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말 못한 조풍언 비망록 추적

무기 로비스트 수첩에 야권 초비상

[일요시사 경제1팀] 김성수 기자 = ‘무기 로비스트’ 조풍언씨가 세상을 떠났다. DJ정권 때 ‘막후실세’로 불린 만큼 당시 각종 로비·특혜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도 ‘살아 있는’정치권 실세들의 이름이 조씨와 함께 오르내렸다. 특히 DJ·김우중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되는가 하면 MB정권과 모종의 밀약설이 돌기도 했다. 조씨의 죽음과 함께 그를 둘러싼 의혹들도 영원히 미스터리로 묻히게 됐다. ‘조풍언 비망록’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측근인 조풍언씨가 지난 14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팔로스 버디스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조씨는 한국에서 투옥 후 줄곧 투병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란만장 인생사
조용히 세상 떠나

세간의 시선은 ‘조풍언 비망록’에 쏠리고 있다. 조씨는 평소 메모광으로 불릴 정도로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비망록 존재 가능성을 높인다. 투병생활이 길었다는 점은 별세 전 틈틈이 ‘작업’했을 가능성을 더한다.

문제는 내용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만큼 그가 생전 못 다한 말들은 굉장한 파급력을 머금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한국 사회에 큰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란 점에서 메가톤급 후폭풍까지 예고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조씨가 입을 열면 현직에 있는 ‘DJ 사람들’은 물론 야권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씨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한둘이 아니다. 하나같이 현 정국에 파장을 몰고 올 만한 핵폭탄급 X파일이다. 만약 ‘조풍언 비망록’이 존재한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까.

재미교포 무기거래상 조풍언씨는 철저히 베일에 싸였던 인물이다. 전남 목포에서 선박업을 하는 갑부집 아들로 태어났다. 6·25전쟁 당시 상경해 경기고와 고려대를 졸업했다. 이때 맺어진 학연 인맥들은 조씨가 나중에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1973년 무역·제조업체 기흥물산을 설립한 조씨는 미국 군수업체인 ITT사에 장비를 납품하면서 무기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는 ITT사의 한국 대리점권을 따내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 중반 기흥물산을 매각한 조씨는 1983년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처음 벌였던 사업은 주류 도소매업. 사업 수완이 뛰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잡았고 큰돈을 벌었다. 조씨의 존재가 미국 교포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영업난을 겪던 가든스위트호텔을 인수하면서다. 당시 한인타운에선 호텔 매입자금의 출처를 놓고 갖가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조씨는 한국을 드나들며 무기중개사업을 계속했다.

DJ정부 ‘막후 실세’ 조풍언씨 별세
풀리지 않은 의혹들 그대로 묻히나

‘조풍언’이란 이름이 국내에까지 알려진 것은 DJ정부가 들어선 직후다. DJ와의 특별한 인연이 입소문으로 떠돌았다. 1990년대 후반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막역한 사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씨는 인맥 욕심이 많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누구를 통해서든 한번 알게 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다고 한다.

조씨와 DJ는 선대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둘은 같은 목포 출생으로 이웃사촌이었다고 한다. 조씨의 부친이 운영하는 선박회사에서 DJ가 청년시절 일했고, 조씨와 DJ는 모 청년단체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조씨가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난 계기도 1980년대 신군부가 DJ 계열로 분류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조씨와 DJ가 다시 만난 것은 1992년 DJ가 대선 패배 뒤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이 자리에서 서로 고향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조씨는 DJ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덩달아 조씨의 행동반경도 넓어졌다. 조씨는 국민의 정부 시절 ‘얼굴 없는 실세’라 불릴 정도로 DJ정권의 숨은 가신으로 통했다. 조씨가 1999년 7월 DJ의 일산 자택을 구입한 사실이 공개돼 DJ와의 인연이 알려졌다. 이후 DJ 아들들의 후견인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조씨와 김 전 회장은 경기고 동문으로 ‘호형호제’하던 막역한 사이다. 김 전 회장이 조씨의 2년 선배다. 대우그룹 해체 여부를 둘러싸고 채권단과 정부의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던 1999년 6월 김 전 회장은 조씨를 만나 의견을 나눌 만큼 절친했다고 한다.

‘조풍언-김우중-DJ’의 연결고리는 조씨가 김 전 회장의 부탁을 받고 대우그룹 퇴출 저지를 위해 DJ 측에 구명로비를 벌이지 않았냐는 의혹으로 번졌다. 검찰은 “1999년 대우그룹 퇴출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조씨를 통해 구명로비를 시도했다”며 “김 전 회장으로부터 로비자금 4430만 달러(당시 526억원)를 건네받은 조씨가 당시 정치권 실세들과 금융부처 등 정부 고위공무원에게 접근했다”고 확신했다.


