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업계 '크루즈 투자' 노림수

'장례+여행' 묶어 파는 속셈이…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상조업계에서 크루즈 상품 도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장례'와 '여행'이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한데 묶여 판매 중이다. 그런데 크루즈 상품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상조업체 간 출혈 경쟁과 그에 따른 재정 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결혼은 안 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죽는 건 피할 수 없잖아요. 기업 입장에서는 이만한 장사가 없죠. 우리나라 특유의 보여주기식 장례 문화도 있고요." 지난 2일 한 상조업계 관계자는 상조산업의 전망을 묻자 이 같이 답했다. 상조산업은 한때 블루오션의 상징이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시장은 넓어졌고 업체 입장에선 매월 안정적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법망 피하고

그런데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팽창한 상조시장이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와 국회 등 국가기관은 상조업체에 대한 제제를 강화했다.

지난 2011년 6월 대법원은 '보람장의개발'이란 장례서비스 대행업체를 차려 놓고 보람상조개발㈜ 등 그룹 계열사와 불공정 계약을 통해 돈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모두 301억원을 횡령한 최철홍 보람상조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최 회장은 횡령액을 대부분 변제해 양형을 낮추는 한편 부인인 김미자 보람상조 부회장에게 경영을 맡겨 위기를 극복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공시된 사업자 정보공개를 보면 보람상조는 모두 9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다. 이 가운데 4개 회사를 김 회장이 나머지 5개 회사를 김용섭·오준오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 중이다. 이들 9개 회사의 총 자산은 4383억여원으로 집계됐다.


업계 1위로 알려진 프리드라이프(구 현대종합상조)의 총 자산은 4357억여원이다. 공시에 따르면 보람상조보다 자산규모가 적다. 하지만 부채 규모에서 보람상조와 차이를 보인다. 프리드라이프의 부채 총계는 4356억여원으로 5286억여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보람상조보다 재무건전성에서 앞선다. 단 상조업체의 부채는 상조서비스를 받지 않은 고객의 납입금이 일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선불식할부거래사업자(상조회사) 평균 부채비율이 116%라는 것이다. 자산대비 부채비율은 부채총계를 자산총계로 나눈 값으로 회사 입장에선 이 비율이 낮을 수록 안정적인 기업경영이 가능하다.

그런데 앞서 밝혔듯 상조업체는 고객으로부터 매월 납입금을 받아 이를 장부상 부채로 처리하며 때로는 상조서비스 이외의 용도로 사용한다. 만약 상조회사가 부도를 내거나 폐업한다면 이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최악의 경우엔 납입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이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할부거래법은 선불식 할부거래 시 고객이 납입한 돈의 50%를 공제조합에 예치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못한 업체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공정위는 "전국에 등록된 253개의 상조업체 중 24곳이 선수금 법정 보전비율(50%)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상조업체 수는 2011년 300개에서 꾸준한 감소세를 보였다.

너도나도 삼매경…유행처럼 번져
업체 출혈경쟁 책임 소비자 전가
구조조정 과정서 변종 상품 출시

할부거래법 도입과 함께 상조시장은 비자발적 구조조정을 겪었다. 총 가입자 389만명, 총 선수금 3조3600억원에 달하는 이 거대시장은 자본력이 있거나 영업망을 갖춘 업체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상품이 바로 크루즈 여행 패키지다. 프리드라이프, 보람상조는 물론이고 부모사랑상조, 한강라이프 등 대부분의 업체에서 크루즈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상조업체가 직접 크루즈 선박을 매입해 여행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크루즈 선박은 건조비만 수천억원에 이르고, 하루 소비되는 유류비만 따져도 수천만원이 넘는다. 상조업체의 크루즈 상품은 사실상 여행사가 취급하는 상품과 동일하다. 대부분의 상조업체는 유명 여행사와 공동으로 크루즈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크루즈 산업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필요한 면허만 해도 관광업·주류업·숙박업 등 30여개에 이른다. 무엇보다 선상카지노가 허용되지 않아 수익성에 결함이 있다. 최근에야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 발전 방향을 논의 중이다. 내수도 크지 않다. 2014년 기준 해외여행객 수는 160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크루즈를 이용한 여행객은 1만5000명 안팎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렇다면 상조업체들은 왜 크루즈 시장에 눈을 돌린 것일까. 업계 관계자가 꼽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상조업체가 취급하는 크루즈 상품은 모두 외국 선박을 이용한 해외여행이다. 여행사가 모집해도 될 일이지만 일반 여행사에는 없는 상조업체만의 특징이 있다. 바로 할부거래다.

여행사가 취급하는 상품은 선불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후불제 여행사도 있지만 극소수다. 반면 모든 상조업체는 할부제다. 상조업체가 고가의 크루즈 상품을 중계하면 고객 입장에서 목돈 없이도 여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회사에서 실제 크루즈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5% 안팎이다"며 "신규 상조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업체 간 출혈경쟁은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공정위는 일명 '퍼주기 마케팅'으로 타사 가입고객을 뺏어온 부모사랑상조에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상조업체의 '덤핑 판매'는 회사 재무는 물론이고 시장 경쟁력을 악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된다.

더불어 어학연수 지원, 줄기세포 보관과 같은 변종 상품은 본업인 상조서비스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크루즈 여행 역시 아직은 전문 노하우를 갖춘 기업이 드물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둘째, 할부거래법의 맹점과 관련이 있다. 기존 할부거래법은 '장례 또는 혼례를 위한 용역 및 이에 부수한 재화'를 제공하는 회사와 그 서비스를 규제토록 돼 있다. 장례나 혼례에 속하지 않는 크루즈 여행은 법률 적용에 애매한 지점이 있다. 때문에 일부 업체는 크루즈 상품을 끼워 팔아 납입된 돈을 공제조합에 예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측은 "법률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상조업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해약이다. 대다수 업체는 환급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크루즈 상품으로 가입된 고객은 법률에 규정된 수준의 환급금을 약속받기 어렵다. 기존 상조 상품에서도 계약해지 및 환급금 관련 피해가 증가세인 것을 감안하면 회원들의 권익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장밋빛 홍보

업계 관계자는 "상조시장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도 회원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명단을 양도·양수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며 "크루즈 상품도 중도해약이 가능한지, 업체가 합병돼 상품이 없어졌을 시 환급이 가능한지에 대해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크루즈 산업 육성 방안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크루즈 패키지. 각 상조 업체들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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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