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조롱한 기업들 어디?

돌아가신 대통령을 갖고 놀다니…

[일요시사 사회팀] 박호민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6년이 지났다. 노 대통령은 세상을 등진 뒤에도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선다. 때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의 치열했던 삶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끊임없이 노 대통령을 비하하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해당 기업들 대부분은 비하 논란이 일자 황급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양새다. 네티즌들을 분노케 했던 노무현 조롱 기업들을 정리했다.
 
조롱광고에 
뿔난 네티즌
 
유명 프랜차이즈인 네네치킨은 지난 1일 네네치킨 본사 페이스북 페이지와 경기서부지사 페이지 등에 “닭다리로 싸우지 마세요. 닭다리는 사랑입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치킨”이라는 내용과 함께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사진 속 노 대통령은 큰 닭다리를 품에 안고 있는 것처럼 합성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광고를 본 한 네티즌은 “해당 사진은 극우성향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에서 노 대통령을 희화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사진”이라며 “이번 광고도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려는 목적 같다”고 말했다.
 

네네치킨은 해당 게시물을 게시 2시간여만에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에서 회사측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희화한 사진이 노출됐다”며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가족을 비롯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하지만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불매운동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네네치킨은 한번 더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사고 전날 저녁 사태의 위중함을 파악한 경기서부지사장이 휴가로 부재 중인 페이스북 담당 직원과 연락을 취했으나 바로 연락이 되지 않으면서 사과가 늦어졌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네네치킨에 따르면 사고를 일으킨 직원은 “자신이 올린 게시물이 맞고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네네치킨도 “경기서부지사 SNS는 원래 가맹점주들의 이야기와 네네치킨을 친근하게 소개하는 이미지들을 매주 월·수·금요일마다 올려왔는데 지난해 10월 입사한 직원(사원)이 인터넷상에 떠도는 사진을 사용해 게시물을 게재했다”고 부연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통해 SNS 관리의 미비점을 파악했고 이후 철저한 경위파악과 신속하고 엄중하게 조처할 것으로 약속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과거 홈플러스도 노 대통령 비하와 관련해 홍역을 치러야 했다. 201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한 합성사진이 대구 칠곡점 홈플러스 매장 TV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해당 TV에는 노 대통령 얼굴에 새부리 등을 합성한 사진이 게재됐다. 매장에서는 발견 직후 해당사진을 삭제했으나 이미 외부에 노출되면서 비난 여론이 확산됐다. 사건의 주범은 외주업체 직원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일베 회원인 20대의 외주업체 계약직 직원이 고의적으로 사진을 올렸다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사과 과정에서 거짓 해명 논란까지 일어나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 홈플러스는 임대매장인 이동통신사 직원이 인터넷을 하다 상품 설명 중 초등학생이 리모콘으로 장난 쳐 사진이 게재됐다고 해명을 했지만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또, 칠곡점에서 사건이 일어났던 날 홈플러스 경북 구미점의 한 전자제품 매장에서도 노트북에 노 대통령과 동물을 합성한 사진이 게재됐다 삭제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기도 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본의 아니게 홈플러스 매장에서 그런 합성 사진이 발견 돼 고인인 노무현 대통령과 유가족,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다시는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장과 입점 업체 직원 교육에 더 신경쓸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은 사고

기업은 사과
 
천안의 한 호두과자업체도 노 전 대통령을 희화하면서 물의를 일으켰다. 사건은 2013년 당시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천안의 한 호두과자 업체 제품 사진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해당 호두과자 포장박스에는 노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이미지 ‘노알라’가 새겨졌다. ‘노알라’는 일베에서 노 대통령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호두과자업체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포장지에도 ‘중력의 맛’ ‘고노무 호두과자’ 등 일베에서 노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들이 사용되면서 비난 여론이 가중됐다. 이 업체는 “정치적인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스탬프를 제작하거나 의뢰한 것이 아니고 재미 반 농담 반 식의 이벤트성으로 보내온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파문은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2014년 들어 호두과자 업체가 사과를 전면 취소하면서 다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호두과자업체는 “사과는 사태수습용이었다”며 “내용을 읽어보면 사과보다 해명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는 글을 게재했다. 이어 “그(사과문)마저도 이 시간부로 전부 다 취소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호두과자업체는 자신들을 비난하는 네티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여론을 악화시켰다. 업체 대표 B씨는 “당시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그 사람들은 홈페이지에 심한 욕을 썼다. 그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 금전적인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송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나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사건의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동안에 따르면 지난달 1일까지 호두과자 제조업체로부터 고소당한 네티즌 164명 중 2명이 합의를 봤고 126명이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제는 호두과자업체가 무고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몇몇 네티즌들은 호두과자업체를 상대로 고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네치킨, 닭다리 안은 희화 사진 파문
곧바로 사과했지만 이미 불매운동 확산
 
옥션에도 비하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옥션의 노트북 판매자가 노 대통령을 희화한 사진으로 노트북 광고를 해 물의를 빚은 것. 논란은 2013년 옥션의 노트북 판매 사업자가 일베에 ‘가격민주화’라는 제목의 노트북 광고를 올리면서 시작됐다.
 
