후로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커피 기피 현상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멜라민이 함유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산 커피크림이 국내에 수입됐다고 발표한 직후부터 발생했다.
문제의 커피크림이 자판기 커피, 소규모 커피 전문점 등에 공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실주스, 녹차 등 대체재를 찾는 손길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
서울 강남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현규씨는 “최근 들어서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커피 대신 오렌지 주스나 녹차를 대접하고 있다”며 “커피를 내놓아도 손을 대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더욱이 멜라민 파동에서 시작된 먹거리 불신은 소비자들의 입맛과 소비행태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커피전문점에서도 커피 크림이나 유지방이 들어가지 않는 음료를 주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아예 커피전문점으로의 발길을 끊고 ‘티 하우스’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서울 명동과 대학로, 역삼동에 위치한 ‘오 설록 티 하우스’, 이대 앞 ‘세이지’ 같은 티 카페 역시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려 방문자수가 2주 전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신촌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이은영씨 역시 “커피크림이 들어가는 ‘라떼류’의 인기는 꺾이고 블랙커피나 아메리카노 등 유지방이 없는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한편, 멜라민 성분이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식기류 중에서도 중국산이나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수입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터키산, 독일산, 일본산 등 비(非)중국산 식기류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국내 과자제품의 멜라민 검출 소식이 보도된 지난 24일 이후 2배로 증가했다. 또 이유식 조리기구, 식기구 중에서도 사기 재질로 만들어졌거나 아이 입에 닿는 부분이 스테인리스 소재인 제품들의 판매량이 호조를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멜라민 파동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민감하게 반응해 홈메이드 요리와 관련 제품, 친환경 소재 식기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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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