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포스트 정준양’ 권오준 기술총괄 사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1.27 13: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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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색?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한다!

[일요시사=사회팀] 포스코 ‘기술통’ 권오준 기술총괄 사장이 포스코 8대 회장으로 내정됐다. 업계에서는 ‘예상밖의 결과’라는 평가다. 차기 회장 하마평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깜짝 인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중립성을 강조했던 포스코로서는 성공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조용한 ‘기술장인’이 이끌 포스코는 앞으로 어떤 항해를 이어갈까.




포스코 차기회장에 권오준 기술총괄 사장이 내정됐다. 하마평이 무성했던 유력인사들을 제치고 포스코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예상밖이라며 놀란 반응을 보였지만, 포스코 내부에서는 권 사장을 점친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다른 후보에 비해 압도적으로 앞선 성적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포스코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정치중립적이며 기술인이 필요할 때라는 조건에 가장 부합했기 때문이다.

R&D 출신 회장
비주류의 반격

오는 3월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으로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하게 되면 2016년 3월까지 임기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지난 19일 업계에 따르면 CEO추천위원회는 비밀유지를 위해 인천 송도에 있는 R&D(연구개발)센터에서 후보면접을 실시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1차 면접 때 권오준 사장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었다”면서 “당초 유력후보였던 오영호 코트라 사장의 경우 1차 면접에서 철강에 대해 너무 몰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후 내부인사인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을 넣었지만 이미 승패는 기운 상태였다. 결국 권 사장이 내정자의 영예를 안게 됐다.

포스코 회장 후보는 지난 두 달여간 쉴 새 없이 바뀌었다. 정계 실력자, 내부원로, 외부 혁신가 등 방향을 선회했다. 이후 다시 내부인사로 틀면서 권 사장이 낙점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거론됐던 내부인사로는 김준식, 박기홍 사장과 윤석만 전 포스코건설 회장, 계열사인 대우인터내셔널 이동희 부회장이다. 특히 윤석만 회장은 2009년 정준양 회장과 접전 끝에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어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다. 그러나 윤 회장은 현 포스코건설 부회장인 정동화 회장이 후보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과 포스코의 주력계열사가 아니었다는 점 때문에 후보자로 낙점받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한때 외부 영입설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과 삼성 SDI 출신인 손욱 농심 전 회장도 거론됐지만 KT가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영입하면서 제외됐다. 추가적으로 삼성 출신 인사가 선임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 사장의 내정 소식에 의외의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내부에서는 달랐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회장에 이어 내부 인사가 계속 회장을 맡게 됐다. 포스코 내부에서는 과거 전통을 이어 회사 사정을 잘 아는 내부 인사가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데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권 사장은 CEO후보추천위원회의 면접에서 “기술로 수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수요에 맞는 정확한 기술을 개발하겠다. 이를 위해 시장의 동향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한 것을 토대로 기술 개발에 전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경영 철학과 포스코 측이 거는 기대감이 담겨있는 대목이다. 권 사장은 ‘업계 최고의 기술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기술에 대한 그의 열정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

권 사장이 언론을 통해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경영 악재 뿐만 아니라 포스코가 더 이상 정치적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뢰와 내분봉합을 통한 향후 CEO 리스크에 대한 재발 방지도 중요 과제로 꼽히고 있다.

권 사장은 포스코 내에서 기술연구소장을 거쳐 기술부문장까지 오른 대표적인 기술통으로 평가된다. 포스코 이사회는 “기술과 마케팅의 융합으로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성장 고유기술을 개발해 성장 엔진을 육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정 배경을 설명했다.

포스코 8대 회장 내정…‘기술 경영’주목
예상 밖 깜짝인사…유력인사들 제치고 등극

포스코 관계자는 “권 내정자가 정치중립적인 데다 현재 포스코는 기술인이 필요할 때라는 조건에 있어서 권 사장이 가장 적임자였다”면서 “인품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데다 정준양 회장 시절 소외받았다는 점 역시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 결정에 키를 쥐고 있었던 사외이사 6인은 모두 각 분야의 저명한 사람들로 깐깐함으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외국인 사외이사인 제임스 비모스키 이사도 포함됐기 때문에 독립성이 더욱 강화됐다는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 5년간 정준양 회장이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M&A(인수합병) 등을 활발하게 했지만 성과는 전무한데 이에 따라 철강까지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 포스코의 문제점이라는 데 사외이사들이 생각을 같이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에 따라 철강 본원 경쟁력 회복이 이슈였기 때문에 권 사장이 쭉 앞서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향후 대대적인 조정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용한 기술장인
새 바람 분다

