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은밀한 성 이야기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04 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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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꽃할매 “늙어도 하고 싶다”

[일요시사=사회팀] 전체 인구 중 노인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2019년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사회적 소수집단이었던 노인들이 다수집단으로 옮겨가며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이를 잊은 ‘젊은 노인’들의 아름다운 성을 들여다봤다.




지금 노인은 예전의 노인과 다르다. 요즘 노인들은 노년의 삶을 단순한 수명 연장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삶의 질’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사랑과 성생활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비아그라 등 약물에 의지하는 경우는 이제 흔한 모습이다.

노인의 성
‘봉인해제’

노인들의 세상이 업그레이드 됐다. 세파에 주름을 속일 수는 없을지언정 마음만은 청춘인 꽃할배, 꽃할매들이 점점 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죽어도 좋아>가 상영된 뒤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성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처럼 청춘 못지않은 할배, 할매들의 <섹스앤더시티>가 현실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의 규칙적 성생활은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노인 남성은 고환과 음경의 위축이 방지돼 전립선 질환이 예방된다고 한다. 노인 여성은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노화도 방지되고 자신감도 높아지며 심폐기능까지 좋아지고 면역기능도 상승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보건복지부가 전국의 65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성생활을 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66%. 노인 3명 중 2명 이상이 지속적인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꽃할배, 할매들의 섹스라이프는 대략 10여 년전 까지만 해도 당사자나 주변에서 숨기고 싶었던 부분이다. 당시 노인의 성문제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단어가 탑골공원이나 호수공원(일산) 등을 근거지로 활동한 일명 ‘박카스 아줌마’였다. 이는 노인의 성을 비로소 사회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노인의 성 관련 범죄와 성병 증가와 같은 문제, 그리고 건강한 노인의 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지게 됐다.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유혹하는 박카스 아줌마 부대는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노인들의 로맨스는 훨씬 더 다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사랑이 꽃피는 장소는 ‘사회복지관’이다. 갈 곳이 없어 노인정, 복덕방 혹은 기원 그도 아니면 공원 같은 장소를 배회해야 했던 노인들은 이제는 갈 곳이 너무 많아 고민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노인 아닌 노인들이 증가했다. 할배·할매라고 불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 꽃노년들의 문화 활동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동시에 연애사업도 진행된다. 그 시작은 지역 사회복지관이다.

한 사회복지관 의무실에 근무하는 간호사에 따르면, 어느 정도 여유롭고 팔팔한 노인들의 일상은 대부분 복지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특히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복지관으로 모이면서 노인 집단도 자연스럽게 서열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해진다. 노인들도 서로 외모와 능력을 따지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부에는 늘 실세가 있어 실세 눈 밖에 나면 복지관에서 팽 당하기 일쑤다.

사회복지관 클래스의 선택권은 거의 꽃할매들의 전권이다. 잘 생기고 유머러스한 할배들은 환영을 받지만 조건이 부실한 할배들은 집단 중심에서 소외된다. 즉 꽃할매들의 눈 밖에 나도 복지관에서 제대로 기를 펼 수 없다. 진정한 실세는 이 꽃할매들인 것이다.

노인들이 사회복지관에 모이는 이유는 우리 사회 어느 곳보다 동년배가 많고, 노년층 맞춤형 프로그램과 의료시설과 문화시설, 건강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지역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거동할 힘만 있으면 무리해서라도 사회복지관을 찾는 이유다.

그리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사회복지 혜택인 대중교통 무임승차는 노인들에게 또 다른 축복이다. 아침시간 지하철 1호선은 노인들 천지다. 천안, 춘천 등 노인들은 어디든 가고 본다. 이제는 미리 지역정보를 알아내 축제마당 나들이를 즐기는 게 요즘 노인들의 추세다.


이러한 장거리 축제 나들이는 대부분 짝을 지어 간다.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한 사회복지관 의무실에 근무하는 간호사에 따르면 복지관 내 의무실에 유별난 처방전을 받으러 오는 노인들이 있다고 한다. 바로 발기부전촉진제다. 본래 심장질환 혈관 치료제로 개발된 약의 용도에 맞게 병명을 그럴듯하게 대고는 “비아그라를 처방해 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는 것.

