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 최대 슬럼가' 가리봉 가보니…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11 10: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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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만 지면 주폭 조선족 ‘어슬렁어슬렁’

[일요시사=사회팀]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은 한국 안의 작은 중국이라 불린다. 그만큼 많은 중국인과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자치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중국어 간판이 즐비한 거리가 가리봉동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금은 낯설고 위험해 보이는 가리봉동의 곳곳을 둘러봤다.




가리봉동은 영등포구 대림동, 금천구 가산동과 독산동, 경기 안산 원곡동 등과 함께 조선족 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구로공단 자리 사이에 자리 잡은 가리봉동은 과거 1964년 수출무역단지에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청년들이 먼저 터를 잡은 곳이다. 이후 90년대 접어들어 구로공단 내 업체들이 생산시설을 이전하면서 한국 노동자들이 자연스레 빠져나갔다. 그리고 92년에 맺은 한·중 수교로 인해 조선족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도 빽빽이 붙어있는 쪽방에서 생활하며 실낱같은 꿈을 꾸고 있다.

옹기종기 조선족
집단 거주 지역

지난 5일, 서울의 대표적인 슬럼가로 유명한 가리봉동의 민낯을 확인하고자 서울 지하철 7호선에 올랐다. 가리봉동과 가까운 남구로역은 지하철역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얼핏 들으면 북한말 같은 조선족들의 대화소리와 이해 못할 중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날이 선 목소리였다. 중국 본토로 착각할 정도였다.

기자는 남구로역 3번 출구를 기점으로 동남쪽으로 나와 가리봉종합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삼거리부터 공단 오거리까지 300m에 걸쳐서 이른바 ‘조선족거리’ 혹은 ‘연변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시장으로 내려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다양한 일자리가 덕지덕지 게시돼 있는 직업소개소였다. 조선인을 모집하는 구인광고가 부착돼 있었다. 주로 업종과 지역, 구인자의 성별·나이·비자, 급여, 숙식 제공 여부 등이 요약돼 있었다. 용접, 가정부, 간병, 전자제품 조립, 벽돌 제조, 타이어 분쇄, 비닐 세척 등이었다. 월급은 대개 150만원 안팎이었다. 소개소에는 보통 하루에 30∼40명 정도가 찾아온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재외동포 체류자격(F-4)을 얻기 위해 제조업과 농축산업 분야를 선호한다. 사실상 무기한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개소 옆에는 쭈글쭈글하게 널린 빨간 수건들이 있었다. 미용실 수건이었다. 허름해 보이는 미용실 안은 손님으로 가득했다. 주변에 스치는 사람들은 인상이 강했다. 노동자로 보이는 남성들이었다. 그들의 옷차림에서 ‘멋’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유행과 먼 옷차림 때문이었다. 기자의 넥타이가 어색할 정도였다.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체감 없이 하얗게 분칠한 여자의 얼굴, 남자의 짧은 머리칼과 단단하게 솟은 광대뼈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시장으로 내려가는 길 상가에는 작은 여관들이 밀집해 있었다. 허름한 간판과 계단을 보니 여관의 연식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내부가 궁금해서 안에 들어가 여관 계단에 올랐다. 그런데 허름한 옷차림의 남성 3명이 계단 위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순간 당황한 기자에게 한 남성이 말을 걸었다. “여기는 왜 올라왔어?” 말투를 보니 조선족임이 틀림없었다. 기자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가리봉동 구경하러 왔다”고 대답한 뒤 계단에서 내려왔다. 왠지 모를 오싹함이 온몸을 감쌌기 때문이다.

여관 건물을 나와 다시 시장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시장 진입로에는 낯선 건물이 있었다. 알고 보니 경찰청 마크가 붙어있는 서울구로경찰서 가리봉파출소의 방범 제1초소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주폭 척결 모두 함께 나섭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순간 최전방에서 경계 근무를 했던 군 시절이 떠올랐다. 시장에 초소가 있다니,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만큼 위험지역이라는 것.

