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짠’ 국정원 요원들 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18 14: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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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데 때아닌 비밀 임종체험

[일요시사=사회팀] 최근 국가정보원 직원 수십 명이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에서 임종체험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영정사진을 찍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임종체험에 나선 이유가 뭘까.




국정원 직원들이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 효원힐링센터를 찾았다. 지난 12일 효원힐링센터 관계자를 만나 국정원 직원들의 ‘임종체험’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 직원 수십 명은 당산역 인근에 있는 효원힐링센터 4층에 모여 차례대로 영정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센터 강사로부터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듣고 5층에 올라가 준비돼 있는 관속으로 들어갔다.

“마음 풀고 갔다”

지난 6월 개원한 효원힐링센터의 임종체험자 수는 5000명을 넘어섰다. 체험 희망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임종체험을 위해 이 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학생, 종교단체, 기업, 각종 동호회 등이다. 그런데 최근 의외의 기관이 이곳을 왔다 갔다. 바로 ‘국정원’이다.

국정원이 임종체험을 하고 유유히 떠났다고 밝힌 센터 관계자는 “일반인과 다름없이 임종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며 “국정원 직원 50여명이 왔다 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정사진을 찍고 강의를 듣고 유서도 썼다. 그리고 저승사자를 만났다.

센터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 직원들의 임종체험에 대해 “마음이 굳은 자들이 마음을 풀고 갔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 직원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단체사진은 찍지 않았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신원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이 센터를 방문한 날짜와 정확한 명단을 확인하고자 관계자에게 구체적인 자료를 부탁해봤지만 ‘지지난 주’ ‘50여명’이라는 정보 외에는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기자가 방문한 11월12일 기준으로 따져보면 10월28일부터 11월2일 중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토요일은 단체가 아닌 개인 위주로 받기 때문에 국정원 직원들이 다녀간 날짜는 10월28일부터 11월1일, 즉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로 좁혀진다. 즉 평일에 찾아온 것이다.

직원 50여명 효원힐링센터 극비리 방문 확인
영정사진 찍고 관 속 들어갔다 유유히 사라져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국정원 측에 연락했다. 국정원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공보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냐”며 “임종체험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이에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히고 들은 정보를 토대로 국정원 직원들이 다녀간 날짜와 인원을 물었다.

그는 “지지난주에 국정원 직원들이 왔다 갔다고 그쪽(센터)에서 말했냐”며 “그쪽에서 이미 그렇게 말했다면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했다. 그리고 다소 날이 선 목소리로 “신원을 밝히지 말라고 했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정원이 센터 측에 비밀 유지를 부탁했던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기간 중 심리정보국 직원 70명과 외부조력자들과 함께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치적인 댓글로 대선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공직선거법위반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때부터 국정원의 신뢰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부정선거’의 가장 큰 조력자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으로 ‘정치공작’에 나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국정원은 내란음모 사건을 오로지 녹취록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녹취 원본이 없다. 근거 자료도 불법으로 취득해 법적 문제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조작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확인에 당황


이런 정국에 국정원 직원들이 임종체험에 나섰다. 제 발로 저승사자를 만나러 온 국정원 직원들. 그들은 평일에 단체로 힐다잉(hilling-dying)을 체험했다. 그들은 관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모르게 귀신처럼 다녀갔지만 꼬리는 길었다. 어수선한 정국에 국정원의 이러한 행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르포] 임종체험 해보니…

웰빙’ 열풍에 이어 ‘웰다잉(well-dying)’이 뜨고 있다. 이제는 ‘잘 죽는 것’도 준비하는 시대다. 여기 가상의 죽음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12일 ‘임종체험’을 하기 위해 효원힐링센터를 찾았다. 이날 기자는 성동구의 한 사회복지관 노인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시작은 영정사진 촬영이었다. 노인들은 밝은 미소로 촬영에 임했다. 촬영 후 센터 측 서포터즈는 영정사진을 나눠줬다. 영정사진을 받아 든 노인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에이 좀 더 웃을 걸∼” “아주 잘나왔네!” “이거 가져도 되죠?”

