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밝히는’ 민자 기숙사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2.10 11:2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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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이 코앞인데…잘 곳 없는 학생들

[일요시사=사회팀] 대학교 기숙사비가 날로 치솟고 있다. 한 학기에 200만원은 이제 기본. 특히 외부 시설투자로 직접 운영되고 있는 민자 기숙사는 더 비싸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기숙사 접근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돈 없는 학생들은 골목 고시원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학생 주거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청년들이 주거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의 경우 주거문제는 해결 1순위의 과제다. 그러나 이들이 주거할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학과 당국이 저렴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화려한 기숙사 건물은 그저 그림의 떡이 된 지 오래다.


화려한 건물
누구 기숙사?


대학생 A(24·남)씨는 한 번의 고배를 마신 뒤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입학했다. 가까스로 상아탑에 입성한 그는 새내기 시절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업에 열중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군에 입대했다. 당당하게 군 생활을 마친 그는 복학신청을 하고 복학생 신분으로 캠퍼스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는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것. 화려한 건물은 ‘신축 기숙사’였다. A씨는 새 건물에서 남은 3년을 지낼 생각에 부푼 기대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의 부푼 꿈은 물거품이 됐다. 높은 기숙사비 때문이었다. 그의 형편에 월 50만원이 넘는 기숙사 생활은 불가능했다. 그는 당장의 복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같은 과 동기의 원룸에서 얹혀 지냈다. 그리고 얼마 후 월 20만원대 인근 고시원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창문 하나 없는 답답한 방이었지만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지금도 방 때문에 고민 중이다.

A씨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천안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B(23·여)씨도 주거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4학년인 그녀는 고학년이라는 이유로 기숙사 입사 순위에서 밀려나 주변 원룸을 찾는 중이다. 기숙사 발표는 이미 났기 때문에 별다른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지방이라고 해도 원룸비는 수도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보증금의 차이는 있지만 비싼 월세는 마찬가지다. 하숙 등도 고려해봤지만 비용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B씨는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학생과 협의 끝에 동거를 시작하기로 했다. 숙식 해결이 가능한 기숙사에 비해 원룸 생활은 피곤한 편이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달이 내는 월세와 관리비를 충당하기 위해 알바도 구하는 중이다. 통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숙소 비상’대학생 주거난
돈 없으면 골목 고시원행


A씨와 B씨의 사례는 매우 보편적인 이야기다. 주거문제로 고통 받는 학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싼 ‘민자 기숙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즉 A씨와 B씨는 각각 ‘민자 기숙사’와 ‘기숙사 수용률’ 문제로 신음하는 것이다.


학생들 속이는
대학들의 꼼수


대한교육연구소가 대학정보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를 통해 최근 3년간 4년제 국·공·사립대 기숙사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민자 기숙사의 높은 비용을 실감할 수 있다. 대체로 수도권 사립대학들이 기숙사비가 비쌌고 정원 대비 기숙사 수용률도 낮았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민자로 운영되는 기숙사들이 높은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민자 기숙사를 운영하는 학교는 ▲연세대(신촌) ▲고려대(서울) ▲성균관대 ▲한양대(서울) ▲경희대 ▲한국외대(용인) ▲건국대(서울, 충주) ▲동국대(서울) ▲단국대(죽전, 천안) ▲숭실대 ▲상명대(천안) ▲경기대(경기) ▲가천대 ▲전주대 등이다.

이중 기숙사비가 가장 비싼 대학은 가천대였다. 가천대는 1인실의 경우 매달 72만8000원(1인실 1위)의 기숙사비를 부담해야한다. 2인실은 35만1000원(2인실 5위), 3인실 24만9000원(3인실 5위), 4인실 33만6000원(4인실 5위) 등이었다.


가천대 외에도 1인실의 경우 ▲연세대 55만2000원 ▲건국대 54만1000원 ▲단국대(죽전, 천안) 51만5000원 ▲고려대 50만5000원 ▲숭실대 49만8000원 ▲상명대(천안) 48만원 ▲성균관대 44만6000원 등이었다. 이 같은 비용은 대학가 인근 하숙집보다도 비싼 비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2인실도 마찬가지다. 소규모 종교대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숙사들은 전부 민자 기숙사였다. ▲고려대 38만7000원 ▲건국대 35만3000원 ▲가천대 35만1000원 ▲한국외대(용인) 35만원 ▲동국대 34만6000원 ▲서강대 34만6000원 등이었다.