과거와 미래 공존…신 차이나타운 형성
어두컴컴한 골목 끼고 벌집촌 덕지덕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낮에 찾아갔지만 거리에는 기동순찰 중인 경찰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제1초소 기준으로 좌측에는 ‘중국동포타운신문사’가 있었다. 이 신문사 앞에서 가방을 메고 있는 노동자들을 볼 수 있었다. 주변 상인에게 물어보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함이라고.

무채색 상하의에 운동화나 등산화 차림은 여느 일용직 노동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갖고 다니는 가방은 작업복과 세면도구로 부풀어 있었다.

이들을 지나 시장 진입로에 들어섰다. 80∼90% 정도가 중국어 간판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색 간판이 마치 연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생소한 중국식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길거리 음식을 보니 확실히 중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꽈배기도 팔뚝만한 크기였다.


길 양쪽으로 ‘연길명태어옥’ ‘동북삼성반점’ ‘두만강식당’ ‘도문반점’ ‘압록강반점’ ‘아리랑분식’ ‘아리랑커피숍’ 등 조선족들의 고향인 중국 연변의 지명을 딴 음식점들의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주변 상가 건물에는 ‘중국 노래방’ ‘상해 노래방’ 등 대략 스무 곳의 노래방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방 주변에는 한낮에도 구수한 조선족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이곳은 중국어 문화권’이라고 알리는 것 같았다.

중국 냄새나는 시장골목을 쭈욱 걷다 보면 골목 입구에 ‘가리봉종합시장, 동포타운, 어서 오십시오’라는 간판을 볼 수 있다. ‘동포’라는 표현에서 이곳의 성격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시장 내부에는 중국어로 표기된 식품들이 있었지만 여타 시장과 다를 바 없는 모양새였다.

이 지역에는 모두 137개의 중국관련 상업시설이 분포하고 있다. 현황을 보면 음식점이 50개로 가장 많았고 노래방 17개, 식료품점 16개, 주점 및 다방 12개, 여행사 10개, 직업소개소 8개, 의류잡화점 10개, 환전소 2개 등 다양한 업종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지원센터, 교회, 신문사 등 다수의 관련 시설이 입지해 있다. 이 시설들은 한국계 중국인들이 음식료품 구입, 유흥, 취업, 쇼핑 등 다양한 문화·생활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조선족 이동 따라
슬럼화된 가리봉

시장을 둘러본 뒤 시장과 연결된 골목길로 향했다. 이렇게 따라 올라가니 그 유명한 ‘가리봉 벌집촌’이 나오는 언덕길이 나왔다. 다가구 주택이 밀집된 이곳, 매우 좁아 보였지만 이들의 보금자리라고. 그런데 아직도 욕실이 없는 방이 있다. 여전히 공동화장실을 쓰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생활이 불편한 건 여전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 내외의 저렴한 방값에 조선족들이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 이들의 문화는 벌집촌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역은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주로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벌집’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80년대 후반 산업구조조정으로 구로공단 내 많은 업체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자 가리봉동은 남아 있던 벌집을 중심으로 극빈층이 유입됐다. 이후 90년대 말부터 조선족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조선족의 밀집거주지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낮은 임대료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기존에 가리봉동에 형성되었던 건설관련 일용직의 인력시장과 함께 이 지역의 교통도 한몫했다.

주택가는 비교적 한산했다. 낮이라 대부분이 일하러 나간 탓인지 인기척 없이 고요했다. 그저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여인들의 모습이 속속 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방 있음’ ‘개조심’ 문구를 지나쳐 다른 골목길로 발길을 옮겼다. 어떤 골목길에는 ‘구로구민이 뽑은 행복한 골목길’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행복한 골목길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부적합해 보였다. 버려진 쓰레기와 가구 등으로 가득했기 때문. 표지판 옆에는 ‘보증금 100, 월세 25만원 016-751-****’ 등 각종 찌라시도 부착돼 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골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음산한 기운이 돌았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면 건장한 청년도 앞만 보고 걷기에는 무리가 있는 지역이다.