그리고 본격적인 임종체험에 앞서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뒤 노인들에게 지금까지의 인생이 어땠냐고 물었다. 한 노인은 “생각해보니 인생이 길었다”고 답했다. 강사는 “인생이 짧아야 후회 없이 산 거다”고 말하며 “여생을 즐겁게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노인들은 매우 쓸쓸해 보였다. 알고 보니 대부분 독거노인이었다.

“아들한테 연락이 안와…이제는 기다리지도 않고, 자식들 잘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노인들은 울적한 마음을 뒤로하고 센터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관’이 준비돼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승사자의 손을 잡고 계단 하나하나를 올랐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 마주했다. 그곳에는 수십여 개의 관이 정렬돼 있었다. 각자 자신의 관 옆에 앉아 영정사진을 펼쳤다. 엄숙한 분위기 속 지나온 인생을 회상하며 간단한 명상을 했다. 명상 후 노인의 죽음과 관련된 영상을 시청했다. 그리고 유서를 작성하고 죽기 전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남편이 술 퍼먹어도 자식들 키우면서 잘 살았어요.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까. 남은생 즐겁게 살다 가고 싶어요.”

“그저 자식들이 잘 살길 바라죠.”

“큰 아들이 애 못 낳고 작은 아들은 아직도 결혼을 못했어요. 손자를 보고 싶은데….”

몇몇 유서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큰 어려움 없이 자랐어요. 남편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런데 아들 둘을 교통사고로 잃어서….”

애절한 사연을 끝으로 내부 조명이 꺼졌다.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강사의 지시에 따라 금태 두른 하얀 수의를 입었다. 묘한 음악과 함께 관 뚜껑이 열렸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관 속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저승사자가 관 뚜껑을 천천히 닫았다. 입관. 좁은 관속에 누운 순간 오만 생각이 교차했다.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답답함이 밀려왔다. 비록 체험이었지만 관 뚜껑을 빨리 열고 싶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저승사자들이 관 뚜껑을 열었다. 죽음에서 깨어난 것이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백문불여일견.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 임종체험이 끝난 후 한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런 경험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센터를 떠났다.


노인들을 인솔한 사회복지사는 “복지관에서 처음 시도한 프로그램이다”며 “기분이 묘했지만 관에 눕는 순간 가족들과 친구들이 생각나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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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후폭풍> 윤석열이 삼킨 이슈들

