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리포트 - 그들이 궁금하다’ ③그들은 왜?

아무나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인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연쇄 살인범 김일곤은 평범한 사람이 생각지 못할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인 행각을 저질렀다. 김일곤의 행동은 그의 사고가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범죄의학자들은 앞다투어 김일곤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Psychopath)’로 평하며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의 위험성을 상기시키고 있다.

더 이상 사이코패스 혹은 사이코라는 단어는 그리 낯선 표현이 아니다. 대중매체에서는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히어로물까지 등장했으며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한 채 특이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농담조로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것도 스스럼없다.

사이코보다 더한
반사회 성격장애

그러나 현실세계는 다르다. 사이코패스의 악영향이 강력범죄, 특히 살인으로 표출될 경우 그들의 정신세계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장된다.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는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이 사이코패시 증상을 연구하면서 알려졌고 192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 슈나이더가 사이코패스 개념을 설명하면서 구체화됐다.

이 당시만 해도 사이코패스는 단순 정신질환으로 소개됐지만 이후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가 사이코패스 진단법을 개발하고 <진단명: 사이코패스>라는 책을 내면서 그 심각성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보통 사이코패스는 ‘놀라운 언변과 외적 매력, 과장하는 버릇, 남을 속이거나 조종하려는 태도, 병적인 거짓말 습관,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의 부재, 타인에 대한 냉담함, 공감 능력 부족,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 등을 보인다.

정당하다 생각하면 죽이는 소시오패스
자신 감정 조절하고 타인 감정도 이해

그렇다고 무작정 사이코패스로 매도하며 문제 삼을 수 없다. 사이코패스가 모두 범죄자는 아닐 뿐더러 사람들 속에게 이런 특징을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성향이 나타나는 정확한 이유 역시 밝혀진 바 없다.

사이코패스는 과연 선천적인 것일까? 최근 사이코패스의 뇌구조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나이겔 블랙우드 킹스 칼리지 런던 정신의학연구소 박사 역시 사이코패스가 선천적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나이겔 블랙우드 박사는 사이코패스로 분류된 범죄자 17명과 일반적인 반사회적 성격장애 범죄자 27명, 일반인 22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뒤 뇌 구조를 연구한 결과 사이코패스는 일반인에 비해 전문 측 전두피질과 측두극의 회색질이 다른 범죄자나 일반인들에 비해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당 뇌부위의 회색질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의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며 도덕적 행동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부분이다.

나이겔 블랙우드 박사는 “사이코패스 뇌는 일반인과 달리 감정이입이 되지 않고 죄책감이나 당혹감 같은 자아의식적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선천적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사이코패스의 한 갈래인 ‘소시오패스(sociopath)’가 이를 뒷받침한다.

소시오패스는 사회를 뜻하는 ‘소시오(socio)’와 병리 상태를 의미하는 ‘패시(pathy)’의 합성어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이다. 정확한 명칭은 ‘반사회성 성격장애(ASPD,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다.

남다른 정신세계
방조하는 유해환경

미국정신의학회에 따른 소시오패스 증상은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기성이 있다.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어서 몸싸움이나 타인을 공격하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이를 합리화하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특징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소시오패스의 위험성은 일반적인 사이코패스보다 훨씬 크다. 보통의 사이코패스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반면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능력도 있다. 다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는다.

또한 대체로 두뇌가 뛰어난 축에 속하기 때문에 상류층 인사나 유능한 직업인으로 성공하기 수월하다.

범죄심리학자 니시무라 유키가 ‘정장차림의 뱀’이라 칭하고 로버트 헤어가 화이트칼라에게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많이 발견된다고 언급한 내용은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극명히 보여준다. 영화 <양들의 침묵> <아메리칸사이코> 등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폭력성, 자기합리화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살인범의 심리 연구는 부단히 이뤄졌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채 살인의 목적이나 살인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에 대한 견해만 쏟아지고 있다.

주목해 볼만한 사안은 살인범 다수가 자살을 위한 도구로 살인을 택하거나 치밀한 범행으로 자신의 죄가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례가 빈번히 발견된다는 점이다.

아담 랭크포드 앨라배마대학교 응용범죄학과 교수는 자살에 대한 충동이 살인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사회적 유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벌이는 이기적 자살 행동의 일종으로 배우자가 부정을 저질렀거나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가족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가족 살인범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특징은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 상당수가 범행 현장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한 장소에서 다수의 사람을 살해하는 대량살인사건일수록 살인범의 현장 자살 비율이 높았다. 랭크포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그 비중이 31%에 달한다.

‘묻지마 살인’ 피의자 거의 싸이코패스
죄책감 느끼지 않아…사회적 문제 대두

살인을 하더라도 잡히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무고를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살인범들이 취하는 대표적인 행동이다.

