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19)갈등의 시작

  • 황천우 작가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6.02.03 13:12:37
  • 호수 10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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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인사 구출작전 성공 가능성은?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내가 그동안 두 사람이 너무 많은 수고를 하여 선물을 주려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선물이면 다 좋은 거 아닌가요?”

“물론 좋은 거지. 그런데 선물도 나름 아니겠는가.”

호룡이 뜸을 들이자 기미코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석원을 주시했다. 그를 살피며 호룡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비행기 티켓이야.”

“네, 비행기요?”

“홍콩행 왕복 티켓으로 그동안 두 사람의 수고에 대해 조그마한 마음의 정성을 전하려 오늘 이렇게 보자고 하였네.”

호룡이 봉투를 건네자 기미코가 즉시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리 두 사람이, 홍콩에요!”

기미코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만족하는가?”


“너무나 고맙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난조 상과 함께인데요.”

순간 호룡이 석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신호를 받은 석원이 기미코가 보라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조 상, 왜 그래? 나와 함께 여행가기 싫어?”

석원이 대답하지 않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난조 상, 말해봐. 왜 그래?”

“여권과 비자 때문에 그래.”

“그게 뭐가 어렵다고.”

“우리 나이에 함께 나가려면 신혼여행 정도로 간다고 해야 비자가 나올 터인데, 지금 우리는 법적으로는 부부 사이가 아니잖아. 그러니 갑갑해서 한숨 쉬는 거지.”

석원이 진짜 갑갑하다는 듯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혼여행? 그러면 신혼여행 가면 되잖아.”

“이 사람아, 그게 어떻게 가능해. 당신 남편은 고타로로 되어 있는데.”

기미코가 호룡을 바라보며 구원해달라는 듯 눈길을 보냈다.

“방법이 있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네.”

“부장님, 알려주세요. 저 꼭 난조 상과 다녀오고 싶어요.”

“두 사람이 부부로 출국하면 되지, 부부로.”


“어떻게요?”

“기미코 양이 여권을 만들 때 법적 남편인 고타로의 여권을 함께 만들어야지. 그리고 그 여권을 석원 군이 들고 나가면 되는 거야.”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네요.”

대통령 암살 시도…의견 대립
상황 반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기미코가 손뼉을 치면서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괜찮겠어?”

“난조 상과 함께 여행가는 데 괜찮고 말고가 무슨 일이야. 그리고 막말로 고타로와 해외여행 갈 일도 없고 또 행여나 가자고 해도 안가.”

“참으로 안타까워. 이 사람이 고집만 안 부렸어도 둘은 천생연분인데.”

호룡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잔을 비워냈다. 그와 동시에 기미코의 몸이 석원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정동일이 김영자로부터 난조 샤쿠겐 즉 문석원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할 것이란 정보를 얻은 이후 고민에 휩싸였다. 그냥 철부지의 객기로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그를 이용하여 새로운 일을 이루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자신 물론 영사관에 근무하지만 실상은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위장근무 중이었다. 아울러 지난 윤대중 납치사건도 현지인으로서 본인 주도로 비밀리에 기획하고 실행했는데 작금에 들어 그 결과가 당초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결국 나라 전체가 곤경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록 김운정 총리의 진사 사절 이후 겉으로는 봉합된 듯 했지만 일본의 언론과 좌익은 연일 포문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에 밀려 아니 그를 구실로 일본 내각 역시 한국에 대한 경제 차관 등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문석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일을 잘만 이용한다면 작금의 곤궁한 상황을 헤쳐 나갈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여 그 사실을 정보부장에게 정식으로 보고하여 재가를 받아보고자 했다.

그러나 본국으로부터 윤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하여 이병선 정보부장이 조만간 경질될 것이란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보고 여부는 차후로 미루고 문석원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문석원의 가족 관계부터 시작하여 지난 시절의 행적 등을 샅샅이 파헤치던 중에 그의 이중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일본인에 그리고 인간사회에 대해 지독하게 혐오감을 지니고 있고 또 나이도 어린데다 상당히 충동적이라는 사실 역시 간파했다.

상당히 어설프지만 김영자가 전한 대로 정말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시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아울러 그를 잘만 이용하면 정말로 현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겠다는 확신까지 하기에 이른다.


한날 저녁 늦은 시간 숙소에 들러 아내가 보내준 된장을 싸들고 길을 나섰다. 아무래도 김영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문석원에 접근함이 이로울 듯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김영자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들자 막 가게를 정리하던 김영자가 반갑게 맞이했다.

