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일장춘몽’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22 09: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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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잘 갔다 했더니…쪽박 차게 생겼다

[일요시사=사회팀] ‘법조인 출신 가운데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꼽히던 현재현 회장이 이끄는 동양그룹이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형제기업인 오리온그룹에 지원을 요청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허사였다. 이제 동양시멘트·동양네트웍스 등 주력 계열사들은 줄줄이 법정 관리 체제에 들어갈 전망이다. 현 회장은 지금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표적인 엘리트 CEO로 꼽혔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회사의 쇠락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동양그룹의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의 ‘사위’로 유명한 현 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을 패스해 검사로 일하다 기업인으로 변신했지만 현재 그의 표정은 어둡다. 특히 현 회장은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데리고 있던 임직원들한테까지 공격을 받고 있는 상태다.

엘리트CEO
한순간에 훅

올해 4월 기준 재계 순위 38위인 동양그룹은 한때 국내 5대 그룹 안에 들던 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룹이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현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그룹의 핵심 역량에 집중하지 못하고 상황이 어려워졌음에도 ‘모호한 거래’를 통해 욕심을 부리며 ‘부활’할 수 있는 시기를 계속 놓쳤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CP(기업어음) 돌려막기로 그룹을 겨우 지탱해왔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계열사의 부실 채권 판매를 금지한다’는 규정이 동양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규정은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유예기간 동안 금감원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 부실 채권 판매를 적극적으로 제재했다면 동양그룹 사태는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동양그룹은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는 이 규정이 시작되는 10월 전까지 CP를 발행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규정이 시행되면서 더 이상 부실 계열사의 채권을 팔지 못해 돌려막기식 자금조달의 비참한 최후를 맛보게 된 것이다. 부채가 늘어가던 동양그룹의 5개 계열사가 동시에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갔다.


문제가 된 것은 이 계열사들이 위크아웃이 아닌 법정관리를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또 각 계열사들의 개인투자자 비율이 99%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 피해를 서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튼튼했던 동양그룹이 이렇게 무너지면서 현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만기를 앞둔 CP와 회사채를 상환하려고 동서인 담철곤(58)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지원을 부탁했지만 끝내 거절당하면서 우려했던 위기가 몰아닥쳤다. 유동성 위기를 막지 못하고 9월30일과 10월1일,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동양시멘트 등 동양 계열사 다섯 곳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동양 CP 투자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고, 그룹의 공중분해는 시간문제다.

법정관리 신청을 계기로 CP 불완전판매 의혹이 확산되면서 현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성난 투자자들은 현 회장 일가가 직접 책임지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현 회장은 지난 17일 “믿고 투자해준 투자자에게 큰 피해를 입혀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현 회장은 또 “전 재산은 회사 경영하는 데 사용해 통장잔고가 얼마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며 얼마 전 개인금고에서 돈과 금괴를 빼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60년 동양그룹 순식간에 공중분해 위기
한때 재계 5위권 호령…이대로 무너지나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현 회장은 “이번 동양사태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남은 생애 지상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투자자들의 피해규모를 최소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무위원회 안덕수(새누리당) 의원은 현 회장에게 “동양증권은 그룹과 계열사가 유동성 자금난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 가정주부나 노인들을 상대로 전화를 걸어 동양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수익률이 높은 회사채 CP에 투자하라고 권유하지 않았냐”며 “왜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도 직원들한테 ‘법정관리 들어갈 일 절대 없다’고 독려해 상품 판매를 부추겼냐”고 질문했다.


이에 현 회장은 “법정관리 직전, 회사채 CP 등을 발행한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임원들이 어떤 지시를 했는지, 창구에서 직원들이 어떻게 판매했는지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안 의원은 또 “이번 동양사태로 4만 명에 이르는 피해자가 생겨났는데, 기존 경영 일선에 있던 임원들을 모두 내보낼 수 있겠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현 회장은 “법정관리 신청할 때 이미 모든 경영권을 포기했고, 기존 경영진들 문제는 내가 지시할 사항이 아니라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현 회장은 최근 이혜경 부회장의 개인금고 인출 건으로 논란이 됐던 사건에 대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돈이나 금괴를 뺀 것이 아니라 수십년 된 결혼예물만 챙겼을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아내가 법정관리 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신변 정리 차원에서 개인 사물을 찾아와야 한다는 생각에 대여금고를 찾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은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에게 “왜 법정관리 직전 직원들에게 회사채 CP 등 사기성 판매를 독려했냐”고 추궁했다. 이에 정 사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했던 이야기는 현재 그룹 및 계열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것 뿐 절대 판매를 권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양 사태는
4만명 사기극

한편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동양과 금감원 간의 로비 의혹에 대해 “원장 취임 직후부터 금감원과 동양그룹 제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로비나 부당행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감 증인으로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이승국 전 동양증권 사장,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와 서진원 신한은행장, 김종준 하나은행장, 이건호 KB국민은행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법원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계열 5개사에 대해 회생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당초 동양측이 관리인으로 추천했던 김철·현승담 동양네트웍스 대표 대신, 동양네트웍스 등기이사인 김형겸 상무보를 관리인으로 선임했다.