김일곤 역시 스스로 무죄를 주장했다. 지난 17일 범행 8일 만인 검거된 김일곤은 검거 전 성수동의 한 동물병원에서 개를 안락사시키는 약을 탈취하려다 실패하고 달아났으며 이후 해당 동물병원에서 1㎞ 떨어진 성동세무서 건너편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그러나 경찰서로 압송된 김일곤은 “난 잘못한 거 없고 더 더 살아야 돼”라며 무죄를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사이코패스의 남다른 특성은 흔히 살인범과 사이코패스 연결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살인범의 탈을 쓰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살인범 가운데 사이코패스 확률이 높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사람이 살인을 계획하거나 구체적인 정황을 모의한다면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

자살 위한 살인
잡힐 걱정 안해


수많은 살인범이 기존 범죄사건을 모방하는 모습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모방범죄를 계획하는 과정의 교두보 역할은 각종 유해 영상 및 매체가 담당한다. 대표적인 예가 '스너프 필름'이다.

큰 의미에서 스너프 필름은 살인 등 잔인한 장면을 연출과 여과 없이 찍은 것을 뜻하지만 보통 폭력, 살인, 강간 등을 담은 ‘포르노그라피티’의 한 장르로 이해된다. 섹스장면을 그대로 연출하고 상대방을 죽이는 게 주된 내용이다.

포르노에서 스너프가 하나의 장르로 취급받게 된 것은 높은 수위를 요구하는 포르노의 특성에 기인한다. 극단의 자극을 필요로 하는 포르노에서 섹스, 학대, 변태적행위, 살인 등이 총망라된 건 스너프 필름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특히 살인의 진위여부를 쉽사리 확인하기 힘들 만큼 잘 짜여진 스너프 필름은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고 남다른 쾌락의 길로 인도한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역질을 느끼지만 여기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문제는 스너프 필름 속 내용과 강력범죄가 현실사회에서 살인 혹은 살인의도와 결합될 때 나타난다. 이 경우 스너프 필름을 모방하는 범죄행위의 폐단이 극대화된다.

지난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우상이라고 칭하며, 심야시간대 귀가 중인 여성을 납치한 뒤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한 혐의로 방모(26)씨와 양모(27)씨, 이모(27)씨 등 일당 3명이 경찰에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초등학교 동창인 방씨 등은 새벽을 틈타 서초구 골목에서 피해여성을 강제로 승용차에 태운 뒤 신용카드를 빼앗아 40만여원을 인출하고 충남 천안시 인근 야산에서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범행 당시 “연쇄살인범인 강호순이 우리의 우상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을 들으라”며 피해자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살인사건으로 커지진 않았지만 경찰의 수사가 늦어졌다면 살인사건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새 살인범이 우상처럼 변질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외에 스마트폰을 통해 무분별하게 퍼지는 음란·폭력성 콘텐츠는 범죄가능성이 높은 사이코패스들에게 좋은 자양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환경을 효과적으로 차단할만한 뚜렷한 대책은 아직까지 찾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 유해게임은 유통 후 적발이 되더라도 시정을 강제할 수 없다는 규정이 발목을 잡는다.

게임의 경우 제작자가 직접 등급을 매기는데다 이용자의 나이를 인증하는 절차가 없는 경우가 많아 미성년자들의 잠재적인 범행 가능성마저 높인다. 추가적으로 포인트를 구매하면 폭성성과 선정성이 짙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각한 모방범죄
“막을 방법 없나”

지난 2011년 정부는 게임산업을 키우겠다며 사전 심사 없이 유통 후 모니터링 하도록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로 점검하고 있는 게임은 전체의 6%에 불과하다. 하루에도 수백 건씩 출시되는 게임의 등급을 일일이 심사할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적발되더라도 별다른 제재가 내려지지 않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범인 키우는 소라넷

소라넷으로 대표되는 해외에 서버를 둔 유해 성인용사이트의 폐단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유사한 형태로 음란물을 유통하는 불법사이트도 우후죽순 증가추세다.

공공연히 몰카 영상을 거래하거나 자랑삼아 올릴 뿐만 아니라 강간, 윤간 등 변태적 성행위를 암시하는 영상들도 다수 올라와 있다. 심지어 강간하는 법, 사람 죽이는 법 등 입에 올리기 힘든 내용을 담은 영상들도 눈에 띈다. 사이코패스들의 온상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유명 음란물 유통·거래 사이트들이 해외에 거점을 둬 사실상 단속에 손을 놓은 상태다. 유해사이트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도메인 접속을 차단하는 방법만으로는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다. 사이트 도메인의 일부만을 바꿔가며 운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음란물을 법으로 허용하는 국가인 호주·캐나다 등에 서버를 두고 있어 수사 진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경찰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아동음란물 위주로 수사한 뒤 해당 국가에 협조 요청을 구하는 실정이다. 특정 국가의 사이트 출입을 차단하는 방법도 있지만 국제 무역법상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유해물 근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포괄적 규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소라넷의 사례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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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