[탄핵 후폭풍] 윤석열이 삼킨 이슈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과 몇 개월 만에 온 천지가 쑥대밭이 됐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로 변했다.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 갈등을 빚는 사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공든 탑도 무너져 내렸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 감도 안 오는 상황이다. 비로소 탄핵 정국이 끝났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탄핵6 소추한 때로부터 111일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로는 122일이 걸렸다.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중 가장 오랜 숙의 기간을 거쳤다. 결론까지 120여일 문제는 후폭풍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탄핵 정국은 4개월 만에 나라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정치권은 정쟁에만 몰두했고 정부는 기능이 마비돼 공회전을 거듭했다. 그사이 국민 여론은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사태를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컨트롤 타워는 붕괴했다. 무정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외교다. 특히 미국발 공격에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된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미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상 외교는커녕 실무진 간의 대화도 삐걱거렸다. 대통령 권한대행,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미국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우방국, 동맹 관계는 허울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도 관세를 부과했다. 당선 직후부터 스스로 ‘관세맨’이라고 칭하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도 예외로 두지 않은 것이다. 지난 2일 미국 정부는 한국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과정서 “미국 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산업을 파괴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비금전적 장벽을 만들었다”며 “미국 납세자들은 50년 이상 갈취를 당해 왔으나 더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하면서 통상 전쟁에 불을 댕겼다. 이번 발표는 미국발 통상 전쟁을 전 세계로 확산한다는 일종의 선언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별로 중국 34%, EU(유럽연합)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등의 관세율을 적용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 EU 등보다 높은 상호관세율이 적용되면서 불리한 여건서 경쟁을 벌이게 됐다. 나름의 ‘믿는 구석’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미국과 새로운 통상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관세뿐만 아니다. 지난달 15일 미국 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포함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인 지난 1월 초, 조 바이든 행정부가 결정한 조치로 파악됐다. 미국 에너지부는 국가안보나 핵 비확산, 지역적 불안정성, 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의 이유로 민감국가를 지정한다. 민감국가로 분류되면 원자력·인공지능(AI) 등 미국 첨단기술 분야와의 교류, 협력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트럼프 취임 이후 대응 못 해 민감국가 지정 이어 관세 폭탄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한 언론서 관련 보도가 나올 때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감국가 지정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지정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보안 문제에 따른 것일 뿐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권은 민감국가 지정 배경을 두고 서로를 탓하며 정쟁을 벌였다. 정부의 안일한 인식과 달리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 과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홍기원 의원실은 지난해 8월 작성된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의 ‘예측과학 학술 연계 프로그램(PSAAP) 제4기 모집 공고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공고문에 따르면 “PSAAP 자금은 미국 시민이거나 비민감국가 출신 비미국 시민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고 돼있다. 민감국가 출신은 자금 지원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민감국가에 등재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과학기술 협력에 새로운 제한은 부재하다는 게 에너지부의 설명”이라고 밝혔다. 물론, 당시 조 장관이 언급한 ‘한미 간 과학기술 협력’에 해당 프로그램이 포함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민감국가 리스트는 오는 15일 공식 발효된다. 정부는 발효 전 한국을 리스트서 빼기 위해 막판 협의를 벌이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방위비 분담금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중순께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으로 알려진 9쪽 분량의 문건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국방부는 ‘인력과 자원의 제약을 고려해 여타 지역서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고,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 동맹국이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의 위협 억제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국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한국과 미국은 내년부터 5년간 낼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올린 1조5192억원으로 이미 정했다.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을 연동시키되 연간 인상률이 최대 5%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때부터 한국이 지금보다 더 많은 방위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재협상 가능성이 남아있는 셈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언급하면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김 위원장에게 연락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미 1기 정부서 김 위원장과 직접 소통한 경험이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재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동맹도 내친 미국 대통령 이 과정서 ‘한국 패싱’ 가능성 또한 나오고 있다. 100일 넘게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리더십 부재 상태가 계속된 부분이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북한과 미국의 대화에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북한 관련 대화는 주로 정상 외교를 통해 이뤄졌다. 내치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민생은 뒷전이 됐다. 여야는 탄핵소추안 표결로 갈등을 빚었고 이후에는 탄핵 심판을 두고 서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사이 각종 문제가 불거졌지만 기능이 마비된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참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29일 승객과 승무원 181명이 탑승한 제주항공 2216편이 무안공항서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폭발했다. 