장인회사 물려받아 승승장구
잘 나가다 자금난에 ‘와르르’ 
오리온 담철곤과 엇갈린 행보

시멘트, 섬유, 가전, 증권 등 3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동양그룹은 200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사업 적자가 발생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그룹 모태이자 주력인 동양시멘트는 최근 3년간 18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동양도 2000억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렇게 자금난이 가중되자 2010년에는 알짜 계열사인 동양생명보험의 지분 46.5%를 보고펀드에 90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구조조정과 자산매각이 더뎠던 점도 그룹 붕괴를 앞당겼다. 지난해 12월 당초 부실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시멘트, 화력발전, 금융부문 등을 중심으로 재편할 계획이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그룹의 캐시카우 구실을 충실히 하던 동양매직과 미래 핵심 사업으로 선정한 에너지부문(동양파워) 지분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매각은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동양의 빈번한 매각 실패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시장의 불신이 깊었던데다, 현 회장 등 경영진이 구체적 매각 대금이나 경영권 유지 여부를 따지다 결국 자산 매각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동양은 동양매직 매각 작업이 한창이던 7월 말 협상 대상을 교원그룹에서 사모펀드인 KTB PE로 변경했지만, 9월30일 KTB PE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무산됐다. 동양 관계자는 “당시 KTB PE가 교원그룹보다 가격을 200억원 높이 부르면서 협상 대상을 바꿨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믿었던 동서회사
오리온 지원 거부

동양은 이러한 자금난을 타개하고자 동양증권의 영업력을 이용해 CP와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자금을 마련했다. CP와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면 다시 CP와 회사채를 발행하는 ‘폭탄 돌리기’가 법정관리 직전까지 계속됐다. 금융권 차입보다 회사채 발행이 많았기에 개미들의 피해가 크다. 이번 사태를 두고 ‘1999년 대우 회사채 파동’ 이후 최대 피해 규모라는 얘기도 흘러나올 정도다.

위기의 동양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것은 현 회장 동서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었다. 동양은 담 회장이 개인적으로 가진 주식을 담보로 5000억∼1조원의 자사담보부증권(ABS)을 발행해 CP와 회사채를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두 그룹 오너 일가는 추석 성묘를 마치고 고 이양구 동양 창업주의 부인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 자택에서 만나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담 회장과 부인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이 끝내 거절했다. 이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최근 동양으로부터 자금 지원 요청을 받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고민했으나 오리온은 존속과 번영을 지속해야 한다”며 거절 이유를 밝혔다. 담 회장 부부는 지분을 담보로 내놓았다가 자칫하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담 회장이 4월 대법원에서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재계에서는 ‘피보다 시장이 진했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4만 명 피해자 발생 
“무조건 엎드려 사죄”

동양은 국내 재벌가에서는 드물게 사위가 경영권을 승계한 그룹이다. 맏딸 내외는 동양을, 둘째딸 내외는 2001년 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오리온그룹을 맡고 있다. 현 회장과 이혜경 동양 부회장은 1976년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의 소개로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대학 3학년 때 사법시험(12회)에 합격했다. 고려대 초대총장인 고 현상윤 박사가 그의 조부이고 부친은 고 현인섭 이화여대 의대 교수다.


현 회장은 19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결혼 후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입사했다. 그는 장인인 이양구 회장과 함께 직접 경영 현장을 누비며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 회장이 83년 고혈압으로 건강을 잃자 현 회장은 34세 나이에 동양시멘트 사장에 선임돼 이때부터 사실상 그룹 경영권을 주도해왔다.

모두 가지려다
모두 잃었다

현 회장은 증권사를 인수하고 신규 회사를 설립하면서 회사 몸집을 키웠다. 84년 일국증권을 인수하는 것을 계기로 시멘트와 제과 일변도이던 동양을 금융업 중심으로 업종 다변화시켰다. 93년부터는 동양의 금융부문 매출이 비금융부문 매출을 앞지르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결국 동양을 지켜내는 데는 실패했다.

한편 법정관리 신청으로 현 회장의 그룹 경영권 유지는 어려워졌다. 현 회장이 지분 30%를 보유한 동양레저는 ㈜동양의 지분 36.25%를 갖고 있어 그룹 경영권의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데, 이 두 회사는 파산 절차에 들어갈 개연성이 크다. 채무 변제 과정에서 현 회장의 지분 가치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동양,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등 3사에 대한 법정관리는 예견된 수순이었으나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의 법정관리는 논란을 남겼다. 동양시멘트는 동양의 주력 회사이고, 동양네트웍스는 현 회장 일가의 가족회사다. 특히 동양시멘트의 경우 부채비율도 190%대로 다른 계열사보다 현저히 낮고 문제가 된 CP도 거의 발행하지 않았다. 두 계열사는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등 자체적인 재기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현 회장은 법정관리의 길을 선택했다.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 법정관리 결정에는 그룹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핵심 관계자들조차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해체된 전략기획본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비교적 건전한 편이고 부실 규모가 작았던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가 법정관리를 받기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공시가 나기 직전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법정관리는 자율협약보다 채권단의 간섭을 덜 받고 경영권을 유지할 가능성도 높다”면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경우 자율협약 개시와 함께 경영권이 박탈됐는데 이 점을 고려한 선택 같다”고 분석했다. 법정관리의 경우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기존 관리인 유지(DIP)’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풍파에도 현 회장이 재기할 수 있을까. 금융당국 관계자는 “무엇보다 부실 CP 판매 책임이 크다”면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려면 현 회장의 자택을 팔아서라도 피해를 변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회장과 부인 이 부회장이 공동 소유한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은 토지면적 1478㎡(약 447평)에 지하 2층, 지상 3층 건물로 땅값만 9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법원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해당 토지와 건물에는 어떠한 담보설정도 돼 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동양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4만 명에 달하는 동양그룹 회사채와 CP 투자자들이 될 것이다. 현 회장은 모든 것을 얻으려다 모든 것을 잃게 생겼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현재현 회장은?

▲서울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법학 학사, 민법학 석사
▲스탠퍼드대학교경영대학원 국제금융 석사
▲동양시멘트 이사
▲동양시멘트 사장
▲동양증권 회장
▲동양그룹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최고경영자회의 의장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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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