소규모 종교대학들의 기숙사비도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4인실 기숙사의 경우 ▲대전가톨릭대 51만3000원 ▲수원가톨릭대 43만7000원 ▲부산가톨릭대 33만9000원 ▲인천가톨릭대 33만9000원으로 전국 4년제 대학 평균 13만4000원보다 2배 이상의 높은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민자 기숙사의 형태로 운영하지 않는 경우 동일한 대학이라고 해도 본교와 캠퍼스 간의 기숙사비 차이를 나타냈다. 서울캠퍼스와 지방캠퍼스 간 기숙사비는 4인 기준으로 한국외대의 경우 본교 30만원, 캠퍼스 14만1000원으로 15만9000원 차이가 났다. 중앙대는 본교 22만7000원, 캠퍼스 16만7000원으로 6만원 차이가 났다. 예외도 있었다. 명지대의 경우 캠퍼스 기숙사비가 본교 기숙사비를 넘었다. 본교가 13만2000원, 캠퍼스가 22만8000원으로 9만6000원 차이가 났다.

‘민자 기숙사’를 중심으로 높은 기숙사비 문제를 지적했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대학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용률이 15% 미만인 학교는 총 64개교로 전체 대학의 33.7%에 달한다. 즉 3개학교 중 1개 학교는 기준치 미달인 셈이다. 64개 학교 중 수도권 소재 대학은 39개로 비수도권 소재 대학보다 기숙사 수용률이 낮았다. 기숙사 수용률 15% 미만인 서울권 대학은 ▲서강대 ▲동국대 ▲홍익대 ▲국민대 ▲가톨릭대 ▲서울과학기술대 ▲세종대 ▲광운대 ▲성공회대 ▲삼육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등이었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경우 총학생 대비 기숙사 수용률이 2011년 13%, 2012년 13.5%, 2013년 13.5%로 15%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이 기준은 없어진 상태지만 ‘대학설치기준령’에서는 총학생 대비 수용률 15%를 명시하고 있었다. 비수도권 소재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2011년 20.7%, 2012년 20.6%, 2013년 21.0%로 15%를 넘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대학들이 기하급수적으로 학생수를 늘리는 데 반해 기숙사 시설은 제대로 갖추지 못함을 뜻한다.

전문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립 전문대 기숙사 수용률은 11.1%에 불과해 재학생 10명 중 1명만이 겨우 기숙사 입사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 50만∼70만원…하숙집보다 비싸
3개 학교 중 1개 학교 수용률 미달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가장 큰 문제점은 기숙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학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저렴한 기숙사를 제공해야 하는데, 현재는 외부 시설 투자로 직접 운영되면서 학생에게 부담이 넘어간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하숙이나 자취를 알아보지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다수의 사립대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 대학이 직접 나서야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자산과 소득을 가진 다른 계층에 비해 훨씬 비싼 임대료를 물고 있다. 청년들의 주거권 상실은 건강한 청년들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민달팽이 유니온,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 청년유니온, 서울지역대학생연합 등이 모여서 대학들의 민자 기숙사비 책정 근거 공개와 기숙사비를 통한 건축비 충당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지만 투명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다달이 월세
등록금 뺨친다


이들은 당시 12개 대학에 민자 기숙사비 책정근거 공개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신청했지만 12개 대학 모두 민자 기숙사비에 대한 책정 근거와 관련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민자 기숙사 설립은 학교와 민간운영업체가 협의해 진행하므로, 학교 당국은 민자 기숙사비에 대한 책정근거를 요구할 수 있지만 기숙사비 책정근거에 대해서는 ‘민간 업체의 영업상의 비밀’이라는 것.

국립대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공개한 자료에서 서울대 임차료 운영비 지급현황과 강릉원주대학교 생활관비 산출근거를 보면, 현재 민자 기숙사비 중 일부가 건축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앞으로도 민자 기숙사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전세를 살고 있는 학생들까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주거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대학가 원룸시장에서 전세의 월세전환율이 10%를 웃돌고 있다. 즉 보증금 1000만원을 월세 10만원으로 환산해 전세를 월세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목돈이 없는 청년층은 주거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리고 월세를 올리는 경우가 이제는 다반사다. 지나친 보증금을 받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통상 임대인은 한 달치 월세만 보증금으로 받는다. 신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세 달치 미만으로 받는 시스템이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임차인이 받는 피해는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월세 전환 바람은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다.


