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덮칠 '강덕수 살생부' 실체 추적

'벼락부자' 회장님 비밀수첩에 정치인 빼곡

[일요시사=사회팀]  '제2의 김우중'으로 불렸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이명박정부 당시 화려하게 비상했던 강 전 회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사정기관의 '제물'로 전락하며 격세지감을 실감하고 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칼잡이(특수통을 뜻하는 검찰 은어)'의 명예를 걸고 강 전 회장을 겨누고 있다. 수사 대상에는 지난 정권 실세도 조심스레 거론된다. 이제는 줄도 끈도 다 떨어진 강 전 회장. 그가 생애 마지막 승부수로 장막 안에 가려 있던 '살생부'를 꺼내들지 촉각이 곤두선다.

'샐러리맨의 신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고강도 사정작업으로 생애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수천억원대 횡령·배임 의혹 수사와 관련해 강 전 회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샐러리맨 신화
구속영장 청구

지난 4일과 6일 모두 두 차례에 걸쳐 강 전 회장을 소환조사한 검찰은 "사안이 중하고 STX그룹 계열사에 대한 은행자금 투입 규모가 10조원에 이르는 점 등을 볼 때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그룹 전 최고재무책임자(CFO) 변모(60)씨, 그룹 경영기획실장 이모(50)씨, STX조선해양 CFO 김모(58)씨 등과 공모해 STX중공업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는 등 회사에 약 30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은 회사자금 540여억원을 빼돌린 혐의와 회계를 허위 처리하는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꾀한 혐의를 함께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 3명에게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선 조사에서 강 전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한 경영상 판단이었을 뿐 고의로 손실을 끼치거나 법인 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서는 실무를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CFO 김씨가 강 전 회장의 개입 사실을 일부 부인하고 있어 혐의 입증에 난항이 예상된다.


이날 검찰은 "STX조선해양과 STX건설 등이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2조3000억원을 분식회계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부품·자재·원료의 가격을 실제보다 낮춰 장부에 기재한 뒤 대손충당금을 적립하지 않는 수법 등으로 부실을 감췄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이 분식회계를 직접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청구된 구속영장에는 분식회계(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는데 검찰은 강 전 회장 등에 대한 신병을 확보한 후 대질심문 등을 통해 강도 높은 추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강 전 회장의 구속 여부와 맞물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소문만 무성한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이미 검찰은 복수 언론을 통해 강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압박하는 것이 '특수수사'의 관행이라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이번 수사는 기존 대기업 수사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례적 수사
로비 규명 방점

현재 검찰은 소위 '강덕수 리스트'로 불리는 정·관계 로비 의혹 규명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 사정작업에서 횡령이나 배임이 아닌 뇌물 제공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정황이 확실하거나 혹은 다른 의도가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어느 쪽이 됐든 강 전 회장과 가까운 관계에 있던 인사들은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지난 6일 검찰은 강 전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와 관련해 강 전 회장이 관리하던 공무원 100여명이 포함된 선물리스트를 확보했다고 알렸다. 같은 날 검찰은 강 전 회장을 불러 선물의 대가성 여부를 집중 추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검찰은 이들 중 일부 공무원이 강 전 회장에게 사업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선물을 받았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

검찰 수천억 배임·횡령 구속영장 청구
정관계 로비 의혹…MB정권 실세들 거론

강 전 회장은 그간 각종 기업 인수전에 뛰어들어 몸집을 불린 뒤 회사를 키워 부채를 갚는 경영스타일을 고집했다. 때문에 선물을 받은 공무원 중 일부는 대출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드러난 로비 규모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강 전 회장은 검찰이 STX그룹을 압수수색했을 때 디가우징(Degaussing) 기술로 컴퓨터 파일들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가우징은 강력한 자력을 이용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실상 전문가를 동원한 고도의 증거인멸인 셈이다. 이는 강 전 회장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을 증폭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때문에 검찰 안팎에선 "강 전 회장이 직접 로비에 개입했거나 가담한 증거를 남겨뒀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강 전 회장이 사정기관의 타깃이 됐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2년인데 그 사이 (금품로비에 대한) 방어는 다 끝나지 않았겠냐"고 의문을 표했다. 예컨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STX그룹이 세계 유례가 없는 수직성장을 한 배경을 놓고 그간 뒷말이 끊이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복수 언론 관계자는 "STX 관계사 직원으로부터 정·관계 로비 리스트와 관련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중 특혜가 의심되는 거액대출 및 해외건설 수주와 맞물린 의혹은 이명박정권 실세들에 대한 로비설로까지 확대됐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베일에 싸인 '강덕수 리스트', 실체가 있을까.

우선 강 전 회장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월급쟁이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대기업 총수까지 오른 나름 자수성가한 오너다. 널리 알려진 대로 STX그룹은 창립 10년도 안 돼 재계 순위 10위권에 안착했고 같은 기간 매출은 100배 이상 늘었다.

강 전 회장의 트레이드마크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이다. 그는 굵직한 매물을 먹어치우면서 사세를 키웠고, 한때 한국 부자순위 20위권에 들기도 했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존경받는 구루'였던 강 전 회장. 그러나 강 전 회장의 숨길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 바로 '인맥'이었다.

태생적 한계
로비로 극복?

