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특집> ‘뿌리박힌’ 일제 잔재들 ①‘힘깨나 쓰는’ 친일파 후손들

각계각층 요직에 앉아 ‘떵떵’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윈스턴 처칠이 말했고,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받은 이 문장처럼 역사는 그 민족의 청사진과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8월15일을 기점으로 사회 각계 인사들에 대한 친일 의혹이 터져 나온다. 국민들이 바라는 과거사 청산은 요원하기만 한 것일까.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 대한 의혹을 <일요시사>가 정리했다.

친일파 의혹에 대해 말하기 전 한 가지 질문이 전제되어야 한다. 과연 친일파는 존재하는 것일까? ‘야권에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말 아닐까’하는 데서 오는 의문이다. 마치 여권의 종북 프레임처럼 말이다. 실상 그렇게 악용되지 않았던가. ‘종북’처럼 ‘친일’도 명백한 기준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둘 다 대한민국이 청산해야 하는 과거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도 유사하다.

친일파 청산
과거사 문제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사학계에서도 지난 70년간 그 기준을 찾기 위해 고심해왔다. 이른바 ‘역사 바로잡기’라는 큰 줄기를 토대로 여러 프로젝트가 사회각계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그 시작과 끝에는 친일의 기준이라는 문제가 발목을 잡아왔다.

사전적 의미로 친일과 친일파는 다르다. 친일이 행위를 기준으로 한다면 친일파는 집단을 기준으로 한다. 각각 제국주의 시절 일본을 옹호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나 일반적으로 친일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른다면 친일파는 과거의 특정인물의 행적을 규정하는데 많이 쓰인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과거 총리로 내정됐다가 낙마한 문창극 전 후보자의 경우 엄밀히 말해 친일을 한 것이지 친일파는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또한 사람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2009년 11월8일에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은 큰 의미를 지녔다. 민문연은 1991년 설립돼 사학계와 함께 과거사 연구에 몰두해왔다. 2001년부터는 120여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사전 발간을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중간에 보수단체로부터 각종 소송과 발행금지 신청 등을 받긴 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전을 출간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민문연도 친일파 후손에 대한 언급에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전 출간을 연구했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친일인명)사전의 출간 목적은 과거에 친일을 한 사람을 가려내서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라며 “연좌제처럼 자손에게 그 책임을 묻자는 목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또한 그는 “민문연에서는 가계도 연구 등 친일파와 그 후손들을 연결 짓는 연구는 하지 않고 있다”고 확실히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8·15를 맞아 다시 한 번 친일 논란에 휩싸일 분위기다. 언론에서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로 추정되는 인사들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한겨레>신문에서는 최근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통렬히 꼬집었다.
 

칼럼에서 볼 수 있는 김 대표 부친의 친일 행적은 다음과 같다. 김 대표 선친의 이름은 김용주, 전 전남방직의 회장으로 일찍이 일제강점기 때 친일 행적을 보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당시 일본의 조선인 징병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1943년 10월3일에 발간된 <매일신보>를 보면 김 전 회장이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기사가 존재한다. 또한 김용주는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으며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다수의 언론은 최근 김 대표가 방미 일정 중 보여준 ‘큰절’ 등을 보면서 ‘과공비례’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신문은 이번 칼럼을 통해 미국을 향해 큰절한 김 대표와 일본을 향해 감사를 표한 김 전 회장과의 연결고리를 주장하고 있다.

박정희·박근혜 끊이지 않는 의혹
영원히 자를 수 없는 평생 꼬리표

역대 대통령 중 50∼70년대 활동했던 대통령은 친일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잇다.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후 정부를 구성하는데 있어 친일파를 중용하고(정부 수립이 용이하도록 기존 인물들을 그대로 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다.) 반민특위를 해산시켰다는 측면에서 후대에 친일 행적을 의심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논쟁은 매년 이맘때 나오는 최고의 화두 중 하나다. 일부 언론에서는 칼럼을 쓸 때 ‘다카기 마사오’라는 박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으로 게재되기도 한다. 공개석상에서는 2013년 7월경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가 서울 시청광장에서 일본식 이름을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전 대표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친일 매국 세력, 다카기 마사오가 반공해야 한다면서 쿠데타로 정권잡고 유신독재 철권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을 두고 친일파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의 과거행적을 지적한다. 일제강점기 때 자발적으로 만주군관학교를 찾아간 것이 그 중 하나다. 당시 만주는 일본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행위를 두고 일본군에 자원입대한 것과 같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발간된 신문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일본을 찬양하는 듯 한 편지를 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39년 3월31일자 <만주신문>에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편지가 실려 있는데 내용에는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라고 적혀있다.

