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빠른 간편대출'의 함정

곧이곧대로 광고만 믿었다간 ‘낭패’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최근 무차별적으로 TV 대출 광고가 나오고 있다. 하루 평균 케이블TV를 통해 나오는 대출광고는 1000건이 넘는 수준. ‘대출광고 홍수’라는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이들 대출 광고는 대부분 쉽고 빠른 대출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쉽고 빠른 대출의 진실을 <일요시사>에서 조명했다.

 

케이블TV를 시청하고 있으면 수많은 대출 광고가 나온다. 밝고 경쾌한 배경음악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델들은 돈을 빌리라고 예비 대출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나 단박에 대출해준다는 등의 문구는 제1금융권 이용이 어려운 금융소비자에게 절실하게 다가온다.
 
누구나 대출?
현실은 팍팍!
 
TV광고에서 말하는 ‘쉽고 빠른 대출(이하 간편대출)’은 통상적으로 무방문, 무서류, 무담보 신용대출 등을 의미한다.
 
과연 이들 광고처럼 쉽고 빠른 대출(이하 간편대출)이 가능할까. 업계에서는 저축은행과 대부업 등에서 최근 간편 대출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출을 받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신용평가 회사인 나이스(NICE)신용평가가 대부업체 90여 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 대출 승인률은 23.9%였다. 급하게 돈이 필요해 대부업체를 찾은 10명 중 8명은 퇴짜를 맞은 셈이다.
 
대부업체들은 20% 가량의 승인률이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대부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업 이용자들 대부분의 신용등급은 7.8등급이다. 이들 대출자의 상환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대출 승인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도 “저축은행의 간편 대출에 대한 승인률은 공개할 수 없지만 최근 강화된 대출 심사로 인해 대부업 대출 승인률보다는 낮을 것”이라며 “신용이 낮은 대출 희망자가 간편대출을 받으려 한다면 생각보다 대출 받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소비 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최근 들어 금융당국이 이자율을 낮추라는 압박을 저축은행과 대부업계에 하고 있다”며 “간편대출 신청자들에 대한 심사가 까다롭게 변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무차별적 케이블TV 광고…하루 평균 1000건
대부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강조
 
실제 취재를 진행해 본 결과 저축은행의 경우는 신용등급이 낮다면 실제 대출 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또, 개인 정보 도용에 대한 대비도 최대 5개의 절차를 거치면서 비대면 대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대부업체였다. 대출 과정에서 대부업체들의 상당수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우선 대부업체들 대부분은 간편대출을 TV광고 등을 통해 홍보하지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상품의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자세한 상품 정보 및 대출자격을 알아보려면 전화 상담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대출상담 과정에서 ‘신용정보를 확인하는 경우 신용등급이 하락해 금융상에 불이익이 생긴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상담원은 없었다. 금융 지식이 없는 일반 금융소비자의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금융상의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업체의 대출 기준이 매우 낮은 점도 문제였다. 아르바이트를 할수 없는 처지인 대학생 A(26)씨가 B대부업체에 대출 상담을 받자 대부업체로부터 방문 없이 신분증, 통장 사본 등 몇 가지의 서류로 최대 5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자는 34.8%로 법정 최고금리(34.9%)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 대출 상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출에 큰 무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돌려막기 유혹
지급불능 원인
 
어떤 곳은 대출 자격이 안 되는 대출 희망자를 자격이 되도록 꾸미는 방법을 알려주기까지 했다. 500만원 가량의 빚이 있는 35세의 무직 남성 C씨가 500만원의 대출을 위해 D대부업체의 대출상담을 받자 상담원은 대출이 힘들 것 같지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처럼 꾸미면 대출이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업자 등록이 돼 있는 사업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해당 남성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4대 보험이나 월급 지급 내역이 없어도 대출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충격적인 사실은 B대부업체와 D대부업체 모두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대출을 해주는 업체였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대부업체는 이와 관련 “일부 대부업체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대출을 해주는 경우가 있다”면서 “최근 낮아진 금리 탓에 수익이 악화되고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중소형 대부업체를 중심으로 무리한 돈 꿔주기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업체의 허술한 대출 심사는 종종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지난 4월 광주광역시에는 재직증명서 위조로 사기 대출을 해 3억3000여만원을 챙긴 혐의(사기·사문서위조 등)로 조직폭력배 양모(33)씨와 모집책 안모(39)씨가 구속되고 범행을 공모한 23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지난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대부중개업 사무실을 차려놓고 ‘신용불량자 대출 가능’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염모(28)씨 등을 마치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것처럼 가짜 재직증명서 등을 만들어 14회에 걸쳐 제3금융권에서 1억여원을 대출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달 김포에서는 훔친 신분증 14장을 이용해 신규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은행계좌를 개설해 대부업체에서 4000여만원을 대출받은 혐의(사기및장물취득)로 이모(21)씨가 경찰에 덜미를 잡힌 사건도 있었다.
 
대부업의 손쉬운 간편대출은 이른바 ‘돌려막기’용 대출로 이어져 고금리의 늪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다.
금융당국 자료에 따르면 자산 100억원 이상 80개 대형 대부업체의 지난해 상반기 신규 대출액 1조9640억원 중 1396억원이 ‘타 대출 상환’ 목적의 자금이었다. 전체 대부업 신규대출의 7.1%가 이른바 ‘돌려막기’ 목적으로 대출받은 돈이라는 의미다.
 
무차별 TV광고

칼 빼든 국회
 
국회는 대부업 TV광고의 간편광고를 통해 금융소비자들이 돈을 빌리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것을 우려해 대출 광고에 대한 제재에 관한 대부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해 안에 오전 7∼9시, 오후 1∼10시, 주말·공휴일은 오전 7시~오후 10시까지 대부업은 TV광고를 못하게 된다. 현재는 방영시간에 대한 규제가 없어 하루종일 대출광고가 전파를 탈 수 있다.
 
 
대부협회가 대부업체 이용자 32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2%가 TV광고를 보고 대부업체를 안 것으로 나타났다. 각각 17%와 6%의 대부업체 이용자가 인터넷과 휴대전화 광고를 통해 대부업체를 알게 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승인률 24%’ 10명 중 8명 퇴짜
허술한 심사 도마…범죄 악용도
 
특히, 어린이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광고가 노출돼 우려를 자아냈다. 금융정의연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의 대부분(94.7%)이 대출광고에 노출됐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2%는 매일 TV광고에 노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투니버스, JEI 재능 TV 등 어린이가 주로 시청하는 방송에도 TV대출 광고가 나오면서 이를 지적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렇게 하루에 나오는 TV대출광고는 1000건이 넘는다. 새누리당 류지영 의원이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케이블티브이방송협회로부터 받은 ‘주요 방송사업자의 대부업 광고 현황’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케이블채널에서 방송된 대부업 광고는 모두 75만7812건으로, 하루 평균 1188건의 광고를 내보냈다.
 
대부업계는 TV광고를 제재하는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는 소식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대부금융협회는 “국내 대형 로펌 3개사로부터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헌법상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와 직업의 자유, 평등권 등 대부업자의 기본권을 심하게 침해해 위헌적 소지가 높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재 너무해
위헌 소지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출상품 광고를 주류, 담배, 도박업 광고 등과 동일한 잣대로 규제하려는 입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대부업자 방송광고의 시간대 제한에 대한 위성 여부에 대한 세부 검토를 실시할 계획이며 필요한 경우 회원사와 협의해 위헌 법률 심사 청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donky@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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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