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재건’ 박삼구 잃어버린 6년 풀스토리

먼길 돌아 제자리 “화해만 남았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갈림길을 두고 원하든 원치 않던 선택의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 무작정 최선의 길로 인도할 거란 보장은 없다. 탁월한 선택으로 칭송받던 결단이 엄청난 고통을 주는가 하면 그릇된 선택이 ‘신의 한수’로 둔갑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공중분해 된 그룹을 찾고자 긴 시간 험준한 길을 돌아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전남 나주 출신의 고 박인천 창업주가 46세의 늦은 나이에 택시 2대로 세운 광주택시에서 출발했다. 1971년 금호석유화학을 시작으로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면서 어느덧 건설, 물류, 금융을 아우르는 재계 11위 기업으로 급성장한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또 한 번 대담한 도박을 단행한다. 2006년 11월 대우건설 지분 72%를 6조4000억원에 사들이는 통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08년에는 대한통운마저 4조6000억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재계 순위는 11위에서 8위, 다시 7위로 뛰어올랐다.

덩치불리기 후유증
유동성 위기 몰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덩치를 불리자 현금 유동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약 3년이 흐른 2009년에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되팔기로 결정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다시 매물로 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무리한 사업 확장에 돈줄이 말라버린 탓이다. 인수 당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시가총액은 각각 4조6000억원과 1조6000억원 수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시가총액을 훌쩍 뛰어넘는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축이던 금호산업,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은 각각 6800억원, 8500억원, 6900억원에 불과했다. 


과도한 빚은 머지않아 골칫덩어리로 되돌아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주식을 매입하면서 전체 지분 6조4000억원 가운데 3조5000원을 재무적 투자자에게 대출해 충당했다. 2009년 말까지 인수 당시 주가 2만6000원보다 6000원 높은 3만2000원이 안될 경우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산다는 ‘풋백옵션’을 내걸었다.

그러나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는 1만대에서 등락을 거듭했고 투자자에게 약속한 3년이라는 시간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풋백옵션 행사하며 대우건설을 3만원에 사줄 것을 요구했고 이 금액의 총액은 무려 4조2000억원에 달했다. 결국 대우건설 인수 이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난 부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존폐 위기로 몰아넣었다.

대우건설은 형제간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박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2009년 당시 불거진 경영권 분쟁에서 심각한 갈등 상황을 연출했다. 갈등의 시작은 역시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과정에서 나타났다. 당시 박 회장이 그룹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인수에 나서자 그룹 내 석유화학 부문을 이끌던 박찬구 회장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박 회장이 이마저 묵살하자 이후부터 그룹 경영을 놓고 대립각이 커졌다.

결국 박찬구 회장은 업계 불황 등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지난 2009년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리며 계열 분리를 시도했다. 여기에 맞서 박 회장은 같은 해 7월 ‘지분공동보유’ 규칙을 깬 박찬구 회장을 해임한 채 본인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아시아나, 금호석유화학으로 갈라진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뾰족한 해결 방도마저 찾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2009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의 자율협약체제에 편입된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나마 다행은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경영권과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후 금호그룹 재건에 나선 박 회장에서 두 가지 요건은 결정적인 지렛대로 작용한다.

시간 돌린다면…
꺾지 않은 의지

급하게 남은 자산을 수습하고 그룹 재건 의지를 천명한 박 회장은 일단 사재 3330억원을 들여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경영 일선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를 중심으로 내실 다지기에 힘을 쏟는다. 이렇게 흐른 시간이 어림짐작으로 약 6년이다.


그 사이 옛 영광의 한축이던 금호산업이 다시금 매물로 나왔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눈독들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금호산업을 주의 깊게 바라본 건 비단 박 회장만이 아니었다.

지난 3월2일 금호산업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은 호반건설과 사모펀드 4곳(MBK파트너스, IBKS-케이스톤, 자베즈파트너스, IMM PE)을 입찰적격자로 선정했다. 매각대상은 채권단이 금호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감자·출자전환으로 갖게 된 지분 57.5%, 약 1955만주였다.

