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회장님 '성완종 살생부' 실체

이명박 털려다 박근혜 털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로 이명박정부를 겨냥했던 청와대가 심각한 역풍을 맞았다. '죽은 성완종'이 '산 박근혜'를 쫓고 있는 꼴이다. "나는 MB맨이 아닌 MB정부의 피해자"라고 울먹였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죽음과 맞바꾼 메카톤급 폭로로 정부·여당의 폐부를 찔렀다. 이제 관심은 '성완종 리스트'에 모아진다. 메모 내용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의 남은 운명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새벽 6시 초대형 폭로가 나왔다. 두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의 억대 금품 수수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이들에게 돈을 건넸다고 밝힌 사람은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다. 성 회장은 판도라 상자를 열고, 몇 시간 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자원외교 역풍
정부에 부메랑

'십상시 파문'조차 비교 불가한 사상 초유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졌다. 성 회장은 생전 마지막 유언을 가족이 아닌 언론 기자에게 남겼다. <경향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가 만든 소용돌이는 메가톤급 파괴력을 가진 허리케인으로 확대돼 청와대를 덮쳤다.

성 회장은 자살을 결심한 지난 9일 새벽 5시 유서를 남기고 자택을 나섰다. 자택 인근의 리베라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5시30분께 북한산에 도착했다. <경향신문>은 약 30분 뒤 성 회장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결과적으로 유언이 된 그의 인터뷰는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10일 공개된 인터뷰에 따르면 성 회장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을 전후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각각 10만달러와 7억원을 건넸다. 돈의 성격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단 당시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성 회장은 두 실장에게 돈을 전달한 시기와 장소를 정확히 묘사했다. 김 전 실장에 대해선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돈을) 전달했다. 당시 수행비서도 함께 왔었다. 결과적으로 신뢰관계에서 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허 전 실장에 대해선 "2007년 당시 허 본부장(당시 박근혜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을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7억원을 서너 차례 나눠서 현금으로 줬다. 돈은 심부름한 사람이 갖고 가고 내가 직접 주었다"라고 말했다. 성 회장은 "그렇게 (돈을 전달해) 경선을 치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권 핵심 인사들 도마 '일파만파'
성회장 메모 사실이면 현정부 '끝'

성 회장의 인터뷰는 이날 오전 거의 모든 매체가 빠짐없이 인용했다. 사안이 가진 폭발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일각에선 '녹취록이 정말 있는 것이냐'라며 의문을 표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오후 12시 성 회장의 육성 녹취록을 직접 공개하며 논란을 정리했다. 녹취록의 내용과 보도된 내용은 정확히 일치했다.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로부터 약 2시간 뒤엔 성 회장이 죽기 직전 남긴 메모가 세상에 알려졌다. 성 회장의 시신을 검시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메모를 확보한 것이다. 메모에는 두 실장을 포함한 여권 거물급 정치인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메모에 쓰인 내용은 성 회장이 생전 육성으로 밝힌 주장과 같았다. '김기춘 10만달러' '허태열 7억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던 것이다.

남은 6명의 신원도 속속 드러났다. 메모 속 인물이 '홍준표(1억), 부산시장(2억), 홍문종(2억), 유정복(3억), 이병기, 이완구'라는 방송보도가 잇따랐다. 검찰은 "대체적으로 (언론에서 밝힌) 내용이 같다"라며 사실을 인정했다. 여기서 '부산시장'은 친박계인 서병수 부산시장으로 확인됐다.

메모의 필적은 평소 성 회장의 필적과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성 회장의 메모가 맞는지 필적감정을 의뢰했고, 본인 것이 맞다는 확인을 받았다. 메모에 적힌 총 글자 수는 55자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는 구체적인 금액이 적혀있지 않아 의문을 자아냈다. 남은 4명은 각각 성 회장으로부터 적힌 액수만큼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메가톤급 파괴력
판도라상자 열려

비록 성 회장은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성완종 리스트'는 박근혜정부 전·현직 핵심참모, 새누리당 유력 정치인을 궁지로 내몰았다. 아울러 이들 대부분은 소위 친박계 정치인이자 각종 선거 과정에서 박 대통령을 도왔기 때문에 청와대가 직격타를 맞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박근혜정부 입장에선 성 회장이 토끼인 줄 알고 몰았다가 사냥개에 물린 형국이다.