권 사장은 포스코 차기회장에 내정된 이후 포스코 챙기기 행보에 나섰다. 그는 지난 19일부터 비공식적으로 업무 파악에 들어갔다. 현재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 제철소를 중심으로 기술, 기획재무, 성장투자사업, 탄소강사업, 경영지원, 스테인리스사업의 ‘6개 사업부문’과 마케팅, CR, 원료 등의 3개 본부로 구성됐다. 먼저 이들 주요부서 보고 후 순차적으로 계열사에 대한 업무 보고도 받을 예정이다.

이를 바라보는 대외적인 시각은 나쁘지 않다. 내부평가도 긍정적이다. 포스코 관계자에 따르면 권 사장은 미리 업무를 파악해 놓고 방안을 구상하는 스타일이다. 3월 본격적인 일정에 앞서 내부 조직과 현안을 둘러보며 몸을 풀고 있다는 것이다.

철강업계는 권 사장이 신소재개발에 방점을 둔 향후 지속가능한 성장 청사진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권 사장은 지난 15∼16일 CEO추천위원회 면접에서 “기술과 마케팅을 융합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술 중심의 포스코’를 선언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술장인’인 권 사장이 경영을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앞으로 권 사장은 자신의 경영 구상을 뒷받침할 조직 개편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중심축을 신기술 및 신소재 개발에 두고 관련 사업부서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한 분위기 쇄신을 위해 대대적인 교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사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형태로든 이사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 수장을 맞이하는 포스코의 2014년은 ‘도약의 해’다.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취임하게 될 권 사장은 경영 전략 및 중장기 비전 수립을 위한 TF(태스크포스)를 꾸리고 경영 구상에 돌입했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Cost reduction(원가절감), Competitiveness(제조경쟁력), Cradtion(신수요 창출) 등 이른바 ‘3C’ 전략을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다. 약 6030억원 수준의 원가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올해 준공되는 국내외 공장 5곳을 통해 제조경쟁력을 강화한다. 신소재 사업 확장으로 철강을 넘어 종합소새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판 마련에서 나선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수익성 개선이다. 최근 몇 년간 원가 절감을 위해 땀흘린 포스코는 올해도 ‘다이어트’를 할 계획이다. 올해 포스코는 저가원료 사용, 에너지 회수, 설비효율 향상, 부생가스 활용 등을 통해 6030억원의 원가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현금 중심 경영도 계속해 현금보유를 높여간다는 계획이다.

국내외 생산기지 준공을 통해 제조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올해 주요 성장 전략이다. 올해 준공되는 국내외 공장은 모두 5곳이다. 상반기에는 포항제철소에 연산 200만톤의 파이넥스 3공장이 준공된다. 광양제철소 내에 연산 330만톤의 4열연공장과 3만톤 규모의 철분말 공장도 세워진다.

이외에도 인도에 연산 45만톤 규모 냉연강판 공장, 멕시코에 연산 50만톤 규모의 제2아연도금강판 공장이 차례로 준공된다. 해외 생산기지 신설로 글로벌 현지 공급이 더욱 원활해질 전망이다. 또 지난 연말 준공된 동남아 최초의 일관제철소인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제철소를 통해 동남아 시장도 공략할 계획이다.

또한 리튬아메리카와 공동으로 아르헨티나 산후안 지역의 리퓸 추출을 위한 파일럿 플랜트(시범설비) 건설에 합의했다. 파일럿 플랜트는 본격적인 검증을 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건설되는 소규모 시험생산 시설이다. 연산 200톤 규모의 이 공장은 오는 4월 착공한다. 포스코는 이 공장에 1850만 달러(약 200억원)를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장에서 염수를 자연 증발시키는 기존 방식 대신 염수에서 화학반응을 통해 직접 리튬을 뽑아내는 차세대 기술을 적용한다.

내부선 ‘준비된 회장’평가
TF 꾸리고 새 경영구상 돌입

포스코의 이 기술을 이용하면 12개월 걸리던 리튬 추출 시간을 최소 8시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아울러 리튬 회수율도 50%에서 80%로 끌어올리게 된다. 또한 산업재에 쓰이는 마그네슘, 칼슘, 칼륨, 붕소 등도 동시에 분리 추출할 수 있다.


