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윤기원 사망 미스터리

“조폭이 죽이고 자살로 위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5년 전, 한 축구선수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유족들은 의문점들을 제시하며 확실한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입을 다물었다. 가족들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채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5월 당시 인천유나이티드 소속 골키퍼 윤기원 선수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윤 선수는 아주대학교를 졸업한 후 2010년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5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시신 부폐 심해
사망 시각 부정확

1년 가까이 2군 무대에서 묵묵히 자신의 기량을 쌓은 뒤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르며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188cm, 79kg의 건장한 체격 조건으로 허정무 인천 감독의 큰 기대를 받아왔던 유망주였다.

총 8번의 경기에 출장을 하면서 K리그 선수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던 윤 선수.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2011년 5월 6일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윤 선수가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이 된 것.

그해 5월4일 윤 선수는 오전 훈련을 마치고 구단에 외출 승인을 받았다. 숙소를 나선 뒤 오전 11시4분에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고, 낮 12시30분에 이마트에 들른 이후 행방불명됐다. 윤 선수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구단에서는 그의 소재를 찾아 나섰으나 찾을 수 없었다. 


실종 이틀 만인 6일 오전 11시50분쯤, 윤 선수는 서울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하행선 주차장에 세워진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광장 주차관리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차안에는 맥주캔과 과자봉지가 있었고 윤 선수는 누워있었는데 타다 남은 번개탄이 발견이 됐다. 맥주캔은 6개나 있었지만 윤 선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외상 흔적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자세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전신에 특이할 만한 외상이 없고 혈액과 위 내용물에서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으며 혈중 일산화탄소 헤모글로빈 농도가 82%로 나왔다”며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판단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2011년 윤기원 선수 주검으로 발견
경찰, 남긴 유서 단서로 자살 결론

경찰은 추가로 수사를 진행했고 윤 선수가 사망 전 노트북을 통해 포털 사이트에서 ‘연탄 자살’ ‘번개탄 자살’을 검색한 기록이 있는 점과 사망하기 일주일 전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 문자를 보낸 것 등을 감안해 자살이라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유족에게 윤 선수의 죽음은 더더욱 갑작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더구나 자살은 더더욱 납득할 수 없는 사인이었다. 그가 그렇게 발견되기 사흘 전, 그는 부모님께 어버이날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또, 이날 아버지를 위해 선물로 와이셔츠를 사 놓기까지 했었다. 윤 선수의 어머니 옥정화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속이 깊은 아이”라고 말했다.


또 주변에는 그를 “분위기 메이커”로 생각하는 동료들이 있을 만큼 그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국가대표를 꿈꾸며 최선을 다짐하던 그가, 더구나 구단의 기대주였던 그가 갑자기 스스로 생을 마감할 이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족들은 윤 선수가 특별히 자살을 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윤기원 선수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자친구와의 이별과 주전경쟁에서 밀린 스트레스라고 추정했지만 가족들의 주장에 의하면 4월 경쯤에 윤 선수가 먼저 여자친구와 거리를 두자고 말을 했었고 이미 4월 말경에 헤어진 상황이었으며 자살을 할 만큼 주전경쟁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의문 투성이”
조심스런 경찰

보통 자살자들은 죽기 전후에 ‘징후’와 ‘정황’을 남긴다. 자살자가 남긴 유서는 자살이나 타살로 결론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윤기원은 자살 징후나 정황이 없었고,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동료 선수들도 한결같이 “기원이는 자살할 애가 아니다”고 말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경찰이 처음 윤 선수가 인터넷에서 ‘연탄 자살’ ‘번개탄 자살’로 검색했다고 밝힌 시간이 4일 오후 3시20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는 4일 오전 11시37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윤 선수의 어머니는 “경찰이 처음 노트북에서 ‘자살’을 검색했다는 시간은 고속도로에서 운전 중이던 시간이다. 정확하게는 수원TG(톨게이트)를 통과하기 9분 전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운전자 본인이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검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우리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니까 나중 자료에 노트북 접속 시간이 달라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 선수가 서울 만남의 광장에 진입한 날짜와 시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경찰은 5월4일 오후 11시2분쯤 윤 선수의 차량이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고, 11시7분쯤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차량에서 내린 후 8분쯤 지나 다시 차량에 탄 것으로 밝혔다. 

이를 윤 선수가 만남의 광장에서 자살한 중요한 증거로 제시한 것.