지난해 한 재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나 "강 전 회장 주변에 유명한 인사가 그리 많지 않다"며 "지연, 학연, 친인척 등 어디를 둘러봐도 내세울 만한 큰 인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상고 출신에 순수 국내파인 강 전 회장은 주류 재벌가와 동떨어진 성장환경 탓에 재계 내부 입지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명박정부 들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3대 경제단체에 입성한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이어 한국무역협회와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재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어릴 때부터 자라온 환경이 한 울타리에 있는 재벌가 사람들은 '끼리끼리' 명문 유치원에 다닌 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안면을 익힌다.


또 해외유학 등 '스페셜 코스'를 밟으면서 본인들만의 탄탄한 인맥을 형성한다. 하지만 강 전 회장은 이른바 'SKY' 출신도 아닌데다 말단부터 시작해 속된 말로 '밑천'이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룹의 자금난이 심해지자 강 전 회장은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경제단체 임원직에서도 물러났다. 서로가 경영권을 챙겨주는 재벌가 풍속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STX그룹 한 관계자는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강 전 회장이 줄을 댄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정권 실세들과 STX그룹 간의 묘한 관계다. 표면상 강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차례 수행하는 등 정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12년 STX그룹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단기차입금 2300억원을 융통했고 산업운용자금 1800억원도 긴급 확보했다. 다른 민간 은행들은 앞다퉈 대출금을 줄이는 추세였는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유독 '퍼주기'로 STX그룹을 도왔다. 지난 정권 비호설이 나온 주된 배경이다.

공무원 대거 포함된 '선물 리스트'
2년 전부터 내사…정치권 좌불안석

그간 산업은행은 각 정권마다 최측근이 수장자리를 꿰찼다. 이명박정부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은 "계열사들이 모두 나서서라도 (STX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이 강 전 회장의 독자적인 판단인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어찌됐든 강 전 회장은 지난 정권으로부터 마지막 호의를 받았으나 끝내 정치권은 그를 버렸다. 생각만큼 돈독한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 전 회장의 공식적인 입장은 "난 로비를 하지 않았다"이다. 그는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기자들이 정·관계 로비 의혹을 묻자 "해외 출장이 많아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강 전 회장이 아닌 누군가가 대신 로비를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 누군가로 의심 받는 사람이 바로 이희범 전 산업부장관이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이 이 전 장관을 영입한 이유를 수상히 여기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STX에너지·중공업 총괄회장을 지냈다. 이 전 장관은 참여정부 인사이면서 2010년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해 이명박정부와도 인연이 깊다.

검찰은 당시 그룹 안팎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강 전 회장이 이 전 장관을 로비창구로 영입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는 이 전 장관을 통해 '검은돈'이 정치권에 살포됐다면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이 전 장관의 신분이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도 점쳐진다. 강 전 회장과 등을 돌린 뒤 LG상사로 둥지를 틀었던 이 전 장관 입장에선 이만한 악연이 없는 셈이다.

키맨 이희범
윗선은 박영준?

강 전 회장에 대한 사정작업과 맞물려 또다시 등장하는 인물은 '왕차관' 혹은 '미스터 아프리카'로 알려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다. 앞서 STX그룹은 아프리카 가나의 국민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맛봤다.

'가나 하우징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사업은 정권 실세인 박 전 차관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현지 기공식에 참석한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측근 중 1명이다. 여러 정황상 정권 차원의 '밀어주기'가 의심됐다. 이명박정부가 주도했던 자원외교의 한 축이 STX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강 전 회장 측은 '박 전 차관이 프로젝트를 주선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발한 바 있다.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실제로 "수사기관이 내사에 들어갔지만 아무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채 손을 털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박근혜정부는 정국의 고비 때마다 이명박정부에 대한 사정작업으로 난맥상을 돌파했다. CJ와 효성 등 지난 정권과 연분이 깊었던 기업들은 예외 없이 '칼잡이'의 제물이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기업과 정치권을 동시에 친 특수수사는 없었다. 이번 수사 결과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수사의 남은 성패는 강 전 회장이 쥐고 있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명백히 밝힐 사람은 권력에 남은 빚이 없는 강 전 회장뿐이다. 재기가 어려워진 강 전 회장 입장에서 '플리바게닝'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다. 줄도 끈도 다 떨어진 그가 내밀 '마지막 카드'에 관심이 집중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진태호' 첫 대기업 수사
강덕수 수사는 물타기?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에 대한 사정작업은 김진태 검찰총장이 취임한 후 처음으로 개시되는 대기업 수사다. 그러나 이번 수사를 바라보는 검찰 안팎의 시선은 기대만큼 곱지 않다. 이유가 있다.

강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부터 예고됐다. 각종 사업과 관련한 투서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문제는 조용하던 검찰이 뜻밖의 시점에 칼을 빼들었다는 점이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수사 의뢰 7일 만에 압수수색을 하는 등 초고속으로 수사가 진행되는 것만 봐도 그렇고, 일부러 피의 사실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공표하는 것도 그렇고, 살아있는 오너가 아닌 죽은 오너를 겨냥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국면전환용 '물타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으로 메가톤급 역풍을 맞았던 검찰이 정·관계 로비 수사를 발판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때문에 검찰이 '실체 없는 로비 의혹으로 변죽만 울리다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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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