박 전 대통령의 영애가 현재 18대 대통령이라는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다. 특히 친일 성향이 강한 인사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것 아니냐며 야권으로부터 친일정부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박정희·박근혜
김용주·김무성

대표적인 예가 이인호 한국방송공사(이하 KBS) 이사장과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의 친일 논란이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지난 2014년 9월 내정 당시 “과거 일제시대 친일행위를 비호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인사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조부의 과거 친일 행적 때문이다. 조부인 이명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로 일제강점기 시절 징병제를 찬양하는 글을 발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이사장은 조부의 행적에 대해 인정했다. 2014년 10월22일에 열렸던 KBS에 대한 국정감사 자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 이사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조부의 행적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일전쟁 이후에 한국에서 직업을 가지고 산다는 것 자체가 오역이었다”며 “일본과 타협하고 체제에 안주했던 분”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오히려 이 이사장 본인의 발언이 구설에 올랐다. 대중의 정서와 괴리가 느껴지는 발언을 한 사실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 이사장은 강연을 다니며 “백범 김구 선생은 건국 공로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논란이 된 적 있다.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는 본인의 친일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KBS는 문 후보자가 내정된 직후 교회에서 ‘일제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자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단체는 총리 후보 사퇴를 촉구했고 결국 문 후보자는 청문회에 서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문 후보자는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 알려져 아이러니함을 자아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문창극 후보자의 할아버지와 건국훈장을 추서 받은 문남규 선생이 동일 인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문남규 선생은 지난 1921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하다 전사한 대한독립단 소속 독립투사로 알려져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정치인 선친
자유롭지 못한 고위공직자도

전·현직 국회의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현직에서는 새정치연합 신기남·이미경 의원이, 전직 국회의원으로는 정동영·유시민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신 의원은 아버지 신상묵은 일본 헌병을 지낸 이력이 있으며, 이 의원의 부친 이봉권은 황군 헌병오장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이 있다.

정 전 의원의 부친 정진철은 조선 농민들의 자금과 인력을 동원을 담당했던 금융조합에서 서기로 5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유 전 의원의 부친 유태우는 일제가 세운 전쟁으로 빼앗아 세운 만주국에서 역사 훈도로 재직했는데, 당시 역사 훈도는 일본 군국주의 역사를 찬양하는 내용을 교육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친의 친일 또는 본인의 행적을 공개적으로 사과한 사람도 있다. 신 의원은 지난 2005년 부친의 친일 행적을 사과하며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하는 용단을 보였다. 신 의원은 당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부친의 친일인사 명단 포함 여부와 관계없이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진정으로 화해하는 새로운 국민통합의 역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친일 논란이 거짓으로 드러난 사례도 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과거 청문회 자리에서 조부가 친일파였다는 논란에 휩싸였으나, 사실과 다름을 밝혀냈다. 학계의 뒷받침이 결정적이었다. 한 장관 측은 “(아버지) 한봉수 의병장에 대한 행적은 이미 학계에서 검증됐고, 친일 행적은 없었다”고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사실이 다름을 알렸다.

신기남·이미경
정동영·유시민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은 살아생전 자신의 친일 행위를 반성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경남 하동초등학교 강당에 올라 “저는 하동군수로 1년, 창녕군수로 3년간 있었는데 그때는 징용·징병·학병을 보내기 위한 일을 했다”며 “그때 그렇게 집을 떠나야 했던 분들 가운데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앞잡이로서 그런 일을 저질렀던 나쁜 죄인이었다”고 고백했다.

대중을 향해 고해성사를 한 이 전 총장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어도 당시 군수 이상의 관리는 친일파로 볼 수 있다.” 과연 이 전 총장의 말처럼 구분을 하면 친일파, 또 그의 후손들을 모두 골라낼 수 있을 것인가. 그 과정에서 자칫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후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은 연좌제가 아닐까. 아직까지 국민들이 바라는 수준의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chm@ilyosisa.co.kr>



<광복 70주년 특별기고> 일본의 무사도는 짝퉁이다

무사도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사랑하고 자랑으로 여기는 정신이다. 가히 일본의 국민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신은 일본 고유의 정신이 아니라 서양의 기사도를 모방한 정신이라고 믿어진다.  일본역사에 있어 ‘무사도(사무라이 정신)’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에 의하여 1899년 <BUSHIDO -The Soul of Japan>이라는 책이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하면서이다. 당시 니토베 이나조는 37세에 불과한 젊은이였다.