조씨의 로비대상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당시 청와대 실세 L씨, 전 장관 K씨·P씨, 금융권 고위관계자 L씨와 또 다른 L씨 등이다. 그러나 실제 이들에게 돈이 전달됐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로비 실체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DJ는커녕 그의 측근들을 상대로 한 구명로비 의혹엔 손도 못 댔다.

그가 입 열면
여럿 다친다

검찰은 조씨와 DJ의 아들들이 돈거래를 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이 역시 로비와 관련된 사실은 캐내지 못했다. 광범위한 금융 계좌 추적을 벌였지만 별 단서를 잡지 못했다. 특히 해외 금융을 통해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씨와 로비대상자들의 비밀 계좌도 추적했지만 소용없었다. 모든 의혹들이 미궁에 빠진 꼴이 됐다. 검찰은 수사 초기 ‘대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관계 로비 실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결국 대우그룹 구명로비 의혹은 무죄 판결이 났다. 2010년 12월 대법원은 “대가성이 없었다”며 조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2심 재판부도 “조씨의 혐의를 입증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었다. 이렇게 ‘조풍언 게이트’는 종결됐다. 정재계 거물들의 이름이 오르내려 정국의 ‘핵뇌관’으로 부상했지만,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됐다.

미국 사업자금 출처?
대우그룹 구명 로비?
DJ·WJ 비자금 관리?
MB정권 모종의 밀약?

다만 조씨는 주가를 조작한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조씨는 LG가 방계 3세인 구본호씨가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공모해 미디어솔루션 주식을 대량 매입한 뒤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가를 낮추려고 허위매도 주문을 내는 등 시세하락을 유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가 김 전 회장의 비자금 관리인이란 의혹도 있었다. 이 역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숱한 의혹만 남긴 채 실체를 규명하지 못했다. 김 전 회장은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란 이유에서다. 가족들은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만, 추징금 낼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검찰은 조씨가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을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조씨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철저하게 함구로 일관했다. 검찰은 2005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의혹 수사 당시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 해외금융법인을 통해 1억1554만달러를 빼돌려, 이 중 4430만달러를 대우 구명로비 대가로 조씨가 운영하는 홍콩 KMC 계좌로 입금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추적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드러난 사실이 없었다. 검찰은 조씨가 2001년 9월 예금보험공사에서 가압류 신청한 KMC 명의 대우정보시스템 주권 163만주(액면가 81억5000만원)를 김모 전 감사에게 전달해 은닉한 혐의(강제집행면탈)만 찾아냈다.

구명로비를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도 미완의 숙제로 남았다. 검찰이 밝힌 구명로비 자금 전달 시점은 대우그룹 퇴출 직전인 1999년 6월. 검찰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에 있던 대우그룹 측이 다각도로 대책을 모색하다가 조씨와 접촉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조씨도 “대우그룹 인사들이 먼저 찾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고록? 자서전? 존재 여부 주목
만약 나온다면…거센 후폭풍 예고

반면 김 전 회장 측은 조씨가 구명로비를 최초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조씨가 대우그룹을 구명하기 위한 로비활동을 먼저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조씨가 DJ 측과 정부 최고위층, 금융관련 고위공무원 등에게 로비를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진술했다.


쏙 들어간 의문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씨의 입국 배경도 석연치 않았다. 조씨는 1999년 6월 잠시 한국에 들어와 김 전 회장을 만났다. 김 전 회장에게 “대우그룹 구명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곧바로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도피했고, 조씨는 미국으로 각각 출국했다. 이후 조씨는 검찰의 호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미주 한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제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죽어서도 미국에 묻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씨는 2008년 3월 갑자기 입국했다. 검찰은 즉각 조씨를 체포했다. 검찰에 잡힐 줄 알면서 조씨가 한국에 온 이유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검찰 안팎에선 조씨가 로비 의혹과 관련된 혐의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왔다. 만약 조씨에게 알선수재,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적용한다면 대부분 공소시효가 7년으로 이미 종료된 상황이었다.

일각에선 조씨의 입국을 두고 MB정권과의 ‘모종의 밀약설’이 제기됐다. ‘자진귀국이냐, 기획입국이냐’하는 논란이 불거졌다. 다시 말해 전 정권 쪽을 겨냥한 배후세력의 음모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조씨는 2008년 4월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입국했다. 야권에선 총선 정국에서 ‘조풍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교롭게도 당시 BBK 사건과 관련해 야권 사주에 의한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이 나온 뒤였다. 검찰은 조씨의 입국 배경에 대해 “실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국내에서 장학금을 지급하는 문제와 동창회 문제 때문”이라고 전했다.

망신당한 검찰
일부러 놔줬다?


조씨는 한국에서 검찰 수사와 수감생활을 마치고 2011년 1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입을 꾹 다물고 칩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조씨의 죽음과 함께 그를 둘러싼 의혹들도 영원히 미스터리로 묻히게 됐다. 생전 못 다한 말들이 담긴 ‘조풍언 비망록’존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kimss@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