“오라버니,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우리가 시시콜콜 연락하고 찾아보는 그런 사이밖에 안되는가.”

“그런 건 아니지만.”

김영자가 동일이 건네는 물건을 받아들면서 앙증맞은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이끌었다.

“된장 아니면 고추장?”

“맞추어봐.”

“음 지난번에는 고추장을 가져다주었으니 이번에는 된장?”

“귀신이 따로 없네.”

내실에 들기를 잠시 후 김영자가 소박하게 상을 차려 들어왔다.

“오라버니, 그런데 아까도 물어보았지만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일. 아우 잠시 볼 수 없어 얼굴 기억해두려고 찾아왔지.”

“무슨 말이래요?”

“윤대중 사건으로 장관과 대사 등 인사이동이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한국에 들어갔다 나오려고.”

김영자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왜, 서운해?”

동일이 가까이 다가온 영자의 볼에 가볍게 입을 대었다.

“서운한 정도가 아니지. 그런데 오라버니 참 이상해.”

“뭐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 말이에요.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이별을 걱정하게 되니.”

“그러면 영자는 정말로 이 오라버니를 사랑한다는 말이네.”

“그걸 몰라서 물어요.”

말과 동시에 동일의 잔을 채워주었다.

“오늘은 술은 자제하고 정말 맛있는 걸 먹어야 할까봐.”

“뭔데요.”

동일이 대답 대신 영자의 몸을 훑어보았다.

“나 품으려고.”

“왜 싫어?”

“싫기는, 좋아서 그렇지요. 그런데 오라버니는 이 쭈글쭈글한 몸이 그리도 좋아.”

“무슨 소리야 아직도 탱탱한데.”

“듣기 싫지는 않네.”

동일이 슬쩍 눈을 흘기는 영자의 볼을 슬그머니 만져주었다.

“그런데 조총련 사람들은 요즘 뜸한 모양이지?”

“그 사람들 아직도 윤대중 구출한다고 난리지 뭐. 그리고‥‥‥.”

영자가 슬그머니 뜸을 들였다.

“오라버니 내가 일전에 이야기했던 석원이란 사람 있잖아요.”

“정신 나간 친구 말이지?”

“정신이 나갔는지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이 외국으로 여행 갔다고 하던데.”

“외국 여행!”

“어저께 출국했다 하데요.”