안녕하지 못한
‘청년 주거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월세 거래량(확정일자 취득 세입자 기준)은 54만388건으로 전년(45만122건) 대비 20% 포인트 증가했다. 전세는 같은 기간 87만3705건에서 83만 2784건으로 4만921건 줄었다. 임대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33%에서 지난해 39.4%로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주택 임대시장의 구조변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며 “월세 시장으로 이동하는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주거시장의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해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학생들의 건강한 주거권을 위해 지자체가 힘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남도학숙’이 대표적이다. 남도학숙은 광주·전남 인재육성을 목표로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학생들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했다.

기자가 남도학숙을 방문해본 결과 깔끔한 내외관과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출입은 작은 카드로 통했다. 1층에는 장학부와 관리부 등 학생들을 위한 관리부서가 자리하고 있었다.


남도학숙·행복기숙·희망하우징…대안 부상
각종 편의시설에 비용도 한 달 10만원대 수준


남도학숙은 지역 기업인·농민·상공인·근로자·공직자·학생 등 17만여명이 기탁한 성금을 모체로 시·도비와 군비 등 278억원의 재원으로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공동으로 설립해 1994년 2월28일에 개관했다.

이러한 지자체의 후원으로 수많은 대학생들이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학업에 정진하고 있다.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남도학숙은 서울 1호선 대방역과 서울 7호선 신대방삼거리역 사이에 위치해 인근 대학 접근성도 뛰어난 편이다. 대지는 2362평, 연면적 9871평으로 지상 11층과 지하3층으로 남부럽지 않은 시설을 자랑한다. 총 수용능력은 810명(남 444명, 여 366명)이다.

남도학숙에는 도서관, 체력단련실, 휴게실 등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기숙사 내에서는 기본적인 생활훈련, 태도훈련과 더불어 교양강좌까지 열린다. 해외자원봉사 프로그램과 장학금 지원도 있다. 입사생은 시군별 정원이 정해져 있어 학업성적과 생활정도를 기준으로 선발한다. 시·도 및 남도학숙 장학부가 이러한 행정업무를 맡고 있다. 고향의 인재를 키우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다.

이밖에도 지방 유학생을 위한 학교 밖 기숙사인 지자체 학사는 경기도장학관(쌍문), 강원학사(난곡), 충북학사(당산), 서울장학숙(방배), 탐라영재관(가양) 등 서울에 위치해 있다.

입주 대상은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수용인원은 규모에 따라 다양하다. 각 학사의 기숙사비는 월 10만원에서 17만원까지 저렴한 편이다. 지자체 학사는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에 사는 학생만 신청할 수 있지만, 거주 기간을 따지는 곳도 있다.

모든 학사가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전문대생은 신청할 수 없다. 하지만 일부 전문대학의 4년제 학과는 예외가 되기도 한다.

민자 기숙사의 절반 가격인 ‘행복기숙사’(사립대공공기숙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행복기숙사는 국토해양부와 사학진흥재단이 지원하는 사립대 공공기숙사다. 단국대(천안)가 처음으로 문을 연다. 기숙사비는 월 19만원 수준이다. 소외계층과 저소득층 학생에게 우선 배정하고 기숙사비를 최대 50%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대구한의대, 세종대, 경희대가 행복기숙사에 선정됐다.

또한 다가구주택 및 원룸을 임대할 수 있는 ‘희망하우징’도 눈에 띈다. 희망하우징은 서울시와 SH공사에서 저소득층 가정의 대학생들에게 다세대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 임대하는 주택을 말한다. 이를 통해 보증금 100만원에 월 8만∼10만원 선의 저렴한 월세 거주가 가능하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LH 대학생 임대주택은?

아무나 못 가는 ‘그림의 떡’

저소득층 대학생의 주거안정을 위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급하고 있는 전세임대주택을 두고 ‘그림의 떡’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신청자에 비해 공급 물량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신청자격 조건도 까다롭다.

정부는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 공공기숙사 및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했다. 주거권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청년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이라는 정책방향을 수립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부족한 공급이었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높아 실효성이 희미해졌다.

공급량 턱없이 부족
까다로운 자격 조건

정부는 올해 3000가구를 공급한다고 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1100가구, 경기 600가구, 인천 100가구 등 수도권에 1800가구가 배분됐다. 

부산 140가구, 대구 80가구, 광주 80가구, 대전 140가구, 울산 10가구 등이다. 강원 120가구, 충북 110가구, 충남 160가구, 전북 120가구, 전남 30가구, 경북 110가구, 경남 90가구, 제주 10가구다. 그러나 입주대상자 1순위인 기초생활수급자 대학생을 제외한 2, 3순위권은 사실상 신청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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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