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우리나라에서 건설업만큼 파급효과가 큰 산업은 없다. 우리나라에선 인테리어, 부동산중개업 등 무려 1000만명이 건설업 직간접 종사자로 분류된다. 이 같이 국가경제를 떠받쳐온 건설업이 최근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13년에는 국내 100대 건설사 중 절반이 구조조정에 돌입하기도 했다. 과연 건설업의 위기를 극복할 해법은 없을까? <일요시사>가 한국건설경영협회 김세현 부회장을 만나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건설업은 그동안 공장과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함으로써 수출산업을 뒷받침했고, 내수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요즘 건설업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지난 2013년에는 국내 100대 건설사 중 절반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건설업의 몰락은 곧바로 경기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일요시사>와 만난 한국건설경영협회 김세현 상근부회장은 “건설업의 위기를 방치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격”이라고 일갈했다. 과거 국가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경기부양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건설업계를 다시 살릴 방법은 없을까? 다음은 김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 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다. 그런데 특히 건설업계가 많이들 어렵다고 하는데 얼마나 어려운가?
▲ 건설업계는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하는 갈림길에 서있다. 새해 벽두부터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인 동부건설이 경영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동부건설 뿐만 아니라 국내 100대 건설사 중 상당수가 현재 법정관리, 워크아웃 등에 처해 있다. 법정관리나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건설사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 어떤 점이 건설업계를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 일감 부족과 일감을 얻더라도 저가낙찰로 제대로 이익을 내지 못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정부의 건설투자가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지난해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서 40조원 가량의 공공공사를 발주했지만, 58조원 규모에 이르렀던 지난 2009년도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어렵게 수주한 공사들은 저가낙찰을 강요하는 정부의 가격경쟁 위주 입찰정책으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회사가 어려우니 일단 공공공사를 수주해 당장의 위기를 넘기고, 또 다른 공사를 저가에 낙찰 받아서 메우는 그야말로 ‘돌려막기식’ 경영으로 내몰리고 있다.
- 정녕 작금의 건설업계를 살릴 방법은 없나?
▲ 우선 일감을 줘야 한다. 일감을 주면 일자리도 늘어난다. 그러면 서민경제가 살아난다. 건설업계에 일감을 주는 것이 국가경제 활력을 회복하는 길이다.
- 지금 정치권에서는 성장보다 복지확대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 박근혜정부는 복지재원을 증세가 아닌 경제 활성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건설업계에 일감을 줘야 한다. 10억원을 투자했을 때 업종별 고용창출 효과를 분석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전기·전자 산업은 4명 미만이었고 건설업은 무려 15.1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27개 산업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건설업만큼 파급효과가 큰 산업은 없다. 특히 타 산업과 달리 건설업의 경우 투자에 따른 고용과 생산효과가 매우 직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건설업이 살아야 서민이 산다"
"과도한 가격경쟁, 업계 숨통 조여"
- 건설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또 신경 써야 할 점은 무엇인가?
▲ 건설사들이 합당한 이윤을 올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지금 공공건설 낙찰액이 공사예정가의 70%가 채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100원 정도의 비용을 들여야 할 수 있는 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건설사들에게는 7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니 건설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나? 이익을 남겨야 건설사들도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고 국가에 세금도 낼 수 있다.
- 건설업계가 정말 어려운 상황인데 입찰담합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처벌로 건설업계가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고 들었다.
▲ 2013년 새 정부 출범 이래 건설업계는 4대강을 시작으로 경인아라뱃길, 인천도시철도, 대구도시철도, 부산지하철, 호남고속철도, 서울지하철 9호선 공사 등 대형 공공공사에 대한 입찰담합조사를 받았다. 입찰담합과 관련한 무차별적 조사를 받느라 건설사들은 모든 업무가 마비됐고 365일 내내 조사받기 바쁜 형편이다.
지난해까지 해당 건설사들에게는 무려 1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되었다. 정부 공공공사에 대한 입찰참가도 제한됐고, 관련 임직원들은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이중, 삼중의 처벌로 건설사들이 살 수가 없는 지경이다.
- 국내 대형건설사들 거의 대부분이 입찰담합에 연루됐다. 단순히 일부 업체의 일탈행위라기보다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 건설공사 입찰담합은 성숙하지 못한 국내 건설문화와 공공공사 입찰시스템의 후진성에 원인이 있다. 정부가 국책사업의 조기완공과 업체 간 물량 균형배분을 위해 하나의 사업을 여러 개의 공구로 분할해 동시 발주했다. 업체당 1개 공구만 수주하도록 해서 사실상 건설사들이 담합 아닌 담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사업이다. 정부는 10년 이상 걸리는 대규모 치수사업을 조기완공을 목표로 동시 발주했다.
- 정부의 입찰담합 조사가 건설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 해외건설 수주에서 대외신인도가 하락했고, 경쟁국들은 해당 내용을 흑색선전에 이용하고 있다. 현재 정부의 행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격이다.
- 그렇다고 입찰담합을 무조건 봐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영국의 경우는 지난 2009년 건설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입찰담합 사건을 일괄 조사해 119개 사업자에 대해 약 2300억원의 제재금을 부과한 후 사건을 종결한 그랜드 바겐을 실시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도 토목공사와 도로공사 분야의 담합에 대해 일괄조사 및 제재금 부과로 사건을 종결한 사례가 있다. ‘담합에 대한 입찰참가제한 조치’의 경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권 국가들은 건설 산업의 특성상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시행하고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지금은 ‘경제 살리기’를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언제까지 입찰담합 등 과거의 잘못에 대한 비난과 처벌에 연연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경제 살리기에는 건설업만큼 효과적인 산업도 없다. 보다 적극적인 건설일감 창출, 그리고 건설사들이 그에 합당한 이윤을 확보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우리 건설사들은 침체된 국가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시대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mi737@ilyosisa.co.kr>
<김세현 부회장 프로필>
▲ 충암고 교사
▲ 육군학사장교 총동문회 회장
▲ 친박연대 사무총장
▲ 18대 대선 새누리당 직능총괄본부 시·도 상황실장
▲ 한국건설경영협회 상근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