광고에는 노 대통령이 유채꽃밭에서 웃고 있는 사진이 사용됐는데, 해당사진은 ‘천국으로 간 노짱’이라는 제목으로 일베에서 노 전 대통령 조롱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곤 한다. 광고에 사용된 ‘민주화’라는 문구 역시 ‘비추천’ 또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광고가 나간 뒤 논란이 커지자 해당 광고주는 해명을 했지만 해명 과정에서 또 다시 노 대통령을 조롱하는 단어를 사용해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해당광고를 올린 사업자가 옥션 홈페이지 상품문의란에 올라온 고객의 항의글에 “가격을 내려서 저렴하게 국민들이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게 취지이기에 서민 이미지 살리기 위해 ‘노 고무현’ 전 대통령 사진을 넣었다”면서 “가격민주화는 서민경제를 살리고 더불어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올렸다”고 해명했다.
 
사진으로 장난

일베가 문제?
 
그러나 네티즌들은 ‘노 고무현’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희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만큼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더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결국 옥션 측은 해당 노트북 판매자에게 철퇴를 내렸다. 옥션이 물의를 빚은 옥션의 노트북 판매자에게 ‘부적합 문구’ 사유로 판매중단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 판매업체의 판매 페이지에 옥션은 “상기 상품은 부적합 문구 사유로 인해 조기마감 됐습니다”라는 공지를 올렸다.
 
닌텐도도 노무현 비하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해당 게임을 살펴보면 2012년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용으로 출시된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 2’ 게임 내의 리버스마운틴 지역을 가면 ‘백팩커 노현’이라는 캐릭터와 ‘등산가 학사가’라는 동행인이 나온다.
 
게임 플레이어가 노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면 옆에 있던 동행인은 노현에게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말한다. 이를 두고 당시 네티즌들은 노 대통령을 비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문구는 한 드링크제의 광고 문구이지만 일베에서는 노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을 빗대 조롱의 의미로 쓰인다. 노현이라는 캐릭터도 노무현과 발음이 비슷해 조롱의 의미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툭하면 한번씩 논란

조롱 대상으로 여겨
 
이 게임은 일본어 판을 번역해 한국판으로 출시했다. 일본어 판에는 ‘육근청정’(생명을 근원에서부터 깨끗하게 하는 모습을 뜻함)이라는 불교용어가 쓰이는데 ‘자연인’과는 큰 연관이 없다. 다만, ‘노무현’과 발음이 비슷한 노현이라는 캐릭터는 2002년부터 게임에 등장했다.
 
게임에 등장한 예는 또 있다. 해당 게임은 스마트폰 게임으로 ‘바운스볼’을 패러디한 ‘바운지볼’이다. 이 게임은 공을 튀기면서 스테이지를 깨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공 대신 사용된다. ‘노무현 공’은 바닥에 통통 튀며 가시밭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이때 가시에 닿으면 캐릭터가 죽고, 공이 밑으로 떨어질 땐 “으아아아 운지”라는 소리를 낸다. ‘운지’라는 단어는 일베에서 노 대통령을 조롱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글로벌 기업 구글도 노 대통령 비하 논란으로 항의를 받았다. 2013년 안드로이드용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에 등록된 ‘스카이 운지’라는 게임은 명칭부터 ‘운지’를 사용하고 있어 논란이 됐다. 앱 아이콘도 ‘노알라’ 캐릭터를 그대로 사용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검은 양복을 입은 노알라 캐릭터가 화면 아래로 낙하하는데, 북한 미사일 등이 장애물로 등장하며, 게임 배경에는 부엉이 바위가 등장한다. 게임 제작자는 “귀여운 노알라 캐릭터로 몸에 해로운 계란과 부엉이를 피하는 게임입니다.
 
책임 미루기
진정성 논란
 
중력에 자유롭게 몸을 담아 시원하게 운지해보세요. 다함께 스카이 운지 즐겨보아요”라며 비하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노무현재단 측은 구글에 항의를 했다. 정치권도 날을 세웠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꼬는 '운지'라는 앱 이름 자체도 문제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게임이 유료로 팔리고 있는 것도 충격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게임을 개발한 야필쏘굿(YaFeelSoGood)게임즈 개발자는 논란에 대해 “노알라 캐릭터, MC 무현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콘텐츠를 평소에 재미있게 보고 있어서 한 번 게임을 만들었다. 악의나 비난의 목적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donky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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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