이번 아르헨티나 리튬 파일럿 플랜드 건설은 권 사장의 ‘기술 경영’의 첫 걸음으로 봐도 무방하다. 권 사장은 지난 17일 첫 출근길에서 “포스코는 세계 최고 기술로 30년간 먹고살 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경쟁력
제고방안 만들겠다”

경북 영주에서 선친 권영건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권 사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 입사했다. 이후 연구개발 분야에서 정진했다. 포스코에서 기술연구소 부소장과 기술연구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원장, 기술부문장 등을 거치며 기술개발 분야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혀갔다.

특히 세계최초로 개발한 포스코 대표 기술인 ‘파이넥스 공법’ 사용화를 이끌어냈고, 자동차강판과 전기강판 등 신소재 개발, 배터리 필수 소재인 리튬 추출 신기술 등도 개발하는 등 포스코 R&D 분야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온 주역이다.

권 사장의 선친은 양반가문으로 1950∼70년대 초반까지 영주에서 제재소를 경영해 상당한 재력을 쌓았다. 원목을 사들여 가공한 후 각목 등을 팔아 그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부자였다. 이후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금난에 몰려 사업이 기울었다. 이로인해 권 사장 남매들은 서울 유학시절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선친은 자식들에게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면서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가세가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친은 자식들을 서울로 보냈다. 5남매 모두를 상경시키는 자식교육열을 보였던 것.


권 사장의 어머니는 상경한 5남매의 교육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남다른 고생을 했다. 자식들의 교육비를 보태기 위해 서울에서 스테인리스 식기를 구매해 고향인 영주에서 팔았다. 또 돼지와 닭 등을 키워 자식들 유학비용을 대느라 허리가 휘었다고 한다.

권 사장과 관련된 몇몇 일화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은 서울대 사대부고 시절 학교 후배들에게 ‘줄빠따’로 단체기합을 줬다가 징계를 받았던 일이다. 반에서 수석을 하고 학교 전체로도 3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그였기에,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후문이다.

“이젠 기술시대”
외유내강 학구파

권 사장은 몸을 낮추고 깍듯한 예의가 몸에 체화된 사람이다. 소신과 지조는 지킨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 ‘외유내강’ 젠틀맨이라는 게 중론이다. 기술과 연구개발 외길을 걸어온 기술통이었지만, 글로벌 철강산업의 침체와 불황을 타개할 전략과 리더십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게 포스코 인사들의 설명이다. 정준양 회장시절 흐트러진 철강신소재 개발과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본업인 철강산업에 정진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상태다. 그는 차기회장에 내정되자마자 “국민에게 존경받는 포스코를 만들고 글로벌 초일류 철강회사로 발돋움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권오준 빵빵한 형제들

브레인 5남매…각계서 맹활약

본문/포스코의 차기회장으로 내정된 권오준 포스코 사장 형제들이 명문가 출신으로 명문대를 나와 각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권 사장의 5남매는 모두 서울 사대부고를 나와 서울대 연대 고대 명문대를 나와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인 누나부터 셋째인 권 사장까지는 시험을 봐서 사대부고에 입학했고, 넷째와 막내동생은 사대부중에서 곧바로 진학하는 제도(동계진학)를 통해 사대부고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 누나 권원주씨는 이대 약대를 나와 약국을 경영 중이며, 큰형 권오성씨는 외대출신으로 무역업(주식회사 두백 대표)을 하고 있고, 권 사장의 첫째 동생 권오진씨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병원(권 피부과 원장)을 운영 중이다. 둘째 동생 권오용씨는 SK그룹 홍보담당 사장 등을 역임한 후 현재 효성그룹에서 상임고문으로 재직 중으로 남매들이 모두 SKY대와 이대, 외대 등의 명문대학을 나와 각계에서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광>

 

[권오준 사장은?]

▲경북 영주
▲서울사대부고 졸업
▲서울대 금속공학과 학사, 캐나다 윈저대 금송공학과 석사, 피츠버그대 대학원 금속 박사
▲산업과학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 입사
▲기술연구소 부소장
▲자동차강재연구센터장
▲포스코 EU사무소장
▲포스코 기술연구소 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원장
▲포스코 기술총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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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