윤 선수의 부모는 사건 이후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찍혔다는 CCTV 영상 공개를 강하게 요구했다. 영상 공개가 어렵다면 영상을 캡처해서 인쇄한 것이라도 보여달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계속해서 공개를 거부했고 나중에는 폐기하기에 이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 2014년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CCTV 영상을 요구하자 경찰은 “당시 CCTV 화질이 증거로 활용하기 애매해 영상을 폐기했다”고 밝혔다. 당초 ‘중요 증거’라고 했던 것과 상반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서울 만남의 광장 주차장에는 1시간 이상 장기 주차를 금지하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고 이를 위반하면 불법 주차 스티커를 붙인다. 하지만 윤 선수의 차에는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았다. 이런 점을 보면 윤 선수의 차량이 만남의 광장에 진입한 날짜와 시간이 불명확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왜 CCTV를 통해 윤 선수와 차량을 식별했다고 했을까. 이에 대해 해당 경찰서는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현재 근무하지 않아 자세한 답변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선수가 자살했다고 가정했을 때 숙소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서울 만남의 광장을 선택한 것도 의문이다. 사람과 차량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자살 장소로 삼았다는 게 석연치 않다.

“영상은 어디에”
CCTV 폐기 왜?

윤 선수의 차량이 있던 곳은 사람과 차량이 빈번하게 오가는 곳이었다. 만약 번개탄을 피웠다면 숨을 거두기 전에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의 현장 보존도 문제가 됐다. 변사 사건의 경우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 기본인데 경찰은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도 치지 않았고 차량을 곧바로 관내 파출소로 옮겼다.

윤 선수의 어머니는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 허정무 감독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편지에는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고 오명을 바로 잡도록 진실을 꼭 밝혀 달라”고 당부하는 윤 선수의 어머니 옥정화씨의 간곡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옥씨는 편지에서 “ 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아들에게 베풀어 준 감독님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윤 선수가 사망한 후 빈소에는 동료 선수가 많이 찾아왔다. 윤 선수의 부모는 이곳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윤 선수가 승부 조작 제의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자 3주 전부터 “죽인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 5월 우리나라 K리그 역사상 초유의 사태인 승부조작 사건이 벌어져서 리그자체가 중단돼버리는 상황까지 갔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K리그 선수들이 승부조작으로 형사처벌을 받고 축구협회에서 제명을 당했다.

당시 K리그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선수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승부조작에 가담을 하면 돈을 줬다”며 “비기는 것도 안되고 무조건 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폭들은 다섯명 가량의 선수들을 앉혀두고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식의 협박이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윤 선수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동료 선수가 있다는 말도 들었다. 윤 선수 아버지는 “조폭들이 기원이를 봉고차에 태운 후 번개탄을 피워 차량에서 내려도 죽고 내리지 않아도 죽는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봉고차 밖에서 조폭들이 차 문을 막아섰고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기원이는 가스 질식으로 죽었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유가족 정황상 타살 가능성 제기
승부조작 거부? 조폭 연루 주장

윤 선수의 친구는 “취직자리를 장난스럽게 물어본걸 보니 사망 전에 축구를 그만둘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선수의 친구는 “프로 축구에서 축구를 하고 게임을 늘 뛰고있는 그가 축구선수를 그만들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이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편 사망 당시 윤 선수를 수사했던 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윤 선수의 자살 동기를 조사하기 위해 노트북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계좌 및 통화내역 등을 조회해 봤지만 승부조작과 연루됐을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망한 지 5년여가 지났지만 윤 선수의 부모는 ‘자살’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윤 선수의 부모는 행정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경찰이 내놓지 않는 ‘수사 자료’ 등을 받을 생각이다. 만약 경찰에서 공개를 꺼리거나 자료를 주지 않을 경우에는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4년여 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윤 선수의 죽음은 점차 잊히는 듯했다. 지난 2014년 12월 <모두의 가슴에 별이 된 골피커>란 책이 세상에 나왔다. 윤 선수가 세상을 떠난 2011년 5월6일 이후 3년7개월 만이다. 

세상이 외면한 아들의 외로움과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윤 선수의 어머니 옥정화씨가 쓴 이 책은 멈춰버린 그 시간에 대한 토로다.

언론을 포함한 소통 창구가 막혀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옥정화씨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직접 펜을 들었다. 책과 옥정화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윤 선수의 사망은 공식적으로 ‘자살’로 처리됐다. 하지만 윤 선수는 주민등록상에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다. 

“승부조작 연루”
충격적인 증언

옥정화씨가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떠나보내지 못해서’라거나 ‘가슴에 살아 있어서’와 같은 일차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사망 신고를 할 경우 아들의 죽음이 자살로 인정되기 때문”이라는 명확한 논리에 의한 것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는 옥정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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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