승무원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한 참사로 오는 7일로 100일째에 접어들었다. 사고 원인 규명, 피해자 보상 등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계엄, 탄핵 등의 여파로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진 모양새다. 일단 당국의 조사와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안타까운 점은 블랙박스에 사고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현장서 수거된 항공기 블랙박스와 엔진, 주요 부품 등 사고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증거를 종합적으로 분석, 시험하는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의성서 시작돼 5개 시군으로 번진 대형 산불 피해도 만만찮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5개 시군의 피해 조사액은 8000억원에 이른다. 최종 피해액은 1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산불로 주택 3987채가 탔다. 3915채가 전소됐고 30채는 절반 정도, 42채는 부분적으로 불에 탔다. 여기에 농작물 3785㏊, 시설하우스 423동, 축사 217동, 농기계 6230대가 화재 피해를 입었다. 인명피해도 26명이나 났다.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는 경북 산불로 사망자를 낸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 있는 조부모 묘소를 정리하던 중 일대에 불이 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F보다 더 어렵다 정부, 기업, 연예인 등 각계각층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지만, 다 타버린 숲 등을 산불 이전 상태로 복구하는 데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자영업자는 최악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연말연초 대목을 놓친 데 이어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위축된 소비심리에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일 여신금융협회의 ‘2025년 2월 카드승인실적’에 따르면 지난 2월 숙박, 음식점업 카드 승인 실적은 11조21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4320억원 줄었다. 국내 자영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식업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심리의 악화는 취미 생활 위축으로도 드러났다. 지난 2월 예술, 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 카드 승인 실적은 96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 가까이 감소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으니까 여가와 외식 소비가 줄어들면서 관련 업종이 전반적으로 부진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빌린 돈은 갚을 수 없고 수입은 없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지난달 31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과 행정안전위 소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양부남 의원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 대출 세부 업권별 연체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저축은행 연체율(1개월 이상)은 11.7%로 나타났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 3개월 사이 0.7%p 올랐다. 2015년 2분기 이후 9년6개월 만에 최고 기록이다. 빚을 여러 곳에서 낸 다중채무자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다중채무자는 가계대출 기관 수와 개인사업자 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인 경우를 뜻한다. 지난해 4분기 말 자영업 대출자 가운데 다중채무자는 56.5%에 이른다. 대출액 기준으로 보면 70.4%에 달한다. 1인당 평균 4억3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금융안정 상황(2025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취약 자영업자는 42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소득이 적고 신용도가 작은 자영업자가 43만명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이들이 전체 자영업자 차주서 차지하는 비중은 13.7%에 이른다. 소비심리 위축되고 자영업자는 망하고 2021년 말 28만1000명에서 2022년 말 33만8000명, 2023년 말 39만6000명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다 보니 아예 장사를 접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내놓은 ‘2025년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 10곳 중 4곳은 매출 부진 등의 사유로 창업 후 3년 이내에 문을 닫았다. 폐업 시점의 빚은 1억원을 웃돌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3년 미만 단기 폐업자의 비율은 39.9%를 차지했다. 폐업 사유는 수익성 악화 및 매출 부진이 86.7%로 나타났다. 그 원인으로는 내수 부진에 따른 고객 감소가 과반(52.2%)을 차지했다. 인건비 상승(49.4%), 물가 상승으로 인한 원재료비 부담(46%), 임대료 등 고정비용 상승(44.6%) 등이 뒤를 이었다. 폐업 과정서 드는 비용도 평균 2188만원에 달했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2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난 자리서 정치권의 대책을 요구했다. 송 회장은 “자영업자 수가 지난 1월 기준 두 달 만에 20만명이 줄고 수도권 상가도 공실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과 민생을 위한 추경이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은 나름 해소 수순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부결된 이후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경제적인 관점서만 봤다고 전제하면서 “탄핵이 경제엔 더 낫다”고 말한 바 있다. 비상계엄, 탄핵 정국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건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정국을 뒤흔들었던 ‘명태균 게이트’가 다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한 언론은 지난 3일 명태균씨와 홍준표 대구시장 간의 의혹을 보도했다. 윤 전 대통령 내외와 홍 시장 부부가 회동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를 명씨가 주도했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3일 해당 내용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홍 시장 측근이 명태균을 통해 김건희 여사가 선호하는 동물 관련 기획을 전달했고 이를 계기로 부부 동반 회동이 성사됐다는 것”이라며 “명태균은 단순한 연결고리가 아니었다. 기획안을 준비해 김건희의 승인을 받고 회동을 성사시킨 핵심 인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공직자가 민간인과 손잡고 대통령 부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사적 회동을 주선한 것”이라며 “홍 시장의 권력 네트워크에 명태균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 시장은 지난 3월14일 명태균 사건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 정계 은퇴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묻혔던 사건 수면 위로? 시간상으로는 120일 남짓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한국에 남긴 상흔은 상당했다. 외부로는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내부에선 ‘IMF 때보다 힘들다’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본연의 자리서 일했어야 할 국민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탄핵 정국이 지나간 자리에 결국 국민의 상처만 남은 셈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