대우건설 인수 삐거덕 승자의 저주 현실로
배탈난 무리한 투자…형제간 우애까지 금가

당시 채권단이 금호산업 매각대금으로 설정한 금액은 약 1조원 수준이었고 실제 인수금액 역시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측됐다. 매각 소문이 흘러나온 직후 7000억∼8000억원으로 예상되던 금호산업에 1조원이라는 금액이 매겨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금호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반증한다. 호반건설이 화제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건설경기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한 호반건설은 지난해 도급순위 15위를 기록한 알짜 중견건설사로서, 도급순위만 놓고 보면 오히려 금호산업(20위)보다 우위에 있다. 금호산업에 대한 호반건설의 의지는 지난 3월25일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대한상의 의원총회에 참석한 김상열 회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재확인된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은 “우리의 자산이 2조원 가량인데 채권단이 정한 가이드라인이 1조원 조금 안되는 수준이라고 들었고 이를 두고 내부에서 검토 중”이라며 “현금 동원력은 충분하기 때문에 무조건 단독입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호산업에 대한 의지는 호반건설보다 박 회장이 훨씬 굳건했다. 금호산업은 박 회장에게 그룹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호반건설이 금호산업을 눈독들인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금호산업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시점에서 두 회사는 경영권이 분리됐지만 그렇다고 아예 연결점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한축을 담당해왔고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30.08% 보유한 상태였다. 금호산업을 손에 넣으면 단번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최대주주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는 금호산업 인수가 아시아나항공 이외에도 아시아나항공 산하 계열사의 경영권도 모두 포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숨 걸고 찾는다
인수금은 어떻게?

결국 금호산업 인수전은 좌충우돌 끝에 박 회장의 승리로 귀결됐다. 지난달 24일 채권단이 제시한 금호산업 지분 50%+1주를 박 회장이 7228억원에 인수키로 동의한 것이다. 지난 4월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던 호반건설은 이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며 인수전 중간에 이탈한 상태였다.

이제 자금을 조달해 채권단에게 쥐어주면 6년 만에 다시 그룹의 주인이 된다. 다만 박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매각에 동의한 채권단도 박 회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인수 대금 7228억원을 12월30일까지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박 회장 자금 여력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다. 박 회장은 3년 전 우선매수청구권을 받기 위해 금호산업에 22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현재 박 회장의 가용 자산이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의 보유분을 포함한 금호산업 지분 9.92%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IB업계에서는 3개월 전 되찾은 금호고속을 다시 팔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금호터미널은 금호고속 주식 100%(1000만주)를 칸서스HKB 사모 펀드에 3900억원을 받고 재매각한다고 밝혔다. 칸서스HKB는 칸서스자산운용이 8월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금호고속을 매각한 대금으로 금호산업 지분을 살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다만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출자 전환 주식 매각 준칙에 따라 계열사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라 이마저 녹록지 않다.
 

칸서스자산운용이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자금을 융자 받아 박 회장의 재무적 투자자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꽤나 신빙성 있어 보인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바 있는 칸서스자산운용은 박 회장과 지역 연고가 같은 김영재 회장이 전권을 쥐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과 사실상 동맹관계인 칸서스자산운용이 백기사로 나설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며 “칸서스자산운용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해 박 회장과 함께 인수주체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계속된 빚잔치 시련의 회생기
금호산업 재인수 마무리 단계


여기서 최근 박 회장의 지원군으로 또 다른 세력이 급부상하고 있다. 대우건설 인수를 두고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됐던 금호석유화학이다. 최근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사이에 어딘지 모를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금호산업은 지난달 24일 금호피앤비화학에 발행했던 어음대금 90억원과 이자 30억원을 법원에 공탁하고 금호피앤비화학은 소송을 취하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이고 금호피앤비화학은 금호석유화학그룹 계열이다.

금호그룹은 계열 분리 이전인 2009년 말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을 대상으로 각각 90억원, 30억원 규모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기업어음(CP)을 매입토록 했다. 그러나 2010년 초 금호산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CP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자 금호피앤비화학은 2013년 5월 어음금 청구 소송을 냈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소 제기 이후 CP 대금을 갚았으나 금호산업은 금호석화와 금호피앤비화학 등을 상대로 상표권 지분이전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법원은 금호산업이 제기한 상표권 소송 1심에서 “금호 상표권은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 양측에 모두 공동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판결해 사실상 금호석화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1건의 소송취하로 둘 사이 쌓인 앙금이 전부 해소됐다고 보는 건 확대해석일 가능성이 크다. 금호산업이 어음 원금과 이자를 법원에 공탁했고 금호석유화학에서 소송을 취소한 과정은 상표권 소송 판결에 따른 당연한 수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에게 창끝을 겨누던 모습은 일정부분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상처가 너무 깊다
동생과 화해 수순

하늘 높이 치닫던 박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원대한 이상은 산산조각난지 오래다.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켜줄 것이라 믿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거대한 채무만 남긴 채 남의 손으로 넘어간 지 오래고 형제 간 우애마저 쉽사리 회복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박 회장의 입지 역시 마찬가지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룹 재건이라는 큰 목표아래 일정부분 상처를 치유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영광을 되돌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리스크를 감수한 투자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만한 사례는 없어 보인다. 남들에겐 큰 교훈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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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