65세 이상 3명 중 2명 성생활
10명 중 3명 이성친구와 성관계
파트너 없으면 성매매로 욕구 해소

할배들은 처방받은 비아그라를 얻은 뒤, 전철을 타고 멀리 떠나 현지에 조달한다고 한다. 일명 ‘비아그라 셔틀’이다. 이렇게 비아그라를 얻은 할배들은 사회복지관에 출석해 비아그라를 자랑삼아 과시한다. 놀라운 건 90대 노인도 비아그라를 애타게 찾는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90대 노인들도 은밀하게 성생활을 즐긴다. 마음에 드는 노인끼리 여관에 들어가 원나잇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한 노인주거복지시설(실버타운) 관계자를 통해 들은 말이다. 봄볕이 따뜻한 어느 날, 50대 여성인 원장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외출하는 81세 남자 어르신께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몇 마디를 덧붙였다. “좋은 데서 맛있는 것 잡수시고 오세요. 여자분이 싫다는데 억지로 여관 같은 데 가진 마시고요.”

노인은 말없이 웃는 얼굴로 외출했다. 그런데 한 달쯤 후 그 노인은 원장에게 찾아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때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를 남자로 인정해 준 것만으로도 한동안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행복했다”고.

2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둘째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여든 살 A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A씨는 교회에서 알게 된 78세의 할머니와 가끔 만나는 사이인데 하루는 둘째 아들이 정색을 하곤 그에게 말했다. “아버지, 비아그라가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요즘 가짜 비아그라가 많아서 잘못 쓰면 큰일 난대요. 그리고 할머니와 관계를 할 때는 꼭 할머니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셔야 해요.”

A씨는 둘째 아들이 그런 말을 할 때 눈물이 핑 돈다고 했다. 큰아들 부부가 매사에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건 너무 가소로웠는데 둘째 아들이 해주는 성교육은 고맙기도 하고 비아그라처럼 힘이 나게 한다고도 말했다.

90대 노인도
비아그라 찾는다

노인의 성생활 실태에 관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62.8%의 남성노인과 24.8%의 여성노인이 현재 성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성욕구 대처행동은 통제적 유형이 표현적 유형보다 우세했으며, 성행동 예측 요인으로 연령과 배우자 유무, 성지식과 성태도, 교육수준, 스트레스 수준 등이 확인됐다. 30.8%의 노인은 성생활에 불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건강문제와 배우자의 부재가 노인의 성생활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66∼71세 노인 가운데 성욕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20% 미만이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60세 이상 여성의 과반수가 성생활을 계속한다고 대답했다. 경기도의 어느 도시에서는 노인 10명 가운데 3명이 이성친구와 성관계를 가진다고 했다. 파트너가 없는 남성 노인 가운데 상당수는 매춘을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는 조사 보고도 있다.

그런데 짝퉁 발기부전 치료제가 노인들의 성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짝퉁 발기부전 치료제를 먹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노인이 늘어난 것이다. 종로3가역 근처 한 비뇨기과 원장은 “성병은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종묘광장공원 일대 좌판에서나 박카스 아줌마들이 파는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를 잘못 먹으면 돌이킬 수 없는 신체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원에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노인들의 불법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경찰과 종로구는 2000년대 초 대대적인 박카스 아줌마 단속에 나섰지만, 노인들의 불법 성매매 행태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종묘광장관리사무소의 불법 성매매 적발 건수도 2009년 34건, 2010년 54건, 2011년 132건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나이도 많은 박카스 아줌마들은 다른 직업을 찾기 힘들어 단속에 쫓기면서도 끊임없이 공원에 나온다”며 “단속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도시 뿐만이 아니다. 요즘에는 가짜 비아그라가 농촌 재래시장에까지 밀고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약물에 의지해서라도…제2의 인생 즐겨
복지관 돌며 발기부전 치료제 처방 받아

비아그라는 제품 자체가 진품이라 해도 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도 먹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제품의 진의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을 들고 다니며 농촌 재래시장에서 가짜 비아그라를 판매하는 자들이 있다. 농촌은 할배·할매들이 가장 많이 사는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할배들은 호기심에 이런 약을 사서 무작정 먹었다가 부작용을 경험하기도 한다.