영자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동일의 마음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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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기세를 앞세워 쟁점 법안들을 한순간에 처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과제를 풀어야 하는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주요 후보 4명이 출마할 예정이다. 약점도 4인 4색이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일 충북 청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주목받았던 유력 당권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등 4명이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과 장성민 경기 안산갑 당협위원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4파전 예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들이 수북하게 쌓여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의 기세와 압도적인 의석수를 토대로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서둘러 처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완전히 폐지한 후 기존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옮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의 의석수는 107석에 불과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법안을 막을 힘이 없다. 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유력 후보 중 1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힘을 겨냥해 “내란범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직도 반성 없이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내란을 옹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란 종식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및 인용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도록 위협하면서 자금줄을 끊는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건희 특검팀은 같은 날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엔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의 수사 상황에 따라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승부수로 제시했다가 좌초된 5대 개혁안에 담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 문제도 새 당 대표의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친윤(친 윤석열)계는 5대 개혁안을 좌초시키면서 친윤계 일원인 송언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등 여전한 힘을 드러냈다. 5대 개혁안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안건이었다. 신임 당 대표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숙제는 내년 6월 진행될 지방선거다.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벌써 낮게 진단되고 있다. 실제로 패배하면, 다음 달 선출되는 당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숙제와 뻔한 죽음이 예상되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은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정치인들로 이들 모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어려운 숙제를 잔뜩 안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대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대 다가오는데 또 같은 얼굴들 대표 유력 주자 약점 들춰보니… 하지만 후보 4명은 각자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새 지도부가 구성됐다고 해서 저 많은 과제가 술술 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서울희망포럼 강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 내가 싸우겠다”며 “국민이나 당이 위축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김 전 비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시도했던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김 전 장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인 국민의힘 김재원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지난달 13일 YTN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국정 전횡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당무감사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인지 회의적”이란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이 몰두하는 것은 ‘빅텐트’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비전은 ▲권력의 잘못에 맞설 수 있도록 107명이 제대로 뭉친 국민의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낙연 전 총리·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과의 빅텐트 및 연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당 체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김 전 장관의 ‘빅텐트’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빅텐트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지지 선언은 이끌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는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도 스스로 제안했다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태도를 바꿔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후보와 친윤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대선에서 41%를 득표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이 ‘비교적 선전’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상황에 비해 선전했다는 것일 뿐, 진짜로 선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빅텐트에 집착하고 있다. 빅텐트 정당은 다양한 세력을 묶고 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 당내 화합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을 탈당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단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다시 빅텐트 김문수 집착 심지어 김 전 장관이 대선후보 시절 구상했던 빅 텐트엔 전 목사 등 광장 세력도 포함됐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관악산에서 열심히 턱걸이를 해도 고령에 따른 판단력 문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전 장관이 윤석열정부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연이어 발탁됐던 이유로는 “고령의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예우”란 평가가 계속 나왔다. 이 평가엔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발탁했다”는 의미가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는 등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선택은 일부 돋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적 선택도 정확한 판단력과 맞물려야 그 빛을 발한다. 대권·당권주자가 없단 약점이 있는 친윤계가 그나마 지향점이 비슷한 김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도를 공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면 당 체질은 필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빅텐트에 집착하는 옛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여당과 제대로 맞설 제1야당 대표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선 “어려운 상황에서 정면 승부하는 결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한 전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규정한 ‘이조 심판론’이란 구호를 내걸었다가 ‘108석 당선’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로 제시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정치 인생에서 제일 빛났던 순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를 막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친한계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후 민주당과 협조해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원로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극찬했다. 조 대표는 지난 2월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당 대표가 계엄을 좌절시키긴 어렵다”며 “보통 이런 걸 ‘별의 순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합의해 지난해 12월7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1차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이어 다음날엔 한 전 총리와 함께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당정 협의를 강화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전 총리 탄핵 심판 결정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각계각층에선 한 전 대표를 일컬어 “권력 찬탈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격렬하게 비판했다. 한동훈 급부상 당시 한 전 대표는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소추 표결 불참 ▲탄핵 찬성 등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반발과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대선 유세에 참여했고, 친한계를 움직여 대선후보 강제 교체 반대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친윤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전하고,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등 ‘결기 부족’이란 일각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김민석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농성이 되고 말았다. 나 의원은 냉방이 잘 되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김밥과 유명 메이커 커피를 곁들이고 탁상용 선풍기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을 알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촬영해 스스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나 의원 자신이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핑이나 바캉스 같다”고 비웃었다. 지난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 농성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도 지난 1일 MBC <뉴스외전>에서 “로텐더홀에서 출판기념회 하듯이 농성한다”고 비판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피서 농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주말엔 로텐더홀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달 30일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작 농성의 대상인 김 총리는 같은 날 나 의원을 방문해 “식사는 했느냐”면서 “단식은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김 총리의 기세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대선 경선 그대로 옮겨지나 수많은 난제…독이 든 성배? 그러자 나 의원은 다음날 농성을 해제했다. 나 의원이 6일 동안 진행한 농성은 나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진행될 대정부 투쟁의 회의적 가능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당 대표 당선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지 의문이 커진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오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후 겨우 8분 만에 사퇴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국민의힘은 악성 종양이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라면서 “메스를 들어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 의원은 송 비대위원장에게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와 관련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도·수도권·청년 중심으로 혁신위를 구성하려던 안 의원의 구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 혁신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 내정 이전부터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따라서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친윤계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일찌감치 “친윤계가 이전처럼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왜 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돌아다녔다. 안 의원은 “‘쌍권(권영세·권성동)’ 숙청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따라서 “혁신하는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은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나 홀로 버티고 있다. 친윤계와의 연대설이 돌아다녔던 이유도 안 의원에게 세가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안 의원도 김 전 장관처럼 친윤계와 치명적으로 갈등한 이력이 생겼다. 김 전 장관과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실리는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메스를 들어 고름과 종기를 적출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남는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 계보를 거느린 한 전 대표도 친윤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조 의원과 장 당협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주요 후보 4명에 비하면 비중 있게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조 의원에 대해선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하고, 좌장인 조 의원이 대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수장과 좌장이 동시에 출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숙제 뻔한 결말? 여러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가능성이 더 큰 당 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출혈은 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쟁점 법안들을 연이어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는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자중지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내부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