지난 2월26일 <세계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박근혜정부는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 무렵 수사의 무게 중심은 포스코에 쏠렸다. 이 총리가 먼저 3월12일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라고 말했고, 같은 달 17일에는 박 대통령이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뿌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당시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는 일종의 보험 성격으로 풀이됐다. 자원개발 비리 수사는 영포라인뿐 아니라 일부 친이계 전·현직 의원을 옭아 멜 수 있고, 현 정권에 직접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로 꼽혔다.

그렇지만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포스코 수사는 기대만큼 풀리지 않았다. 지금껏 포스코 수사의 핵심 인물인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대로 경남기업 수사는 빠른 속도로 핵심에 다가갔다. 압수수색부터 구속영장 청구까지 일사천리였다.

타깃이 된 성 회장은 기업 경영권을 포기했으며, 회사는 법정관리·상장폐지로 내몰렸다. 비빌 곳이 없어서였는지 수사의 강도도 셌다. 검찰은 압수수색 18일(4월3일) 만에 성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다음날엔 언론을 통해 성 회장의 구속수사를 기정사실화했다. 성 회장에게는 'MB맨'이라는 별명이 덧씌워졌다. 이명박정부 당시 정권 차원의 특혜를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망 전 육성파일
"나눠서 7억 줬다"

그러나 성 회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는 MB맨이 아니다"라며 요목조목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성 회장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선진통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는데 새누리당과 합당 이후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를 위해 혼신을 다했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수사기관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 회장을 'MB맨'으로 분류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는 지난 정권의 핵심축이었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에 속하지 않았다. 당내 계파 구도상 친이계로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한국광물자원공사와 경남기업이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자금 거래가 있었다는 혐의를 잡고, 둘 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성 회장은 여러 친박계 중견 정치인에게 구명을 요청했지만 "죄가 없으면 수사를 받으라"며 번번이 거부당했다고 전해진다. 메모에 등장하는 이 실장 역시 성 회장의 구명 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기자회견은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카드였다. 그러나 성 회장의 바람과 달리 기자회견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 회장은 바로 다음날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성 회장을 통해 지난 정권 인사를 엮으려던 검찰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검찰 수사 리턴?…정관계 긴장
'뇌물리스트' 존재 여부에 촉각


'MB를 직접 겨냥하진 못할 것'이란 세간의 예측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메릴린치 자문 사기' 의혹 등을 받고 있음에도 참고인 조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MB 쪽을 어설프게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이들은 '친박'이다. 생전 성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성 회장의 죽음으로 가장 득을 본 인물은 바로 이 전 대통령이다.

<경향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성 회장은 "자원 쪽을 뒤지다 없으면 그만둬야지. 마누라와 아들, 오만 것까지 다 뒤져서 가지치기 해봐도 또 없으니까 1조원 분식 얘기를 했다"라며 "(검찰이) 저거(이명박정권의 자원외교)와 제 것(배임·횡령 혐의)을 '딜'하라고 그러는데, 내가 딜할 게 있어야지요"라고 말했다.

이는 성 회장에 대한 수사가 궁극적으로는 MB 쪽을 겨누기 위한 발판이었다는 증거다. 정부는 진짜 'MB맨'을 잡기 위해 가짜 'MB맨'을 벼랑으로 몬 것이다. 성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관련 수사는 사실상 중단될 개연성이 높다. 검찰 입장에선 수사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4·29재보선을 앞두고 '성완종 리스트'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떠올랐다. 대중의 관심은 사건 관련자의 금품 수수 여부에 쏠리고 있다.

김 실장과 허 실장, 그 밖에 언급된 모든 정치인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 실장은 청와대를 통해 해명자료를 보내는 등 이례적으로 해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진실을 가리려면 보다 많은 증거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한 검찰 관계자는 "공소시효도 따져봐야 하지만 금품거래 의혹의 당사자인 성 회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4·29재보선
변수로 떠올라


검찰의 수사 착수와는 별개로 성 회장이 쓴 메모와 육성 녹취록 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관련한 의혹 제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시비를 가리는 유일한 끈은 '제3의 목격자'다.

<경향신문>이 공개한 육성파일을 들으면 성 회장이 금품을 전달하는 과정에 '심부름을 시킨 사람'과 '수행비서'가 등장한다. 만약 이들이 성 회장의 인터뷰가 사실이라고 진술한다면 청와대의 남은 3년은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뇌물 메모' 8인의 반박

[김기춘] "악의적이고 황당무계한 내용"
[허태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홍준표] "돈 받을 정도로 친밀감 없다"
[서병수] "알지만 왜 거론됐나 모르겠다"
[홍문종]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 없다”
[유정복] "단 1원 한푼도 받은 적 없다"
[이병기] "인간적으로 섭섭했던 것 같다"
[이완구] "의정때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