비아그라는 진품이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서 두통이나 소화불량 같은 부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물며 물건의 진품 여부도 알지 못함은 물론이고, 그 속에 어떤 나쁜 화학적 성분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것을 속아서 구입해 먹었다가 어떤 피해를 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비아그라가 마냥 나쁘다는 건 아니다. 20세기 말에 태어난 비아그라는 성기능 질환 치료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약으로 평가된다. 부끄러운 일로만 여겨지던 성기능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심장 질환 예방에도 기여했다.

짝퉁 제품에
숨넘어갈 수도

노년이 외로운 까닭은 삶을 서서히 떠나보내고 죽음을 친구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자가 떠나고 친구가 떠날 때마다 느끼는 외로움. 몸은 아직도 건강해 일도 하고 이성 친구도 사귀고 싶은데 노망이라 여겨질까 두려워 마음을 닫아건다.

그러나 언젠가 서울의 번화가는 노인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지금 그곳을 메우는 젊은이들이 노년기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진한 애정 표현을 나누던 한창 때처럼 길거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노인 커플을 어렵지 않게 만날 날도 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성적 욕구와 탈선의 주체에서 노인은 빠져 있다. 어쩌면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공원이나 산 주변에는 성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병원 관계자는 전했다. 공원 등을 찾는 노인들에게 한 달에 1번 무료 건강 검진을 실시한 결과 주 치료 질병은 만성 퇴행성 질환과 소모성 질환 그리고 배뇨통 등 요도염 증상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많았던 것.

그 결과 주로 성적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임균성 및 비임균성 요도염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검사자의 10% 이상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매독으로 의심되는 결과를 보였다.

일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80대 후반의 남성 노인의 34%가 불규칙하지만 아직도 성생활을 시도하고 있으며 70대 후반 중 55%, 60대 전반 65%, 60대 후반 남성 노인의 79%가 지속적인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여성은 70대 이상의 36%가, 60대 후반은 44%, 60대 전반은 61%가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여러 연구가 있지만 결론은 비슷하다.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성생활 빈도는 감소하지만 성생활은 여전히 삶의 한 부분이며 30∼70% 정도의 노인이 규칙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노년기 성생활의 필요성을 “노인도 성적 욕구가 있고 신체적으로도 성생활이 가능하므로 사회가 그에 대한 지원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노인의 ‘성적 기능’을 보다 강조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화’라는 생체변화에 의해 억압되고 무시당하는 ‘권리’를 소홀히 하게 될 위험이 크다. 쉽게 말해 생물학적인 성과 성 능력만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성적 권리와 인격으로서의 성은 관심을 벗어날 소지가 있다는 말이다.

성생활 통해
존재감 확인

이런 의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경제력이다. 노인의 성 역시 경제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건강하고 경제력 있는 노인은 그래도 배우자나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지만 가난한 노인들은 성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런 현상은 성별에 관계없이 나타나지만 남성 노인의 경제력이 여성의 그것보다 더 매력적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금욕을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성을 가까이 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성을 권리와 인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노인들은 성생활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성은 신체를 통한 자기 표현방법이며 사람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표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은 단순한 성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교류, 교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노년기의 성생활은 삶의 질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광호 기자<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비아그라 순기능
잘만 쓰면 축복의 약

비아그라는 산악인이나 나이든 골퍼나 등산가에게는 필수약품이다. 히말라야 같은 고산 등반 시에 생기는 고산병(산소결핍 폐울혈)을 예방하고 완화시켜 주는 명약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보통 사람도 5000m 급의 히말라야에 부부동반으로 많이들 별 탈 없이 다녀온다. 한국처럼 겨울이 있고 높은 산이 많으며 나이든 등산가나 골퍼가 많은 나라에는 겨울나들이, 등산, 골프 시에 소량의 비아그라는 심장이나 뇌혈관 사고방지에 도움이 된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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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