무사도라는 글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1585년의 <고요군칸>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에서 무사도의 뜻은 무사의 용감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지 오늘날 같이 충성, 명예, 청빈 등 여러 가지의 뜻을 포함한 무사도개념(사무라이정신)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글자의 모양은 같지만 그 뜻은 완전히 다른 글자인 것이다.

니토베 이나조는 일본 문헌에서 무사도라는 글자가 사용된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뜻을 전혀 모른 채 무사도라는 글자를 스스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전에 나오는 무사도라는 글자와 그의 무사도 글자는 모양만 일치할 뿐 뜻은 전혀 다른 글자가 된 것이다.

모양만 일치할 뿐 그 뜻은 전혀 다른 별개의 글자라는 면에서 니토베 이나조 이전에는 무사도라는 개념뿐 아니라 글자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저자 니토베 이나조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유럽과 미국에서 유학하고, 미국인 여자와 결혼까지 한 서구 문화에 상당히 익숙한 젊은이였다. 반면 일본 역사에는 매우 어두워 당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읽는 수필집 <쓰레즈레구사(徒然草)>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그가 유학시절 유럽의 교수로부터 “일본은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도덕적 규범을 가르치며 일본의 도덕적 가치관은 무엇인가?” 하는 당혹스런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한 답변이 궁색해 자존심이 상했던 그는 며칠을 생각해 보니, 그것은 무사도였다 라는 것을 겨우 생각하게 됐다고 책 서두에서 말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지 않지만, 서구 문화에 익숙해 있던 그는 여기서 기사도를 생각했던 것 같다.

옛날 서양의 기사들에게 있었던 ‘기사도’라고 하는 규범이, 오늘날 서구인들에게 신사도라고 하는 도덕적 규범의 모태가 되었듯이, 옛날 일본의 무사들에게도 나름대로 어떤 규범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규범을 인용해 오늘날 일본인의 도덕적 규범을 설명하면 서구인들에게 보다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작가 스스로 “서양의 기사도와 일본의 무사도처럼 비슷한 것도 없을 것”이라고까지 책에서 밝힌 것처럼, 일본 사무라이들의 행태를 서양 문화와 기사도에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으나, 책을 쓴 과정과 환경 등을 살펴보면 서양 문화와 기사도의 여러 행태에 일본 문화와 사무라이의 행태를 끼워 맞추어 쓴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전쟁터의 정신사(한글판: 무사도는 없다)>를 쓴 ‘사에키 신이치’도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를 쓰면서 기사도를 뼈대로 하여 새로운 개념을 덧붙일 생각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분석하였다”고 씀으로써 무사도가 기사도의 모방임을 밝히고 있다.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는 충(忠)·의(義)·용(勇)·인(仁)·예(禮)·성(誠)을 기본으로 하며, 이 무사도가 바로 일본 민족의 아름다운 이상이자 도덕적 규범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상상력에 근거하여 저술한 창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이 미국에서 유명해지자, 일본으로 역수입하게 되고 일본에서 또한 유명해지게 된다. 당시 침략을 준비하던 군국주의의 일본정부가 자국 군인과 국민들에게 충성심과 용맹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시키기 위한 정신 교육용으로 이 책의 주 내용을 채택하게 된다.

그러면서 근거도 없이 저자가 상상을 하며 제멋대로 쓴 책의 주장을, 정훈교육 관점에서 홍보하고 교육시키면서 더욱 과장하고 미화시켰다. 그리고 한번 과장하고 미화하기 시작한 바람은 더욱 거세지면서 많은 어용학자들이 나서서 시시콜콜한 사무라이들의 이야기조차도 무슨 대단한 일인 양 부풀려 가면서 자국 국민들을 세뇌시켰다. 일본정부는 문단총동원(文壇總動員)령을 내려 문인들로 하여금 침략전쟁을 선동하고, 어용 논리를 만들어 주변국 침략을 정당화하면서 침략전쟁을 일본민족의 성전이라며 선동하고 참전 열풍을 일으켰다.

사무라이와 관련된 논문과 책이 대량으로 발행된 것도 이때였다. 이렇게 하여 정확한 역사 사실에 대한 조사도 없이, 단지 37세의 젊은이가 기사도를 모방하며 멋대로 쓴 엉터리 창작품 무사도가 오늘날 일본인들의 기본 정신인 양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저자 장성훈

 

*본 내용은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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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