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17) 미궁의 탈출구 찾기

대통령 암살작전 모의…결과는?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김 사장!”

이호룡이 오사카 시내 한 식당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 그곳 주인인 김영자를 은근한 투로 불렀다.

“갑자기 살갑게 왜 그러세요.”

김영자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호룡이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김 사장은 고향이 어디요?”


“당연히 이곳 오사카지요. 물론 부모님은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고 자라셨지만.”

“내 고향은 어디인지 아시오?”

“일전에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평안도 중강진이라고.”

“아니 틀렸어. 내 고향도 바로 이곳, 오사카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호룡이 잔을 비워냈다. 김영자가 호룡의 눈치를 살피며 술병을 들었다.

“한 잔 따라 드릴까요?”

“그러면 좋지요.”


안주도 먹지 않은 호룡이 선뜻 잔을 들었다.

“그런데 오늘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도 과음하였습니까?”

김영자가 흡사 콧소리를 내듯 잔을 채우자 호룡의 게슴츠레한 눈길이 술잔으로 향했다.

“혹시 문석원이란 아이 기억합니까?”

“일전에 함께 왔었던 그 청년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데요.”

“이 친구가 일을 벌이려는 모양입니다.”

“무슨 일을?”

“남조선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겠다고 하네요.”

“네!”

김영자가 얼떨결에 소리를 높이고는 그저 눈만 동그랗게 떴다.

“윤대중 선생을 구출하려는 의도인데. 처음에는 그저 객기려니 생각하고 말았는데. 이 친구가 극구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겠다는 겁니다.”

잠시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던 김영자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와 스스로 잔을 채웠다.

“그 사람 정신나간 거 아닌가요. 그때 보았을 때도 이상하게 느꼈던 것 같은데.”

“나도 처음에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과격하더라고. 그래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으면 무슨 일을 하였답니까?”


“좌익 운동 그리고 과격단체들 주변에 기웃거리고는 했죠.”

“그런 사람이 어떻게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겠답니까?”

“그 친구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지요. 그러니까 막무가내로 내게 도와달라는 겁니다.”

“어떻게?”

“그야 물론 남조선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그저 여권 만들고 비자 받아서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면 되는 일 아닌가요.”


“그게 곤란하니 내게 부탁하는 거 아닙니까?”

김영자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호룡을 빤히 주시했다.

“여권은 만들 수 있지만 비자 받기 힘들어 그래요.”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윤대중 씨 사건 터지고 나서 그 친구가 오사카 영사관을 상대로 수차례 폭파하겠다고 협박전화까지 했었는데 어느 누가 비자를 내주겠습니까.”

“그런 일까지 있었나요.”

김영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를 바라보던 호룡 역시 단번에 잔을 비워냈다.

“안주 좀 드세요.”

호룡이 안주도 먹지 않고 다시 스스로 빈 잔을 채우자 김영자가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위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는데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구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술 마시는 거 아니겠소.”

“김 사장이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었는가.”

한 순간의 객기로? 진짜 시도할까
“유일한 해결방법” 성공 가능성은?

밤이 늦은 시간 오사카 영사관에 근무하는 정동일이 김영자가 운영하는 음식점을 찾았다. 동일을 확인한 김영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가게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룸으로 안내했다.

“무슨 일이야?”

“오라버니 보고 싶어 그랬지.”

김영자가 정동일 곁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런 그녀를 동일이 팔로 가볍게 어깨를 휘감으면서 볼에 입술을 댔다 떼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겠어요.”

“음, 식사는 되었고.”

정동일이 말하다 말고 보일 듯 말 듯 살짝 드러난 김영자의 가슴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왜요, 젖 먹고 싶어요?”

“일단 가볍게 한 잔하고 젖을 먹든 영자를 통째로 먹든 하자고.”

정동일이 시선을 돌려 김영자의 하반신을 바라보자 김영자 역시 그 시선을 따라갔다가 슬그머니 동일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히 가져와.”

말을 하며 밖으로 나서는 김영자의 뒤를 바라보았다. 일찌감치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가게를 꾸려가며 30대 후반에 이른 김영자의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워 가끔 들르고는 했고 급기야 어느 한날 저녁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미색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오밀조밀하여 안기는 맛이 색달라 이후 서울에 있는 집이 생각날 때면 들러 함께 시간을 보내고는 했었다. 또한 그녀의 정보망이 이외로 넓었다.

특히 조총련 쪽 사정은 그녀를 통해 전해 듣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여서 현지 애인으로 또 정보원으로 살갑게 지내던 터였다. 잠시 서울에 두고 온 가족을 회상하는 중에 김영자가 동일의 말대로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 들어왔다.

“사람 팔자 참으로 희한하네.”

“느닷없이 무슨 팔자 이야기에요?”

“영자 같으면 남편에게 무지하게 사랑받고 살 터인데.”

동일이 말을 흐리자 상차리기를 마친 영자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러면 오라버니가 거두어 주면 되잖아요.”

“차라리 그럴까.”

말을 마침과 동시에 동일 곁에 바짝 붙어 앉은 영자가 술병을 들었다. 동일 역시 잔을 듦과 동시 몸을 앞으로 숙여 영자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가 떼었다.

“오라버니는 내가 그리도 좋아요.”

“글쎄, 그걸 좋다고 표현해야 할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자네만 만나면 아늑해지고 또 고향 생각이 나고 그러네.”

“그래요, 그거 참.”

“왜?”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는 해서요.”

“혹시.”

이번에는 정동일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왜요, 그 사람하고도 몸 섞을까 봐요?”

“아, 그게 아니라‥‥‥. 당신도 한잔 하겠어?”

순간 동일이 얼버무렸다. 영자가 슬그머니 미소를 보이며 잔을 들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

“오라버니가 보고 싶어 그랬다니까.”

“본 지 얼마 되었다고.”

“그동안 윤대중 사건인가 뭔가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았잖아요.”

그 소리에 동일이 절로 흠칫했다. 혹여 김영자가 자신의 실체를 알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지레짐작에 따른 결과였다.

“왜 그렇게 놀래요?”

“놀래는 게 아니라 하도 시달려서 그 이야기만 나오면 경끼 일으킨다니까. 그러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반응이 흘러나오지.”

동일이 가슴을 쓸어내기라도 하듯 잔을 비워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외형상으로는 해결되었지만 내면으로 살피면 아직은.”

말하다 말고 동일이 자신의 잔을 직접 채웠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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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