골목길 접어들면
등골 오싹

다소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 곳곳을 촬영하던 도중 한 노인이 다가왔다. “뭐 정보 얻으러 왔어?”라고 말했다. 마치 취재 중이라는 걸 눈치챈 듯 보였다. 조선족이 많이 산다는 소문을 듣고 한 번 둘러보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내가 여기 살면서 자식들 대학까지 보냈다고. 동네는 이래도 사는 데 큰 문제가 없었어. 근데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하면서 이 동네에 살았던 게 부끄럽다고 하는 거야. 어렸을 땐 그런 말 안했는데 이제 머리가 큰 거지….”

‘가리봉’이라는 촌스러운 지명과 조선족의 동네라는 인식 때문에 자식들에게 불평불만을 들었지만 그는 자신의 고향인 가리봉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노인과 대화를 마치고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나왔다. 남부순환로 105길을 경계로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가산디지털단지 패션아울렛이 보인다. 수백 미터 차이로 20세기와 21세기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가리봉동에서 가산디지털단지를 바라보니 마치 과거에서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가리봉동은 많이 낙후돼 있다. 때문에 우범지역이 생각보다 많다. 거리 하나하나가 범죄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영화촬영도 많이 한다고. 그리고 흔히 여성들에게 ‘밤 길 조심하라’고 하는데 가리봉동은 정말 주의가 필요하다. 남성과 동행 없이는 진입하기 어려운 길들이 있다.

구로공단과 함께 원주민 이전
빈자리에 조선족들 삼삼오오
수십년째 멈춰 있는 시계태엽

‘가리봉’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주위의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마을이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과, 어원이 ‘고을’과 같은 의미인 ‘갈’ 또는 ‘가리’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가리’는 갈라졌다는 뜻인데, 구로구의 전체적인 땅 모양이 바지가랑이처럼 갈라진 것과 연관된 것으로 본다. 조선 말기까지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 가리산리였다. 이후 가리봉리로 바뀌었다. 1963년 서울시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가리봉동의 ‘가’ 자와 독산동의 ‘산’을 따서 가산동이라고 하였다. 75년 다시 가리봉동과 독산동으로 나뉘었고, 80년 구로구 신설로 편입됐다. 가리봉동의 북쪽과 동쪽은 구로동과 접해 있고, 서쪽과 남쪽은 남부순환로를 경계로 금천구 가산동과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다.

과거 60만평 규모로 조성된 구로공단은 국내 공업단지 제1호였다. 7∼80년대 ‘한강의 기적’도 바로 이곳에서 태동했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을 발판으로 섬유나 봉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을 주로 생산하다 보니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가리가 빠졌다. 결국 구로공단이 해체되면서 원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났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조선족들이 들어오면서 자신들의 ‘연변타운’을 형성했다. 이렇게 되다 보니 가리봉동은 자연스레 중국동포들의 모임 장소로 기능했다.


여전한 ‘벌집촌’
여기서 어떻게…

이들이 본격적으로 가리봉동에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2년부터다. 정부가 자진 신고하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6개월∼1년의 출국준비 기간을 부여한 것이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사실상 미등록 외국인노동자에게 희망의 씨앗이었다.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준 것으로 이해돼 음지에 숨었던 조선적으로 양지로 나오게 됐다. 늘어난 조선족 때문에 한국인과의 마찰도 잦아졌다. 중국인을 무시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쓰레기 무단 투기 등 기본 질서를 해치는 조선족들의 습관이 충돌하면서 양측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조선족 집결지의 대명사였던 가리봉동은 최근 들어 그 이름이 바래지고 있다.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돈을 벌어 주거환경이 더 나은 곳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조선족들은 이곳 가리봉동을 떠나 대림, 신대방, 신림, 낙성대, 건대입구 등 지하철 2호선 주변을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이러한 조선족의 인구 유동에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재개발된다는 소식도 한몫했다.

가리봉동 앞 남부순환로 건너편으로 가산디지털 3단지, 동쪽으로는 구로디지털 1단지가 들어서 옛 구로공단 지역은 이미 IT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반면 가리봉동은 여전히 슬럼지역 딱지를 떼지 못하고 덩그러니 남아있다. 동시대지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가리봉동은 2003년 균형발전촉진지구, 2008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더 이상 개보수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물리적 쇠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개발 사업이 지연되면서 임대용 방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탈법적인 수선도 진행 중이다. 특별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주류 사회와의 단절 양상은 뚜렷하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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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